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가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13:4~7
2001년 10월 14일 주일 설교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설교:
어느 부인이 깜빡 잊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호텔에 놓고 나왔습니다 집에 와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그 반지는 정말 소중한 반지였습니다. 그 부인은 정신없이 호텔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자기가 투숙했던 호텔지배인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 지배인은 "잠시 기다리라" 하고 그 호텔 방에 가보니 반지는 그대로 탁자 위에 있었습니다. 지배인은 그 사실을 부인에게 말하려 수화기를 들어보니 이미 부인은 지배인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반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조금만 참았으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 조금을 참지 못하고 헤맨 것입니다.
혹 여러분도 조금만 참았더라면 인생이 바뀌어진 경우가 없지는 않았습니까?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필수품 3개가 있는데 하나는 운전대, 하나는 엑셀레이터 그리고 또 하나는 브레이크입니다. 운전대만 있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앞으로 추진하게 하는 액셀레이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엑셀레이터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브레이크 없이는 위험천만입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사랑을 엑셀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면 인내는 브레이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떤 일에 인내하여야 합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란 어떤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1. 믿음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독교는 수많은 순교자를 갖고 있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지키려다가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순교자들이 수없이 생기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박해가 있습니다. 우리 지구촌에는 오늘도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들은 비록 죽음 앞에서라도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혹 여러분은 직장에서나 집안에서도 이웃에서도 신앙의 박해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박해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인내가 너희 영혼을 구원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눅 21:19)
특별히 믿음으로 주의 일을 하면서 헌신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집에서 끝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목회중에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믿음생활을 기분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분 내키면 하고 안내키면 포기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보게 됩니다. 또 환경에 지배를 당하여 충성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이사했다고 포기하고 시간 없다고 포기하고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충성을 포기한다면 어찌 그것을 충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주님이 요구하는 것은 죽도록 충성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시작은 변변치 않은데 갈수록 더 아름답게 봉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을 볼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시작은 거창한데 갈수록 열기가 떨어지고 이런저런 핑계로 결국은 용두사미가 되는 것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충성할 때 우리 주님과 같이 인내하셔야 합니다.
미 해병대 본부병원을 하루는 해병대 사령관이 방문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조국을 지키다 부상당한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사령관은 온몸에 호수를 감고 있고 눈도 붕대로 감고 움직이도 못하는 한 병사에게 다가갔습니다. 자기가 사령관이라하니 앞을 못 보는 그 해병은 손을 내밀어 장군의 어깨를 더듬어 계급장의 별을 하나씩 만져서 정말 장군인가 확인하고는 손가락으로 시트 위에 무엇을 쓰는데 알아 볼 수가 없어서, 간호원이 손에 펜을 쥐어 주어 종이판을 대어 주었더니 다음과 같이 섰습니다
"Semper Fidelis!"(셈퍼 피들레이스) 이 말은 해병대의 못토로서, "항상 충성하라! 끝까지 충성하자!" 라는 뜻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해병대 사령관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개 군인의 충성도 이렇게 목숨을 바쳐서 충성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야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성도는 좀 능력이 부족하여도, 그리고 좀 실력이 부족하여도,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가 더 아름답습니다. 좀 세련되지 못하여도 끝까지 충성하는 성도가 하나님을 감동시킵니다.
여러분의 믿음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향한 믿음에 인내를 갖고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랑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세상의 원리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랑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뒤에 있는 13절을 여러분은 다 아시지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세워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 교회와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무엇인가? 인내입니다.
어느 노 목사님이 주례하실 때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결혼 생활은 사랑으로 시작하여 인내로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의 완성은 결국 인내에 달려있습니다.
사랑을 인내로 성공하려면 우리는 세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1)사람은 모두다 허물이 많다는 것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에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을 온전히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다. 애석하게도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하고 타락하여 사랑을 받을 만한 완벽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불완전한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으로 접근했다가 실망하고 돌아서는 것일까요? 인간의 허물 때문입니다. 기대치로 걸었던 그 기대가 알고 보니 형편없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인내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럴때도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 우리의 허물을 보시고 실망하셔서 사랑을 포기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인내하시며 사랑하셨기에 오늘 우리가 있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신에 실망하셔서 버리셨다면 어찌되었을까요? 베드로는 평범한 사람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를 향한 사랑을 포기치 않으시고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그리고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시기 위해 세 번씩 사랑 고백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렇게 까지 하신 것일까요? 인간의 약함과 허물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2)상대방이 주는 아픔을 참아야 합니다.
