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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안에서 잘 죽읍시다/사57:1~2/2003년 10월19일 설교

예수 안에서 잘 죽읍시다.

이사야 57:1~2

2003년 10월 19일 주일낮 설교

1.義人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慈悲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지라도 그 의인은 禍厄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2.그는 平安에 들어갔나니 무릇 正路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寢床에서 편히 쉬느니라.


설교:

최근에 제가 아는 몇 사람들이 癌으로 召天하셨고 또 현재 苦痛을 당하고 鬪病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牧會者인데도 肺癌, 肝癌이 걸려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최근에는 사모님들 중에도 처절한 투병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안타까운 것은 두가지인데 그 분들이 왜  이런 병에 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나보다 더 신실하고 더 깨끗하고 더 열심히 살았던 분들인데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런 병을 주셨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준비 없이 살다가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죽음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준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칩니다. 그러면 살아온 인생을 후회하며 고통스럽게 떠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죽음을 당하기를 바랍니까?

한국사람 대부분은 잠들 듯이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인의 사망원인을 조사결과 1위가 癌이고 2위가 自殺, 그리고 3위가 交通事故라고 합니다.

세계인의 사망원인은 1위 암(악성신생물) 2위 뇌혈관 질환 3위 심장 질환 4위 교통사고 5위 간 질환 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사보다는 병사와 사고사가 더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도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인생을 마감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분의 사람들은 그 죽음을 준비 없이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려면 죽음이 뭔가를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죽음은 사망이 아닙니다. 죽을 死자 망할 亡자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죽어 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준비할 것이 뭐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그렇게 보면 안됩니다. 따라서 합시다. “죽음은/ 단순히 자리 이동에 불과하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을 살다가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애벌레나 번데기가 죽어 탈바꿈을 하여야 나방과 나비가 되어 훨훨 하늘을 날듯이 우리가 이 육신을 벗어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세계로 자리 이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꼬마가 白血病으로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온 가족이 그 아이로 인해 하루하루를 슬프게 지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 꼬마도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꼬마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죽음이 뭐야?”  묻습니다. 엄마는 너무 당황스러워 “알 필요 없어!” 하며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도 중에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쌤, 죽음이 뭐냐구? 죽음은 잠들었다가 깨는 것이란다. 네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 소파에 누워 잠들 때 너는 어디서 깨니?”

“응! 내 침대”

“그래, 누가 옮겨 놓았을까?” 

“응 아빠가 안아서 옮겼어”

“그래 죽음도 마찬가지란다.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천국으로 옮겨 놓으시는 것이 죽음이란다.”


성도 여러분!

이런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죽으면 다음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죽은 屍身에 쌀을 먹이기도 하고 죽음의 使者가 와서 밥을 먹고 가라고 使者밥도 차려 놓습니다.  또 祭祀를 지낼 때 보면 제일 먼저 제사 시작하기 전에 문을 열었다가 단고 시작합니다. 죽은 靈魂이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다리가 휘도록 음식을 차려 놓고 숟가락도 꼽아놓고 술잔도 올립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죽은 영혼에게는 이 세상 음식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 세상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우리는  죽은 영혼이 鬼神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는 말도 사단의 奸巧한 속임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내세를 부인하지만 실제로는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제사나 장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영혼이 죽으면 사람 몸에서 나와 어디론가 간다고 믿습니다. 저승사자가 와서 데려간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알고 그 다음을 모릅니다. 저 세상은 흔히 말하는 저승, 즉 지옥과 천당, 즉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또 안다하더라도 그 저승을 안가고 천국을 가는 방법을 모릅니다. 혹자는 착한 일을 열심히 하고  선하게 살면 갈 줄 알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그들은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은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삽니다. 또 왜 예수를 믿어야만 천국 길이고 안 믿으면 지옥길인지를 모르고 삽니다.


天國과 地獄의 갈림길을 결정하는 것은 죄 문제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죄 문제를 善行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착하게 살면 천국가고 악하게 살면 지옥 간다고 믿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罪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요?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합니다. 누구에게 선한 사람이 선인입니까?  모두 자기중심입니다. 내가 보기에 선이면 선입니다. 내가 보기에 악이면 악입니다. 그곳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김일성이가 우리 보기에는 악의 표상이지만 북한 사람보기에는 위대한 수령이요, 그들의 어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행위로는 善惡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우리의 믿음을 기준으로 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자기 죄를 위한 것으로 믿고 영접하면 구원이고 그것을 믿지 못하면 심판이라고 정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一方的 언약, 約束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신이라고 보십니다.

