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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하박국 2장 1 - 4절(개역개정)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기독교 신앙에서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거듭났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믿음으로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죄사함 받고,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을 다른 말로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엡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믿음으로 얻은 것처럼 사는 것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가능합니다. 성경 히 11:6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아무리 잘생기고, 재주가 많고, 인간성이 좋고, 착하게 살아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입니다.
롬 14:23을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기준으로는 흠 잡을 것이 없이 너무나 훌륭하게 사는 사람도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그의 훌륭함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오만가지 죄악이 가득합니다. 그 많은 죄 중에 가장 악한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기십니다. 세상에 극악한 죄가 많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가 가장 큰 죄입니다.
최근에 무차별 참수로 각국에 공포감을 조성하고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는 IS가 8명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 7명은 죽기까지 믿음을 지켰는데 안타깝게도 1명은 8시간 만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살아났다고 합니다. 한 마을에서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고 예수님을 끝까지 믿으면 죽이겠다고 하고는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한 명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3살짜리 어린 아이는 죽어가면서 “하나님께 다 이를 거야.”라고 했다고 합니다.
IS가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 죽입니까? 참수시킵니다. 목을 벱니다. 정말 잔인하죠. 그들이 왜 그런 잔인한 일을 저지르는지 아십니까? 왜 그러냐면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길을 가다가 불신자를 만나거든 목을 자르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도 유대인 600여 명을 참수했다고 합니다. 제가 며칠 전에 IS가 참수한 사람들이 피 흘린 채 널브러져 있는 사진을 봤는데 너무 잔인해서 구역질이 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악함 보다 불신앙을 더 악한 것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이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바울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인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도 인용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하박국 선지자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는데 과연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믿음대로 행한다는 말이다.
어느 산부인과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산모가 자연 분만을 하지 못하면 수술을 받아야하는데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산모에게 마취를 해야 합니다. 어느 날 의사가 수술을 받아야하는 산모에게 마취를 하기 위하여 “심호흡 하세요”라고 말했더니 그 산모가 너무 긴장을 했는지 심호흡을 하지 않고 말로 “심호흡, 심호흡” 하더랍니다. 심호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믿음으로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과 행함을 하나로 보십니다.
실체와 그림자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림자가 있다는 말은 실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림자가 없다는 말은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있으면 제 그림자가 있고 제가 없으면 제 그림자도 없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다는 말은 믿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행함이 없다는 말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믿음대로 행한다는 말입니다.
약 2:26을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말해도 하나님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행함을 통해서 그의 믿음을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했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 그의 사랑을 인정해주셨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할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는 폼만 잡은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말리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외쳤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 된 것은 그가 믿음대로 행할 때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믿음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대로 행동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기적을 일으켜주십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었을 때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사는 과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이 가뭄 든 것처럼 주변 나라들도 가뭄으로 고통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가뭄에 먹을 것이 떨어져가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과부를 살려주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과부에게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공궤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엘리야를 과부에게 보내셔서 마지막 남은 가루로 엘리야를 섬기라고 명하셨습니다. 과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해서 아들을 먹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엘리야를 보내셔서 다시 말씀하시니 그제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먹이기 위한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해서 엘리야를 섬겼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믿음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지면에 비를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다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요즘 인터콥선교회에서 하는 목회자 비전스쿨을 다니고 있습니다. 12주 교육인데 4주째 공부했습니다. 제가 비전 스쿨을 다니면서 느끼는 점은 믿음으로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인터콥의 슬로건 중에 ‘우리는 순종하고 하나님은 역사하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보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인터콥은 이슬람지역을 타겟으로 삼고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선교사들과 교회들이 이슬람 테러 단체들의 활동 때문에 이슬람 선교를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인터콥 선교사님들은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이슬람 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비전 스쿨에서는 선교사님들의 간증이 있습니다. 저는 선교사님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행동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무슬림 선교의 문을 여시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믿음대로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2. 비전을 따라 산다는 말이다.
