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감사입니다.(시50;1~23)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 집중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해야 할 한 해의 끝자락에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집중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실 줄로 믿습니다. 한 해를 잘 마감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금년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를 잘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작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을 잘 마무리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시작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이 필연적인 일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보면 만족할 만한 것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기쁨도 있고 슬픔도 또한 있을 것입니다. 이룬 것도 있고 이루지 못한 것도 또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나간 날들이 어떠했든지 간에, 지금 이 시점에 와서는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 옆 사람과 함께 축복의 인사를 합시다.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 합시다." 오늘 본문 23을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영광을 나타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곳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참으로 우리의 형편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치 않는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바로 감사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사업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건강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학업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사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감사로 시작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빈들에 배고픈 무리들이 오천 명이 넘게 모여 있었습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린 아이의 한 끼 식사거리 밖에 되지 않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감사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 감사로 그 빈들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 두광주리가 남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 빈들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구원의 문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감사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거의 역사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한 계시의 역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서 고생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는 날마다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2, 13절을 보면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 여명이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자들이 사십 여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앞날이 얼마나 험난하겠습니까? 바울 자신도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기가 당한 고난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 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바울 사도의 이 말씀은 그의 체험에서 고백된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바울 사도는 수많은 고난과 생명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에서 기도처로 가다가 점을 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납니다. 바울 사도는 점치는 귀신을 쫓아내어 이 여종을 자유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종의 점치는 능력으로 돈을 많이 벌었던 주인이 이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바울을 관원에게 고발하여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보통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억울해 하거가 후회하기가 쉽습니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했지? 그냥 모른 체 하고 지날 갈 것을, 아니면 내가 무슨 잘 못을 했다고 나를 감옥에 가두는 것이야? 하면서 분을 발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손과 발이 착고에 묶인 체로 기도와 찬송을 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한 기도와 찬송은 감사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찬송도 감사의 열매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바울과 실라가 감사로 기도와 찬송을 하였을 때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면서 바울과 실라를 묶었던 착고가 풀어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놀라 깨어보니 감옥 문이 열린 것입니다.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 알고 자결을 하려고 하자, 그 때에 바울이 '우리가 여기 있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간수가 등불을 들고 바울과 실라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일로 인하여 그 간수의 모든 가족이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할레루야! 바울의 감사로 바울만 옥에서 풀려난 것이 아닙니다. 간수의 집의 모든 사람도 구원을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주께 감사 하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입니다. 이 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기도와 감사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일어나게 하는 문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감사를 결과로 생각합니다. 받은 은혜가 많기에 그것에 대해 감사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루어 질 수 없는 상황임에도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루어짐에 감사를 합니다. 하나님의 복 주심에 감사를 합니다. 이렇게 어떤 결과로 인하여 감사를 합니다. 물론 우리가 결과로써 하는 감사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우리의 감사를 새로운 차원으로 한 단계 높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결과로써의 감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문을 여는 감사를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는 감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감사에는 어떤 이유나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나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유와 조건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대하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의 감사에는 항상 소망이 있습니다. 감사의 사람의 마음은 항상 꿈으로 부풀어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심령이 꿈으로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감사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으로 그 심령을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꿈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꿈이 진짜 꿈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내가 꿈을 꿀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심령을 소망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나의 모습을 보면, 나의 환경과 조건을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꿈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나의 상황과 조건으로부터 오는 꿈이 아닙니다. 죄인을 위하여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아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꿈을 꾸며, 항상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탕자의 비유라고 알고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비유의 주인공으로 탕자를 내세우지만 사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은 탕자가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처음에 아버지는 여기서 주도권을 가지고 하시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들입니다. 아들의 주도권은 무례할 정도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도 유산을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들의 요구대로 응하십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거지가 되어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이 모양으로 돌아왔냐고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였냐고 한 마디도 묻지 않습니다. 그저 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내 아들이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오직 우리가 잘 되기만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상 내가 원하는 한 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간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설상 내가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원하지 않은 그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선을 이루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아픔과 좌절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면서도 주께서 자기에게 상을 베푸심을 기대합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주께 감사 하네." 이 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그것이 감사라고 우리 다 함께 찬양으로 고백합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주께 감사 하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하는 감사는 내일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과 함께 축복의 인사를 합시다. "오늘 하는 당신의 감사는 내일 당신이 맛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는 감사는 내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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