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마1:18-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22:41-46 말씀입니다.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앞장을 섰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곧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다는 사실은 깨달아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참람하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자로 몰아 부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와는 달리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마1:1과 마1:18 상반부 말씀을 읽어봅니다.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
마1:18상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오늘 본문 18절에 기록된 나심이라는 단어와 1절에 기록된 세계라는 단어는 사실 똑같은 단어입니다. 모두 족보라는 뜻입니다. 단지 그 번역을 다르게 했을 뿐입니다. 마1:1-17은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밝혔습니다. 반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또 다른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경이롭고도 특이한 출생에 관한 기록들이 나타납니다. 예컨대 창세기 18장에 기록된 이삭의 출생이 그러합니다.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그의 어머니 사라는 둘 다 노쇠했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 사라는 경수도 끊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삭이라는 아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사사기 13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의 출생도 그러했습니다. 그의 어머니, 곧 마노아의 아내는 잉태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아들 삼손을 낳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본시 잉태하지 못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한나는 하나님에게 나아가 통곡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닫힌 태를 여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또 누가복음 1장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출생도 그러했습니다. 그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 들기까지 아이가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라는 아이를 허락하셨습니다.
물론 이들의 출생이 경이롭고 특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밝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들의 출생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롭고 특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 모두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경이롭고도 특별하신 나심을 다섯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The Virgin Birth Conceived, 18절).
둘째, 요셉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The Virgin Birth Confronted, 19절).
셋째, 천사가 요셉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The Virgin Birth Clarified, 20-21절).
넷째, 마태는 구약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The Virgin Birth Connected, 22-23절).
다섯째, 요셉은 천사의 분부대로 행했습니다(The Virgin Birth Consummated, 24-25절).
이제 오늘 본문을 차례대로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음을 살펴보겠습니다(The Virgin Birth Conceived, 18절).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여기에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또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먼저 마리아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눅3:23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쪽의 족보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헬리는 요셉의 장인 어른, 곧 마리아의 부친입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전연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헬리의 딸입니다. 요19:25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게는 자매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눅1:36입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이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했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친족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세례 요한도 서로 친척이 되는 셈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제외하면, 이상이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의 인적 사항 전부입니다.
한편 요셉에 대해서는 마리아보다도 더 정보가 적습니다. 마1:16에 기록된 대로 그는 야곱의 아들입니다. 그의 직업은 마13:55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요셉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언제 죽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그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요19:26-27입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예수님의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이미 죽고 난 뒤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마리아와 요셉은 매우 젊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십대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여자가 열두 살 내지는 열세 살이면 정혼을 했습니다. 남자는 그보다 몇 살이 더 많았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결혼식을 올리기 대략 일년 전에 먼저 정혼을 했습니다. 일단 정혼을 하면 법적으로는 부부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에는 요셉을 남편이라고 부르고 있고, 20절에는 마리아를 아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정혼 기간 내에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과부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파혼을 원하면 정식 이혼증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정혼을 할 때, 신랑 측에서는 신부 측에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뒤에 신부집에서는 그것으로 결혼잔치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결혼잔치를 일주일 동안 계속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준비한 포도주가 동이 나는 일도 생겼던 것입니다.
정혼을 하고 나서 일년 뒤에 결혼식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기간 동안에 부부의 순결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부부가 동침을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 간에 거의 접촉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만일 여자가 이 기간 동안에 아이를 낳거나 배었다면, 그 여자는 부정한 짓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 때는 파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동거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지금 정혼 기간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것이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눅1:26-35입니다.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던 것입니다. 그 때에 마리아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눅1:38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순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믿었습니다. 물론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에게 자기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다시 말해서 자신은 동정녀인데 어떻게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사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으며, 천사가 전해준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친족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1:45입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또한 마리아는 눅1:46-55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시간 관계상 여기서는 읽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으며, 그 말씀을 믿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동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가 잉태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몹시도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남편 요셉에게서 버림을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부정한 여인이라고 사람들에게서는 오해를 받으며 심지어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을 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신앙의 자세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요셉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The Virgin Birth Confronted, 19절).
오늘 본문 19절의 말씀입니다.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8절에 있는 말씀대로 마리아와 요셉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요셉은 남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마리아는 자기가 처녀인데도 잉태하게 되었을 때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남편 요셉은 몰랐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내 마리아가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잉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놀라서 큰 충격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본문은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말로 표현하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였습니다. 눅1:6을 보면 세례 요한의 부모에게도 똑같은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요셉으로서는 마리아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따라 살지 못한 부정한 여자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서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이었던 요셉은 마리아를 그대로 데리고 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를 끊고자 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끊는다”라는 말은 결혼을 파기한다, 즉 이혼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요셉은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서 두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첫째로, 공개적으로 끊어버리는 방법입니다. 신22:23-24입니다.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둘째로, 가만히 끊어버리는 방법입니다. 신24:1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요셉은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쪽을 택했습니까? 요셉은 마리아를 드러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에게 수치를 안겨주는 일은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비록 자기 자신은 수치를 당하더라도 마리아는 수치를 당하는 일에서 보호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가만히 그를 끊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요셉은 마리아를 끊으면서도 마리아에게 가해질 징벌도 피해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요셉으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책이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천사가 요셉에게 알려준 사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The Virgin Birth Clarified, 20-21절).
