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입니다. - 신앙의 북극성입니다.(고전13;1~3)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 우리가 은밀한 곳에 있어도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압니다. 이 모든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이 말씀이 하나님에 대한 많은 모든 말씀 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라고 할지라도,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하나님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4;10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의 전능하심도, 그분이 나를 지으신 것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이 말씀이야 말로 우리가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을 산에 오르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우리는 먼저 내가 올라가야 하는 산봉우리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오르고 싶은 산이 저산이라고 우리는 그 봉우리를 보고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산봉우리가 무엇이냐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나침반으로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북극성을 보고 항로를 잡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사랑이라는 봉우리를 보고 우리의 항로를 잡아야 올바른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항로를 바로 잡게 하는 것은 능력이라는 봉우리가 아닙니다. 성공이라는 봉우리도 아닙니다. 권세라는 봉우리도 아닙니다. 은사라는 봉우리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신앙의 항로를 바로 잡게 하는 나침반은 사랑이라는 봉우리입니다. 이 사랑이라는 봉우리를 놓쳐버린다면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고 미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허사이고, 모든 것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이라고 오늘 말씀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목회초반에 저희 어머님께서 저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즘은 목회를 지식만으로는 안 된다. 능력을 받아야 한다. 능력을 받아야 목회를 할 수 없지 능력 받지 못하면 목회할 수 없다.” 여러분들도 저의 대한 기대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목사님 세계적인 목사님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십니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목사님도 유명 목사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여러분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능이 있는 목사님이셨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내고,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서, 각색 병자들을 안수하여 고쳐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요, 제가 보는 봉우리는 능력도, 권세도, 은사도, 유명함도 아닙니다. 제가 보는 봉우리는 “사랑”입니다. 저는 끝까지 이 사랑이라는 봉우리를 보고 이 길을 가려는 것입니다. 권세나 능력이나 유명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내가 가는 이 길에 나침반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내가 보아야 하는 북극성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밤에 떠 있는 수많은 뭇별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나의 목회의 길에 있어서 내가 보아야 할 북극성은 “사랑” 하나뿐입니다. 이 “사랑”은 저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보아야 할 북극성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옆 사람과 함께 축복의 인사를 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보아야 할 신앙의 북극성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가면서 우리가 항상 보아야 할 북극성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이라는 북극성을 보면서 내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야 말로 우리의 신앙의 길을 바로 안내할 수 있는 북극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갈 때에 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이라는 별을 찾아 떠납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이라는 별을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유명이라는 별을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마4;1~11을 함께 보겠습니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귀가 예수님께 첫 번째 한 시험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상황적으로 보면 얼마나 떡이 필요한 상황입니까? 금식하신 분들은 사십일을 금식하였으면 떡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떡처럼 생긴 돌이라면 먹으려고 할 것입니다. 정말로 예수님께 떡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마귀는 이 적절한 상황에 유혹을 합니다. 너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마귀의 유혹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심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두 번째 유혹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가 뛰어 내릴지라도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어 상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유명이라는 것을 나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죠.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들이 유명세를 타고 싶은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혹은 예수님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을 합니다. 이 유혹은 성공이라고 하는 유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을 얻었을 때에 성공하였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이 유혹은 우리가 신앙의 길을 가려고 할 때에 우리도 똑같이 받는 유혹입니다. 우리가 이 마귀의 유혹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봉우리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봉우리를 바라보게 되면 우리는 영락없이 마귀의 유혹에 걸려들고 말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과 형편을 통하여서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한 번 보십시오. 얼마나 지금 마귀가 예수님의 형편과 상황을 꿰뚫어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귀가 시험한대로 하였다면 예수님은 금방 주목을 받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토록 훼방하던 바리새인들도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거절하였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거절하였을까요?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마귀의 시험을 물리쳤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오직 자기를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만이 예수님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세상에 보내는 것은 나의 사랑을 저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 함이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면서 들은 이 말씀만이 예수님의 가슴에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오직 사랑하기 위해서 왔노라. 나는 이 사랑의 봉우리만을 보고 가리라. 다른 것은 내게 보이지 않는다. 능력도 나의 관심이 아니다. 명예도 나의 관심이 아니다. 성공도 나의 관심이 아니다. 오직 나의 관심은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위해서 왔다. 나는 사랑의 길을 가노라. “나는 오직 사랑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자들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지나갑니다. 하나님이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그대로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내려오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증명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내려오시면 다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죄인들을 위해서 의인이 죽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을 사랑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나의 길이다.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빠진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내게 아무 유익도 없노라고 주님은 선언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며, 또한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사랑 때문에 오셨고, 오직 사랑하며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것은 포기할 수 있었지만 사랑만은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이름이 영광을 받는 것도 포기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섬김도 포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랑만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반하는 그 자리에서도 저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저들의 발을 친히 씻기시며,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자식들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왜 이 땅의 자식들이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는 것입니까? 부모님이 능력 있어서 그렇습니까? 부모님이 잘 나서 그렇습니까?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어서 부모인 것이 아닙니다. 잘나서 부모인 것이 아닙니다. 나를 자신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부모는 내가 죽어서 자식들이 산다면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자식들을 위해서는 아낄 것이 없으신 분들이 부모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듯이 부모도 자식들을 향하여는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 자녀들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신앙의 나침반입니다. 사랑은 신앙의 북극성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항상 바라보아야 하는 봉우리입니다. 이 사랑을 잃어버리면 천사의 말도 요란한 소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능력과 모든 지식과 모든 믿음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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