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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장 18 - 31절(개역개정)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버드 대학 에드워드 밴필드 박사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시간 지평’이라는 단어입니다. ‘시간 지평’이라는 말로 사람을 연구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시간 지평이 멀리 보고 장기 계획을 세우고 착실하게 살아간 사람입니다. 실패한 사람일수록 시간 지평이 짧았습니다. 오늘만 봅니다. 금년만 봅니다. 길게 보지 못합니다. 시간지평이 짧은 사람은 실패하였습니다.
스텐포드 대학의 윌터 미셀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4살짜리 아이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입에 대면 살살 녹고 맛있는 마시멜로라는 사탕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사탕을 먹지 말고 15분 들고 있으면 한 개씩 더 준다.” 그런데 3분의 1의 아이들이 15분을 참지 못 하고 사탕을 먹어 버렸습니다. 그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15분이 되기 전에 사탕을 먹어 버린 아이들은 자라나면서도 조그만 일도 참지 못 하고 자기감정을 제어하지 못 하고 다혈질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5분을 참고 견딘 아이들은 어려움이 있어도 참아 내며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들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시간지평이 영원한 세계까지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현세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내세까지 보는 시간지평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조급하고 참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먼 훗날의 열매와 영원한 천국의 상급까지 바라보고 인내해야 합니다. 시간 지평이 길어야 큰 사람이 됩니다.
십자가의 진리가 믿어져야 시간지평이 영원까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나와도 십자가의 진리가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시간지평이 현세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를 나오지만 십자가의 도가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지 못합니다. 혹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한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느낌일 뿐이지 실제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구원자이실까요?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에게 구원자이십니다.
18절에 보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란 무엇입니까? 여기서 도란 로고스를 말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말씀 또는 십자가의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진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간단하게 요약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6일째 되는 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인이 된 인간은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야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담당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사람의 많은 헌금이나 희생 또는 노력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으면 그는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약한 성경 말씀이 요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간단하게 서술한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멸망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혹시 그들이 십자가의 도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절대 믿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진리가 믿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세상의 지혜로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믿어지려면 하나님의 계시가 임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다시 한 번 18절을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럼 십자가의 도에는 무슨 능력이 있을까요?

1. 전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여러분! 우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믿으시고 구원 받으세요”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불쌍하게 쳐다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전도를 하는 것은 무식해보이고 교양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는 그 전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 한국에 선교사님들이 처음 들어와서 전도를 할 때 그들은 우리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전도지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전도하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우습게 보였겠습니까? 그런데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면 십자가의 진리에는 전도의 능력이 있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약 13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 5만개가 넘는 교회당이 세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교회 초대교회 때 있었던 일입니다. 김익두라는 아주 무서운 깡패가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유명한 깡패였는지 평양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서워서 덜덜 떠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무서운 깡패에게 누가 예수님을 전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전하다가 맞아 죽을까 봐 겁이 나서 아무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김익두를 모르는 미국인 처녀 선교사님이 길에서 김익두를 만나자 “청년,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하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김익두가 그 전도지로 코를 팽 풀어서 집어던졌습니다. 김익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모르는 선교사님이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 그런데 그 말에 전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김익두의 코가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꼭 코가 썩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웠는데도 코가 폭싹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강심장인 김익두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내 코가 정말 썩으면 어떻게 하나?’
다음 날 김익두는 수소문해서 처녀 선교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에게 제발 코가 썩지 않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코가 썩지 않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익두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도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경상북도 구미시에 가면 갈보리 기도원이 있습니다. 이 기도원은 절이 변해서 기도원이 된 특별한 역사가 있는 기도원입니다.
장로교 집사님 한 분이 깊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스님 한 분이 절을 짓고 있었습니다. 150 평 정도 되는 그리 크지 않은 절이었습니다. 그 때 집사님은 전도지를 주면서 스님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담대하게 매일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스님은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의사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스님이 어쩔 수 없으니 전도를 받아드려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스님으로서 아무리 석가모니에게 기도하여도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스님은 3만평 땅과 자기가 지은 절을 하나님께 헌금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150평 절간을 기도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암자 이름이 보리암(菩理庵)이었기 때문에 보리라는 말을 넣어서 갈보리 기도원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전도의 능력입니다. 전도는 미련해 보이지만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잘 못해도 전도지라도 나눠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전도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산호세에 가면 그곳에서 가장 큰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는 본래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폐인이었습니다. 마약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습니다. 마약을 하기 위하여 마약을 팔아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을 하고 중독 상태로 공원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때 운명이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조그만 사건이었지만 그에게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전도자가 전도지를 들고 가다가 그에게 읽어 보라고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전도지를 받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교회에 나가다가 성령 체험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머리를 점잖게 깎았습니다. 목욕도 깨끗하게 했습니다. 히피 생활을 접었습니다. 마약도 끊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법학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가장 큰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수많은 이들의 법적 문제를 다루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지 한 장이 이렇게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전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2. 약한 자가 강해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26절-29절을 읽어봅시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은 십자가의 진리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 중에는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도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있는 자들을 폐하십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미련한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 때문에 부끄러워야 하고, 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 때문에 부끄러워야 하고, 없는 자들이 있는 자들 때문에 부끄러워야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진리를 붙잡으면 하나님께서 이걸 뒤집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약한 자가 강해지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역설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약한 자를 강하게 사용하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는 자연적인 방법으로는 자녀가 출생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라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부르셔서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로 만드셨으니 그들이 그렇게 되었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부터 그렇게 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화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중간고사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시험문제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방법을 쓰시오.”였습니다. 그 학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썼습니다. 장난으로 쓴 것이었습니다. “석탄을 팔아서 알콜을 사면됩니다.” 그 학생은 교수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낙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담당교수는 그 학생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너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리고 웃으면서 충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학생이 교수에게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유머를 아는 너그러운 교수죠.
