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왜 세우시나?
행6:1~7
2003년 10월 26일 주일낮예배
6:1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供饋)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 하니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설교:
오늘 우리 교회는 역사적인 결정을 위한 회의를 하게 됩니다. 안수집사와 권사를 선택하기 위해 공동의회를 열게 됩니다. 공동의회란 우리교회 등록된 교인으로 20세 이상의 洗禮교인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이 모임에서 투표로 職分者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직분자를 세울 때 누구를, 왜 세워야 하는가요? 교회 職分에는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등이 있습니다. 그중 안수집사와 권사는 어떤 자들이 세워져야 하며 왜 그들을 세워야 하는 것일까요?
1. 누구를 세워야 하나요?
우리는 모든 문제의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교회가 12명의 사도로 아름답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수적으로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자 관리가 안 되고 문제가 여러 가지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열두 사도는 모든 성도들을 모아놓고 7명을 선택하라고 명령하여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하는가를 살펴보게 됩니다.
1)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3절)
교회의 일꾼을 세움에 있어서 제일의 선택조건은 재능도 아니고 지식이나 학벌도 아니고 재력도 아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왜일까요? 교회일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식이나 재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교회 일꾼의 필수 조건입니다.
더 나아가 지혜 충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이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 지혜가 없다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그런 일꾼이 뽑혀지기를 바랍니다.
2) 믿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성령 충만하고 지혜가 있으면 믿음도 좋을 것 같으나 그러나 성령 충만하여도 믿음의 성숙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꾼을 뽑을 때 신앙의 연조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무흠 세례 5년이라는 규정을 두는 것도 그 믿음이 어린아이의 믿음이 아닌 성장한 어른의 믿음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아무리 밥을 잘먹는다 할지라도 성장하는 것은 세월이 흘러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의 성숙은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죄를 분별하고 할일과 안 할일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일을 하게 됩니다.
3) 성도들에게 덕이 되는 사람입니다.
왜 성도들의 투표로 일꾼을 뽑을까요? 목회자가 선택하여 세우면 왜 안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도들에게 덕이 되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직자는 신앙의 모법을 보여 주고 모델이 될 사람이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권위로 하는 것입니다. 그 권위가 어디서 나올까요? 신앙의 모범에서 나옵니다. 모범이 안되면 아무리 일하려고 해도 따라주지 않게 됩니다.
중직자는 성도들에게 기도생활, 예배 생활, 전도 생활에 보범이 되어야 성도들이 뒤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솔선수범해야 하고 교회의 구진 일에 앞장 서야 합니다. 새벽기도도 앞장서서 해야 하고 주일에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해야 하고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나 그러나 그런 만큼 영광의 면류관이 예비 된 직분입니다.
4) 교회의 일을 자기 일로 여기고 짊어질 사람입니다.
교회 중직자들은 교회의 직분을 세상의 직분보다 존귀하게 여겨야 하고 교회 일을 최우선시 하는 자세를 갖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가정보다, 직장보다 교회 일을 더 앞세울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이 하신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세상 그 어느 것도 주님의 일 보다 앞세울 수 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완벽한 자격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5) 교역자가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4절)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왜 사도들이 이일을 집사를 선택하여 맡깁니까? 그 공궤하는 일이 집사의 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일조차도 목회자가 책임을 질 일입니다. 그러기에 맡기는 것입니다. 맡긴다고 했습니다. 왜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기 위해서입니다. 일꾼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일에 전념토록 돕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교회 재정에 근심을 갖고 연려하거나 이런 저런 사소한 일에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면 그것은 여러 성도들에게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슈퍼스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돕는 동역자가 많아야 합니다. 교회 중직자들은 목회자의 동역자들 입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하면 목회자의 일에 잘 동역할까를 살피고 도와야 할 자인 것입니다. 이번에 세워지는 직분자들이 그런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왜 세우시나?
1) 교회의 일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공궤하는 일은 재정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책임은 목회자가 지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집사”라는 단어는 먼지를 뒤집어쓰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말은 “執事” 즉, 일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勸士는 살펴 권면하고 위로하는 자입니다.
한마디로 교회의 일을 맡아 행하는 사람입니다. 監督者가 아닙니다. 일꾼입니다. 로마서 16장에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 뵈뵈도 일꾼, 즉 디아코너스 집사라는 직분을 가진 자입니다. 집사는 이름 그대로 일꾼입니다. 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 섬기게 하려고 세우십니다.
안수집사, 권사직은 더 이상 임명을 받지 않는 입니다. 매년 임명을 안받아도 되는 교회직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그 직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이 직분을 갖는 것을 승진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기려 하기 보다는 섬김을 받으려는 자세를 보입니다. 예수님도 섬김을 받으려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하물며 교회 중직자들은 더욱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 중직으로 선택된 사람은 그만큼 허리를 굽혀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내놓고 섬기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 계급이 아닙니다. 승진도 아닙니다.
어느 교회 안수집사가 임직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목사님께 이야기 하더랍니다. “목사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승진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더랍니다. 그때 목사님이 웃으시며 말했답니다. “집사님 어쩌지요. 이것은 승진이 아니고 무거운 짐을 더 지워드린 고역인데요....”
그래도 그 집사님 하는 말 “상관없어요. 목사님, 우리 어머님은 승진했다고 믿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안수집사, 권사직은 오히려 자신을 낮추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요, 더 낮아져 섬기라는 직분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안수집삽네, 내가 권사입네 하고 대접해 주기를 원하면 절대로 덕이 안되는 직분이 교회의 중직인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교회 중직은 복음전도에 쓰시려고 세우시는 직분입니다.
오늘 본문의 7집사, 모두가 주님의 제자들이고 복음전도에 생명을 건 사람들 이었습니다. 특별히 스테반 집사 같은 이는 한번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합니다. 그러나 그 전도는 결코 헛되지 않아 사울을 바울로 만드는 위대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교회 평신도 지도자는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사업가, 직장인, 모두 직접 전도, 간접전도에 최선을 다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좋은 일꾼이 세워진 결과는 어떻습니까? 7절의 말씀을 보세요.
1)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졌고
2) 예루살렘의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졌고
3) 결국 허다한 제사장들도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교회는 엄청나게 부흥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행하게 되는 공동의회, 우리 교회의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일로 인해 교회가 크게 성장 할 것을 믿고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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