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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가 누릴 가장 소중한 복/살전3:16/2001년 11월 18일

 

우리가 누릴 가장 소중한 복

데살로니가후서 3:16

2001년 11월 18일 주일낮설교

3:16 평강(平康)의 주(主)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 지어다

 

설교:

우리나라의 인사말은 "安寧하세요"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평안하십니까?" 하는 말도 됩니다.

요즘엔 사용을 잘 안하지만 저 어렸을적만 해도 "진지 잡수셨습니까?"였습니다. 하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제때 밥을 먹고사는 것이 복이었기 때문에 이런 인사말이 생겼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굿모닝!" 하는 인사말을 주고받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뜻이죠,  브라질 사람들은 비슷한 의미로 "아뗄로구!"란 인사말을 나눕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굳덴마르겐!" 역시 "좋은 아침"이란 뜻의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인사를 나눌 때에 "샬롬!" 이란 인사말을 나누는데 샬롬의 뜻은 "평강" 평화, 화평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요?  

1.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어느 부동산을 경영하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겉으론 큰 부자 같지도 않아 보이는 그저 수수한 어른이셨는데 그를 아는 목사님 말로는 수십억을 가지고 있는 재산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재산가가 목사님께 찾아와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당신은 잠을 못 이룬답니다. 머리맡에 가스총을 놓고 자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식들도 얼른 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린답니다. 주변사람이 전부 자기 재산을 노리는 것 같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재산이, 물질이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고 평안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도둑이 와도 가져갈 것이 없는 사람은 문 걸어 잠글 것도 없이 편안하게 잠이 듭니다. 그렇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담을 높이 쌓고 그것도 모자라 가시철망을 씌우고, 그것도 모자라 경비견과 경비원을 두고, 그것도 모자라 감시 카메라CCTV를 설치하고 삽니다.

 

2. 사람들은 높은 權力의 자리에 있으면 행복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면 안 되는 것이 없고 자기 밑에서 굽실거리는 수많은 사람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힘을 움켜쥐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코 권력도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으려고, 움켜쥔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암투를 벌리고 남을 경계하고 견제하고 피를 말리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 눈에는 안보이지만 이런 것이 권력의 屬性입니다. 대통령 되겠다고 나서시는 분들을 보세요. 과거 역대 대통령 중에 제대로 물러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말로가 다 비참합니다. 그래도 되겠답니다.

 

3. 또한 사람들은 名譽를 얻고 인기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럴까요? 빛의 뒤에는 그늘이 있듯이 화려한 조명, 찬사 뒤에는 고독이 있고 허무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기공연이 끝난 뒤에 허탈과 외로움으로 남몰래 무대 뒤에서 눈물 흘린다는 인기인들의 고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약의 힘을 의지합니다. 허준 드라마의 예진이 역을 맡았던 황수정이도 그런 경우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TV에 나와 방송을 하여 아주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상점엘 가도, 음식점엘 가도 이 사람 저 사람 알아보더라는 것입니다. 유명인 된 것은 좋은데 이제는 무명인의 자유를 빼앗기게 되었답니다. 예전처럼 아무데나 가서 부담 없이 차도 마시고, 놀이도 가고, 마음 편하게 쇼핑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렇게 보면 우리 같은 무명인이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으니 오히려 행복한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富도 權力도 名譽나 人氣도 幸福을 준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찾을까요? 그것은 하늘에서 임하는 것입니다. 주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심령 속에 임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외형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만 실상 행복은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즉 마음의 평안입니다.

돈도 많고 높은 권력도 있고 혹은 세인의 인기도 있다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평안이 없다면 그는 진정한 행복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 대답은 바로 바울 서신의 서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서신을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부와 권력 따위와는 무관한 보잘 것 없는 인생들이었지만 그들 속에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평안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문안인사를 할 때 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너희에게 있기를 바라노라" 축원했던 것입니다.

