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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심판(1) (창3:14-19)

하나님의 심판(1) (창3:14-19)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사역을 모두 끝내신 후에,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창조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이와 같이 본시 세상은 아름답고도 완벽하게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보기에도 심히 좋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세상은 이와 같이 나쁘게 변하고 말았습니까? 바로 창세기 3장이 그 이유를 우리에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는 한 마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내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은 먼저 사람의 타락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뱀의 꾀임에 빠진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아담도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곧이어 타락의 결과가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이어서 죄인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면서 회개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또한 책임을 전가하면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내용입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렸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말 성경에는 잘 나타나지를 않습니다만, 히브리어 원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서는 쉽게 식별이 됩니다. 이는 오늘 본문이 산문체가 아닌 운문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어 원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보면, 오늘 본문이 지면의 왼쪽과 오른쪽을 꽉 채우지를 않습니다. 양편을 약간씩 띄운 채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이 운문체, 곧 운율을 띤 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는 창2:23, 단 한 절 말씀만이 운문체로 되어있을 뿐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하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실 때,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한 곳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의 모든 말씀이 산문체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운문체로 기록하셨을까요? 운문체는 운율이 있기 때문에, 산문체에 비하면 훨씬 더 암기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과 그 의미를 잊지 않고 늘 명심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오늘 본문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경이로운 복음을 접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개괄적인 내용은 이와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사단의 도구로 사용된 뱀을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배후에서 뱀을 조종한 사단을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하와를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하나님은 아담을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이하 1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가운데서 첫 번째에 해당하는 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살펴보겠습니다.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모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사람의 감동이 아닌 하나님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심판의 이유입니다(The Cause).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1)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시기 전에, 그들에게는 먼저 몇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뱀에게는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과 그 바로 앞 절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창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밝히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질문을 던지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자백하며 회개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질문을 통하여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뱀에게는 아무런 질문을 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뱀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전혀 주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때 뱀은 사단의 도구로 이용되었습니다. 사단의 본성은 죄입니다. 사단에게는 본질적으로 회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뱀에게는 아무런 질문을 하시지 않고, 막 바로 뱀을 심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시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부르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겸손하게 자백하면서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숨기지 맙시다. 하나님에게 모두 고백하고 회개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주홍빛보다 더 붉은 우리의 죄를 흰눈보다 더 희게 씻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베푸시는 죄 사함의 은총 아래, 날마다 평안한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2) 심판의 이유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뱀에게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아니하셨습니다. 뱀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뱀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뱀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서 맨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강조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먼저 밝히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뱀을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다시 한번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임으로 아무렇게나 심판하시지는 아니하십니다. 그러면 왜 뱀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까? 


창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이와 같이 뱀은 하와를 꾀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창3: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뱀은 하와를 꾀어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뱀이 하와에게 행한 그대로 보응하셨습니다.

예컨대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게 했습니다. 그 결과 뱀은 흙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것도 “종신토록” 먹어야 했습니다. “종신토록”이라는 말은 죽음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던 뱀은 그 자신이 죽음을 맛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롬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공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그대로 우리가 거두기 마련입니다.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맙시다.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읍시다. 그 결과는 영생입니다. 날마다 성령을 좇아 행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심판의 내용입니다(The Contents).


창3:14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1) 심판의 대상

우리말 성경은 오늘 본문에서, 마치 뱀과 더불어서 모든 육축과 모든 들짐승이 다 함께 저주를 받은 것처럼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육축과 모든 들짐승이 다 함께 저주를 받았지만, 그 가운데서 뱀이 더욱 큰 저주를 받았다는 식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타락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동물과 모든 식물들은 예외 없이 다 나이가 들게 되고, 또한 병이 들어 쇠약해지면 다 죽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습니다.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이 시간도 다 함께 탄식하며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의도는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 이때 다른 육축과 들짐승은 사람의 타락과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이것들을 뱀과 함께 심판해버리시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게 이루어졌다고 말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의도는 이러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보다 더욱”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전치사는 여기서 비교의 뜻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분리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의미를 이와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 가운데서 저주를 받아.”

다시 말해서 모든 육축과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유독 뱀만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뱀이 행한 대로 뱀에게만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뱀에게 내려진 심판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2) 심판의 내용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심판으로 뱀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계속해서 복을 내리셨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하나님은 세 번에 걸쳐서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복이 아닌 저주가 뱀에게 내려졌습니다.


