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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할 말과 안 할 말이 있습니다./약3:1~12/2003년 6월 8일

할말과 안 할말이 있습니다.

야고보3:1~12

2003년 6월 8일 최일환 목사 주일 낮 설교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3: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禦拒)하며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3:5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3:10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 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설교:

얼마전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소리를 했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깽판’, ‘양아치’,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개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취임 이후 발언해 논란을 빚은 비속어는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여론은 대통령으로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각계각층의 사람들도 못해먹겠다고 아우성들입니다. 심지어 국민노릇 못해먹겠다는 신문의 칼럼도 나왔답니다. 심지어 어느 중학교에서 수업 중 선생님이 학생들을 야단치자 한 학생이 일어나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했다고 하여 교사가 황당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왜 사장도 못해먹겠다고 하고 선생님들도 못해먹겠다고 하는데 왜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되는가요?


그 말 한마디가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이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경제에도 그렇게 세계 여러 나라가 우리나라를 평가하는 가운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용등급이 흔들리고 외국 투자가들이 긴장을 하여 투자자본을 회수하려고 한다면 그 말 한마디의 영향력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리더쉽의 문제입니다. 향후 5년 동안 이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이 못해먹겠다니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요.

지도자 한사람의 결정이 국가 전체적으로 엄청난 영향이 끼치게 되는데 그 대통령이 못해먹겠다는 말을 한 것은 중대한 실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솔직하냐고 격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통령을 마치 왕처럼 받들던 군주시대의 통치자가 아니라 일반 백성과 같이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들어내는 솔직한 지도자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평가는 그 말은 대통령으로서는 할말이 아니었다고 하는 평가입니다. 그러면 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있는 말인가?

 

이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못 해먹겠다.”

이 말에는 사명감이 없습니다. 순전한 직업의식, 즉 대통령이 생계유지의 수단으로만 여겨왔다는 의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목사도 그렇듯이 대통령은 먹고 살려고만 하면 안 되는 직업입니다. 보수가 얼마든 개의치 말고 먹고 사는 문제에 연연치 말고 사명으로 감당해야 할 직업이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명의식이 없는 직업의식만으로 그 직을 감당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잘못 뽑은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라면 대통령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직업은 섬기는 직업이고 환경에 흔들려서는 안 되는 직업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물러날 수 없는 위치이며 포기할 수 없는 직분입니다.


성도 여러분!

비단 이 말은 대통령만이 해서는 안 될 말이 아니고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도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목사 못해먹겠다, 권사도, 집사도 못해먹겠다, 교사도, 성가대원도 못해먹겠다”하면 쾌재를 부를 존재는 사단입니다.

“그래 맞어, 할 짓이 없어서 그 짓하냐? 때려 치워라” 할 것입니다. 반면 그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은 깊은 한탄을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너무도 잘 압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고 삽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 한마디가 모든 업적을 뒤집어 놀 수도 있습니다.


얼마전 미국의 한 우체국이 재판에서 져서 막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했답니다. 그 내용인즉 대학시험을 치루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격려전보를 쳤는데 그 내용 중 시험 잘 치루라는 격려 끝에 your mother and dad 라고 “너의 엄마와 아빠가”라고 끝을 맺었는데 그 글을 타이핑하는 직원이 your mother dead 라고 쳤답니다. 결국 너희 엄마는 죽었다 라가 되어 아들이 시험을 포기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전보가 잘못된 것입니다. 엄청난 손해를 본 가족은 우체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말 한글자, 한단어, 심지어 점 하나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말에 있어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백성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부정적 말을 많이 씁니다. “해보나 마나야! 뻔 하지 머! 괜히 헛고생만 하는 것 아니야?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러나 이런 말은 우리의 사기를 꺽고 가슴에 상처를 남깁니다.

한번 해보자/ 하면 될거야/ 그래 기도해 줄게/ 너는 할 수 있어/ 하나님이 너를 도우실거야/ 하는 긍적적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속이는 말, 간사한 말, 그리고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것은 우리를 사단의 종로릇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그런 사람 속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말하고 정직하면 일시적으로 손해가 오는 것 같고 바보 취급당하는 것 갖으나 결국은 승리하게 됩니다.


= 저주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하고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남을 저주합니다. 염병할 놈, 망할 놈, 미치겠네, 환장하겠네, 나가 oo라,

그러나 이제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저주의 말은 떨쳐버리고 축복의 말을 하여야 합니다. 이 흥할 사람아, 할렐루야, 잘될 것입니다.

= 죽이는 말은 하지 말고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생긴 것은 못생겨가지고, 그 따위로 해서 어디다 써 먹냐?, 잘 논다 하는 말은 칼은 안들었으나 살인입니다. 이런 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살리는 말은 어떤 것일까요?

