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의 은혜! (딤전1:12-17)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딤전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이다 아멘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 곧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들 가운데서, 우리는 디모데 전서와 디모데 후서 그리고 디도서의 세 권을 가리켜서 일명 『목회서신』(the Pastoral Epistles)이라고 부릅니다.
그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서, 그리고 디도는 그레데 교회에서 목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서, 그들에게 목회 지침을 담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것들이 바로 『목회서신』이라고 불리어지는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입니다.
딤전1: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딤전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서 그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지 않고 복음과는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율법의 선생”이라고 자처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마치 율법이 복음인 것처럼, 율법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처럼 사람들을 잘못 가르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설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힘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오늘 본문 14절에서 단 한번 “은혜”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구구절절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여섯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격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감격이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은혜의 양상입니다(the Features of Grace).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은 먼저 예수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바울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푸셨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 12절에서 예수님이 바울에게 베푸신 은혜를 네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택하신 은혜입니다.
신약성경을 기록한 다른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처럼 “그리스도 예수”라는 칭호를 더 즐겨 사용했습니다. 예컨대 목회서신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6번 나오지만, “그리스도 예수”는 25번이나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님을 먼저 만났습니다. 그 뒤에 그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뜻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사렛 예수님을 알기 전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를 먼저 만났습니다. 그 때 바울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예수”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칭호 속에 자신의 다메섹 체험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택하여 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깊이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능하게 하신 은혜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는 많은 핍박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언제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를 능하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딤후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을 능하게 하신 예수님은 우리도 능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고,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도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충성케 하신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자기를 충성되이 여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장차 바울이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아셨다는 뜻입니까?
그러한 뜻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울은 자기의 충성, 곧 자기의 행위를 자랑하는 셈이 되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기가 예수님을 위해서 충성하게 된 것도 전적으로 예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7:25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이와 같이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충성한 것도, 또한 앞으로 자신이 충성하게 될 것도 예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충성하는 것도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우리를 충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맙시다.
넷째, 직분을 맡기신 은혜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대통령에게 발탁이 되어서, 나라를 위해서 쓰임을 받는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 되겠습니까? 하물며 우리가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 되어 예수님을 위해서 일한다는 사실을 늘 감격스럽게 여겼습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을 높이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일군으로 삼아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바울은 자신이 택함을 받은 것도, 자신이 능하게 된 것도, 자신이 충성케 된 것도, 자신이 직분을 맡게 된 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택함을 받은 것도, 우리가 능하게 된 것도, 우리가 충성케 된 것도, 우리가 직분을 맡게 된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늘 명심하면서, 우리도 예수님에게 감사하며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은혜의 필요성입니다(the Need of Grace).
딤전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왜 바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습니까? 바울은 죄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첫째, 그는 훼방자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훼방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과거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행26: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둘째, 그는 핍박자였습니다.
조금 전 행26:11에서 바울은 자신이 과거 핍박자였을 때, 멀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시 헬라어로 “핍박하다”라는 말은 따라가면서, 추격하면서 괴롭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바울은 그토록 끈질기게 기독교인들을 좇아가면서까지 그들을 괴롭게 했습니까? 그는 교회를 이 땅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메섹으로 가면서 그 중간에 있는 여러 성들의 기독교인들을 계속 좇아가며 핍박했던 것입니다.
셋째, 그는 포행자(暴行者)였습니다.
우리말의 포행자란 포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바울은 기독교인들에게 온갖 포악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기독교인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행22: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행26: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이와 같이 바울은 훼방자로, 핍박자로, 포행자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메섹의 아나니아나,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를 못했습니다.
행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행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가운데서 벗어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오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늘 넘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은혜의 능력입니다(the Power of Grace).
딤전1:13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에게는 죄가 많았습니다. 그는 훼방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어겼습니다. 그는 핍박자요 포행자였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계명도 어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긍휼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롬5:2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바울은 바로 이 말씀의 산 증거였습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그보다 더욱 넘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은혜 받지 못할 만큼 큰 죄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은혜의 능력은 죄의 권세보다 훨씬 더 크고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기가 긍휼을 입게 된 까닭을 이와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도 직접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훼방하고, 핍박하고, 포행했습니다.
그들과는 달리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훼방자로 핍박자로 포행자로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바울은 믿지 아니할 때, 자기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로 행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바울에게 예수님의 기도가 그대로 응하여졌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긍휼을 입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그 모든 죄를 사함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고 행한 죄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서 행한 죄까지도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알고서 죄를 행할 경우에는 그만큼 회개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죄라도 모두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죄라도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가 그대로 우리에게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그대로 간직하지 맙시다. 크고 작은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능력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그 모든 죄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은혜의 분량입니다(the Measure of Grace).
