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믿음과 가짜 믿음
요한복음 8:31~47
2003년 11월 30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설교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8: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8:39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8: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8:41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8:42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8: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설교:
이세상은 온통 혼돈의 세상입니다. 진짜를 찾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내 것이 진짜라고 광고를 합니다.
국어사전에서 '가짜'의 뜻을 찾아보면
“진짜처럼 꾸민 것. 참이 아닌 것을 참인 체 한 것”
얼마 전 방송국의 오락프로그램 중 '진짜'를, 혹은 '가짜'를 찾아내는 게임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진실게임’입니다. 몇 명의 그럴 듯한 사람이 출연하고, 이들 중 '진짜 학원 선생님', 또는 '가짜 변호사' 등을 찾아내는, 즉 사람의 직업이나 나이 등의 진위를, 참석한 패널들이 가려내는 게임이다. 여기에 출연한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진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짜가 아님을 열심히 증언합니다. 물론 한 사람 빼고는 모두 가짜입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가짜들이 넘쳐나면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이런 가짜, 혹은 진짜 찾기 게임은 재미라도 있습니다. 적어도 나의 이익과 직접 관련돼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가짜가 생기는 이유는 “돈”입니다. 우리나라가 최근 가짜 명품 브랜드 최대 생산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것이 이제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이제 종교에까지 가짜냐 진짜냐, 믿음도 참 믿음이냐, 가짜 믿음이냐 하는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이 여기 달려있고 영생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한마디로 공포 분위기였습니다.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 함이러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다 유대교에서 출교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살벌한 분위기입니까?
그런데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말씀을 듣고 믿음을 고백한 이들은 칭찬 할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의 믿음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이제부터라도 바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핍박을 무릅쓰고 믿음을 고백한 이들의 믿음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문맥의 흐름을 보면 33절의 "저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조금 전에 예수 믿는다고 했던 사람들이 59절에 보면 예수를 미쳤다 하고 돌을 들어 치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요? 한마디로 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한 그것이 가짜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 나의 믿음은 참 믿음인가? 아니면 거짓 믿음이 아닌가?
그렇다면 거짓 믿음, 가짜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가짜가 어떤 것임을 알면 반대로 진짜는 어떤 믿음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짜 믿음의 네 가지 특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가짜 믿음은 구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참 자유를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가 언제 종 된 일이 있는가?(33절)"라고 되물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로마의 식민지 신세였고, 구약시대를 돌이켜 보더라도 그들의 역사는 노예의 역사였습니다. 애굽에 노예, 바벨론에 노예, 그럼에도 이들은 우리가 남의 종 된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노예가 된 신분을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이들이 영적으로 죄의 종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리가 없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처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참 믿음은 자기가 구원 받아야 할 자임을 알고 그 필요를 깨닫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누가 병원에 찾아 갑니까? 자신이 몸에 이상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병원을 찾습니다. 요즘은 예방의학이 발달하여 병이 생기기전 병을 예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이 느껴져야 병원을 찾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죄라는 것을 느끼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을 가지면 자신이 예수가 아니면 소망이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해결하실 분이 예수님밖에 없다고 믿어 그분께 나와야 참 믿음입니다.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교회를 단순히 재미로 나오신다면 그 믿음은 가짜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기에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모인 이곳은 전부 죄인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허물도 있고 못마땅한 것도 있습니다. 이곳에는 완전한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혹시 여기에 죄가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빨리 나가셔야 합니다. 왜요? 죄가 오염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에 예수님께 나왔고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만이 우리의 죄가 용서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를 느끼고 죄를 알고 있다는 그것이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짓믿음은 구원에 관심이 없습니다. 거짓믿음은 죄를 설교하고 죄를 책망하면 싫어합니다.
2. 가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기 싫어할 뿐 아니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37절을 보세요.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43절도 보세요.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가짜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반짝반짝 하지만 말씀만 들으면 졸음이 오고 풀이 죽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는지, 문득문득 들은 말씀이 떠올라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그렇다면 그 믿음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심각하게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은 福중의 福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했던 것입니다. 이 말은 아무나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어지고 이해되고 깨달아지는 그것을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전해도 안믿는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제대로 전하지 않아서이고
또 하나는 전해도 믿어지지 않아서 입니다. 제대로 전하지 않아서 안 미든 것은 우리 책임이고 전해도 안 믿어져서 못 믿는 것은 그들의 책임입니다.
부족한 종이 설교 준비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성도들이 제 설교를 듣고 어려워서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쉽게 , 그리고 최고로 단순하게 전하자는 것이 제 목회 원칙입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믿어지면 진짜요, 그렇지 못하면 가짜믿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3. 가짜 믿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합니다.
오늘 봉독치는 못했으나 51절 이하에 보면 정말 기가 막힌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고 믿으면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네가 이미 죽은 아브라함 보다 크냐? 너는 누구냐?" 묻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예수님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밝히십니다. 육체를 입고 오셨을 뿐 그 분의 존재는 영원토록 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돌을 들었습니다. 거짓 믿음을 가진 이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못합니다.
이 말이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대적하고 결국 영생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가짜 믿음은 결국 예수를 떠납니다.
조금 전까지 믿는다고 했지만 이제는 돌을 들고 돌아섭니다. 거짓 믿음은 결국 배교합니다. 그러나 저는 8장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고‥‥(28절)" 이 말씀대로라면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에 다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엉터리라도 내일 진정으로 주님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돌이키시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미 해군 병사로 로버트슨(Roy Robertson)의 이야기입니다.
1941년 12월 6일,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한 함선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복무하던 미군들은 일본기 360대의 습격을 받고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로버트슨은 기관포로 달려갔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단지 연습용 탄환뿐이었습니다. 실탄이 보급되기까지는 약 15분이 더 걸렸습니다. 15분 동안 그는 기관포에 앉아 소리만 내며 싸우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는 그때 가짜의 무력함과 허무함을 절실히 맛보았던 것입니다.
전쟁후 그는 성경공부 그룹에 참석했습니다. 열 명쯤이 둘러앉아 자기가 아는 성구 한 구절씩을 돌아가며 외웠습니다. 로버트슨 병사가 유일하게 암송하던 성구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한 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절은 앞의 사람이 이미 외워 버렸던 것입니다. 자기 차례가 왔을 때 그는 똑같은 성구를 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밤 교회 한 구석에 앉아 깊이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나는 가짜다"하는 결론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가짜였습니다. 그건 마치 실탄 없이 공포를 쏘고 있는 인생이나 다름 아닌 것이었습니다. 그는 며칠을 반성하고 결심하고 진짜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진실하게 예수를 믿고 진실한 친구, 진실한 애인, 진실한 인간이 되기를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로이 로버트슨은 한때 ‘빌리 그래함 전도단’의 주역으로 일하였고 그 후 트로트맨(Dawson Trotman)과 함께 네비게이토 (Navigators, 청년 신앙 훈련 단체)를 창설하였습니다.
자신의 가짜를 발견하고 실망하고 낙망했으나 그러나 그 순간이 그에게는 진짜가 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으로 흘러가는 것은 타락한 인생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와 싸워 세상을 거슬려 올라가는 그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불이익도 당하고 고난과 핍박도 겪습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속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고 그 성령의 권능을 입고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믿게 하셨으니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엄청난 일이며 대단한 일입니다. 내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큰 사랑을 베푸시는지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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