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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떻게 전해야 하나? /행5:40~42/2003년 9월 28일 설교

어떻게 전해야 하나?

사도행전 5:40~42

2003년 9월 28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설교

5:40 저희가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설교:

사도행전을 읽다가 보면 정말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앞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말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저는 예수님이 좀 이해가 안됐습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을 의심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정말 온 천하는 고사하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도 믿지 못하는 그들인데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예수님이 좀 어떻게 되신 분이 아닌가하고 의심스러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두 번째 놀라는 것은 정말 그 사도들이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그 말대로 복음을 전하며 살더라는 것입니다.

붙들려 죽을까봐 걱정하던 그들, 그래서 예수님 붙들려 갈 때 다 도망쳤던 그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그 어느 누구도 그 길을 막아보지 못 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며칠이 못 되어 돌변했습니다.

베드로의 변화는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調理있고 能力있는 설교를 담대하게 합니다. 병자도 일으켜 세우고 逼迫者들에게 엄청난 고난을 당하여도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도대체가 이들이 그 12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나요?

매를 맞아도 기뻐하고 협박을 당하여도 찬양하며 감사하는 그들, 오히려 능욕을 당함을 기뻐하는 그들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드라마도 있고 노래가 한동안 유행을 했습니다. 저는 그 노래를 음미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구절을 통해 사람들은 이런 저런 말들을 만들어 냅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나, 정당은 아무나 하나, 목사는 아무나 하나,...


그런데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전도 아무나 하나?

참 전도는 진실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12제자들처럼 “성령으로 붙들린 사람”, 좀 속되게 말하면 “성령에 의해 예수에 미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돌변하여 전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성령에 의해 사로잡힌 자들이기에

성령은 진리의 영인 동시에 전도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사람은 전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보면 불쌍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은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구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 구원을 선물하려고 온갖 것을 다 쓰며 전도합니다. 또한 전도하면서 그렇게 욕을 얻어먹어도 전도합니다.

성령이 전도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기쁨을 주고 전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기 때문입니다.


2. 오직 예수님만이 길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天國가는 길, 구원 얻는 길이 다른 길이 있다면 아마도 그렇게 힘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 천국의 길은 오직 이길밖에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이 말을 들으면 반감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왜 기독교는 자기들만이 길이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너무 독선적이고 排他的이다 라고 합니다.

저도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다가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예수님만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 없이 이 땅에 오셨고 그만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고도 확신이 없다가 성령을 받고난 후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전하느라고 인생을 바치고 생명을 걸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이 있다면 죽어가는 암 환자를 내버려 두겠습니까?  의술로도 안되고 식이요법으로도 안되고 그 무엇으로도 안 되는 문제를 내가 해결 할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디든지 달려가서 구할 것입니다.


예수 전도가 그렇습니다. 예수만이 구원의 길임을 아는데 어찌 그냥 있을 수 있을까요? 그분만이 영생을 얻게 하는데 어찌 그냥 구경만 할 수 있느냔 말입니다.


3. 하늘의 상급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 전도, 이것은 지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이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 전도를 힘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면류관, 상이 있음을 성경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상이 없어도 해야 할 일입니다.

이세상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영생이 있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어찌 전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상이 없어도 주신 은혜가 크고 놀라워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연히 해야 할 전도에 상까지 약속합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의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그 전도의 방법을 알수 있습니다.


1. 날마다 전해야 합니다.

42절을 보세요.

저희가 날마다.... 했습니다. “날마다”라는 말은 매일매일 전도하였단 말입니다. 때를 가리지 말고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날마다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새벽에 일어나 어떤 기도를 하며 하루를 지냅니까?

제가 간혹 그런 기도를 합니다. “오늘도 누구를 만나런지 알 수 없으나 불신자를 만나거든 전도할 기회를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전도는 매주 목요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1년 365일이 전도의 날입니다. 우리가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전도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 중국 여행을 아주 기뻐합니다.

백두산 근처에서 만난 그 탈북 여인에게 복음을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30분 동안 자세하게 전했습니다. 그가 제 전도를 받고 영접 기도를 했습니다. 교회를 나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67만원 비용이 들었으나 본전이 아깝지 않은 보람이 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왜요? 한 영혼, 그것도 북한에서 나온 여인이 나를 통해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제가 아는 대학 전도사역 전도자 간증의 글을 보았습니다. 그가 대학에서 대학생 전도사역을 하는 분인데  자기가 이끄는 성경 공부 모임에  교수 한 분이 참석했었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의 사모님은 신앙이 매우 좋은 분인데, 그 교수는 그렇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가  그 교수를 위해서 얼마나 시간을 많이 냈는지 모른답니다.

