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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도는 생명이고 축복이며 사명이다.

기도는 생명이고 축복이며 사명이다.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에스겔 22장 23 - 31절(개역개정)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설교는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실상은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열심히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철야하며 기도하시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날이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늘 기도하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눅 22:39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실 때에는 그것이 습관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습관이란 오랫동안 반복하여 몸에 익은 버릇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것이 습관이었다는 말은 예수님은 늘 기도하는 삶을 사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습관적으로 하실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2014년 9월 14일 그러니까 ‘한라에서 백두까지’ 기도팀이 북한 구원과 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러 중국에 가기 전날에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기도는 생존이고 기도는 사명이다”
주님은 저에게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2가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는 기도는 생명입니다.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에게 줄은 생명입니다. 줄이 끊어지면 그 사람은 떨어져서 죽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줄이 튼튼하면 사는 것이고 기도줄이 끊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또 하나의 가르침은 기도는 사명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중보기도는 사명입니다. 가족을 위한 중보기도,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 나라를 위한 중보기도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사명입니다. 기도는 사명입니다.
오늘 설교는 그날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에 관한 깨달음 2가지에다가 우리가 평소 듣고 알았던 ‘기도는 축복’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더 해서 ‘기도는 생명이며 축복이고 사명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도는 생명이다.
기도가 생명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적 생명이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된 상태를 생명이라고 말하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사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탯줄을 가지고 설명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은 탯줄이 있기 때문입니다. 탯줄을 통해서 엄마로부터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탯줄이 끊기면 죽음입니다. 엄마는 아기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아기는 탯줄을 통해서 엄마와 연결되어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생존이라는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기도가 생명인 이유는 우리가 위험한 지경에 처했을 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사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다면 원수 대적 마귀의 역사 때문에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전했고 가장 능력이 뛰어났던 아담과 하와도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렸는데 이미 타락한 존재인 우리들이 무슨 능력으로 마귀의 역사를 이기겠습니까? 마귀에게 지면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다의 히스기야 왕 시대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군사를 동원해서 예루살렘 성을 둘러싼 일이 있었습니다. 산헤립은 강했고 히스기야는 약했습니다. 히스기야와 성 안에 갇힌 백성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스기야가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하룻밤 사이에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를 죽이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날의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생명과 성 안에 거하는 백성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건강하던 히스기야에게 어느 날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그 병은 불치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죽음을 받아드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실 것을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기도하지 않았다면 히스기야는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를 살려주셨습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서경조 목사님은 우리 장로교 최초의 일곱 목사님 중 한 분으로 한국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우신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 해 동지 섣달, 교회에서 일하던 목사님이 무서운 열병에 걸려 열이 40도가 넘고 헛소리를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 돌아가시게 되자 온 교우들이 모여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열은 조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의학박사이신 엘비스 선교사님을 모시고 달려왔지만, 그분도 목사님의 병명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약도 쓰지 못하고 두 분 선교사님도 그저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창호지 문턱을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가 찾아온 줄 알고 문을 여니 큰 두꺼비 한 마리가 뛰어 들어와 서경조 목사님의 이마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모두 놀라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두꺼비가 목사님의 이마 위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두꺼비를 쫓아낼 생각을 못했습니다. 조금 후에 혼수상태에 있던 목사님이 “아, 시원하다.”하시며 일어나셔서 식사를 하시고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뒤늦게 어떤 한의� 怜�말하기를, 그 병은 서사병인데 그 병의 치료제는 두꺼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 병은 두꺼비가 열을 빼앗아 가야 낫는 병이랍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목사님의 병을 치료하시기 위해 동지섣달에 두꺼비를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는 영적 호흡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기도가 영적 호흡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저는 최소한 2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호흡은 쉬지 말고 해야 하는 것처럼 기도도 쉬지 말고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호흡이 끊어지면 죽는 것처럼 기도가 끊어지면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호흡이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그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2. 기도는 축복이다.
