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회개치 않음! (창3:11-13)
창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창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창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를 영어로는 Genesis라고 합니다. 이는 헬라어 “게네시스”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그 뜻은 기원 또는 시작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이른바 “기원의 책”(The Book of Origins) 또는 “시작의 책”(The Book of Beginnings)이라고 불립니다.
사실 창세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과 기원을 우리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컨대 창세기 1장은 천지와 만물의 기원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은 결혼과 가정의 시작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창세기 3장은 죄의 기원을 우리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창세기 3장에는 “죄”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때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며, 또한 이때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와 같이 성경은 한 사람 곧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아울러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며, 그 죄 값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는 또한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다는 사실과, 아울러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삶을 얻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와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아니하시고, 죄가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도록 허용을 하셨습니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 세상에 죄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겠습니까? 죄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아울러 만일 이 세상에 죄가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사실 죄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더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도록 허용하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품성, 곧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뚜렷하게 드러내시기 위하여 잠시 동안 이 세상에 죄를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 그때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를 미혹하는 사단과 그 수하에 있는 귀신들은 전부 불못에 영원토록 던짐을 당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모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영원히 던짐을 당합니다.
그때가 되면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집니다. 그 대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죄가 더 이상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때가 되면 죄의 존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단지 그때까지만 하나님이 한시적으로 죄를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를 재촉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숨기지 맙시다.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회개합시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오늘도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십니다. 죄를 멀리 합시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아담이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입니다(God's Inquiry).
창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에덴 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의 꾀임을 본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후에 하와는 자기 남편 아담에게 그것을 주었습니다. 아담도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나자, 그들에게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눈이 밝아진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지자, 그들은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평소와 같이 동산에 거니셨습니다.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은 아담과 하와는 예전처럼 하나님에게로 달려가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며,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물론 뱀의 꾀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와를 부르시며 하와에게 물으시지를 않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고전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딤전2: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이와 같이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주관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와를 불러서 하와에게 묻지를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며,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아담과 하와가 숨어있는 곳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아담의 대답은 어떠했습니까?
창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의 대답은 진실하지도 않았고, 솔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대답에는 죄에 대한 고백도 없었고, 회개도 없었고, 죄 사함에 대한 간구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또다시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창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첫째,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입니다. 둘째,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입니다. 이 두 질문을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이 질문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Nobody입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들의 벗었음을 고하지 않았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아담과 하와 이외에는 그 어떠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에덴 동산에 있는 짐승들이 그들의 벗었음을 그들에게 고했을 리도 만무합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벌거벗었음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들 스스로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이와 같이 그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벌거벗은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그들에게는 벌거벗었음이 전혀 문제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금지된 선악과를 먹자말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대답은 이와 같았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의 벌거벗었음을 우리에게 고하지 않았나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벌거벗었음을 알게 되었나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기 때문이나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이와 같은 말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지도 않았고,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2)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다는 사실을 몰라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자신들의 죄를 회피하니까, 하나님은 아담의 입에 그가 대답할 말을 직접 넣어주신 것입니다.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아담의 대답은 무엇이라야 했습니까?
“예, 하나님이 나더러 먹지 말라 명하신 그 나무의 실과를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연속적으로 질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자기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며 용서받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만일 이때 아담이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진심으로 회개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들에게 내리실 벌을 감하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잠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환하게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죄를 겸손하게 자백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숨기지 맙시다. 사랑의 하나님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겸손하게 자백합시다.
그리하면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사유하심의 은총 아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책임을 전가하는 아담입니다(Adam's Blame Shifting).
창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 “내가 먹었나이다.”
우리말 성경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도 이 말이 아담의 답변 맨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네가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아담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아담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와 같이 대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고서 물으시기 때문에, 아담은 더 이상 감추거나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못해서 자기가 선악과를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후에 아담은 자기의 죄를 어떻게 처리해 나갔습니까? 일차적으로 그는 자기의 죄를 숨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의 죄를 지적하시니까, 아담은 이차적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했습니다.
(2)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함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 아담의 답변 중 맨 처음 나오는 단어는 “그 여자가”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그 여자”란 아담의 아내 곧 하와를 가리킵니다. 아담은 자기가 선악과를 먹게 된 책임을 먼저 자기 아내 하와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물론 아담의 말대로, 아담은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먹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에게 면죄부가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이 아담의 변명을 들으시고, 아담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으셨습니까? 결코 아니었습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은 하와의 머리였습니다. 따라서 하와가 죄를 범했다면, 아담은 하와를 책망하면서 하와를 데리고 하나님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와가 죄를 범한 것을 알고도, 하와의 말을 듣고 같은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기에 기록된 말씀처럼,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의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를 기쁘게 했습니다. 이는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담은 자기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 하와를 탓하면서, 자기 죄에 대한 책임을 자기 아내 하와에게 돌렸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의 죄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습니다.