창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이와 같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온갖 좋은 것들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시면, 온갖 나쁜 것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저주는 복과 정반대 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복과 저주의 결과는 신명기 27장과 28장 말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뱀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17절에서는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범죄한 아담이나 하와가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내리셨던 복은 계속해서 유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범죄와는 상관없이, 사람은 계속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려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아담과 하와는 저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으로서는 가인이 처음으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왜 가인은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까? 이는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죽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내리신 대로, 아벨은 생육하고 번성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아벨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복을 임의로 끊어놓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가인은 중대한 죄를 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가인이 행한 그대로 그에게 보응하셨습니다. 가인은 그의 아우 아벨이 누려야 할 복을 임의로 끊어놓았습니다. 이에 따라서 하나님은 가인이 누려야 할 복을 끊으시고, 그 대신 복의 반대 개념인 저주를 그에게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사람은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저주를 받아 불행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이 임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느냐? 이는 전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헌신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삽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삽시다. 헌신하면서 삽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이 우리로 인해서 복을 얻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심판의 결과입니다(The Consequences).


창3:14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 “배로 다니고.”


창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1) 육축과 2) 기는 것과 3)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동물을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 곧 들짐승입니다. 본시 뱀은 이들 세 종류 가운데서 들짐승에 속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은 사단을 옛 뱀 또는 용이라고 부릅니다.


계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용은 상상적인 짐승입니다. 그러나 용은 언제나 네 다리를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무튼 뱀은 본시 네 다리를 가진 들짐승에 속했습니다. 따라서 뱀은 필요하면 언제라도 자신의 몸을 반듯하게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독사류는 그 상반신을 곧게 세우기도 합니다. 이는 뱀이 저주를 받기 이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명 뱀은 에덴 동산에서 하와의 눈을 마주 보면서, 하와와 대화를 나누며, 하와를 미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뱀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뱀은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다녀야만 했습니다. 뱀은 들짐승에서 기는 것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뱀은 더 이상 사람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레11:42 곧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가증함이니라


뱀은 가증한 짐승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증하다”는 말은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일어날 정도로 보기 싫고 징그럽다는 뜻입니다. 뱀은 가증하기에, 또한 부정하기에 율법은 뱀을 먹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을 매우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뱀을 징그럽게 여기면서, 뱀에게서 혐오감을 느낍니다. 한 마디로 뱀은 여전히 가증합니다. 이는 뱀이 지금도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2)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이는 뱀이 실제로 흙을 먹으면서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 뱀이 흙을 먹으며 살아간다면, 이는 뱀에게 있어서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될 것입니다. 뱀은 자기의 양식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뱀이 흙을 먹는다는 말씀을 달리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뱀이 배로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도 뱀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아주 비천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시72:9 광야에 거하는 자는 저의 앞에 굽히며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사49:23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애3:29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미7:17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여기에 “티끌을 핥다,” 또는 “입을 티끌에 대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의 티끌과 오늘 본문의 흙은 같은 단어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표현들은 실제로 티끌을 핥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후, 당하게 되는 극심한 수치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뱀이 흙을 먹는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뱀이 실제로 흙을 먹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뱀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저주를 받아, 그만큼 비천하게 되며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뱀으로 하여금 얼마 동안 흙을 먹게 하셨습니까?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어야 했습니다. 하와를 미혹한 뱀은 죽을 때까지 흙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뱀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사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11:8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지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합니다. 그때가 되면 옛 하늘과 옛 땅에서의 모든 저주는 사라집니다. 그 결과 이리도 사자도 더 이상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일이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육식 동물들이 타락 이전처럼 초식으로 되돌아갑니다.

물론 그때가 되면 뱀도 자신의 독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뱀은 여전히 흙으로 자신의 식물을 삼습니다.

이와 같이 뱀이 존재하는 한, 뱀은 영원토록 계속해서 흙을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짐승들이 초식을 하지만, 뱀만큼은 그때에도 계속해서 배로 기어다니며 흙을 먹어야 합니다. 그만큼 뱀은 비천하게 된 것입니다.


(3) 심판의 의미   

사실 뱀은 비이성적인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뱀은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지도 못하고, 자신이 저주를 받았다고 해서 분개할 수 있는 의지도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이 배로 다녀야 하고, 또한 종신토록 흙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늘에 떠있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더 이상 홍수로는 이 세상을 멸하시지 아니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뱀은 무지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무지개가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듯이, 뱀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뱀은 하나님의 정죄를 영원히 받은 사단,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토록 낮아지고 비천해진 사단을 상징합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교만해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정죄를 받아, 하늘에서 내어 쫓겼습니다. 그가 바로 사단입니다. 사단은 땅으로 던짐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교만했습니다.

사단은 에덴 동산에 있는 뱀의 몸에 들어가서 하와를 미혹했습니다. 사람을 자기 수하에 집어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단은 또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음 주일 창3:15 말씀을 통해서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사단을 숭배하는 사교에서는 뱀의 문양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뱀이 사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뱀은 배로 다녀야 하며, 종신토록 흙을 먹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대적 사단이 완전히 패배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미 패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이미 패한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뱀이 배로 기어다니듯이, 그들은 그저 이 세상에만 집착해서 살아갑니다. 뱀이 종신토록 흙을 먹어야 하듯이, 그들은 종신토록 땅엣 것만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엣 것을 생각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살아갑시다. 그리함으로서 우리 모두 날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면서 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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