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십니다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히브리서 11장 20절(개역개정)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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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온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큰 고생 없이 살았습니다. 저는 제 자녀나 성도 여러분이 고생 없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고생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생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고생을 만나더라도 잘 극복하시고 고생 중에도 감사하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고생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기념하여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 식사를 할 때는 어린양과 무교병 그리고 쓴나물을 먹었습니다. 이 세 가지 음식은 신앙생활의 핵심적인 요소를 보여줍니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고 살을 먹어야 합니다. 무교병은 누룩 없는 떡으로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말씀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쓴 나물은 애굽의 고통을 기억하며 감사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인생의 쓴맛도 감사로 먹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쓴 나물과 같은 어려움도 이겨내야 합니다.
오늘은 특이하게 큰 고생 없이 살았던 이삭의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1. 하나님이 하시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해집니다.
이삭의 인생에 있었던 몇 가지 일을 통해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하다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삭의 출생입니다. 롬 4:19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창 18:11에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역사하시니 그들 사이에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이 역사 하셔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둘째, 가뭄에 농사를 지어서 100배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삭은 농사를 짓던 사람도 아닙니다. 그의 직업은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엉겁결에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나 거뒀습니다. 사실 비가 정상적으로 내리는 평상시 같아도 농사를 처음 짓는 사람에게는 100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가나안에 가뭄이 들었습니다.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애굽으로 가려고 했던 때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애굽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랄에 거하며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해에 100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합니다.
셋째,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판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삭을 시기하여 그들이 살고 있던 곳의 우물을 돌로 막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이삭은 말없이 그곳을 떠나 그랄로 가서 거기서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도 그랄 사람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삭은 조용히 양보하고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랄 사람들이 또 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도 이삭은 양보하고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은 이처럼 여러 차례 양보하고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양보하고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면 또 물이 나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물이 나오지 않아 우물 가지고 싸우는 판에 이삭은 땅을 파면 물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랄을 떠나 브엘세바로 옮겨왔는데 거기서도 우물을 팠습니다. 물이 귀한 그 지역에서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하신다.
100세가 된 아브라함 그리고 90세의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에 되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하십니다. 창 21:1,2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실수이든 일부로든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만물은 말씀하신 그대로 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 1장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서 창조 사역의 특징은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만물은 말씀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창 1:3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삭이 실수 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에서와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에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작은 야곱보다 큰 아들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에서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오면 축복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야곱은 눈이 어두운 이삭을 속이고 형의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형의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들어갔습니다.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라 염소털을 붙이고 에서인 것처럼 아버지에게 들어갔습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속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기가 막히다고 생각됩니다. 창 27장에 보면 이삭이 야곱의 음성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염소 가죽을 붙인 손을 만지고는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야곱을 축복했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염소 가죽을 붙인 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이삭은 정말 몰랐습니다. 속은 척 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몰랐습니다.
창 27:33에 보니까 이삭이 에서를 만난 후에 축복을 받은 사람이 야곱임을 알고는 심히 떨었다고 말합니다. 이걸 보면 이삭은 야곱에게 속은 척해준 것이 아니라 정말 속은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이삭은 속을 일이 아닌데 속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 이삭이 야곱에게 속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려고 해도 안 됩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의 흐름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복이 됩니다.
말도 소도 수영을 할 줄 압니다. 말은 수영을 잘합니다. 소 보다 2배 이상 빠릅니다. 그런데 홍수가 나서 말과 소가 물에 떠내려가면 수영 실력이 뛰어난 말은 죽고 말보다 수영을 못하는 소는 삽니다. 말은 수영실력을 믿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물살을 이기지 못합니다. 2m 올라가면 2m 밀려가고, 3m 올라가면 또 3m 밀려갑니다. 말은 수영을 하지만 계속 제자리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20분 정도 지나면 지쳐서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는 수영을 잘 못하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소는 물에 떠밀려 내려갑니다. 그런데 밀려가면서 조금씩 물가로 이동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물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흐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물살을 거스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가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결혼을 할 때 믿음생활을 잘 할 사람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자녀들이 믿음 좋은 배우자,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쓰는 배우자를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한 남자가 길을 가다가 빼어난 미인을 봤습니다. 남자는 어리석어서 미인에게는 참 약합니다. 그 남자도 어리석어 그 미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인의 집안이 말이 아닙니다. 그 여자는 물론 온 가족이 모두 IQ가 70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그 여자가 너무 예쁘니 모험하는 심정으로 그 여인과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프러포즈를 했는데 그 여자가 한 마디로 거절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물었습니다. “나는 부자이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 당신이 나와 결혼하면 분명히 행복하게 살 건데 왜 청혼을 거절하십니까?”,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에요. 우리 집안의 흐름이 있어서 그러는 거에요.”, “무슨 흐름인데 그러십니까?”, “우리 집안은 집안 식구들끼리 결혼하는 전통이 있어요”,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저희 할아버지는 할머니하고 결혼했고, 아버지는 어머니하고 결혼했어요. 삼촌은 숙모와 결혼했고요. 그러니 저도 제 식구들과 결혼해야 해요.” 우리 청년들은 지혜로운 배우자를 만나기를 축원합니다.
