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복을 받고 싶습니까?
성경: 삼하7:1-13
2003년 5월25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설교
7:1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7: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7:3 나단이 왕께 고하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7: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7: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7: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7:7 무릇 이스라엘 자손으로 더불어 행하는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어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7: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7: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7: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類)로 전과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7: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7: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설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이 누굴까요? 여러 사람이 있으나 그중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은 다윗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말씀에는 날마다 엄청난 복을 누렸던 시골 목동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다윗입니다. 시골 목동에서 일국의 왕으로 세워졌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복을 누렸던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시겠다는 복이 몇가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윗이 받았던 복을 누리기 원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떤 복을 누렸는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그중 오늘 본문에 기록된 복을 함께 살피며 은혜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어떤 것일까요?
1. 네 이름을 존귀케 해주시는 복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 받은 “복”은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으로부터 3,000년전 사람이지만 그 약속은 지켜졌고 지금도 그 이름의 빛이 바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좋아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꼽습니까? 아마도 아브라함, 요셉, 모세, 바울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인데 그중에서도 다윗처럼 인간적인 매력이 풍부한 인물도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다윗을 좋아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살게 되면 미국식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제가 아는 김 달생 박사님은 그 이름을 “데이빗 킴”이라고 지었는데 한국식으로 부르자면 “김 다윗”이라는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빗”이란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의도의 조용기 목사님도 국제적으로 사역을 하시기에 “데이빗 조” 로 바꾸어 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그 다윗을 추앙하며 존경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국기에 별이 하나 그려져 있는데, 그 별을 “다윗의 별”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름은 단순히 호칭을 부르기 위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타인과의 구별을 두기 위한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름이 그 사람을 대변하고 있고, 그 이름이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가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에는 뜻이 담겨졌습니다. 저는 “하나의 빛”이란 뜻이 있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복이 있는 계집”이란 뜻이구요. 盧淑子 권사님은 노숙하는 사람이 아니라 “맑은 여자” “착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름도 이름마다의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란 뜻이고 모세란 이름은 건진다, 구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의 이름 뜻은 “사랑받는 자”입니다. 그래선지 성경에 다윗의 이름이 700번이나 등장한다고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서두를 보십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예수님의 세상적인 족보를 밝힐 때 다윗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1장1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렇게 되어있지만 원문 성경을 보면 다윗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The book of the generation of Jesus Christ,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 즉 "다윗과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렇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다윗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 다윗에게 약속하십니다.
9절을 보세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네 이름을 존귀케 해주리라..." 이것이 얼마나 큰 복인 줄 아십니까?
이름이 존귀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귀한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네가 나를 尊貴히 여기니 나도 너를 존귀케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우리나라는 “大韓民國”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선 “korea/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이 이름이 세계에서 존경받고 칭찬받는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외국 여러 나라들을 다녀보니 일본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좋은 인상을 많이 심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라고 하면 거의 모두가 좋아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을 만나면 먼저 묻는 말이 일본인이냐고 묻습니다.
단체 여행할 때 가이드가 호텔에서 체크아웃 할 때는 잊지 말고 침대 비개 위에 팁을 놓고 나오라고 말합니다. 호텔 보이가 짐을 운반해주면 반드시 팁을 건네라고 합니다. 다 아는 상식이지만 그렇게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답니다.
사실 잠자고 나오면서 팁을 놓고 나오지 않아도 누가 와서 손 내미는 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한국인들은 아주 인색하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예절을 모르는 민족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코리아란 이름이 자체가 먹칠을 당하는 것입니다. 호텔보이들에게 팁을 줘도 일본인들은 한국인보다 배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본, 일본인이라는 이름이 소중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다윗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고 귀히 여김을 받는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가 재능이 많아서일까요? 아니면 인물이 잘나서입니까? 아니면 일국의 왕이었기 때문입니까? 성경이 그 해답을 줍니다. 그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상2: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輕蔑히 여기리라" 이 말씀은 사사 엘리의 아들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만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렇치 않던가요? 누가 나를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나 역시 그 사람을 깔보고 우습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그 하나님을 공경하면 하나님 역시 우리들을 귀히 여기시고 존귀한 자로 여기십니다. 다윗이 평생에 걸쳐 하나님을 귀히 여기니 하나님 역시 다윗을 귀하게 여겨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일까요?
1)사람 만나는 약속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2)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나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일은 무슨 날입니까? 하나님과의 약속된 날입니다. 친구와 약속, 연인과 약속, 사업자와의 약속은 귀한 것으로 여기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은 우습게 여기고 주일을 범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尊貴히 여기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잘 되길 소원합니까? 귀중한 존재들이 되길 원하십니까? 이름을 남기는 자녀들이 되기를 소원합니까? 그렇다면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귀중히 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결혼식만도 못하게 여기고 친구 만나는 것만도 못하게 여기면 자녀들에게도 예배의 가치관이 그 정도로 형성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손해를 보면서도 예배를 드리고 주일을 성수한다면 여러분의 자녀들도 그런 모습을 통해 가치관이 형성될 것입니다. 결국 그런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귀중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그 이름을 존귀케 해주실 것입니다.
2. 다윗이 받은 복은 “평안의 복”입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여 ...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前에 사사시대 때 이스라엘은 평안이 없었습니다. 늘 외세의 침입을 받아 불안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다윗 개인적으로 볼 때도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돌아다니며 遊離방황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윗 성을 중심으로 나라가 견고해지고 국력이 강성해질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바로 平安입니다.
"나라가 태평하리라. 평안하리라."
