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정상(頂上)을 정복하자
창세기22:11-14
2002년 6월 16일 주일낮 최일환 목사 설교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설교:
1988년 7월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에 있는 북해 유전에서 석유시추선이 폭발하여 168명의 목숨이 희생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지옥 같은 사고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앤디 모칸(Andy Mochan)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잠결에 들리는 폭발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뛰쳐나갔더니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돌아보아도 피할 곳은 없었습니다. 배의 난간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그리고 바다 역시 기름 탱크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타고 있어 불바다였습니다. 배에서 바다까지 뛰어 내린다 해도 그 높이가 50m나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 할 뿐이었습니다. 머뭇거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순간 자기가 서 있는 곳으로 불길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불꽃이 일렁이는 북해의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불타는 갑판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를 바다로 뛰어 내리게 한 것은 순간의 선택이었습니다.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죽을지도 모르지만 살수도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그의 결정과 선택은 옳았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니까요.
오늘 우리에게도 순간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수시로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며 어떻게 위기에서 살아나가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비로써 그 신앙을 인정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고 믿음의 정상에 서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신앙의 결단, 믿음의 선택의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아브라함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 과감한 결별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믿음의 정상인 모리아 산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밑바닥에서 시작 중대한 결단을 내려 그곳에 서게 된 것입니다.
1)아브라함의 신앙은 고향을 떠나는 결별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고 조상 대대로 수백 년을 살아온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우상의 도시를 떠나라는 말씀을 따를 것인가, 그냥 주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통해서 비쳐지는 미래의 영상을 바라보며 고향과 결별했습니다.
성공하는 개척자는 현재만을 보지 않습니다. 그는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러기에 그는 창조적인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내일을 위해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이 있습니까? 새로운 미래, 아름다운 가정, 건강한 교회에 대한 꿈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의 개척자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자손이 별과 같이 번성할 것을 약속 받았고 그 약속하신 하나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꿈의 개척자가 되게 하고, 꿈을 이루게 합니다.
2)아브라함은 고향만 떠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도 결별했습니다.
1차는 육신의 아버지와 결별했습니다.
아버지 데라의 죽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순례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12:1-4).
2차는 조카 롯과의 결별입니다.
롯은 고향을 떠날 때 그와 함께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네가 右하면 내가 左하고 네가 左하면 나는 右하리라"(창13:9) 롯과의 결별은 더 높은 믿음의 산을 향한 결단이었습니다.
3차는 하갈과의 결별입니다.
하갈은 인간의 생각으로 자식을 얻으려고 취했던 후처였습니다. 아내 사라와의 다툼은 결국 후처를 내쫓는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정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애첩과도 결별해야 했습니다.
4차는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과의 결별입니다.
그는 로마서 8:7에 해석으로는 육신의 생각으로 얻은 아들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이삭이 자랄수록 이스마엘과의 다툼은 더해갔습니다. 최초로 얻은 자식과의 결별은 믿음의 정상을 향해 가기 위한 필연적 아픔이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아직도 끊어야할 관계, 떠나야할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적문제, 음주흡연 문제, 또는 잘못된 인간관계가 있다면 이제 결별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에게 영적 진보가 있고 믿음의 정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과의 결별로! 믿음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십시다.
2.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한마디로 제단 중심의 신앙입니다. 정상으로 나아갈 사람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예배를 생활화 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신앙의 정상에 서려는 사람이 예배를 경시하면 신앙의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배를 소홀히 하고 기도와 찬송이 끊어지면 그때부터는 내리막길입니다.
여러분의 경험으로 영적으로 침체되고 신앙의 위기가 닥친 때가 언제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배를 경히 여기는 때였습니다. 기도 줄이 안 잡히고 설교가 안 들릴 때였습니다.
창12:8-10에 보면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했다는 말입니다.
이사야43:21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말씀에 부딪쳐서 깨닫고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믿음이 자라고 병든 삶이 건강해집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능력이 흐르는 통로입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예배입니다(전5:1).
베드로가 설교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사람들에게 내려 왔다고 했습니다(행10:44). 예배 중에 성령의 감동을 받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들으며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듯이 예배로 믿음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바랍니다. 예배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여 삶이 행복해지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하여 예배합시다. 예배를 통해 치유 받고, 변화 받고 ,축복 받으시기 바랍니다.
3. 십일조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십일조 생활은 율법이 아니고 율법 이전인 아브라함이 시작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창14:20) 하였습니다. 멜기세덱은 제사장이면서 왕이었습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이라고 했습니다(창14:20,18).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십일조의 元祖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이 향상하지 못하는 것은 십일조의 문턱을 넘지 못해서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에 이르게 됩니다. 십일조의 강을 건너야 신앙의 복지에 이르고 믿음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미국 부시는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상속세를 폐지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공약대로 상속세를 폐지하려고 하자 재벌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상속세를 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부(富)가 세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진 자는 가진 만큼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참으로 멋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국세청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가지고 국세청이 그들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십일조에 관한 한 시험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록펠러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가 8세 때 누구에게서 20센트를 받았는데 2센트를 떼어 헌금했습니다. 중학교도 못간 그가 큰 사업가 되었습니다. 재산이 늘어갈수록 십일조도 늘어갔습니다. 그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누가 묻기를 당신은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까? "나는 십일조를 바칩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은 축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십일조의 강을 건너 믿음의 정상으로 올라가기 바랍니다.
4. 헌신으로 정상에 올라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한 일은 할 만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는 것도 사람들과 결별하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십일조를 드린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산 거기서 그를 번제를 드리라"(창22:2)
번제란 어떻게 드리는 제사인줄로 알고 있습니까? 짐승을 잡아 피는 번제단 사면에 뿌리고 육질은 각을 뜨고 내장과 정강이는 물에 씻어서 제단에 올려놓고 남김없이 전부를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짐승을 잡아 드리라고 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100세에 얻은 외아들을 짐승처럼 잡아 바치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리아 땅의 한 산으로 가서 아들을 결박하고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짐승을 잡듯이 아들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칼로 자식을 찌르려는 바로 그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보여드렸습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어떤 증거를 요구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 드릴 수 있습니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느냐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귀한 것을 바칠 수 있느냐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우리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 그를 존귀케 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겪어 보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십시다. 내 뜻과 정성 모아 날마다 나아갑시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14절) 하였습니다. 아들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을 말합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라는 뜻입니다.
헌신으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을 준비하십니다. 그래서 시34:8-10에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던 것입니다.
끊어야 할 것을 끊어야 하고 떠나야 할 것들과 결별하십시오. 예배를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십시오.
십일조의 요단강을 건너 정상을 향하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의 소중한 그것을 바쳐서 믿음의 정상에 우뚝 서서 승리의 깃발을 흔들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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