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직 믿음으로인가?
로마서3:20~27
20020929 주일낮 예배 최일환 목사설교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설교:
인도에 가서 宣敎하던 영국인 선교사 한 사람이 英國으로 귀국하여 만찬 석상에서 선교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事例를 하나하나 들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 하셨고,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感動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생활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인도인들이 悔改하였는지를 보고하였고 그와 같은 일을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 때 만찬회에 참석했던 부자 상인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거만하게 인도 선교사에게 질문했습니다.
"선교사님, 거 참 이상합니다. 나는 인도에서 3년 동안 살았는데 예수 믿는 인도인들을 한 사람도 못 만났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대로라면 인도에 그리스도로 개종한 인도인들이 상당히 많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 때 선교사는 조용히 일어나 그 부자 상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인도에서 호랑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상인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호랑이요? 말도 마십시오. 나는 호랑이들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호랑이 사냥을 자주 다녔는데, 수많은 호랑이를 잡았고 그 가죽도 나의 집에 많이 있습니다."
상인의 말이 끝나자 선교사는 대답했습니다. "거 참 이상하군요. 저는 선교사 생활 20년 동안 한 마리의 호랑이도 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호랑이를 찾아 헤매던 상인은 호랑이를 보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던 선교사는 상처입고 방황하는 인도인들을 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길을 지나다니면 뭐가 보입니까? 아마도 중고차 賣買商은 차를 볼 때마다 몇 연식 얼마하며 가격을 매기고 다닐 것입니다. 미용실을 하는 분은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띠일 것입니다. 구두장이는 남들 구두만 보이고 직장을 찾는 분은 구인광고가 눈에 띠일 것입니다. 容恕하시기 바랍니다. 제 눈에는 교회가 보입니다. 이 동네는 교회가 많네, 여기다 개척하며 잘되겠네 하며 교회만 보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자기와 관련된 聖句가 눈에 쉽게 띠이고 다른 성경구절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 은혜가 안 되는 것입니다. 복을 사모하는 성도는 성경을 읽을 때 맨 '福' 字만 보입니다. 병을 치료하기를 원하는 분은 그런 부분만 보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성경은 그때그때 은혜를 새롭게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구절이 눈에 띄입니까?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선교라는 구절, 복음을 전하라는 구절이 어찌 그렇게 잘 눈에 띄는지요? 구약을 읽든 신약을 읽든 보이는 구절이 전부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니 전부 그렇게 보일 수밖에요.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는 참으로 오묘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눈에 구원이라는 글이 언제나 쉽게 눈에 뜨이기를 원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성경을 읽어보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놀라운 은혜를 누릴 것이고 그러면 여러분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長安의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 얻었습니까? 영생을 살고 있습니까? 어떻게 얻었습니까? 여러분이 힘쓰고 애써서 얻었습니까? 아니면 뭔가를 주님께 행했기 때문에 얻었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라고 믿어야 합니다.
왜 구원이 오직 믿음인가요?
1. 행위의 율법으로는 限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질문을 합니다. 주님이 그를 보시고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하시면서 십계명중 5계명 이하 여러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그 계명들을 지키면 영생을 얻는 것일까요? 왜 주님은 그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그 청년보세요. 주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는 한술 더 떠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며 네 재산 다 팔아 가난한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영생을 얻는 것일까요?
왜 예수님은 정답이 아닌 오답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친구의 질문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뭔가를 해야 얻는 줄 알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니 주님은 행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뜻에서 십계명을 들쳐 낸 것입니다. 그 계명을 지키라 할 때 그 청년이 도저히 지킬 수 없으니 어찌합니까? 했다면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기는커녕 오히려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가 찹니까? 그래서 주님은 다 지켰다고 하니 그러면 네 이웃에게 재산 다 팔아주고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되기 때문이 아니라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나니까 그렇다면 네 이웃을 진정 사랑할 수 있다면 이것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재산이 많으니 그대로 하지 못하고 근심하고 돌아갑니다.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뭡니까? 인간의 구원과 영생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계명 하나라도 온전하게 다 지키는 계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법을 가르치시려 했는데 그 청년은 그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서는 들어보지도 못하고 돌아 가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로는 그 누구도 자신의 罪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행위의 율법을 주신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크고 부끄러운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십계명중 어느 하나라도 지킬 수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그 어느 한 구절도 지킬 수 없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그래서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도 되기는 하나 실상은 우리자신의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울이 어떤 역할을 합니까?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이 거울입니다. 빛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빛이 비쳐질 때 그냥 그 앞에 서있는 존재를 보여 줄뿐입니다. 율법이 그렇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얻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품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오직 믿음으로인가?