옆 사람에게 말합시다.

나는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 참 멋있습니다./ 집사님은 성실해서 좋습니다./ 나는 네가 내 아들인 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당신을 남편으로 얻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야,/ 이밖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쪽에 더 가깝습니까? 우리가 죄악중에 살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야 할 말 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더 많습니다.

 

본문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선생이 되지 마십시오,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교사직을 하지 말라, 선생님이 되지 말라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의 뜻은 말을 조심하라, 말을 아끼라, 하지 말아야 할말은 하지 말아라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말을 조심해야합니까?

1. 우리의 혀는 작은 것이지만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본문5절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작은 불씨가 엄청나게 큰 숲을 태워 버릴 수 있듯이 작은 혀가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두가지의 예를 듭니다

하나는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입니다. 야생마를 길들인 다음에 제일먼저 하는 일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입니다. 그래야 말을 統制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는 배의 키입니다. 키는 배에서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키는 배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얼마 전에 북한어선 한척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월남한 적이 한번 있었습니다. 키는 배의 방향을 잡아주고 운명을 결정합니다. 우리들의 혀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우리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큰 힘 큰 영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은 우리들을 천국으로 이끌기도 하고 지옥으로 내몰기도 합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큰 상처를 입히고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것이 모두 세치 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2. 마치 말은 불과도 같아서 制御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말은 길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한다 라고 말씀합니다.

본문6절에서 “혀는 곧 불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불도 그냥 불이 아니라 지옥에서 나는 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불은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 보면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이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8절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불과도 같아서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혀를 길들인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개를 길들이면 개가 주인의 통제를 받습니다. “앉아”하면 앉습니다. “일어서” 하면은 일어섭니다. 이것이 길들인 것입니다.


혀가 길들이지 않았다는 말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말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말은 하고 싶어 못 참습니다. 이것이 길들여지지 아니한 혀입니다. 그런데 혀는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 라고 말씀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남의 이야기하면은 재미있지 않습니까?

가장 참기 힘든 것이 “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41:3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그렇습니다.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입을 제어해야 합니다. 자동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기관은 제동장치인  브레이크입니다. 브레이크가 작동해야만 차를 몰수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작동이 안 되는 차는 절대 운전해서는 안 됩니다.

말도 이와 같습니다. 제동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오는 대로 말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길들이지 못한 혀로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게 될 것입니다.

 

말을 조심해야 할 이유

3.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입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정말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입술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입술입니다. 우리들의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입입니다. 한 입으로 찬양과 저주를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12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나무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고 단물이 짠물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정직하게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 보면은 우리들은 수도 없이 찬송과 저주를 단물과 쓴물을 반복하여서 내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은혜를 받아서 찬송이 나오는데, 돌아서면 혀를 절제 못하고 온갖 저주를 쏟아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혀는 누가 많이 쓰고 계십니까?

어찌해야 혀를 통제하여 할말과 안할 말을 구별할까요?


1. 성령이 나를 지배해야 합니다.

성령은 내속에 들어와 내 전인격을 지배하기를 원합니다. 그 성령의 역사에 나라는 존재가 완전 점령되어야 합니다. 그때 언어의 통제도 이루어집니다. 흔히들 “이놈의 주둥아리가 탈이야” 하며 입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그러나 어찌 입 탓입니까? 내 입을 통제하는 곳은 내 머리입니다. 그러기에 입을 아무리 주둥아리라 하며 난리를 쳐보아야 소용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지혜를 얻고 그 성령의 지배 속에서 거듭나면 우리의 언어가 통제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를 닮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으셨을 터이나 할말을 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와 같이 중요한 말은 꼭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입을 닫았습니다. 얼마든지 말 가지고 논쟁을 하면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진리를 물을 때 그때는 할 말을 합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때 주님이 침묵하면 진실을 감추는 것입니다. 그때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이때는 차라리 침묵하셨다면 십자가를 안 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진리는 꼭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를 닮아야 합니다. 어떻게요?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부지런 성경도 배워야 하며 그를 따라가야 합니다.


3. 영적 가치관을 갖고 주님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무엇이 더 귀한 것인지 무엇이 덜 귀한 것인지에 대한 영적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비로서 주님처럼 살수 있는 것입니다. 이 가치관이 정립이 안 되어 있기에 예수 믿기가 고역입니다. 십일조 생활의 가치, 주일 성수의 가치, 예배의 가치, 전도와 구원의 가치를 제대로 안다면 놀라운 변화가 여러분의 삶에 임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내 언어, 입술도 통제 되어 할말과 안할 말을 구별케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여러분이 자유롭게 말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사단의 속임수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할 말을 하시되 안할 말을 구별하는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내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의 말이 생명을 죽이게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어찌 질것입니까?


할말과 안할 말이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결단기도)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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