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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눈 아래를 가격하라

눈 아래를 가격하라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9장 24 - 27절(개역개정)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주님의 은혜로 청소년 위비캠프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은혜 받아야 할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큰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위비캠프 후에 다양한 방법으로 참석자들이 받은 은혜에 대해서 듣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소식들은 저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청소년 위비캠프는 영적인 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생들을 3박 4일간 기도원에 잡아두시고 강력한 신앙의 훈련을 시켜주셨습니다. 우리가 교관이었고 조교였습니다. 우리를 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립시다.
이번에 훈련을 잘 받은 학생들은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살 것이고 승리하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은 훈련을 받지 못한 만큼 생활 속에서 더 훈련을 받을 것입니다.
이번 캠프에 참석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감동 받은 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감동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신앙생활을 운동시합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랫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그리스 사람들의 운동경기를 보았을 것입니다. 경기는 2년마다 열렸습니다. 당시 경기는 주로 두 종류로 구별하였습니다. 하나는 복싱과 레슬링이 혼합된 팬크라티움(Pancratium)이었고, 다른 하나는 높이뛰기, 달리기, 창던지기 등으로 이루어진 펜타틀론(Pentathlon)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경기를 보면서 신앙의 경주에 관한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선수들은 경기에 나가기 전에 적어도 10개월 이상은 엄격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대표선수들이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에 선수촌에 입소합니다. 가끔 TV를 통해서 국가대표선수들이 선수촌에서 훈련 받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1년간 정말 모진 훈련을 받는 것 같습니다. 간혹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선수촌을 빠져나가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훈련이 가혹해도 훈련을 견뎌야 합니다. 그래야 시합에 나갈 수 있고 상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훈련을 견디지 못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강수진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녀는 발레를 전공했습니다. 세계적인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였습니다. 현재는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입니다. 저는 사진으로 강수진씨의 발을 본적이 있습니다.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발 같이 온통 울퉁불퉁하고 나병환자의 발 같이 온통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강수진씨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했을까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발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가기 까지 얼마나 큰 인내를 했을까 짐작 되는 사진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훈련입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하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눅 21:19에 보면 주님께서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내해야 승리합니다.
오늘 설교는 운동경기를 통해서 신앙의 경주를 살펴보겠습니다.

1. 신앙생활에는 상이 있습니다(24,25절).
바울이 살았던 고린도에서는 경기에서 우승하는 자들에게는 월계수로 만든 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 상을 타는 것은 개인의 영광이었고 가문의 명예였습니다.
24,25절에서 사도 바울은 신앙의 경기에도 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1) 최고상은 한 명만 받습니다(24절).
24절에 보니 많은 사람이 운동장에서 달려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경기든지 금메달은 하나이듯이 언제나 최고의 상은 한 사람이 받습니다. 신앙생활도 최고의 상은 한 사람이 받습니다.

2) 하늘의 상은 힘쓴 자가 받습니다(25절).
최고의 상은 한 명이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최고로 잘한 사람에게만 상을 주시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고 그 사명에 충성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상을 받을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 보면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 상을 받는 것처럼 두 달란트 남긴 사람도 상을 받았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딴 김현우 선수는 “나보다 땀을 더 많이 흘렸으면 이 메달 가져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 메달을 따기 위해서 그만큼 수고를 했다는 것이죠.
운동선수가 메달을 따기 위해서 힘써 수고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힘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마 22:37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을 가르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는 말은 최선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힘써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신앙생활의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따라서 수고해야 합니다.
힘써 수고하는데 성령의 흐름을 몰라서 내 생각에 따라서 힘을 다하면 안 됩니다. 성령의 흐름은 아는데 힘을 쓰지 않는 것도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힘쓰는 자가 상을 받습니다.

