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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룩이라는 단어의 의미/살전4:1~8/2001년 9월23일

거룩이란 단어의 의미는?

데살로니가 전서4:1~8

2001년 9월 23일 최일환 목사 주일 낮 설교

4:1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4: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4: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4: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설교:

얼마 전 新聞을 보니 인터넷 검색 싸이트에서 검색 단어중 제일 많이 차지하는 단어가 SEX라는 단어였었는데 그 단어가 2등으로 일리고 테러, 텔레반, 오사마 빈 라덴 등의 단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답니다. 부동의 1위 단어가 sex라는 소리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구나, 性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다 죄는 아니지만 수많은 인간이 동물적 본성에 이끌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게 살라고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이 거룩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룩"이란 單語는 어떤 뜻이 있는 것입니까?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국어 사전에는 ①신(神)의 세계에 속하여 성스럽다. ②훌륭하고 高貴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전에 "거룩"이란 단어가 안나오고 단지 거룩하다라는 형용사를 찾아야 나옵니다.

그만큼 거룩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상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禮拜, 祈禱, 讚揚, 宣敎, 傳道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성도의 거룩함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님이 기뻐하는 거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쓰라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1. 성적인 음란에서 벗어나 성별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성도들의 성적 타락이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가 항구 도시기에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항구도시라 하더라도, 그리고 세상이 다 그렇게 타락했을지라도 적어도 교회에 들어온 성도만큼은 이런 죄악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적 淫亂!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姦淫, 混淫, 姦通, 同性愛, 심지어 짐승들과 관계를 맺는 수간! 이런 것은 우리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도구들입니다. 더 나아가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을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만드는 도구들입니다. 짐승들도 안하는 짓을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적 음란이 사람에게 끼치는 피해는 아주 심각합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1)장수에 치명적 영향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일부일처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처도 제대로 감당 못하는 인간이 또 여러 부인을 상대하는 것이 어찌 평안하겠습니까?

조선 왕조의 왕은 평균 23살에 왕위에 오르고 46살에 승하하였답니다. 조선 왕조 27명의 왕에 관한 기록을 평균해서 계산해 보면, 왕들은 만 23살에 즉위해 19년 2개월 동안 왕위에 있다가 46살까지 수명을 누렸답니다.

왕이 죽은 나이를 보면 27명의 왕 가운데 30대에 죽은 왕이 8명이고, 27명 가운데 약 절반인 13명이 10대 이하의 나이에 왕이 되었으며, 40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렇게 잘먹고 그렇게 호강하는데 왜 그럴까요?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식 부인의 수는 태종과 성종이 각 12명의 부인을 두었고 나머지는 대체로 4명에서 8명까지를 두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장수할 수 있었겠습니까?

 

2)육체적 疾病을 가져옵니다.

성적으로 음란하며 육체적으로 질병이 생기게 됩니다. 본 부인에게 들킬까 긴장하고 속이고 거짓말하며 살기에 질병이 생기기도하고 성병과 에이즈, 기타 무서운 질병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왕들 중에 수없이 많은 왕들이 일찍 죽은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 생긴 것입니다.

 

3)가정 破壞입니다.

현대가정이 수없이 많이 이혼하고 파경에 이르는 가장 큰 이유는 배우자의 성적 不道德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결손가정에서 자라고 심지어 고아원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離婚할 때 자식을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소송이 걸리는데 요즘은 서로 자식을 안 데려 가겠다고 소송을 한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12만쌍의 부부가 이혼을 했는데 국가적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흔들리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내적 요인이 가장 큰 이유랍니다. 특히 학교에서 성경 교육을 폐지하면서부터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영국에서 건너온 淸敎徒들에 의해 기독교 정신으로 건국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의 자유를 막는 위헌이라고 판결한 후부터 그 시대에 태어난 자녀들이 성경 교육 없이 자랐고 그 결과 그들이 기성세대를 이룬 현시점에 수없이 많은 가정이 이혼을 합니다. 이혼률이 結婚率의 40%를 넘는다는 것은 심각한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가정은 파괴되고 자녀들은 길을 잃고 결국 심각한 국가 위기를 초래한 것입니다.

 

4)자녀들에게 미치는 惡影響입니다.