평안은 부와도 거리가 멉니다. 평안은 권력과도 거리가 멉니다. 평안은 명예와 인기와도 거리가 멉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중에 최고의 가치는 심령의 평안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바울 사도는

"평강의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가 당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형을 당했습니다. 원형경기장에 몰아넣고는 굶주린 맹수들을 풀어놓아 맹수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처형장으로 가는 성도들의 얼굴모습은 마치 결혼식장을 향해 들어가는 신부의 얼굴 마냥 평화가 넘쳐흘렀다고 합니다. 그들은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순교자의 영광을 안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요14장의 말씀처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노라." 하신 그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 평안 -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돈이 많아도 평안이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권력의 정점에 서서 천하를 얻었다고 해도 그 심령에 평안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참다운 행복은 그 심령의 평안함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다운 평안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세요. 평강의 주께서 평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총을 누리는 자만이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의 품을 벗어나면 고통이고 아픔이 따릅니다. 우리 교회에서 주일 날 보면 아기들이 엄마와 함께 교회에 올라옵니다. 아기들을 본 여러 성도님들이 아기들을 예뻐하며 안아줍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옮겨 다닙니다. 그러나 아기들이 제일 편안하게 느끼는 것은 엄마의 품입니다. 낮도 설지 않거니와 늘 안기던 품이라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예수 안에 있을 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 품을 떠나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떠난다면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으나 가장 심각하게 잃는 것이 심령의 평안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있으면 참다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평강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2. 죄를 버려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사람과 사람을 가로 막는 무서운 도구입니다. 그 죄가 있으면 평안이 임할 수 없습니다.

손끝에 가시가 박혀 보십시오. 작은 가시 하나가 박혀있어도 온 몸이 편안치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주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품고 있을 때 평안을 상실케 됩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을 미워해 보십시오. 남을 미워하는데 그 심령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천만에 입니다. 남을 시기 질투하는 사람 심령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사람의 심령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시기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는 심령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성령님은 아주 예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뜻에 맞지 않으면 평안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기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진정한 평안이 없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탄식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뭔가 회개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주께 토해내기 전까지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衰하였도다." 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면 유쾌하게 됩니다. 평안케 됩니다.

 

3. 염려근심을 버려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염려근심은 마치 가시덤불과 같다고 주님은 밭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염려근심은 평안의 가장 큰 적입니다. 염려근심이 있는데 평안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길 염려와 근심을 주께 맡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합동으로 모여 인간의 근심에 대하여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40%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이고 30%는 지나간 과거의 일에 대한 걱정이며 12%는 미리 상상하고 가상해서 하는 걱정이며 18%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에 대한 걱정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평강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벧전4:7)

물론 염려근심을 주께 맡기는 데는 믿음이라는 것과 기도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아주 귀한 귀중품이나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십시다. 그런데 그것을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아주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면 못 맡길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찌 맡기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내 모든 근심걱정을 맡길 수 없는 것이죠. 또한 기도가 없으면 맡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어로carriage와 같은 것입니다. 즉 옮긴다는 뜻입니다. 내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는 작업이, 그분 앞에 내놓는 작업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도란 힘이 드는 작업입니다.

염려근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그래서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까?

내가 안고 있으면, 내가 지고 있으면 고민과 한숨, 절망과 피곤에서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내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을 내려놓으세요.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길을 가기에 길 가던 버스가 불쌍하여 태워드렸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머리에 짐을 그대로 이고 있는 것입니다.

"할머니 짐 내려놓으세요. 왜 이고 계시나요?" "아이고 기사양반 태워 준 것만도 고마운데 어떻게 짐까지 태울 수 있나"했답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와 같이하고 계시지는 안나요? 예수를 믿는다면 아직도 염려 속에 있다면 그 할머니와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맡겨버리면 이런 것에서 해방되어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4. 관계를 바로 맺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지만/ 사람을 통해 주신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도 행복도 누리게 됩니다.

부부사이가 금이 가 있으면 가정에 평안이 없습니다. 고부간에 틈이 벌어져 있으면 평안이 없습니다. 성도들 간에 금이 가 있으면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여 관계를 바로 맺어야 합니다. 그 때에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평안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는 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과의 온전한 관계를 위해서는 용서와 관용, 이해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수면제가 1년에 700억 알이나 소비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 사람이 먹는 수면제가 하루 소비되는 것이 1,900만 알이 됨을 의미합니다. 즉 하루에도 1,900만 명이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진통제 아스피린이 한 해 동안에 1,100만 파운드나 팔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1년에 750억의 두통 건수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두통약 선전이 부쩍 늘었습니다. 두통약하면 게보린, 팬잘, 암씨롱 등을 있다고 각종 매체를 통해서 이미 우리 머릿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두통약 한 개가 100원 한다고 보면 각종 선전비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에 이를 것이고 그것도 몇 개 회사가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안해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말씀을 맺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외형적인 것들을 추구합니다. 그 추구하던 것들을 차지하게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일 뿐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심령의 평안에 있고, 그리고 원천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주시지 않으면 참 평강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찬송가 470장을 아시지요? 우리 다 같이 찬송을 불러보시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여러분의 신앙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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