사랑은 인내가 필요한데 그 인내 중에 하나가 사랑을 주는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공격과 상처에 대해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려고 하는데 상대는 나를 향해 공격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도 그를 공격한다면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그가 나를 오해하고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전도할 때 당하는 공격입니다. 나는 그를 진실로 사랑해서 그에게 다가서서 복음을 전하지만 그는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격합니다. 핍박을 줍니다. 고난을 줍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참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귀신들려 점 잘치는 여자 하나를 고쳐주었는데 그 여자의 주인이 돈 벌 길이 끊기자 바울과 실라를 고소합니다. 그 일로 바울 일행은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상황에 찬송하고 감사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런 인내의 결과가 무엇이비까? 그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 가정을 구원합니다.
우리 주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무리를 향해 용서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죄를 알지 못함이니이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을 아프게 하는 상대가 있습니까? 혹 있다면 그들을 향해 어떤 자세를 갖고 있습니까?
시부모가 힘들게 합니까? 친구가 힘들게 합니까? 아니며 자식이 힘들게 합니까? 그들을 향해 어떤 자세를 갖고 계십니까? 참고 인내하고 계십니까? 오래 참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승리의 길이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길입니다.
3)자신의 감정을 향해 참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분노하고 쉽게 미워하고 쉽게 절망합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 때문에 너무 쉽게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우리는 그것도 참아야 합니다. 왜요? 그런 형편없는 나를 주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계, 자신의 무능력, 이것에 너무 실망해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로 일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비법이 인내입니다. 주님도 나를 향해 참으시는데 내가 뭐라고 나를 향해 못 참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이웃과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맙시다. 그리고 사랑하다가 참지 못하고 돌아서지 맙시다. 하나님도 사람을 만드는데 일주일이 걸리셨습니다. 사랑은 오래 견디고 참고 인내함으로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한번을 사랑하지 못하여 사랑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가정에서 "경건함과 지혜, 사랑의 교육"을 끊임없이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19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던 어머니입니다. 한번은 수산나가 아이의 작은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편으로부터 "당신의 인내심은 대단하군요. 그 애에게 똑같은 것을 지치지 않고 스무번 씩이나 말하다니"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수산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만일 내가 열아홉번만 말했다면 나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거예요"
결국 그는 19명의 자녀를 사랑으로 길렀는데 15번째가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이고 19번째가 찰스 웨슬레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도 사랑의 인내입니다
3. 소망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떤 꿈이 있습니까? 어떤 비전이 있습니까? 그 꿈과 비젼도 인내하면 결국은 거두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만 인내하지 못하여 응답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하다가 실망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이 거래실적과 인내의 상관관계를 연구 공개했습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25%의 세일즈맨은 두 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15%의 세일즈맨은 세 번 권유하고 포기합니다. 세일즈맨 중 오직 12%만이 네 번 이상 권유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의 세일즈맨이 전체 판매량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88%의 세일즈맨이 판매한 상품은 고작 20%에 불과했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요,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포기하지 않는데 왜 우리가 포기해야 합니까? 얼마든지 하나님은 깡패를 변하여 성자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인내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렇습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대학의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보세요. 저들이 왜 그토록 힘든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좋은 대학을 들어갈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꿈이 없다면 공부하는 것이 지옥같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상상을 초월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고난을 당한다하여도 주님이 당하신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그 고난의 결과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 엄청난 고난의 십자가를 참으신 것은 십자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사랑하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들,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들은 어떤 고난에서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충성의 결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충성하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세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내는 100%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내의 측면에서 보면 90%을 참았다하여도 마지막 10%을 인내하지 않으면 90%의 인내가 모두 헛된 것이 됩니다. 99%을 참았다하여도 마지막 1%를 참지 못하면 99%의 인내가 모두 헛된 것이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를 얼마만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까? 인내는 100%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을 완성하는 것은 인내입니다. 사랑하다 중단하면 그 사랑의 열매를 어떻게 거둘 수 있습니까? 믿음, 사랑, 소망을 완성하는 것은 인내입니다. 어떤 유혹과 박해, 고난이 있다하여도 인내해야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수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구름과 같이 우리 앞에 둘러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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