집으로 직접 찾아가서 성경 공부하고, 또 어느 경우는 제발 성경 공부하자고 사정사정을 해서 공부하기도 했답니다. 정말 바쁜 몸이었는데, 그 사모님의 열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선의 노력을 했답니다. 그렇지만 그가 잘 받아드리지 않자 마음에 실망이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러다가 연락이 없게 되었는데,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그 교수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집에 꼭 한 번 들려 달라는 내용이었답니다. 그래서 댁으로 찾아갔더니 그 교수가 완전히 변해 있었답니다.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무엇이 동기가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특별한 동기는 없었고, 그냥 옛날에 성경 공부할 때 별 관심 없이 보고들은 것들이 나중에 생각이 나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결심을 하게 되었고, 전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옛날에 '저 교수님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깨끗이 단념했었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것도 보통 믿는 것이 아니라 아주 뜨겁게 믿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 9).

남을 돕고 격려하는 일처럼 피곤한 일이 없습니다. 특히 전도처럼 열매가 당장에 안 나타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심어 놓으십시오. 그것은 반드시 영광스런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장안의 성도 여러분! 날마다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어디서든지 전해야 합니다.

42절에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전도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장소 불문입니다. 전도는 어디서든지 해야 할 일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길거리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리고 병원에서도,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전철에서 복음을 정하시는 분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혹시 창피하지 않습니까? 왜 자기나 믿지 왜 이런 곳에 와서 창피하게 하나 할지 모르나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듣든지 말든지,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런 전도자들을 창피스럽게 여기지 마세요. 그들을 통해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느 간증집을 보니 그런 글이 있었습니다. 죽기를 결심하고 전철을 타던 여인이 그 전철 속에서 전도하던 어떤 사람의 애절한 전도 한마디에 “그래 왜 내가 교회를 멀리 했나?” 옛날 어릴 적에 다닌 그 교회를 다시 다녀보자 하고 그길로 교회를 찾았다고 합니다.  


전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들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집에서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3.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누구를 전하는 것입니까? 어떤 이는 교회를 자랑하며 전도합니다. 그곳은 교회 소개입니다. 어떤 분은 목사를 자랑하며 전도합니다. 그것은 사람 소개입니다. 전도는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를 빼고 전하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는 것이 복음중의 복음입니다. 예수는 길이며 진리며 생명입니다. 그러기에 공자를 전하는 것도 아니고 석가모니를 전하는 것이 아닌 예수를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따르던 예수가 선생이 아니며 랍비가 아닌 메시야, 즉 하나님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예수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전도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병 고칠 때도, 오병이어 기적을 행할 때도 몰랐는데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재로 그런 확신이 왔던 것입니다.


어느 날 무디 선생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던 한 사람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무디는 하루 종일 전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던 그 사람에게도 "예수 믿으시오."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건 안 믿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하고 서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퉁명스럽게 무디는 "당신이 나에게 화내는 것은 좋지만 예수는 믿어야 합니다."하고 자꾸 강조했습니다.

"당신. 왜 자꾸 나를 괴롭히는 거요."하고 그가 묻자. 무디는 "그것이 내 직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서 있던 그 사람이 "아. 당신이 바로 무디 선생이시군요."하더랍니다. 이렇게 무디를 알아볼 정도로 그는 어디에서나 전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전도할 때에 사람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무식하니 그만두고 저 사람은 유식해서 곤란하고 이렇게 하다 보면 전도할 상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복음을 주실 때 그렇게 하셨듯이 상대를 가리지 말고 갚아야 합니다. 반대하는 자나 무식한 자나 지식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가릴 것이 없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형상, 즉 “속 사람” 을 보고 하는 것이므로 외형적인 것에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 보상 없이 당연한 일로써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예수관이 완전히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전할 수 있고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매를 맞아가면서도 기뻐하며 전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들이 온세상에 가서 전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이일에 나설 것입니까? 주님은 지금 추수할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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