(3)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함
오늘 본문 12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우리는 아담의 답변에서 똑같은 동사가 두 번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다”(give)라는 동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아담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3:12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gave)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gave)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주셨습니다. 또한 바로 그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주었습니다. 그러니 아담이 선악과를 먹게 된 궁극적인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담은 억지 논리를 쓰면서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내게 여자를 주셨습니까? 제가 언제 하나님에게 여자를 달라고 했었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여자를 주시지만 않으셨더라도, 이와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차라리 나 혼자 있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선물로 주셨을 때, 아담이 얼마나 기뻐했었습니까? 그런데 아담이 죄를 짓고 나니까, 사단이 의도한 대로 아담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회의를 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감사가 그의 원망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약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아담은 순전히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담은 자기의 잘못을 전혀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자기 아내를 탓하면서,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탓하면서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태도였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와 같은 의문이 생깁니다. 아담은 자기 아내를 탓하고 하나님까지 탓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아담은 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는 아담이 뱀의 꾀임을 받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딤전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만일 뱀이 하와를 미혹할 때, 아담도 하와와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떠했겠습니까? 아담은 분명 뱀도 탓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없었기 때문에, 뱀을 탓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말을 들으신 하나님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하나님은 더 이상 그에게 아무런 질문을 던지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아담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뿐이었습니다.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아담과 하와 사이를 내었습니다. 무엇이 아담과 하나님 사이를 멀어지게 했습니까? 바로 아담의 죄였습니다. 이와 같이 죄는 우리 사이를 서로 갈라놓습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도 갈라놓습니다.
우리는 아담처럼 우리의 죄를 숨기지 맙시다. 우리는 아담처럼 남을 탓하면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지 맙시다. 우리는 아담처럼 우리의 죄를 정당화시키지 맙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맛볼 수 없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에게 아뢰고,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읍시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누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책임을 전가하는 하와입니다(Eve's Blame Shifting).
창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 하나님의 질문
아담은 하와의 머리였습니다. 따라서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를 보호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탓하면서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에게 직접 물으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왜 하나님은 하와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셨습니까? 지금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대질 신문하고 계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공평한 판결을 위해서,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의 말을 모두 들어보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까?
창4: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가인에게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죽인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에게 호소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가 명백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단지 하나님은 가인이 자기 입으로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질문을 가인에게 던지셨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와가 회개하기를 바라시면서, 하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셨을 때였습니다. 그곳의 우물곁에서 예수님은 물을 길러온 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시면서, 한 말씀 한 말씀 그 여자 스스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이끌어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사마리아 여자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의 부정한 죄를 깨닫고 인정했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달랐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의 죄를 자백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와도 아담처럼 자기의 답변 맨 마지막에 “내가 먹었나이다”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하와도 아담과 마찬가지로 그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기에, 마지못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사실을 인정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마찬가지로 하와도 자기 스스로 그 책임을 지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하와는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켰습니다. 자기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일 뿐이고, 모든 책임은 뱀에게 있는 것처럼 뱀을 탓했습니다.
(2) 뱀에게 책임을 전가함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는 자기가 선악과를 먹은 이유가 뱀의 꾀임 때문이었다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설사 뱀이 하와를 꾀더라도, 하와는 뱀의 꾀임에 빠질 이유가 전연 없었습니다.
에덴 동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와에게는 부족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와는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다는 자기 욕심 때문에, 그것을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아담과는 달리 하와의 말에는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깊이 따지고 보면, 하와도 간접적으로는 하나님에게 그 탓을 돌리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 하와의 말속에는 이와 같은 의도가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뱀을 만드셨나이까? 왜 하나님은 뱀이 에덴 동산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셨나이까? 그래서 내가 뱀의 꾐에 빠지고 말았나이다.”
아담이나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진솔하게 고백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서, 계속해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이 뱀에게는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으셨습니까? 이때 뱀은 사단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단의 본성은 죄이기에, 사단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뱀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회개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들의 죄를 진솔하게 자백하며 회개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담과 하와는 계속해서 변명만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변명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전혀 대꾸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뿐이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세상을 탓하면서, 환경을 탓하면서, 남을 탓하면서 변명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사1: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자백하며 회개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붙드시고, 우리를 축복의 동산으로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젖과 꿀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잊지 맙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우리에게 보응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사단의 시험을 모두 이기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의 복 된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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