2. 믿음으로만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사람을 혈통으로, 종족별로, 또는 소유하고 있는 것이나 생김새로 차별을 두신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어떻게 행하는가를 두고 보셨다가 그 행한 결과를 보시고 구원하신다면 여러분은 소망이 있을까요?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세요. 오늘 처음 예수에 대해 듣고 예수를 믿으셨다면 비록 오늘 돌아가셨을지라도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경 요한복음3:16절에서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로마서3:22절에는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롭다하심은 누구에게도 차별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옆에 매달려 죽기 직전에 예수를 믿었던 강도나 주님나라에 위대하게 들어 쓰임을 받았던 바울이나 베드로, 똑같이 구원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국기독교의 위대한 종 한경직 목사님이나 살인마라고 불렸던 김대두나 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일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사형수들의 수기를 모은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신앙 간증집에는 "사형장의 찬송 소리"라는 제목의, 사람 16명을 도끼로 죽인 살인마 김대두의 실화가 실려 있습니다. 그는 "할 말이 없는가."라는 집행관의 질문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영영 이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꼭 만나고 싶습니다.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때 목사님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누가복음23:42-43 말씀을 읽으시자 김대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고, 찬송가를 부르며 평화롭게 천국으로 갔습니다.
믿음으로 다 천국을 갑니다. 다만 하늘에서 받아 누릴 상급이 다를 뿐입니다. 상급에 대해서는 수요일 저녁에 좀 더 깊이 다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는 방법인 믿음의 법을 구원의 방법으로 채택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고 백인이나 흑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8,9,10장에 흑인 에티오피아 내시, 황인종 사울, 백인종 백부장 고넬료를 믿음의 법칙으로 구원하십니다. 이방인이라고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직업, 인종, 그리고 신분에 차별이 없이 구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벌, 가문, 혈통, 재산, 권력 명예로 차별 받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만약 믿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구원의 방법을 정하셨다면 우리는 소망 없는 자들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너는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냐? 고등학교인데요. 안 돼! 천국은 최소한 전문대학 이상은 나와야 하는 거야. 너는 재산이 얼마나 되냐? 재산이 5000만원도 안되는데요. 야, 그것 가지고 천국 오려고 하냐? 천국은 적어도 2억은 있어야 하는 거야. 야, 너는 착한 일을 얼마나 했냐? 글쎄요. 한 100가지는 했겠지요? 야 그것가지고 어디다 명함을 내미나? 천국은 기본이 5000가지는 해야 들어갈 자격을 얻는 거야……. 만약 이런다면 하나님은 불공평의 하나님이요. 무자비한 하나님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은혜는 값없이 누리는 공짜의 은혜인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이유는
3.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언약생활 곧, 약속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있어서 약속은 곧 생명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참으로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한번 맺은 약속은 절대로 부도를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오눌 본문 25절과 26절을 보세요.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자세히 보세요.
25절에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26절에는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랍니다. 어째서요?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의 언약을 보세요. "정녕 죽으리라" "피 흘림이 없는 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하는 법칙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고 약속입니다. 모든 죄인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약속은 예수님의 대속, 대신 죽으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약속을 지켰으니 의로운 것이고 우리도 대신 죽으신 분이 계시니 용서받아 의로워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가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 하루 이틀 걸리는 시골길에서 기마 여행을 즐겼답니다. 그 여행에는 간단한 여행용품과 책을 넣고 다니는 백합꽃이 수놓인 가방을 허리에 차고 다니게 마련이었답니다. 언젠가 말에서 내려 쉬고 있는데 일곱여덜살 되는 소녀가 어머니 손을 잡고 가다 그 가방에 눈독을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 칭얼대는 것을 보고 톨스토이가 말했습니다. "애야 두 밤만 자면 이 가방이 필요 없어지니 그때 이곳에서 이 가방을 네게 주겠다." 하며 약속으로 울음을 달랬습니다. 약속대로 이틀 후 빈 가방을 들고 그곳에 와보니 소녀는 없고 엄마만이 앞치마로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사이 급병으로 죽어 장례를 치렀다며 가방을 갖고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톨스토이가 말했습니다. "따님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약속을 한 내 마음은 이 세상에 이렇게 있습니다. 나의 약속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하고선 소녀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 곁에 생나무를 꺾어 꽂아놓고 약속했던 그 가방을 걸어 놓은 채 돌아왔습니다.
성경을 영어로 Testment라 하는데 바로 약속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신과 인간과의 약속을 적은 책이요 그것을 지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계최강대국 미국은 대통령을 비롯하여 법정에 이르기까지 성서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한데 미국에 믿음이 퇴조하여 약속을 지키는 경건함이 사라지자 경건한 남자들이 일어났습니다.
"<약속 지킴이(프로미스키퍼)>"라는 구호 아래 지난 주말 워싱턴에서 1백만 남성들의 대집회가 있었는데 워싱턴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군중이 모인 집회라서 세상이 경악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약하십니다. 그래서 약속을 붙잡고 달려들며 기도하는 백성에게는 약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씀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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