기도가 축복인 것은 성경에 너무나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성경에 나온 많은 실례들 중에서 야곱의 기도, 얍복강에서 드렸던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기도가 왜 축복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쌍둥이 동생이었습니다.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형의 장자의 자리까지 욕심을 부릴 정도였습니다.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빼앗으려고 머리를 썼습니다. 하루는 형 에서가 사냥을 나갔습니다. 야곱은 형이 사냥을 하고 돌아오면 배가 고플 것을 알고 팥죽을 쑤어가지고 형의 장자권을 사려고 했습니다. 아마 야곱은 집안에 먹을 만한 것은 모조리 치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형이 돌아올 시간에 맞춰서 팥죽을 끓였습니다. 야곱이 예상했던 대로 형에서는 배가 고픈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집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먹을 것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던 에서는 야곱이 쑤는 팥죽 냄새를 맡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을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형의 성질이 불 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마도 농담조로 “형의 장자권을 내게 주면 팥죽을 줄께”라고 했을 것입니다. 단순무식한 에서는 야곱의 잔머리는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을 겁니다. “그래 네가 형해라” 에서는 장자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는 생각지도 않고 말로 장자권을 동생에게 넘겼을 것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 이삭이 늙고 눈도 보이지 않으니 에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에서에게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와라. 그러면 너에게 내가 축복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축복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그 속식을 들은 욕심 많은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을 형에게 빼앗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의 옷을 입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아야 할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유대인 남자들에게 중요한 것 2가지가 장자권과 부모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그 2가지를 다 야곱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러니 에서가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에서는 야곱을 죽일 마음을 품었습니다. 에서는 다혈질적인 사람이라 “아버지만 돌아가셔봐라. 야곱, 너는 내가 죽여 버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들은 야곱은 에서의 난폭한 성격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멀리 밧단아람에 사는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밧단 아람에서 20년을 살던 야곱은 외삼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고 또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외삼촌을 떠나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한 가지 걱정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야곱은 형의 마음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면 그 성격으로 볼 때 분명히 자신을 해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강에서 가족들과 가축들을 앞서 보내고 자기는 남았습니다.
얍복강에 남은 야곱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기도를 하니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를 본 야곱은 천사를 붙들고 씨름하듯이 매달렸습니다.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없습니다.” 천사는 돌아가려고 하나 야곱은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습니다. 결국 천사는 야곱을 축복을 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를 붙들고 했던 씨름은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는 야곱에게 축복이었습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기도는 축복입니다.
첫째,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야곱은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습니다. 브니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 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브니엘이라고 이름한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면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만남의 복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만남이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유명하고 능력이 있고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 많은 사람이 따른다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불쌍한 인생이며 결국은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고, 건강도 좋지 않고,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무능하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영원한 복을 받은 것이며 결국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를 통해서 자신이 변화되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야곱은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응답 중에 하나는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응답이었습니다. 천사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신앙생활은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됩니다. 고후 5:17에서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을 진짜 만난 사람들은 다 변화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영과 새마음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듯이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 산에서 내려오니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질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변화는 하나님 만나면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변해야 하나님의 복이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 편에서 준비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수원지에서 좋은 물을 보내도 수도꼭지가 녹슬어 있으면 녹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녹물이 나오던 수도꼭지를 새것으로 바꾸면 좋은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에 복과 저주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내가 변화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준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시간에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고, 하나님을 대면하니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산이 헤르몬산이라는 설도 있고 다볼산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기도여행을 할 때 헤르몬산도 올라가고 다볼산도 올라갑니다. 그 산에서 예수님께서 변화되셔서 빛이 나셨습니다. 그런데 눅 9:29에 보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 때 변화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축복입니다.
셋째, 기도하면 환경이 변화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땅은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복을 받으면 땅이 살아나고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땅도 저주를 받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기 전에는 땅이 아름다웠습니다. 땅이 저절로 풍성한 열매들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니 땅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을 보면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그 땅은 황무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 땅에 거하면서 땅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땅이지만 아랍지역과 유대인 지역은 땅이 다릅니다. 보통 아랍지역은 황폐한 땅입니다. 유대인 지역은 아주 푸르고 기름진 땅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사람의 문제입니다.
대하 7:14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2가지를 해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첫째는 그들의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땅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신앙과 환경, 기도와 환경이 기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했던 왕이 있던 시대에는 영적인 면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큰 복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한 왕들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서 환경적으로도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고 하나님을 만나니 내가 변화됩니다. 그리고 내가 변화되니 환경도 변화됩니다. 그래서 기도는 축복입니다.