딤전1: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more than abundant)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넘치도록 풍성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바울의 죄는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바울의 모든 죄를 완전히 뒤덮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 그 이상으로(more than abundant) 넘쳐흘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도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우리를 택하신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며, 우리를 능하게 하신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또한 우리를 충성케 하신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며,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신 은혜도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더욱더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더불어서 우리게 주어지는 것 두 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입니다.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지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은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은 무엇이겠습니까?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면,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은 절로 생깁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믿음과 사랑이 종종 함께 붙어있는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엡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딤전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도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합니다.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그 은혜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은혜의 목적입니다(the Purpose of Grace).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자신의 『목회서신』에서 어떤 중요한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때,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미쁘다”라는 말의 뜻은 “미덥다,” “진실하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비롯해서 딤전3:1과 4:9, 딤후2:11, 그리고 딛3:8에서 모두 다섯 번 사용되었습니다.
곧 이어서 바울은 이미 모든 성도들이 잘 알고 있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이는 복음 전체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칭호를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보다 더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님을 알기 전에,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를 먼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신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라면, 예수님은 인성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사람되셨습니까?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는 천사에 의해서도, 또한 예수님 자신에 의해서도 증거 된 사실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임하셨습니다. “세상에 임하셨다.” 이는 예수님의 선재성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처럼 단순하게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세상에 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제 분명하게 아셨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또한 모든 사람이 마땅히 믿음으로 받아야 할 복음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그 즉시 죄인들 가운데서는 자기가 제일 가는 죄인임을 밝혔습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이 본시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는 바울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자기를 바르게 볼 줄 알았기에, 그는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죄인 중에 괴수인 바울에게 은혜를 베푸신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신약성경을 기록하는 일을 그에게 맡기시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일들을 맡기실 수 있었습니다.
딤전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바울을 하나의 본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밝히 보여주는 하나의 산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울에게 긍휼을 베푸신 까닭이며, 하나님이 바울에게 은혜 베푸신 목적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하나님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죄인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바로 은혜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의 죄가 너무 크고, 우리의 죄가 너무 중해서 괴로워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하나님을 훼방하며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행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도 과거에는 그러했습니다. 그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며, 여러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까, 그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귀하게 쓰임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지은 죄가 너무 중해서 괴로울 때는 바울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얼마든지 새 사람이 되어서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도 넘치기를 바랍니다.
여섯째로,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the Response to Grace).
딤전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바울은 오늘 본문을 예수님에게 드리는 감사의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존귀와 영광의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바로 은혜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딤전1:2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늘 이와 비슷한 말씀으로 편지 받는 이들을 축복했습니다. 바울이 여기에서 밝히고 있듯이, 은혜는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요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 받은 바 은혜로 인하여 먼저 예수님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에게 존귀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은 은혜로 인하여 감사하며, 존귀와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세세토록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십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네 가지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세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썩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홀로 하나이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만세의 왕이십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어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은 만세의 왕이 되셔서, 믿어 영생을 얻은 우리를 영원토록 다스리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썩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에, 하나님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나이 들어 쇠하여 지지도 아니하시고, 피곤하시거나 곤비치 아니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변함없이 베푸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손으로 만들어 눈에 보이게 한 것들은 우상이며, 거짓 신에 불과할 뿐입니다. 참 되신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넷째, 하나님은 홀로 하나이십니다.
이 세상의 우상들은 결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합니다. 오직 참 되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세세토록 돌려야 할 것입니다.
마치 바울은 우리의 입에서 “아멘”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기를 바라고 있듯이, 오늘 본문 맨 끝에 “아멘”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아멘”의 뜻은 “진실로 그러하다”입니다. 여러분, “아멘”이십니까? 마땅히 우리의 입에서는 “아멘”이 터져 나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모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에게 존귀와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었던 그 뜨거운 감격이 우리에게도 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성찬을 대하는 우리에게는 어떠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까?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하나님에게 존귀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행여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가련한 죄인일지라도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열고서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며, 여러분을 새 사람으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혹시 그 옛날 에베소 교회를 어지럽혔던 율법의 선생처럼, 이 가운데는 예배를 방해하고 교회를 어지럽히기 위해서 신천지라는 이단에서 파송된 사람은 없습니까?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하고 훼방하며, 핍박하며, 포행하던 죄를 이 시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사흘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은 세세토록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늘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으면서,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에게 세세토록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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