여러분! 믿음을 정의한 구절이 어디에 있습니까? 생각나는 구절이 있으시죠? 히 11:1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진짜 믿음은 바라는 것이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란다는 것은 비전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비전은 나의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 12:1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자기가 가고 싶은 땅을 향해 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 꿈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터콥 훈련을 받으러 가면 눈에 들어오는 현수막 하나가 있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영어로 ‘not my vision, but his vision’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나의 비전이 아니라 그의 비전을 따라서 사역하겠다는 인터콥의 방향을 잘 보여주는 현수막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교회의 대표적인 슬로건은 무엇입니까?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인생을 만든다”입니다. 여기서 위대한 비전은 큰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위대한 비전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교회의 사역들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사역을 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여행인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여행인 ‘한라에서 백두까지’... 저는 이런 사역들은 꿈도 꾼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 비전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종 했습니다. 저는 제가 그런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으로 목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이루길 원하시는 것처럼, 여러분 각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이루고 싶어 하십니다. 먼저 나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소원대로 행동하십시오.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니느웨성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비전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원수들이었습니다. 요나는 자기가 니느웨에 가서 멸망을 외치면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니느웨성이 심판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 결과 요나가 탄 배가 엄청난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요나는 바다로 던져지게 되고 큰 물고기 속에서 사흘 동안 지옥의 쓴 맛을 보게 됩니다. 요나의 인생에 닥친 고통은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간 결과였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내가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며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산다는 말이다.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은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어느 잡화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 동네에 새로 부임해 온 목사가 아주 설교를 잘 한다고 상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칭찬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손님이 주인에게 “지난주에 목사님이 어떤 설교를 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 교회에 나가 설교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설교를 잘 하는 줄 압니까?” 주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 목사님이 오신 후 외상값을 잘 갚아요.”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근거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롬 10:17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말씀의 생명과 능력 때문에 우리 안에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내 생각이나 내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세상 상식이나 이론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는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선뜻 응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모세에게 두 가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는 모세의 손에 나병이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표적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주시고 다시 뱀을 잡으니 지팡이가 되는 표적이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뱀을 잡는 행동을 통해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뱀을 잡을 때는 상식적으로 머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뱀에게 물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그랬더니 뱀이 지팡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는 순간부터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상식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으로 사는 것은 상식이나 세상 통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가르쳐줍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는 7일간 성을 돌면 무너진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니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나아만이 문둥병을 치료 받을 때도 그렇습니다. 나병을 치료하는데 무슨 용한 약을 바르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단강 물에 일곱 번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상식적으로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심판대에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천국으로 보내느냐 지옥으로 보내느냐를 결정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을 보실 때 우리가 하는 믿는다는 말을 가지고 우리를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는가를 가지고 판단하십니다.
마 7:22,23에는 마지막 날 심판대에서 있을 일을 보여줍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 자신들이 행했던 능력을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능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씀대로 살았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말로 주님을 믿었다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말을 보시지 않고 그들이 말씀대로 살았는가를 보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은 주님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캐나다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당대에 거부가 된 깁슨 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 물방앗간 심부름꾼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가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는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매사에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자 그 기자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답니다. “그거야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때 깁슨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못됩니다.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대로 살아서 마지막 심판대에서 믿음을 인정받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보상과 심판을 기다리며 산다는 말이다.
하박국선지자는 세상에서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의인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어려운 일들을 너무 많이 만납니다. 그리고 의인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악인들은 온갖 악을 범하며 사는데도 하는 일들이 잘 되고 형통합니다. 그렇게 되니 그 당시 사회가 율법이 해이해지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의인은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하는 일마다 대박이 나야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악인은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라도 쳐서 죽어야 사람들이 믿음생활을 잘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박국선지자가 보니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으니 답답해서 하나님께 따지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선지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악인들은 멸망할 것이고 의인들은 환경이 어려워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본문 3,4절을 봅시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악인들은 반드시 망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의인들은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박국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해답을 찾습니다. 그가 찾은 해답은 세상을 길게 보면 결국 악인은 망하고 의인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진리를 깨닫고 난 후에 3:17-19절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은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해도 믿음의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의인들을 높이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먹을 것도 없고, 우리에 양도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어디를 봐도 없고, 없고, 없어도 하나님 때문에 기뻐할 것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히 11:6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2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유는 첫째, 그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상을 가지고 기다리시다가 하나님을 찾는 우리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보상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보상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를 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지금 당장 벌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에게도 지금 당장 상주시지 않습니다.
A라는 농부와 B라는 농부가 함께 농사일을 합니다. A라는 농부는 부지런히 밭을 갈고 열심히 씨를 뿌리고 최선을 다해서 김을 맸습니다. 그런데 B라는 농부는 씨도 뿌리지 않고 친구들과 그늘에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놉니다. A도 B처럼 놀고 싶지만 참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가을이 되었습니다. 추수할 때가 되면 A와 B는 분명히 다른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A는 실한 열매를 풍성하게 거둘 것입니다. 반면에 B는 거둬들일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보상과 심판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롭게 살면 지금은 어렵고 힘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에서 풍성하게 거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악하게 살면 지금은 잘 되는 것 같고 형통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에서는 비참하게 영원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현세에서도 잘되고 내세에서도 잘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믿음대로 행하십시오. 비전을 따라 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시고, 하나님의 보상을 기다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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