이삭은 결혼을 잘했습니다. 리브가를 만나서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결혼을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는 부족했지만 믿음이 좋은 레아를 메시야 혈통의 통로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외모는 아름답지만 믿음이 없는 라헬을 선택했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한 야곱이 라헬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을 자고나니 외삼촌이 신부를 바꿔치기 했습니다. 밝은 아침에 보니 신부가 자기가 사랑했던 라헬아니라 라헬의 언니 레아였습니다. 이때 야곱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레아를 받아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예쁜 라헬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밑에서 14년을 종살이 하면서 고생이 심했습니다.
대체로 한 남자에게 두 부인이 있으면 서로 시기질투가 심합니다. 레아와 라헬은 자매지간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여자는 시기질투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자신의 몸종들을 야곱에게 주고 자식을 낳으려고 경쟁까지 했습니다. 그 바람에 야곱은 뜻하지 않게 아내가 4명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피곤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 다른 자녀들끼리의 경쟁도 심해서 형제들이 형제를 상인에게 팔아버리는 비극적인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야곱은 결혼을 잘못해서 인생에 고난이 많았습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결혼을 잘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부르지만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부릅니다.
유대의 역사를 보면 훌륭한 왕이 몇 명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여호사밧 왕입니다. 여호사밧은 다윗처럼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유대에서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기뻐하시며 그와 함께하셨고 그에게 복을 주셔서 재산이 많고 명예가 극에 달하게 하셨습니다. 대하 17:5과 대하 18:1에 보면 2번이나 “여호사밧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극에 달했던 영광과 재산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대하 18:1을 보니 자식 결혼을 잘못시켰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사돈을 맺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아합은 바알을 섬기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의 딸 아달랴도 악한 여자였습니다. 여호사밧이 사악한 아합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은 것 때문에 여호사밧의 집안이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사밧은 자기 아들들이 싸우지 않도록 장자인 여호람에게는 왕위를 물려주고 나머지 아들들에게는 유대의 견고한 성읍을 하나씩 물려주어 평화롭게 살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죽은 후 며느리 아달랴가 남편을 부추깁니다. “당신의 동생들이 힘을 길러 당신을 치기 전에 먼저 동생들을 치셔야 합니다.” 여호람은 아달랴의 악한 꾀를 따라 자기 동생들을 다 쳐 죽입니다. 그리고 말리는 신복들도 다 쳐서 죽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여호람을 치셔서 여호람은 창자가 빠져나와 죽습니다.
여러분! 악한 아달랴 한 사람 때문에 여호사밧의 집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분 집안에는 복 있는 사람이 들어오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청년들은 복이 있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웃게 하시는 분입니다.
창 21:6에 보니 사라가 이삭을 낳은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이 이삭이 된 것입니다. 이삭의 뜻이 웃음입니다. 이삭은 그 이름대로 부모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들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기가 막혀서 웃었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임신이 되고나니 좋아서 웃었습니다. 또 동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웃겨서 웃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 나이에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웃을 일이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100세고 사라는 90세입니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도 웃고 종들도 다 웃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웃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이삭은 이렇게 부모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태어난 후에도 이삭은 계속해서 웃음과 기쁨을 주는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모리아산에서 자기를 하나님께 제물 드리려고 할 때도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받아드린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데 얼마나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아들이었겠습니까.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 때문에 기뻤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도 자녀들 때문에 기쁨이 넘치는 일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이삭은 사랑하는 어머니 사라가 죽은 후에 마음이 슬펐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이삭은 웃음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을 하고 리브가 때문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를 통해서 이삭에게 기쁨을 주셨고 웃음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가정사역을 하는 송길원 목사님이 일하고 피곤해서 집으로 돌아오데 사모님이 말했습니다. “여보, 많이 피곤하시지요?”, “그 말을 들으니 정말로 피곤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보, 그런 인사하지 말고 다른 인사가 없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내일부터 ‘까꿍!’하기로 합시다. 어러러러 까꿍.” 그래서 그 다음에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어러러러 까꿍”했습니다. 둘은 웃고 또 웃었답니다. 하나님은 목사님과 사모님이 서로를 통해서 웃게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도 가족들로 인하여 기쁨과 웃음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웃음과 기쁨을 주시고 또 말씀으로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의 출생에 관한 예언을 주시니 그들 부부가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쁨이 생겼습니다.
시 119:77입니다.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읽을 때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그리고 말씀이 믿어질 때 더 즐겁습니다. 말씀이 현실이 될 때 너무 벅차고 감격하게 됩니다. 이건 경험해본 사람만 아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기쁨을 주십니다. 갈 5장에 보면 성령의 열매 9가지가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희락’입니다. 롬 14:17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은 희락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쁨이 충만해지고 웃음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눈물이 많아집니다. 악한 세상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서 중보 하느라고 눈물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성령충만하면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세상이 맑게 보인다고 할까요.