그 약속을 받아들이면 예수의 功勞를 통해 죄를 해결한 것으로 보시고 용서를 해주시고 그렇지 못하면 그 죄가 그대로 있기에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이 간단하고도 중요한 眞理를 사람들은 의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고 미련한 것으로 단정을 짓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 앞에 사는 의인이 하나님이 데려가실 때 왜 그리 빨리 데려 가시느냐 하는 문제의 정답이 나옵니다. 질병이든 사고든 하나님이 장차 우리가 당할 禍厄 前에 데려 가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액은 장차 당할 환난과 악한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그가 죽는 것은  평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히 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이왕 한번은 다 죽어야 합니다. 문제는 잘 죽어야 할텐데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 평안히 들어가는 것이 잘죽는 것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1) 예수 믿고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이며 2) 맡겨진 사명을 다 감당하고 죽는 것이며 3) 하늘나라 행위에 책에 우리의 업적이 아름답게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이 부르시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암으로, 교통사고로, 재난으로, 전쟁으로도 부르실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바는 잠자다가 苦痛없이 죽는 것을  죽기 바라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는 방법은 다양함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암으로 죽거나 고통사고로 죽으면 더 죄가 만아서도, 하나님이 안 지켜 주셔서도 아닙니다. 암에 안 걸리고 잠자리에서 죽었다고 남들보다 더 깨끗하고 복이 많아서도 아니고 죄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스데반 같은 이는 福音전하다 돌에 맞아 죽었고 세례요한 같은 이는 목 베임을 감옥에서 당해 죽었습니다. 욥의 10명의 아들딸들은 아버지 집이 무너져 하루아침에 몰살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詛呪 받아 죽었습니까? 그들은 남들보다 더 죄가 많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 죽던지 자살만 아니면 되는 것입니다. 암도, 중풍도, 각종 질병도,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도 지금은 그 이유를 우리가 이해 할 수 없으나 나중에 알고 보면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인 것입니다.


2. 죽음을 두려워하지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맞이할지 모릅니다. 오늘일지 내일 일지 모릅니다. 얼마 전 소천하신 김인순 권사님이 몸이 불편하셨으나 그렇게 빨리 가실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주일에 교회 빠진 것은 한주뿐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준비일까요?

1)먼저는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죽어도 천국 간다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론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 안 해도 될 줄 압니다. 혹시 아직도 구원이 불확실 한 분은 제게 찾아 오십시요. 제가 점검을 해드리겠습니다.


2)둘째는 하늘의 賞給이 준비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하늘나라는 다 들어가는데 문제는 상급입니다. 그곳에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다 왔느냐가 상급을 결정짓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상 주실만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 상급이 있을 때 비로서 들어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수없이 많은 부분에서 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10:29이하를 보세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기에 현세와 내세의 최고의 상은 복음전파와 영혼구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몸과 마음을 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子女救援과 家族救援의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천만금을 벌은 들 뭐합니까? 자식이 구원을 모르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학, 박사가 된들 예수를 알지 못하면 뭔 所用있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망할 것인데 .......

서울의 어느 큰 교회 권사님처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도 암이 걸렸답니다. 초기에는 살려달라고 기도도 많이 하고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수술도 하고 했답니다. 그래도 안 나으시자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가 이제 때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그냥 가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답니다. 그때 하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하는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질문이 생각나더랍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고백하였는데 그때 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죽음을 준비하는데 진통 치료를 받으면서 온 가족을 불러 들였답니다.  특별히 예수를 안믿는 친척, 형제, 먼 이웃, 동창생, 옆집 아줌마들에게 전화를 해서 다 병원으로 불러 들였답니다.

“나 이제 암 때문에 얼마 못살아! 하나님이 나를 오라 하셔, 그런데 나는 예수를 믿어 천국 갈 것인데 너를 천국에서 만나보고 싶단다. 나는 네가 예수를 믿었으면 해, 내가 네게 소원이 있다면 이게 유일한 소원이야, 들어줄래?”

그런데 머리가 다 빠진 사람이 웃는 얼굴로 말하는데 안믿어요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믿겠다고 다짐하면 그 자리에서 성경을 펴서 성경을 간단하게 가르쳐 주고 영접 기도까지 시켰답니다.

그래서 그 병원에서 결신한 사람이 40여명이 넘었다는 이야깁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족은 복음화 되었고 그 장례가 완전히 천국 잔치처럼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때문에 구원 받은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면류관이 豫備된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 죽든지 잘 죽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멋있게 죽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묘비에는 어떤 글이 쓰여 질까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주인이신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그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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