89세 할머니였던 사라는 아무리 노력해도 열국의 어미가 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90세에 이삭을 낳았고, 아이를 낳을 수 없던 분이 열국의 어미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바울은 원래 기독교 핍박자였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가두고 죽이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서 죽을 때는 선동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복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선두에 섰고, 가장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엄청나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능력이나 자기를 통해서 되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핍박자였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셨고 부르시더니 자기를 변화시켜주셨고 또 능력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군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위대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약한 자를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사가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사사 중에 강하고 담대하기로 유명한 사사를 꼽으라면 보통 기드온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울 때 미디안 사람들의 숫자는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았고 낙타는 해변의 모래처럼 많았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자기를 따르는 3만 2천명의 사람들 중에 31,700명을 돌려보내고 300명만 데리고 싸워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 역시 역설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기드온은 원래 두려움과 의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날 때 그는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그들의 눈을 피해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기드온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니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말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바알의 상을 부수라고 하시니 기드온은 겁이 나서 그 일을 낮에 못하고 밤에 몰래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두렵거든 밤중에 미디안 진영으로 몰래 들어가보라고 하셨더니 기드온은 정말 밤중에 사환과 함께 미디안 진영에 몰래 들어가 보았습니다. 기드온은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한 기드온을 붙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기드온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약한 기드온이 강한 미디안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진리를 붙잡는 자들에게 약할지라도 강하게 역사해주십니다.

3. 예수님과 하나 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하나가 되면 우리의 연약함과 악한 것들은 주님께서 처리해주시고 주님에게 있는 좋은 것들은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30절을 봅시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주님과 우리가 연합하면 우리에게는 주님으로 인하여 좋은 것 몇 가지가 생깁니다. 30절에서 대표적 4가지를 소개합니다.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입니다.
엡 2:4-6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십자가 진리를 받아드린 우리들이 주님과 얼마만큼 하나 되는지 보여줍니다. ➀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➁또 그분과 함께 일으키셨다고 말씀합니다. ③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며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의 승천이며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 앉으신 것은 우리가 하늘 보좌에 앉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로 취급해주시는 것입니다.
중국전국시대 초나라 선왕이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북방에 있는 나라들이 나를 두려워하겠지?”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강을이라는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적들은 왕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군사들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강을은 바른 말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왕으로 세우셨는데 나를 잡아먹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요. 만일 의심스러우면 나를 따라 와 보시오.’ 그래서 호랑이가 여우를 따라갔습니다. 짐승들이 모두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본 호랑이는 정말 여우가 왕인 줄 알고 도망쳤습니다. 사실은 동물들이 호랑이를 보고 도망치는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진리를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원수 마귀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신 예수님 때문에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진리를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입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제 몫의 십자가를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인한 구원은 거저 받은 선물입니다. 그러나 믿음생활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생활입니다. 구원은 주님의 십자가로 완전 무료로 주어진 것이지만 구원을 이루는 생활은 우리의 헌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본 하네다 공항 근처에 조그마한 교회가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도로를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가 헐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보상이 나왔습니다. 교회 재산이 생각지도 않게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교회에서 임원회가 열렸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주제였습니다. 어느 장로님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헐렸으니 교회부터 지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이번 기회에 교회를 잘 지읍시다. 멋진 교회 건물을 지으십시다” 이 때 집사님 한 분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저 받은 돈 가지고 교회당을 지으면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이 돈은 거저 받았으니 자선기관에 줍시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우리가 땀 흘린 정성으로 지어야 됩니다. 우리의 피와 땀이 있는 돈으로 교회를 지어야 합니다”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받은 돈은 모두 불우이웃을 위하여 나누어 주고 모두 피와 땀을 흘려 헌금해서 교회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신앙은 은혜로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주를 위한 피와 땀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마저 공짜로 하려고 하면 믿음은 절대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주를 위한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위하여 땀을 흘리고 피를 흘리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십자가는 자기를 생각해서 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회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길 바랍니다.
개미 집단에는 꿀단지라는 개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 개미는 평소에 꿀을 많이 먹습니다. 배가 터질 듯이 꿀을 몸속에 넣습니다. 배가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이 먹어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까지 됩니다. 그리고 홍수나 천재지변으로 식량이 부족하거나 어려워지면 동료 개미들에게 다 빨아 먹게 하는 개미가 꿀단지 개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 바로 이 꿀단지 개미가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 것 역시 공동체에서 꿀단지 개미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가끔 ‘주님의 마음이 성도들 때문에 아프시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셔서 자기의 목숨까지 주셨는데,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셨는데, 교회일 조금 하면서 힘들다. 일이 많다. 왜 저 사람은 일도 안하고 나만 이렇게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누구는 어떻다 저떻다라고 하는 사람들보면, 아니 그렇게 말은 안 해도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억지로 일하는 것을 보면 우리 주님의 마음이 많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저는 목회 편하게 할 생각 없습니다. 내 목회만 생각하며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게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그 힘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그게 십자가 정신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청소년 위비캠프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도 달력을 하면서 어려운 개척교회 한 곳의 달력도 해주었습니다. 돈이 남아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정신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을 깊이 대면해야 합니다. 그분의 웃음이 어떤 것이고 그분의 눈물이 어떤 것인지 대면해야 합니다.
십자가에는 전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해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 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 붙들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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