3. 기도는 사명이다.
어느 나라 혹은 어느 도시에 기도하는 의인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들 때문에 그 나라와 그 도시를 향한 심판을 미루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여기셨습니다. 사 41:8에 보면 하나님은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로 여기셨기 때문에 소돔성을 멸망시키시기 전에 먼저 아브라함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의 멸망에 관한 비밀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소돔성에는 아바르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멸망을 거두어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소돔성에 의인인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가서 조사를 해보니 그곳에는 의인이라고는 롯 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돔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의 멸망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던 아브라함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때문에 소돔성이 멸망할 때 롯과 롯의 가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창 19:29에 보면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고 말! 씀합니다. 롯은 중보기도자인 아브라함 때문에 멸망하는 소돔성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본문에서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리고 그 타락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말씀합니다.
24절에 보면 그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범죄해서 땅이 더러워졌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25절에 보면 선지자들이 타락했고, 26절에 보면 제사장들이 타락했습니다. 27절에 보면 고관들도 타락했습니다. 29절에 보면 백성들도 타락했습니다. 마치 지금 이 시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는 정치지도자들도 타락했고, 종교지도자들도 타락했고 국민들도 타락했습니다.
그렇게 타락한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0절에 보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유다가 멸망할 당시의 상황입니다. 30절을 보겠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은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는 중보기도자들을 찾으십니다.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 성을 멸하시지 못하게 할 중보기도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그 결과 31절에 보니 하나님의 진노를 그 성에 쏟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악한 시대에 하나님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심판을 하지 못하시도록 막아서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이 타락한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설 중보기도의 사명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삼상 12:23에 보면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은 왜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말했을까요? 사무엘은 기도를 사명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쉬는 것은 사명을 버린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기도는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일이 있지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사명입니다.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에는 기도를 사명으로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11월 2-6일에 미스바기도성회를 합니다. 며칠 전에 전단지를 만들었습니다. 어제 택배로 도착했습니다. 거기에 이런 문구를 넣었습니다.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까요? 금번 미스바 성회에는 주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탁월한 사역자들을 강사로 모셨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신 것처럼 강사님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도제목을 제시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자신과 가족의 성공 그리고 내 교회의 부흥만을 위한 기도를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경영을 위한 역사에 동참하는 사명 있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미스바기도성회 전단지를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이런 문구를 올렸습니다.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들은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요? 이제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벗어나서 기도를 사명으로 아는 대한민국의 교회와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는 사명입니다.
‘제3차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기도여행에 함께 가셨고, 지난달에 ‘한라에서 백두까지’ 기도여행에 동참해서 함께 백두산을 다녀오신 전경애 권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백두산을 다녀오셔서 바로 캐나다에 가셨습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니까 도시를 돌면서 중보기도 하시고, 로키산맥 관광을 하시면서 중보기도를 하신다고 합니다. 그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에게 배운 대로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분이 저희 사역에 동참하시고서는 기도를 사명으로 여기고 그곳에서도 사명을 감당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제 마음이 기뻤습니다.
우리는 바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를 지나고 보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라고 하면 바빠서 기도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바빠도 기도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승패는 우리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그러면 결국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고 결국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죠지워싱톤은 독립 전쟁시 매일 오후 6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하고 그때는 일체의 면회를 사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합니다.
워싱톤장군이 거느린 독립군은 수도 부족하고 탄약 등 장비도 부족하여 패전을 거듭함으로 독립의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워싱톤의 군대가 호지골짜기에 진치고 있을 때의 형편은 비참하였습니다. 군사들이 담요가 없어 짚을 깔고 덮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장군은 그때 아이작 뽀르의 집에 유숙하였습니다. 어느 새벽 뽀르는 냇가에 산책을 나갔는데 워싱톤이 강 맞은 편 숲속 눈 위에서 무릎 꿇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하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독립군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뽀르는 독립군이 승리할 것을 믿었답니다. 그리고 과연 워싱톤의 군대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영국군을 이기고 미국의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워싱톤은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고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엎드립시다. 그리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기도는 축복입니다. 기도는 사명입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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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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