3) 하늘의 상은 썩지 않는 상입니다(25절).
바울이 보니 이 세상 운동선수들은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 수고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되어 얻게 되는 영광은 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에는 물질적인 보상도 따르는 것입니다.
체조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도시에서 농촌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집을 살 돈이 없어서 비닐하우스를 치고 살았습니다. 양학선 선수는 키가 1미터 59밖에 안 되지만 그 키가 체조하기에 가장 적합한 신장이랍니다. 가정이 가난하다 보니 태릉선수촌에서 매일 받는 40,000원 용돈을 꼬박꼬박 모아서 매월 100여만 원씩을 아버지한테 보내 드렸습니다. 그는 금메달 따면 아버지 집부터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답니다. 언론사에서 양선수의 집을 취재하려 하였으나 아버지는 비닐하스에 사는 집을 공개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런데 양학선 선수는 부모님에게 비닐하우스에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니 취재에 응하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결국 사는 집을 공개했습니다. 양 선수 가정의 처지를 알게 된 광주의 중견 건설사는 32평, 2억짜리 아파트를 제공했고, LG의 구본무 회장은 5억 원을 기부하였고, 농심에서는 평생 너구리 라면을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대한 체육회로부터 1억 원의 포상과 평생 연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 선수가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또 당첨은 요행이지만 양 선수는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국가 주는 포상 제도가 있습니다. 금메달을 따면 90점, 죽을 때 까지 매월 연금 100만원, 포상금 일시금, 6,000만원, 남자는 군 면제입니다. 은메달 70점 연금 75만원, 포상금 3,000만원 군 면제입니다. 동메달 40점 연금 52만 5천원, 포상금 1,800만원, 군 면제입니다.
이렇게 포상제도가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한 번만 금메달을 따도 평생 혜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모든 것이 썩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받는 포상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썩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받는 상과 상으로 인한 혜택은 영원합니다. 그래서 썩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운동선수들은 썩을 것을 얻고자 수고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것을 얻고자 수고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은 방향성이 있습니다(26절).
모기향을 피우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죽은 모기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웃자고 한 말입니다. 모기향을 피우는 목적은 분명합니다. 모기를 쫓기 위하여 모기향을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방향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방향성을 3가지로 요약해 봤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의 나라라는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사역하셨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주님은 사역기간 내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의 방향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방향성을 가지고 산다는 말은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어떤 사람을 닮아가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본받을 만한 분들이 많지만 그분들도 인간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애를 연구해보면 인간적으로 부끄러운 모습도 많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을까요? 답을 모세에게서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회막으로 나아갔습니다. 모세는 회막에서도 하나님을 대면했습니다. 출 33:11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의 영성의 비밀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중을 떠나서 산으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회중 가운데 있든지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감히 대면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세의 얼굴을 대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분을 대면하고 그분을 바라보며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분에게서 영적인 힘을 받게 되고 그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분이 보시는 것처럼 보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신 비전입니다.
지난 주 청소년 위비 캠프에 우리교회에서 청년시절을 보냈던 천세경사모님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오창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 셋을 낳고 사는 모습을 보니 참 기쁘더군요. 아이들도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비전이 없어서 슬프다고 합니다. 저는 천사모님이 슬프다고 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남편과 주의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자신들을 어떤 사역을 위하여 부르셨는지 모르고 있든지 알아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인생을 걸지 못하고 있으니 슬프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 방향성이 없습니다.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합니다.
제 아들 모세의 친구는 모세가 부럽답니다. 왜 부러워하는 줄 아십니까? 모세에게는 꿈이 있고 그 꿈을 위하여 공부할 수 있는 것이 부럽답니다. 자기는 꿈이 없기 때문에 돈만 번다고 했답니다.
같은 일을 해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냥 주어졌으니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지포먼이란 권투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45세의 늦은 나이에 다시 시합에 나가서 세계챔피언을 획득한 특별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왜 뒤늦게 다시 복싱을 했는지 모릅니다.
포먼은 청년시절 대단히 난폭하고 성미가 고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통해서 아주 좋은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텍사스 주의 거리의 사람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헌신하며 복음전도자의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자기 주머니를 털어 교회당을 건축하고 청소년들을 복음으로 선도하기 위한 회관을 지었는데 돈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포먼은 자신의 실력과 기술을 다시 사용하기 위한 권투를 했던 것이고 하나님은 그를 도우셔서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챔피언이 되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포먼은 교회당을 건축하고 교육관을 건축하여 복음으로 청소년을 선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포먼은 삶에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방향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을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3. 신앙생활은 적이 있습니다(26절).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알아야 할 지식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하고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싸움에 이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26절에서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복싱선수가 시합을 하면서 허공만 치면 되겠습니까? 복싱선수는 적을 바라보고 적을 가격해야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적을 알고 적을 상대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신앙생활의 적은 누구일까요?

