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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목적이 이끄는 삶/행20:22~24/2003년 7월 27일 설교

目的이 이끄는 삶

사도행전20:22~24

2003년 7월 27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20:22 보라 이제 나는 心靈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0:23 오직 聖靈이 각 城에서 내게 證據하여 結縛과 患難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使命 곧 하나님의 恩惠의 福音 證據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生命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설교:

옛날 어느 경상도 양반집에 멍청한 종놈이 있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그 종을 불러 “애야 너 오늘 한양 좀 다녀 오거라” 했습니다. 한양에는 아들이 과거 시험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가서 안부를 살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해서 그 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종놈이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아예 그날 밤에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주인마님은 너무 속이 상해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몇일후 그 종이 나타났습니다. “너 이놈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나느냐? 이놈” 야단을 쳤습니다. 그때 그 종이 하는 말 “한양 다녀왔습니다. 주인님이 시켰잖습니까?” “그러냐? 그럼 도련님은 만나고 왔느냐?” 

“아뇨? 그냥 다녀오라고 해서 한양 땅만 밟고 왔습니다.”

아이구 머리야 이 멍청한 놈아 누가 너더러 그냥 다녀오라 했냐 하고 그 종을 두둘겨 팼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 가운데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한참 잘 팔리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릭 웨랜>이란 목사님이 쓴 "the purpose driven life" 하는 책입니다. 그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압축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그 내용 중 중요한 것 하나를 말하라면 사람이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려면 목표가 바르게 세워져야 하고 그 바르게 세워진 目標는 사람의 삶을 이끌어주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오늘 부산을 가야한다면 1)그 부산 어디를 가야 하는지 그리고 2)가서 뭘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단순히 부산이라는 데를 다녀오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가 設定되면 사람은 그 목표를 따라 행동을 하게 됩니다. 누구를 만날 것인지가 정해지면 옷차림새도 결정되고 얼마나 머물 것인지를 정하게 되면 짐 보따리의 크기도 정해지고 경비는 얼마나 들것인지도 예상하게 되고 다른 사소한일들이나 약속을 다 취소하거나 연기하게 되고 교통편은 자가용을 가져가야 할지, 전철을 타야 할지, 아니면 버스를 타야 할지... 등등 그 목표달성을 위한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목표는 내가 정했는데 실상 살펴보니 그 목표가 내 삶을 이끌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왜 새벽부터 밤늦게 공부하는 것일까요? 한국 고등학생들처럼 공부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세계 어디를 봐도 없습니다. 하루에 잠을 4시간 이상 자면 좋은 대학을 들어갈 수 없는 나라..., 왜 그 고생을 하나요? 목표가 있습니다. 좋은 대학, 원하는 대학 진학입니다. 그렇게 세워진 그 목표가 그 학생들의 삶을 지배하는 곳입니다. 원튼 원치 안튼 그 목표아래 엄청난 희생의 댓가를 지불합니다. 목표가 그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치 않는 학생도 있습니다. 나는 가고 싶지 않는데 부모가 가라 하니까 억지로 공부합니다. 결국 그 목표가 이끄는 대로 살지 않습니다. 결국 실패자가 됩니다.

인생사 모든 것은 다 그런 원리로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한 순간 한순간에도 목표가 있고 목적이 있겠으나, 우리 인생 전체를 걸만한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 인생의 목적, 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어떻게 세워져야 하고 그 목표가 우리를 이끌어갈 때 우리는 어떤 자세로 감당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잘못 세워진 목표는 우리 인생을 망쳐버립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생을 망쳐버리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엇그제 뉴스를 들으니 인터넷 게임에 중독된 어느 젊은이가 자기 인생의 게임은 너무 수준이 낮은 게임이라 판단하고 수준 낮은 게임을 끝낸다고 하면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自殺者의 숫자가 39명이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듣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책없이 카드를 쓰다가 빚에 시달리던 30대 주부가 세 자녀를 아파트에서 떨어뜨린 후 자신도 몸을 던져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또 어떤 고2 남학생은 “성적이 오르지 않아 부모님께 미안하다. 먼저 가서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긴 채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살이 너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되니 이제 사람들이 만성화되어 또 죽었구나 하고 별로 충격을 받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난한해 자살 건수는 1만3055건으로 하루 평균 36명, 1시간에 1.5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한해 13,000명이 생명의 고귀함을 버리고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두고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이런 엄청난 현상이 일어날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토록 소중한 생애를 버리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설정이 잘못” 되었고 그 잘못 설정된 목표를 추구하다가 결국 목표달성이 어려워 보이자 인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제 해결이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 자살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과 지옥 그것을 생각한다면 결코 싶게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解決策은 무엇일까요?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할 때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과 만나 신앙 간증을 나눕니다. 그때 그 간증을 통해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살펴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몇가지로 살펴보면 

1. 행복한 삶을 살려면 목표 설정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목표설정이 바르게 될 수 있을까요?