서울대학교에서는 웃음 치료법을 가르칩니다. 하버드나 세계의 유수한 의대에서도 웃음 치료법을 가르칩니다. 미국 장로교 병원에서는 웃음 치료단이 있어 그들이 병실마다 다니며 환자들을 웃긴답니다. 웃으면 엔돌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TV에 개그 프로가 있는데 개그맨들이 괴상한 몸짓과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깁니다. 그렇게 억지로 웃어도 엔돌핀이 생깁니다. 그러니 개그맨들에게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다같이 웃어봅시다. “하하하” 크게 10번만 해봅시다.
그런데 새롭게 발견된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 일로 즐거워할 때는 엔돌핀이 생기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기뻐할 때는 다이돌핀이 생긴답니다. ‘다이’는 백배라는 말입니다. 엔돌핀보다 백배나 더 효과가 있는 다이돌핀이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 받으시고 다이돌핀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요 15:11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웃음을 주시는 분입니다. 은혜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치시고 다이돌핀이 샘솟기를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은 잘못을 돌이키는 것을 가장 귀하게 보십니다.
히 11장에서는 믿음의 거장들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 11장에서 이삭의 믿음에 대해서도 한 절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입니다. 그런데 이삭의 믿음의 행위가 많았을텐데 딱 하나 이삭이 쌍둥이 아들들을 믿음으로 축복했다는 말씀만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삭이 행했던 많은 믿음의 행위 중에서 이것 하나를 강조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창 27장에서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던 내용을 생각해봅시다. 정말 믿음의 축복이었다고 생각되나요? 아마 대답은 ‘아니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히 11장에서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한 것이 믿음의 행위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제가 볼 때는 이삭이 처음에는 육신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깨닫고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은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상반되는 일이었습니다. 우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야곱에게 빌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삭은 자기가 잘못하여 야곱을 축복한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떨었고, 에서에게는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짧은 순간이지만 결국 이삭이 자신의 불신앙을 극복하고 믿음을 되찾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다가 속아서 야곱을 축복했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을 믿음의 고백으로 보신 것입니다.
이삭의 일생을 돌아보면 믿음의 역사로 기록할 내용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만을 히 11장에 기록해 놓으신 것은 하나님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을 귀하게 보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깨닫고 돌이키는 것은 더 큰 복입니다.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선교회 회장이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그는 3,600평 대지에 잔디밭이 있고, 풀장이 있는 으리으리한 집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느 주일에 여선교회 회장님이 이런 광고를 해달라고 목사님에게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폐품을 모아서 돈을 모으고 싶습니다. 선교사업을 위해서 쓰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광고를 좀 해 잘 해 주시죠” 그 날 아침 목사님은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본 교회 여선교회 회장님께서 폐품을 모집하기를 원합니다. 회장을 위해서 폐품 수집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버려둔 폐품을 전부 가지고 오십시요. 가져오시면 교회에서는 그것을 팔아서 여선교 회장의 생활비와 용돈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광고를 들은 여선교회 회장이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목사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목사님, 저를 거지로 알았습니까? 제가 언제 폐품 팔아서 먹고 산다고 했습니까?” 목사님이 여선교회 회장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보다 부자입니까? 아니면 당신은 예수님을 거지로 알았습니까? 폐품이나 쓰레기 같은 것 주워서 예수님께 드리려 합니까?” 이 말을 들은 여선교회 회장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였습니다. “주여,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
저는 지금 폐지 모아서 선교를 하는 것이 좋다 나쁘다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은 건축헌금은 하고 싶은 데 헌금 할 돈이 없는 가난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새벽예배 끝나면 폐지를 주워서 그걸 모아다 팔아서 헌금을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도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그 목사님처럼 광고 못합니다. 새가슴이라 못합니다. 대단한 목사님입니다. 그리고 여선교회 회장님은 참 훌륭한 분입니다. 책망 받고 깨닫고 고쳤으니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시험이 들어도 크게 들었을 텐데 깨닫고 회개하였으니 정말 훌륭한 분입니다.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실수를 했습니다. 실수를 해도 너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충신인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게 한 죄를 범했으니 얼마나 큰 죄입니까? 또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던 다윗이 한번은 교만한 마음이 들어가서 군사의 수를 자랑하고 싶어져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그 바람에 백성 중에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습의 다윗을 사랑하시고 그를 고쳐서 귀하고 복되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과 달랐습니다. 잘못을 했어도 잘못을 깨닫지 못했고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는 무서운 소리를 들어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사울의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실 수 할 수 있습니다.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깨닫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인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실수를 했을 때 돌이키고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런 모습을 귀하게 보시는 분입니다. 혹시라도 죄 가운데 있다면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실수로라도 죄를 범하면 속히 돌이키는 이삭과 같은 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이삭의 일생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1. 하나님이 하시면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도 가능합니다.
2.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대로 하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입니다.
4. 하나님은 잘못을 돌이키는 것을 가장 귀하게 보십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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