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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삼상23:15~18/2002년 9월 15일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

사무엘상23:15~18

2002년 9월 15일 주일 낮설교

23:15 다윗이 사울의 자기 생명을 찾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황무지 수풀에 있었더니

23: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23: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23: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거하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설교:

여러분에게 여러분을 이해하고 마음을 언제든지 떨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재미있고 즐거운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가 없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쓸쓸하고 참된 행복을 맛보지 못하여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친구라고 꼭 같은 또래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친구는 스승도 될 수 있고 아내나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부모나 자식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줄곧 같은 학교를 다녔던 죽마고우였습니다. 군대에도 같이 가게 되었다. 그 때 월남전이 터졌습니다. 둘은 같은 부대원이 되어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숱한 전투를 치르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그러던 중 종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그 와중에 두 친구 중 한 명이 돌격 중 적탄에 가슴을 맞고 한참 격전 중인 한 가운데 지점에서 쓰러졌습니다. 부상을 입고 헐떡이는 것을 본 다른 친구가 뛰어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소대장이 팔을 붙잡았습니다.

"김일병, 저 애는 살려봤자 전투불능 상태야. 그리고 우리가 진격이나 퇴각할 때도 그는 짐만 될 뿐이야. 게다가 너까지도 위험해!! 어쭙잖은 감상은 집어치워."

그러나 그 친구는 신음하는 친구를 내버려둘 순 없었습니다.

 

소대장의 팔을 뿌리치고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정점을 향해 뛰어나갔습니다. 얼마 후 그는 피범벅이 된 친구를 등에 업고 참호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등에 업혔던 친구는 이미 죽어있었고, 업고 온 친구 역시 부상을 입고 헐떡이며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소대장이 소리쳤다.

"내가 뭐랬어? 네 친구는 죽었어. 너 역시 큰 부상을 입지 않았나? 우리 소대의 전투력 손실도 마찬가지야! 그런 무모한 행동이 도대체 무슨 이득을 줄 수 있어?"

 

소대장의 다그침에 친구는 희미한 미소로 대신했습니다. 그리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큰 이득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말하더군요. "나는 네가 올 줄 알았어." 하고요.  

 

성경에도 하나님이 크게 쓰신 사람들 주변을 보면 좋은 친구들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에게는 아론과 여호수아가 좋은 친구로 등장하고

여호수아는 갈렙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고

바울에게는 바나바와 디모데, 실라 같은 좋은 친구들이 함께 했습니다.

다니엘은 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우상을 섬기는 왕 앞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중 가장 아름답고 멋있는 친구 관계는 아마도 다윗과 요나단이라 할 것입니다. 다윗도 훌륭한 사람이고 멋있는 사람이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윗이 다윗 될 수 있었던 공로는 요나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아들입니다. 앞으로 왕권을 이어갈 수도 있는 왕자였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요나단이 자신의 아버지 사울 편에서 자신의 왕권에만 눈이 멀었다면 아버지의 실수를 보지 못했을 것이고 다윗과 적이 되어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좋은 친구를 다윗의 인생에 붙여주심으로 다윗을 보호하셨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시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나단은 생명을 걸고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구별되어야 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삶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아픔을 주는 자가 아닌 덕을 세우며 사랑으로 힘을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베푸는 자의 삶을 살아야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빛이라 하셨는데 빛과 소금은 자신을 녹이고 자신을 희생시켜 남에게 힘을 주고 덕을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해야 남에게 힘을 줄 수 있을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의 주인공 요나단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요나단은  

1. 사람을 위로 할 줄 아는 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요나단은 사울에게 쫓겨 도망을 치는 다윗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위로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마디로 요나단은 남에게 위로와 평안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다윗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하루하루 불안과 공포에서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에게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남들이 와서 말하면 아무 소용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이 말하는 위로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남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워 할 때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남에게 힘을 주는 사람입니다.

질병의 고통에서, 그리고 인생의 전쟁터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말만이라도 위로하고 격려하며 힘을 주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친구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퇴근한 남편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아내, 힘들게 공부하는 자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부모, 수고하는 목회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성도, 그 힘은 매우 큰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새롭게 번역해봅니다. 따라서 합시다. /말 한마디가 /모든 죄를 덮는다, 다시 따라서 합시다. /말 한마디가 / 축복의 문을 연다.

