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벗어난 세가지 사건
요나3:1~10
2001년 7월 22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3: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3: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3: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3: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3: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3:7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3: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3: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3: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설교:
사람을 한치 앞을 내다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눈앞에 있음에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는 능력은 있습니다. 갖가지 측정 가능한 자료를 근거로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교회 미래학자는 한국교회는 앞으로 몇 년내에 '여성 목사안수 문제'가 심각해 질 것이고 지하에 세들어 운영하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사라질 것이며 또한 한국교회의 목회형태도 새벽기도, 심방, 설교등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화 될 것이라고 예측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예측입니다. 실제로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의 예측이 맞는 것도 많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빗나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의 평범한 예상이나 예측이 벗어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대표적인 성경이 바로 오늘 우리가 봉독한 요나 성경입니다.
1장에서 요나는 전혀 "예측 불가능한 짓"을 행합니다.
하나님이 명성있는 이스라엘의 대 선지자 요나에게 "니느웨에 가서 쳐서 외치라" 명령을 내렸는데 그 명령을 정면으로 어깁니다. 그리고는 '다시스'라는 곳으로 도망을 칩니다. 정말 예측이 안되는 상상키 힘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정도 되면 우리 생각에는 요나는 하나님께 박살 날듯한데 하나님도 그런 그를 내버려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2장에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회개하고 구원을 요청하자 물고기 명령하셔서 토하게 하여 육지에 내려놓습니다. 이 또한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도망치던 그 요나를 회개 한마디에 살려주시는 하나님!
특히 오늘 3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3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1. 실패했던 요나에게 또다시 똑같은 명령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전과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과자라는 것이 붙어 다니면 그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든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으면 일단 경계하고 멀리하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한번의 전과가 있는 요나를 향해 하나님은 놀라운 메시지를 주십니다. 1절을 읽어보세요.
"1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한번 도망친 전과자를 향해 또다시 사명이 주어집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과거를 문제 삼지 않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반적 예측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막중한 사명을 전과가 있는 사람에게 또다시 맡기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예상과 예측을 뛰어넘어 우리 하나님은 또다시 맡기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향하신 모습도 그렇습니다. 3번씩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를 향해 찾아오시어 사랑을 확인하고는 엄청난 사명을 다시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과거는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까?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하나님 보시기에 가망이 없는 전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망하지 않고 온 것은 하나님의 특별은총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 예상을 벗어난 하나님의 은혜는 열번 아니라 백번이라도 과거를 회개하면 덮으시고 은혜로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은 과거가 있는 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심을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과거를 덮으셨던 하나님!, 다윗의 과거를 회개함으로 덮으셨던 하나님! 그리고 오늘 요나의 엄청난 허물을 덮으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허물도 덮으시고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또 하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열심에 반해 요나의 불성실에 놀라게 됩니다. (3~4절)
엄청난 사명을 다시 받은 요나, 이정도 되면 목숨바쳐 헌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의 예측을 뒤집습니다. 그것은 요나의 불성실입니다. 그렇게 매운맛을 봤으면 제대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전과자 요나는 두 번째 명령을 수행하는 태도가 아주 소극적입니다. 마지못해 하는 자세란 말입니다.
본문 3절을 보세요. 3일길인 니느웨를 하룻길만 다니며 외칩니다. 그것도 "40일이 지니면 무너지리라"라고 외칩니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다는 메시지는 생략입니다. 왜 무너지는지에 대해서도 생략입니다. 이것은 요나의 직무유기입니다.
성도여러분!
혹시 오늘 본문의 모습이 여기 있는 "요~ 나"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이익이 걸린 문제는 죽기살기 힘쓰며 하나님이 우리를 믿고 맡긴 중요한 일을 대충 감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마치 사명을 다 감당한 것처럼 태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성실과 불성실의 차이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실한 사람은 주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불성실한 사람은 오히려 주의 영광을 가립니다.
왜 요나가 3일 길이 되는 니느웨 길을 하루길만 외쳤을까요? 몇가지 이유를 상상 할 수 있습니다.
1)요나의 편협한 생각입니다.
요나는 이방인은 구원받을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해 보나마나 결과는 뻔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2)나한 사람이 외친다고 누가 회개하랴 생각했을 것입니다.
