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상훈목사

[스크랩]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 (요13:12-17)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 (요13:12-17)

 


요13: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의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그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국가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크신 사랑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 당시 소수의 사람만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장 이하 12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요한복음 13장 이하 17장에서 우리는 그 반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이들에 대한 내용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이하 12장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public ministry). 예수님은 백성들을 널리 가르치시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요12:36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의 공개적인 사역은 요한복음 12장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그 이후 요한복음 13장 이하 17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만 따로 모아서 그들을 대상으로 비공개적인 사역을 하셨습니다(private ministry). 그 개괄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런 다음 요한복음 14장 이하 16장에 이르는 세 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복음 13장부터 예수님은 더 이상 공개적인 사역을 하지 않으시고, 이때부터 집중적으로 자신의 제자들과만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 뒤 요한복음 18장 이하 마지막장인 21장에 이르기까지 그곳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그대로 순종함으로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던지신 질문입니다(The Inquiry).


요13: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 배경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밖에 나갔다가 집안으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밖에서 나다니면 아무래도 발에 흙먼지나 진흙이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신들메를 풀고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제자는 자기의 선생을 섬기기 위해서 여러 가지 하찮은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발을 씻기는 일만큼은 보통은 종을 불러서 그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시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는 종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피해서 은밀하게 그곳에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물항아리와 대야와 수건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종이 그곳에 없었다면, 누구든지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일을 대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 좋게 서로가 서로의 발을 씻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 따라 아무도 종이 하는 그 일을 대신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발을 씻지 않고서, 더러운 발을 한 채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다가 제자들이 그 지경까지 이르렀습니까?  


눅22:24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그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까지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어 종이 하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식사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더러운 발을 한 채, 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제자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은 침묵하시면서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예수님은 말없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계속해서 다투기만 하는 철없는 제자들의 발을 예수님이 씻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요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요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여기에 예수님의 동작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를 두르셨습니다. 항아리의 물을 떠서 대야에 담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닦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때 예수님이 처한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때 예수님은 대단히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날 밤 예수님은 사로잡히시고, 또한 그 다음 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자기가 곧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자신이 지셔야 할 십자가, 그 뒤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실 영화로움 등등, 자신에 관한 생각들만 해도 참으로 많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생각들은 모두다 뒤로 미루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오로지 제자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임종하는 그 순간에도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한 생각으로 자신의 죽음조차도 잊어버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물론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리에 내어줄 것임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룟 유다 앞에서도 종처럼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그의 발을 닦으셨습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신의 가르치심을 그대로 실천해 보이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 더더욱 사랑을 베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예수님에게 속합니다. 이와 같이 지극히 높으신 예수님이시지만, 예수님은 지극히 비천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셨습니다. 

한 어부가 자기 동료 어부의 발을 씻기는 것도 겸손한 태도입니다. 하물며 지극히 높으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종처럼 무릎을 꿇으시고, 몸을 굽히시며, 낮고 천한 사람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니 이는 분명 겸손의 극치에 해당합니다.  


(3) 예수님의 질문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벗었던 겉옷을 도로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리로 되돌아오셔서 다시금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시고자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가장 중요한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선 오늘 본문 앞에 있는 내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차례대로 씻기시면서,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이르셨을 때였습니다. 베드로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종처럼 무릎을 꿇으시고 자기의 발을 씻기심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뜻 자기의 발을 내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요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사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직까지 베드로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 있고 난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요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어쩌면 베드로의 말은 겸손하게 들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이 자기 식의 제사나 예배보다 더 낫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만일 예수님이 그를 씻기지 아니하시면, 예수님과 베드로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발을 씻긴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곧 “베드로를 씻기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에게 우리 기독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영적 진리를 깨우치고 계신 것입니다. 


요일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우리의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육체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요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베드로는 극에서 극을 달렸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의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자기의 발뿐만 아니라, 자기의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시라고 말했습니다. 아예 예수님이 자기를 목욕시켜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요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사람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을 했습니다. 낮에 이곳저곳을 나다니다가 집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먼지로 더러워진 자기의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목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이미 몸은 깨끗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상적인 일을 통해서, 예수님은 또다시 하나의 기본적인 영적 진리를 깨우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목욕하는 일은 일생에 단 한번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러워진 발을 씻는 일은 일상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 순간 우리의 위치는 예수님 안으로 옮겨집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목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영적 거듭남과 구원의 역사는 우리 일생에 단 한번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가 범하게 되는 죄악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생깁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발에 묻은 먼지들과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발을 씻듯이,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깨끗하게 씻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의 발을 마지막으로 씻기심으로서, 모든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벗었던 겉옷을 도로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리로 돌아오셔서 다시금 그곳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기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까? 또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까?

물론 이것들도 다 맞는 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데는 보다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다투지 말고, 사랑 가운데서 겸손하게 서로가 서로를 섬기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베푸신 교훈입니다(The Instruction).