음란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될 때 자녀들에게 임하는 충격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증오하게 되고 결국 그 증오가 자녀들의 결혼생활을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결국 자녀들의 가정도 이혼을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적 부도덕은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전염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나 한사람의 쾌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전체, 그리고 후손에게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생활도 自由라구요? 착각하지 마세요. 그것은 자유가 아니고 脫線이고, 墮落이며, 더나가 무서운 審判을 자초하는 죄악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여기에 빠트려 얽어 매려합니다. 한번 이 수렁에 빠지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찾아옵니다. 사단이 우리를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의 요셉을 보세요.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할 때 만약 요셉이 그 誘惑을 못 이겨 넘어갔다면 그는 그 순간 끝난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사단의 간교한 유혹을 받았던 요셉은 그 자리를 피하여 도망치다 감옥에 들어갔으나 그 길이 사는 길이고 승리의 길이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사단의 이 유혹은 다가옵니다. 이 유혹은 나이를 불문하고 찾아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찾아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깨어 있어 정신 차리고 성별되게 살도록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려면

2. 자기 아내를 거룩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만드시고 나서 남자 혼자 獨處하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그것이 여자입니다. 아담은 자기 배필 하와를 보고 너무 행복해 했습니다. 그래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너무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짝 지워 준 선물인 아내는 내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인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아내를 거룩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취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들도 다른데 한눈 팔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꼭 맞는 짝을 주셨다고 믿고 남편을 거룩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배우자에게 불만족입니까? 몇 가지 이유 때문인데

그 첫째는 1)慾心 때문입니다. 둘째는 2)自己를 모르기 때문이며 가장 무서운 것은 3)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떡보다 다른 떡이 더 커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떡이나 이 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늘 내가 손해 본 느낌을 갖고 삽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배우자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몰라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거룩은 부부지간부터 들어 납니다.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 이웃이 누굽니까?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내 아내요, 남편입니다. 그러기에 그를 사랑할 때 내 몸처럼 사랑하면 바로 그것이 거룩인 것입니다.

나와 한 몸인 아내도 사랑치 못하는데 누구를 사랑한단 말입니까? 나의 남편도 사랑 못하며 어찌 주님을 사랑한단 말입니까?

우리 주님은 성도의 거룩을 먼 곳에서 찾지 않으십니다. 부분간에 서로 존귀하게 여기고 자기 배우자를 올바로 사랑하고 아껴주면 그것이 곧 거룩인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려면

3.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구별되게 살라하십니다.(5절~6절)

어떻게 구별되라 하십니까?   

먼저는 불신자들 같이 色慾을 좇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성적 타락이 심각한 줄 아십니까? 서울에 곳곳에 여관촌이 있습니다. 이른바 러브호텔이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뻔히 불륜이 저질러지는 줄 알면서도 許可해 주는 정부나, 그런 것을 통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나 다 무서운 죄악을 방치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곳에 가보니 대낮에 주차된 차들이 가득하답니다. 그런데 그런 차들이 대부분 고급 차들이고 그 여관에서는 그 차들의 번호판을 가려주느라 경비원들을 세워놓는답니다.

왜 하나님이 노아시대에 홍수로 審判했습니까? 그리고 소돔 성이 왜 망했습니까? 그리고 로마가 왜 망했습니까? 성적 타락이 그 원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구주로 믿어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

구별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롬12:1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하십니다. 똑같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육체적 本能에 끌려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 즉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은 본능 따라 움직입니다. 자기가 즐기고 싶은 대로 즐깁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靈이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 성령이 부부를 짝지워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부부간의 사랑으로 만족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同姓愛가 왜 등장합니까? 그것은 창조 질서를 깨트린 죄악입니다. 성경이 분명히 明白한 죄악으로 단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동성애에 빠집니다.   

어찌해야 이런 곳에 빠지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요셉이 유혹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성적 타락과 부패, 이것을 범죄로 여기시고 경고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림은 하나님을 등지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적당히 숨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에게는 숨길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또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그 거룩함은 좁은 길로 가는 길입니다. 힘이 듭니다.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유별나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영생의 길입니다.

그러나 넓은 길은 많은 사람들이 걸어갑니다. 다들 그리로 가기에 그 길이 진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명망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로 가고 있습니까? 혹 거룩과는 거리가 먼 죄악 속에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회개하며 돌이키는 자를 거룩의 반열에 넣어주실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는 먼곳에 있는 것 같으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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