이번주 토요일이 월드컵 개막 1주년의 날입니다. 벌써 일년이 지났습니다. 세계적인 축제를 개최했던 우리나라, 그 역사적 행사에 개회사를 하는 우리나라 최고 통치자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웬지 모르게 어둡게만 비쳐졌습니다. 왜 일까요? 세계적인 행사는 주최하지만 정치는 뜻대로 되지 않고, 더욱이 자신의 아들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얼굴에 평안이 없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세계가 평안하고, 나라가 평안하고, 교회가 평안하고, 가정이 평안하고, 개인 심령이 평안하다면 이보다 행복할 순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정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그런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평안은 잠잠하고 고요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평안은 풍랑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주님의 평안입니다. 또 십자가의 무참한 고난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평안이 있습니까?
3. 다윗이 받은 복은 “자손의 복”입니다.
12~13절을 보세요.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오, 나는 그 나라 위를 견고케 하리라."
이 세상에서 자기 당대만 복을 받아 누리고 자손들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권세를 누리는 사람은 그 권세를, 명예를 누리는 사람 역시 그 명예를, 재물을 가진 사람 역시 그 재물을 후손에게 물려주어 이어지게 하려고 합니다.그러나 이런 일들이 사람 마음대로 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조상이야 뼈 빠지게 고생하여 모은 재물이기에 낭비를 할 수 없고 재물이 귀한 줄 알지만, 그 후손은 조상 덕분에 공짜로 얻은 재물이니 흥청망청하여 결국 탕진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후손에게 진정으로 물려줘야 할 것은 신앙입니다.
권세를 못 물려줘도, 물질을 못 물려줘도 가장 귀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참다운 유산을 물려준 사람입니다. 그런 부모가 자손에게 가장 큰 유산을 물려준 사람이요, 조상입니다.
"네 후손이 네가 못 지은 성전을 짓게 하리라." "네 후손의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과연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 하였습니다. 또한 다윗의 뒤를 이은 솔로몬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강성하고 찬란한 제국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솔로몬 왕국도 마지막엔 쇠퇴하고 분열되고 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저버린 것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깊은 뜻은 보다도 멀리 있고 깊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다윗의 후손에게서 영원한 왕,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예언하심이었습니다.
오늘 다윗이 받은 세 가지 복을 음미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존귀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심령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신앙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자자손손 이어져 내려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만 누리는 복이 아닙니다. 우리도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할 때 그 복은 우리에게도 임하는 것입니다.
그 복은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도하나 실상 하나님의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낮은 울타리라는 책을 읽다가 감동을 받은 글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가정에 3살밖이 아이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여보, 우리 앤드류는 이제 죽은거나 다름 없소. 수술비가 이 작은 집을 팔아도 모자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오직 기적만이 앤드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소.”
부모의 대화를 엿듣던 6살짜리 앤드류의 누나는 사랑하는 남동생을 기적만이 살릴 수 있다는 아빠의 말을 되새기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깊숙한 곳에 숨겨 놓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 유리병에 있는 동전을 방바닥에 다 쏟아 놓고 여자 아이는 세고 또 세었습니다. 그러더니 동전을 유리병에 다시 담은 후 옷깃 속에 유리병을 감추고 살짝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한참 걷자 자그마한 약국이 나타났습니다. 약국으로 들어가 말을 거는데도 약사는 귀찮다는 어조로 대꾸했습니다.
“넌 뭘 원하니? 나는 지금 오랜만에 만난 내 형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제 동생이 많이 아파요. 저는 ‘기적’이라는 약을 사러 왔어요.”
“뭐라고?” 약사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 어린 남동생의 이름은 앤드류인데요. 머리 안에서 뭔가 나쁜 것이 자라고 있대요. 아빠가 그러시는데 ‘기적’만이 제 동생을 살릴 수가 있대요. 그런데 그 ‘기적’이라는 약은 얼만가요?”
당황한 약사는 조용하게 말을 했습니다.
“애야 우리 가게에서는 기적을 팔지 않는단다. 안됐다만 나는 너를 도울 수가 없겠구나.” “아저씨, 제가 ‘기적’ 값을 갖고 왔어요. 만일 모자라면 더 가져올게요. 기적 값이 얼마에요?” 그 여자 아이는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그때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신사가 그 아이에게 다가왔습니다. 바로 약사의 형이었습니다.
“얘야, 네 남동생은 어떤 기적을 필요로 하지?”
“저도 모르겠어요. 제 어린 남동생은 머리가 많이 아파요.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비용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 돈을 쓰려고 해요.”
“너는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데?”
그 아이는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1달러 11센트요…. 그렇지만 모자라면 더 가져올게요.”
“이것 참 우연의 일치구나. 네 동생을 위한 기적 값이 바로 그 돈이랑 똑 맞아 떨어졌구나.” 그 신사는 한 손에 그 아이의 동전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를 너의 집까지 데려다주겠니? 내가 네 어린 남동생과 가족을 만나보고 싶구나. 아마도 네가 원하는 기적을 내가 줄 수가 있을 것 같다.”
정장을 한 그 신사는 다름 아닌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뇌수술 전문의, <칼 암스트롱> 박사였습니다. 시카고에서부터 동생을 보러왔던 그는 앤드류의 병이 자기 전공분야인 것을 알았고 그 가족을 위해 기꺼이 자기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수술비는 무료였습니다. 물론 가장 기뻐한 건 앤드류의 부모였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비싼 수술비를 면제받은 것인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여자 아이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기적이 얼마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적의 값은 정확히 1달러 11센트였지요. 거기에는 물론 그 여자 아이의 사랑과 믿음이 加算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기적을 살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혹시 인간의 머리로만 계산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해보지도 않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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