니느웨 도성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사람이 12만명입니다. 언제 그 많은 사람에게 외치며 누가 그 소리를 듣고 돌아오겠느가 하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3)망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요나 개인의 입장에서는 니느웨는 망해야 했습니다. 니느웨는 적국의 수도요, 이스라엘을 수없이 괴롭혔던 존재였습니다. 그러기에 역사가 그들의 결말을 심판하실 것이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는 어짜피 망하게 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런 요나의 불성실이 하나님의 섭리를 뒤틀어 놓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직분에 얼마나 성실합니까? 혹시 대충 감당하는 불성실은 없는지요? 3일 길의 니느웨를 하루만 외쳐놓고 할 일 다했다고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요?
성경에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멀리하시고 성실한 사람을 가까이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할 사명을 다 감당치 않고 복이 임하기를 기대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 전혀 예상치 못한 회개운동이 일어납니다.
요나의 하루 외침에 니느웨는 놀라운 충격에 휩싸입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진다는 외침에 니느웨는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예상치 못한 일입니다. 어떤 한사람이 길거리를 다니며 외쳤던 그 경고의 메시지 하나가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기져오리라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1)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2)금식을 선포합니다. 3)남녀노소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심지어 그 소문이 4)왕궁의 왕에게 들려 왕도 보좌에서 내려와 조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회개의 모습을 갖춥니다.
세상에 이런 결과를 누가 기대했겠습니까?
오히려 나라의 치안을 위협하는 불순 세력이라 하여 체포하고 가두어 놓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 아니였을까요? 아니면 "웬 미친놈이 떠드느냐"며 무시해 버렸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나라에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고 가정합시다. 어떤 사람이 서울 길을 다니며 "40일이 지나면 서울은 무너질 것이다. 이북 공산당이 쳐들어와 망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시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요?
지나는 사람들마다 "별 미친놈도 다 있네" 하고 무시할 것입니다. 아니면 "저놈 간첩이 아닌가"하고 경찰에 붙들려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니느웨는 달랐습니다. 요나 한사람의 하룻길 경고에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하룻길은 마치 그와 같은 것인데 결과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선교도 그렇습니다. 요나 성경은 구약의 사도행전입니다. 이방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는 요나 성경에서 살펴보게 됩니다. 거기에 요나를 쓰십니다. 그가 하룻길 외친 그 결과로 니느웨 성 전체가 회개 자복하고 돌아옵니다.
우리의 선교사역이 그렇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트린 것처럼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이나 하나님은 능히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내일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선교지를 들러보고 그 선교지 백성들과 함께 예배하며 그들과 함께 전도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서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도와야 얼마나 돕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말 한마디, 찬양 한마디, 설교 한 편이 성령의 역사하심이 따르게 되면 놀라운 결과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약에서 요나를 쓰신 하나님, 신약에서 "요~ 나"를 쓰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보지 마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상을 벗어난 또하나의 사건은
3.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요나가 안가겠다는 것을 억지로 가게 하시고는 요나의 하룻길을 통해 니느웨가 발칵 뒤집혀 회개하니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됩니다.
아니 그 한번의 회개에 어떻게 그렇게 쉽게 뜻을 돌이키신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그렇게 가벼우신가?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뜻인가?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갈등하시지 않고 돌이키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서면 과거를 따지지 않고 용서하시는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베드로를 용서하신 하나님,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 무리를 행해 용서를 선포하시는 주님!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길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인류가 점점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성경에 엄연히 금지된 동성연애자들이 교회 안에서 버젓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엇그제 기독교 신문을 보니 미국교회도 동성연애자를 목사 안수를 주어야 말아야 하는 문제로 시끄럽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동성연애자들도 합법적으로 혼인신고가 되고 부부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우리 나라도 그 물결이 거세게 몰려올 것입니다. "하리수"라는 여자 가수가 본래 남자인데 성전환하여 여자 가 된 가수랍니다. 동성연애자라고 밝히는 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부끄러운 것이 아닌 시대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는 점점 흥미를 잃고 있습니다. 관심밖입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이런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요나가 니느웨를 향해 외치는 외침과 같이 공허한 외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외쳐야 합니다.
그러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맺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만 바라보면 아무 것도 안될 것이라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게 되면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라게 하시는 것을 곳곳에서 발견케 됩니다.
전혀 예측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일생에 복음으로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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