1)하나님이 부여하신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이 땅에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는데 그때 하나님이 각 사람 사람에게 부여하신 사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1장을 보니 세례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 막중한 사명을 알았기에 그는 그 사명을 이루며 살았고 멋지게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았고 결국 사명이 마쳐지자 미련없이 순교합니다. 세례요한뿐만이 아닙니다. 모세도 처음 자기 소명에 대해 믿지 못할 때 사양도 하고 핑계도 댔으나 분명하게 확신하고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목표가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지는 일임을 알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감당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 사명이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가 되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명 다르고 인생 목표가 다르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복함이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후 그 후에 사명을 감당하겠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2)그 목표를 성경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목표를 세상에서 찾곤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 목표는 불완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찾아야 하고 그 말씀 안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세월이 흐르면 변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모든 것의 가치도 변합니다. 옛날에는 연극배우는 광대라고 해서 천한 직업이고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세상 가치가 변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의 목표도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면 성공적인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성령의 인도로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인생의 바른 목표를 세울 때는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 속 깊은 것도 아시고, 하나님도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여야 합니다. 성령은 별명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또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진리를 행하게 하시기에 진리의 영이라 부릅니다.

그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여러분의 삶이 바른 목표가 세워지길 바랍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주인공 바울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에 늘 순종했고 성령이 이끄는 대로 갔습니다. 오늘 본문 22절에도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 “심령”은 원문으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놓여 있는지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으나 성령은 우리의 인생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내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성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행복한 삶을 살려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結縛과 患難이 기다리고 있다고 미리 예고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고난을 감수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의 어떤 일도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특히 사단의 세력이 우리가 잘되도록 그냥 두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방해 공작을 폅니다.  그래서 공갈 협박도 하고 공격도 합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환난과 핍박입니다.

바울이 당한 환난, 핍박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 즉 39대의 매를 몇 번씩 맞는 것입니다. 감옥에 갖히고 고문을 당하고 온갖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런 고통을 감수할 때 목표가 달성 됩니다. 또 조롱과 천대가 따라다닙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던 군중들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요? 그러나 그런 댓가를 지불할 때 참된 행복은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이라는 산, 핍박이라는 강을 건너야 맛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인물들을 살펴보세요. 고난과 환난을 당하지 않고 은혜를 맛본 사람이 하나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요셉도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산과 강을 건넜습니다. 모세도 그랬고 다윗도 그랬습니다. 각자가 건넌 강의 형태나 모양은 약간씩 다르나 공통점은 아무나 쉽게 건널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2)버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제일 미련 한 사람이 수영하면서 옷을 벗지 않는 사람입니다. 수영을 하려면 수영하기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위급한 사람을 구하려고 양복 입은 채 뛰어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영화고 드라마이기에 하는 짓입니다. 실제로 양복입고 뛰어들면 자기도 죽고 남도 죽습니다.

사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사명에 걸 맞는 모습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한손에 이것 잡고 한손에 저것 잡고 두 가지 다 움켜잡으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에게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이 오실 그입니까? 그때 그는 나는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그분이라 소개합니다. 만약 그가 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엄청난 사람들이 따랐을 것입니다. 한손에는 명예, 한손에는 권세 다 쥐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사명을 알기에 자기 인생목표가 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감하게 세상 부귀영화를 버립니다. 왜 그가 광야서 살았고 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을까요?

그것을 가까이 하면 자기가 유혹을 받고 결국 사명을 다 감당치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버릴 것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버려야 할 것을 미련하게 붙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도 붙잡고 명예도 붙잡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총도 다 붙잡고 있으려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마가복음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주를 위해 버려야 합니다. 버리면 금세에 백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니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핍박을 겸하여 받습니다. 왜 핍박을 받을까요? 어리석다고, 미련하다고,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올바른 목표를 달성하고 성공하려면 버릴 것을 미련없이 버리기를 축원합니다.


3)최고의 가치인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 즉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감당하려면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자기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데 그보다 다한 가치가 사명에 있고 그 사명을 이루는 것이 가장 귀한 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그 목표가 나를 힘들게 하고 내 인생을 얽어매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목표 때문에 내가 바로 서고 그 목표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을 누리게 되고 그 목표 때문에 수없는 복을 체험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이 이끈다고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 인생의 목적이 여러분의 삶을 운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방향을 바로 세우시고 자세를 바르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집어 던지고 오직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만을 따르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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