1) 마귀가 적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미혹해서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합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할 적입니다. 우리가 대적하면 마귀는 우리를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약 4:7에 보니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합니다.

2) 세상이 적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 풍조와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떨어지면 세상이 좋습니다. 세상 풍조를 즐기게 됩니다. 은혜가 충만해지면 세상 풍조는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게 됩니다. 롬 12:2에 보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번 캠프에서 데이비드 차 선교사는 학생들이 믿음생활을 잘 못하는 이유가 세상의 것을 양식으로 많이 먹는데 영의 양식은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그리고 TV를 통해서 세상 양식을 많이 먹고 있습니다.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있습니다. 반면에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별로 먹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마귀의 조정을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번에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TV등 미디어 금식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우리교회 학생들도 약속을 하고 미디어 금식 스티커를 받았습니다. 그대로만하면 분명히 영적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우리의 적입니다.

3) 육신이 적입니다.
바울사도는 롬 7장에서 자신의 몸을 ‘사망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은 생명적인 것보다 사망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기도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더 좋고, 성경 읽는 것보다 TV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의 몸은 영적인 모임보다는 세상적인 모임을 더 좋아합니다. 육신이 우리를 세상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찰고무줄은 잡아당겼다 놓으면 제자리고 싹 돌아가버립니다. 우리의 몸은 세상적인 찰고무줄에 매여 있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은혜를 받고 영적인 생활을 하다가도 기회만 있으면 세상으로 돌아가버립니다. 그래서 은혜 받기는 어려운데 은혜를 까먹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을 때는 그 은혜를 지키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4. 승리자가 되려면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25,27절).
25절에 보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말씀합니다. 27절에서는 바울 자신은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절제의 비밀을 알았던 것입니다.
절제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는 살인무기입니다. 큰 사고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절제를 못하는 인생도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인생에 대형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나가수에 나와서 인기를 얻었던 바비킴이라는 가수가 술에 취해서 비행기 안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 내리자마다 체포되었는데 참 안타깝네요. 이 가수는 술을 절제하지 못해서 자신의 인생에 큰 상처를 남기고 말았네요. 연애인들이 정상에 오르는 것은 정말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려운데 추락하는 것은 순간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인기 절정이던 연애인들이 추락하는 것을 보면 몸이 원하는 것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몸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사망임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하나님께 쓰임 받은 후에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 뜻은 권투 선수가 상대방의 눈 아래를 가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다루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는 절제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선가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지렛대의 원리를 아시죠. 지렛대를 이용하면 나의 작은 힘으로도 아주 무거운 짐을 들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렛대를 잘 이용하면 충분히 절제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지렛대 3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1) 성령께서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할 수 없던 일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게 됩니다.
삼손은 원래 힘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임하셔서 큰 힘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육신의 정욕을 절제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2) 기도를 통해서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통하는 영적인 파이프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사실 수도꼭지는 물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파이프를 통해서 수도국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의 원리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기도를 강조하고 저 또한 기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이 절제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여러분! 오뚝이 아시죠? 오뚝이를 보면 아래쪽이 둥글기 때문에 똑바로 서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뚝바로 서 있습니다. 똑바로 설수 없는 오뚝이가 똑바로 서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뚝이 내부 아래쪽에 중심을 잡아주는 무거운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내면이 정돈되어 있으면 승리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내면의 질서가 외부를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의 내면을 정돈되게 하며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중심을 잡아줍니다.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면, 우리의 내면에 진리로 채워지면 인생의 중심이 잡힙니다. 그리고 육신을 이기게 됩니다. 오뚝이에서 내부에 무게를 빼면 오뚝이는 넘어집니다. 내부의 무게가 넘어지려고 하는 오뚝이를 잡아서 세워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신앙인들은 쉽게 넘어집니다. 넘어져서 못 일어납니다. 반면에 내면에 말씀이 채워지면 넘어지려는 육신을 붙잡아주기 때문에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바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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