오늘 본문 20절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자기 아내 마리아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때 그의 꿈속에 주의 사자, 곧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물론 요셉이 꾼 꿈은 요즘의 우리가 꾸는 꿈과는 다릅니다. 우리의 꿈은 다 상상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실제적입니다. 그는 꿈에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본 것입니다. 또 지금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된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계시를 받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에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꿈속에 나타난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천사는 요셉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기 위해서는 요셉이 해야 할 역할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와 정혼한 마리아를 가만히 끊음으로서 파혼을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요셉에게 무서워하지 말고 그의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예식을 거행함으로서 결혼절차를 완성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리아가 부정한 짓을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곳에서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창1:2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님이 수면에 운행하실 때, 우리는 곧 이어 천지창조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보게 됩니다. 또한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을 맞이해서 성령님이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인 일백 이십 명의 성도들에게 임하셨을 때는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눅1:35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그렇습니다. 마리아에게 성령님이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덮으실 때, 왜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수가 없었겠습니까?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것입니다. 천사는 계속해서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을 지으신 분도 그의 모친 마리아가 아니었습니다. 천사도 아니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주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지으신 분은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이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세례 요한의 경우도 천사가 그 이름을 일러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경우에는 그 이름의 의미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이 가진 의미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부터 분명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인 여호수아 또는 예수아의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Jehovah saves)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그저 자기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천사가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바로 그 분이십니다. 우리는 행4:12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시20:7에 있는 말씀처럼 어떤 사람은 병거를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도울 힘이 없는 방백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자기의 지식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들도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으로 구약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살펴보겠습니다(The Virgin Birth Connected, 22-23절).
오늘 본문 22절입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이제 천사가 요셉에게 한 말은 끝이 났습니다. 마태는 이 모든 일 곧,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사실이 구약 성경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메시야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창세기에서도 예언된 내용이었습니다. 창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실 메시야는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갈4:4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또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1:16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성경에 있는 족보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는 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자인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잉태되시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주신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는 사7:14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시대적인 배경은 이러합니다. 유다 왕 아하스 때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의 왕 르신이 연합해서 유다를 침공하려 들었습니다. 그 때 유다 왕 아하스는 다윗 왕조가 끊길 것을 우려해서,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이 유다를 이스라엘과 아람의 두 나라에서 건져주실 것이니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 아하스는 선지자 이사야의 간청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이사야 선지자는 사7:14에 기록된 놀라운 예언의 말씀으로 유다 왕 아하스에게 대응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무슨 뜻입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일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가 이스라엘과 아람의 두 나라를 막아내는 일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도 아하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또 다른 아이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사8:1-4입니다.
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갸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3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바 될 것임이니라
마헬살랄하스바스가 태어나서 세 살이 채 되기도 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왕 베가와 아람의 왕 르신은 죽었습니다. 한 아이 마헬살랄하스바스의 출생과 두 왕의 죽음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징조로 보여진 것이었습니다. 만일 둘째 아이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다면, 첫째 아이에 대한 예언도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장차 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그 위대한 탄생, 곧 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실 메시야의 탄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결코 저버리시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는 예수님의 칭호입니다. 본시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에서 구원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임마누엘이십니다.
따라서 때로는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결코 절망하지 맙시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에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에서도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임마누엘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힘있게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천사의 분부대로 행하는 요셉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The Virgin Birth Consummated, 24-25절).
오늘 본문 24-25절입니다.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날의 잠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뜻깊은 잠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받은 느낌에 대해서는 기록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을 때의 느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천사의 방문을 받고서 그는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천사를 통해서 그의 아내 마리아가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서 크게 안도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처럼 비천한 자들이 메시야의 탄생을 위해 택함을 받고 쓰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크게 기뻐하며 감격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였습니다. 여기에 그의 즉각적인 순종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요셉은 천사의 분부에 따라서 세 가지를 행했습니다.
첫째, 요셉은 자기 아내 마리아를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결혼식을 거행함으로서 정혼의 기간을 다 마치고, 결혼 절차를 완성한 것입니다.
둘째, 요셉은 마리아가 아들을 낳기까지는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난 후에, 요셉과 마리아는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는 여러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마13:55-56입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셋째, 요셉은 마리아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했습니다. 천사의 말대로 그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사자의 분부대로 모든 것을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뒤에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눅2:22-24 말씀입니다.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그런 뒤에 얼마 있지 않아서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갔습니다. 마2:13-15 말씀입니다.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울러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셨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데리고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눅2:41-47입니다.
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이상이 요셉의 삶에 대한 기록의 전부입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 좀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모친 마리아를 자신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사람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본시 하나님에게 속한 영원한 생명을 그에게 주십니다. 눅19:10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나아오면 예수님은 그를 그의 죄에서 구원해주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병든 자들의 온갖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문둥병도 고치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자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배고픈 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풍랑도 잔잔케 하셨습니다. 슬픈 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에게로 오기만 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같은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날마다 동행하면서 늘 복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오늘 본문에 나타난 요셉과 마리아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귀하게 쓰임을 받는 삶이 되기를 임마누엘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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