요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 예수님의 논리

본문 13절의 말씀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을 “선생” 또는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과 “주”라는 칭호는 존경하는 사람을 부를 때, 흔히 사용되는 존칭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헬라어로 각 존칭 앞에 정관사가 붙어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을 영어로 번역하면 “the Teacher,” 그리고 “the Lord”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많은 선생들 중 한 명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선생이시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주인들과는 달리, 유일하시고도 참이신 주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식하면서, 예수님을 그와 같이 불렀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유일하신) 주” 또는 “(유일하신)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대로,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자신의 종이요, 자신의 제자인 자들의 더러운 발을 다 씻기셨습니다. 제자는 선생에게서 배워야 마땅합니다. 또한 종은 주인이 명하는 대로 행해야 마땅합니다.

따라서 선생 또는 주이신 예수님이 제자 또는 종인 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면,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앞에 있는 사실을 대전제로 해서 그 결과로 뒤에 나오는 사실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논리에 맞게 도출해내신 것입니다.


(2) 세족식(洗足式, Foot-washing on Maundy Thursday)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옳으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페이로”(όφείρω)입니다. 그 뜻은 “빚지다”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발 씻김을 받은 제자들은 이제 서로의 발을 씻겨야 할 빚을 졌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발을 씻기는 세족식을 마치 세례나 성찬처럼 하나의 성례로 행하는 교파도 있었습니다. 특별히 고난주간의 목요일(Maundy Thursday)이 되면, 그와 같은 교파에서는 교회적으로 반드시 세족식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세족식을 하나의 성례로 간주하는 것은 예수님의 교훈을 너무 축소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나의 새로운 의식을 제정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음절에 있는 말씀을 보더라도 분명해집니다. 


(3) 예수님의 본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만일 여기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이라고 말씀하셨으면, 제자들도 문자 그대로 서로의 발을 씻겨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족식이 하나의 성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분명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여기서 발을 씻기는 행위 그 자체만을 말씀하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그러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예수님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본을 보여주셨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야 할 본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사랑의 본입니다.

요13:1의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서 “끝까지”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물론 여기에는 시간적인 의미가 포함이 될 것입니다. 이는 자기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사랑의 질과 사랑의 양도 역시 포함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질과 양에 있어서도 자기 사람들에게 “끝까지”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사랑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질과 최대의 양으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을 때, 제자들의 모습이 어떠하였던가를 잠시 생각해봅시다. 과연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까?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연 없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면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할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도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을 본받아 끝까지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둘째, 겸손의 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분명히 제자들은 자기들의 잘못된 행동을 깊이 뉘우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는데, 그들은 서로 다투면서 자기들을 높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마도 그들은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흐느꼈을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예수님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씻기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친히 허리를 숙이시고 무릎을 꿇으심으로, 예수님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의 허리를 굽히게 하시고 마음의 무릎을 꿇게 만드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행동으로 보여주신 겸손의 본은 제자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 어떠한 말씀으로 겸손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제자들의 마음에 심어주었을 것입니다.


벧전5:5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사도 베드로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모두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우리도 겸손으로 허리를 동입시다. 그리함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섬김의 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선생이며 주이셨습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려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심으로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종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섬김의 본을 따라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본받아, 우리도 늘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우리에게 사랑의 본과 겸손의 본과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행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예수님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신 것과 같이, 우리도 겸손으로 우리의 허리를 동입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를 섬기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The Blessing).


요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 예수님의 잠언

예수님은 중요한 교훈을 주실 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에서만도 25회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주의할 것을 당부하시면서, 하나의 잠언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잠언은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두 네 번에 걸쳐서 같은 내용의 잠언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오늘 본문 요13:16과 요15:20, 마10:24 그리고 눅6:40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잠언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상전이신 예수님이, 또한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렇다면 종인 제자들이, 또한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제자들이 서로의 발을 씻기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제자들이 서로의 발을 씻기지 못한다면,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상전이며 자기들을 보내신 예수님보다 자기들을 더 크게 생각하는 처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상전이 행한 일을 종이 못하겠다고 감히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순종의 결과

흔히들 낮고 천한 일을 하면, 자기가 무시당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서로 다투기만 할뿐, 아무도 다른 이의 발을 씻기려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마지막 17절에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여기서의 “이것”은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이는 바로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다는 것과, 우리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과, 또한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다는 예수님의 잠언 등등을 가리킵니다.

먼저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먼저 알아야 하지만, 그 다음에는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신 대로, 우리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요한복음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그 한번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번은 요20:29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도마에게 하셨던 말씀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우리들도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합시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우리들도 사랑과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서로의 발을 씻깁시다. 그리할 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우리의 삶은 진정 복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13:1의 말씀과 같이,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유대인의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각처에 살던 유대인들이 다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어린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굽 사람들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전 지역을 두루 다닐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양을 죽여 그 피를 그들의 집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칠했습니다. 그 피를 보고서 죽음의 사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바로 그때의 일을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입니다. 바로 이 유월절을 맞이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만찬을 들기 위해 마가의 다락방에 자리를 같이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의 만찬을 이른바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대신해서 성찬을 새롭게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때의 만찬은 최후의 유월절 만찬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유월절 만찬을 대신하여 성찬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진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를 기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이 의식에 참예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찬 도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그들에게 교훈하신 바를 우리는 깨닫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다툼과 교만과 이기적인 생각을 십자가 밑에 묻어버립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을 따라서, 사랑과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살아갑시다. 그리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