 

요나단은

2. 자기를 버릴 줄 아는 자였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장자 곧 왕권을 넘겨받을 아들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이스라엘의 왕권을 이어갈 수도 있는 왕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포기합니다. 왜요?

자신과 다윗을 비교해 볼 때 왕으로서 材木은 자신보다는 다윗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기에 과감히 그 왕권을 양보합니다.

17절을 중간을 보세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도 안다 하니라" 자기 아버지 사울도 다윗이 왕이 될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왕권을 양보합니다. 이 말은 다윗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요나단의 어떤 인품이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일까요?

1)첫째는 겸손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보는 겸손, 자신보다는 다윗이 더 낫다는 겸손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2)자기 포기입니다.

욕심을 벗어버린 요나단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지만 요나단은 자신의 친구 다윗이 잘되는 것이 자기가 잘되는 것 같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과감히 내어주신 것은 그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이 인자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꼭 일인자가 되어야 지도자가 아닙니다. 二人者, 즉 리더(Leader)가 아닌 헬퍼(Helper)도 지도자입니다. 이 인자가 많아야 일인자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수만은 이 인자 리더십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의 종 여호수아였고 여호수아의 친구 갈렙도 멋있는 이 인자 리더입니다. 또 바나바도 그랬고, 세례요한도 예수님 앞에서 이인자의 겸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장 멋있는 사람은 오늘 본문의 요나단입니다.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인자입니다.

 

우리는 꼭 우두머리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나 다 우두머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세계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인자로 물러서면 참 아름다울 사람인데 꼭 우두머리가 되어보려고 고생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는 요나단 같은 이인자 리더십이 필요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나단은

3.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요나단이 다윗이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할 수 있었나? 그는 하나님 앞에 선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이 다윗을 쓰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골리앗과의 전투에서도 그랬고 곳곳에서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자기 뜻과 욕심을 접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까? 그러면 속히 여러분의 생각과 계획을 접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내 뜻을 내보이며 하나님을 설득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성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됩니다. 그냥 순종하며 엄청난 복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왜 순종이 안 될까요?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 경험, 내 방법, 내 생각, 내 형편을 이해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통할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요? 하나님은 내 속을 모르실까요? 어리석은 사람은 그러면서 계속해서 자기 뜻을 하나님 앞에 고집을 보리며 관철시킵니다. 그러니 그 모양입니다. 늘 어제나 오늘이나 십 년 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요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아마도 극히 드물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대신 바칠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치 마세요.

우리에게는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좋으시고 사랑이 넘치는 참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어떤 허물도 감싸시고 사랑으로 덮으시는 분입니다.

그는 외모로 사람을 차별치도 않으시고 부자냐, 가난한자냐 따지며 소유로 사람을 박대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선물이며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은 참된 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누구십니까? 다 같이 외쳐봅시다. 예수 그리스도!

 

찬송가98장

1/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맘에 늘 계시고 나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친구

2/내 친구 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사 내 죄를 대속했네.   나 주님을 늘 믿으며 그 손을 의지하고 내 몸과 맘을 바쳐서 끝까지 충성하리.

3/내 진실하신 친구여 큰 은혜 내려 주사 날 항상 보호하시고 내 방패 되옵소서.

그 풍성한 참사랑을 뉘 능히 끊을쏘냐. 날 구원하신 예수는 참 좋은 나의 친구   

 

우리의 영원한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15:15).

요한복음15:15절에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 요나단처럼, 우리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신 분이 계십니다. 다윗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요나단처럼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어주셨습니다.

 

다윗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한 요나단처럼,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며, 하나님께 우리를 변호하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격려해주십니다.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우리 곁에 늘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는 항상 두 개의 발자국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 발자국,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발자국, 그러나 정말로 내가 어렵고 힘겨운 걸음을 걸어갈 때, 우리 인생의 발자국은 하나로 바뀝니다. 주님이 떠나셨기 때문이 아니라, 쓰러진 나를 주님이 들춰 업고 걸으셨던 것입니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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