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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까?/눅19:1~10 / 2004년 1월 25일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까? 

누가복음19:1~10

2004년 1월 25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예배 설교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19: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9: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설교:

한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새해 소원이 무엇입니까? 물어보면 대개 健康과 하는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가지로 요약이 되는데 그것은 幸福이라는 것입니다. 家族건강이 있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사업이나 직장생활도 잘되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가 행복을 追求하면서도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행복이란 기쁨과 감사속에 만족함을 누리는 상태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우리에게 다가 오지 않습니다. 돈이 좀 많으면 행복할줄 알고 죽으라 돈을 벌었는데 만족함이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으면 행복할 줄 알아 이것저것 다 해보았는데 그것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제가 만난 어느 政治人은 만나자 마자부터 헤어질 때까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 업적을 선전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 저 사람이 자기를 저렇게 들어낼까 생각했는데 어떤 책을 보다가 그 原因을 찾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심령 밑바닥에는 외로움과 고독이 가득하고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의 결핍이 있어서 그것을 채우려고 부끄러운 짓인 줄도 모르고 자기를 그렇게 선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행복의 가장 큰 적은 “나 혼자”라는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 나를 들어내고 나를 알리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고 결국 절망적인 외로움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하신 말씀을 붙들면 그 외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새해 소망은 어떤 것입니까? 모르긴 몰라도 행복한 가정, 행복한 직장생활을 통해 행복한 한해가 되길 소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1. 예수님을 만나야 행복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열등감과 그로 인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삭개오입니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純潔하다’, ‘義롭다’라는 뜻입니다. 아마 부모님들은 “만인들이 尊敬하는 순결하고 의로운 인물”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삭개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삭개오는 이름과는 정반대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보지만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삭개오는 키가 작았고 세리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런 삭개오의 生活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마 자신의 키 때문에 친구들의 조롱 속에서 자랐을 것입니다. 그는 劣等感을 이길 방법은 돈으로 사람들에게 힘을 자랑하는 것이라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결국 삭개오는 가장 돈을 잘 벌수 있는 직업은 세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여리고는 유대 땅에서 가장 돈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그는 그 여리고성의 세리로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돈을 모았습니다.

“내가 부자이고 권력이 있으면 너희들, 내게 와서 굽신거리겠지”라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일하고 돈을 모았고 그러다 보니 세금을 잘 걷는 세리로 평가를 받게 되고 결국 로마 정부는 그를 여리고 세무서의 소장으로 세웠습니다.


덕분에 삭개오는 대단한 富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賣國奴로 취급받아서 엄청난 憎惡(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삭개오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고 죄인 취급했습니다. 삭개오는 열등감과 돈이 많다는 우월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사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행복할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누구도 그를 가까이 해주지 않았고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사람도 등 뒤에서는 침을 뱃고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삭개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거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 너무 외로웠고, 사람이 그리웠으나 마음을 터놓고 말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리고에는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이 동네에 오기 직전에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여리고에 더 요란하게 퍼졌습니다.


성경은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보고자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娼妓와 罪人과 세리의 친구라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던 삭개오는 그 분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고, 그분에게서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듣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결국 그는 업무를 내팽개치고 예수님을 만나러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삭개오의 행복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수 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귀로 듣는 그 예수, 그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길 그 순간 삭개오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 幸福은 예수님을 만날 때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生死禍福의 주관자이시며 그 누구라도 사람대접을 해주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비록 세리라 할지라도 사람대접을 해 주는 분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 주고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當代에 사회에서 아무도 사람 취급을 한해 주는 사람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죄인이고 창녀이며 또 하나가 세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세리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을 때 “삭개오야 내려와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면서 처음 만난 삭개오를 알아주시고 그 집에 찾아가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잘난 사람도, 權力이 있고 재물이 있고 명예가 있는 사람도 예수님을 만날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 우리에게 있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행복합니다.

행복이란 것은 그냥 쉽게 찾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걸림돌”을 넘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특성이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여러 종류의 障碍物이 있습니다.

제게는 신체적 障碍가 장애물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자녀가 장애물이고 어떤 이는 부모가 장애물일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남편이, 또는 아내가 장애물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애물은 단순히 장애물이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이 단순한 장애물이 아닌 祝福의 도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삭개오’에게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체적 장애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키가 큰 사람은 미처 생각지 못한 열등의식이 키가 작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꼬마라는 병명도 붙고, 제 친구중 한나는 별명이 "쫌뺑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키가 작았기에 복이 찾아 왔습니다.

만약 그가 보통 사람처럼 되었었다면 뽕나무 위로 올라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예수님을 그냥 슬쩍 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弱點인 키 때문에 오기가 생겼고 결국 뽕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또 세리라는 職業도 장애물이었습니다. 그것도 세리장에다 부자였습니다. 이것들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할 때 보통 큰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돈 많은 사람, 예수 믿기 쉽지 않습니다. 돈이 하나님인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그 장애물을 뛰어 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장애물은 내 인생의 행복을 가로 막는 것처럼 보이나 그러나 그것을 뛰어 넘으면 더 큰 행복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장애물을 갖고 계십니까? 어떤 이는 나이가 많다는 장애를 갖고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배우지 못한 것이 장애물일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 못생겼다, 백그라운드가 없다, 더 나아가서 친구가 없다, 공부도 못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키 때문에, 그리고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 복을 누린 것처럼, 오늘 우리가 갖고 있는 그 장애물, 그 장애물 때문에 오히려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송명희 시인이 身體的 장애가 있었기에 그가 위대한 시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베토벤이 귀가 멀었기 때문에 위대한 음악가가 된 것입니다. 그런 장애가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쓰임을 수 있었던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장애물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하늘의 행복을 맛볼수 있는 기회입니다.


3. 찾아오신 예수를 정성으로 섬겨야 행복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시고 그에 집에 들어가십니다. “삭개오야, 오늘 내가 네 집에서 하루밤 묵어도 되겠니?” 물어보시지 않고 “그냥 유하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여러분 집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때 어찌해야 합니까? 삭개오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마음을 아시고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이름을 아시고, 내 형편을 아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그분입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기쁨으로 영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찾아오시는 예수, 그분은 우리의 행복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를 기쁨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세상이 맛볼 수 없는 놀라운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지극 정성으로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왜요? 주를 기쁨으로 섬길 때 그 섬김은 행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그날처럼 행복한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찾아와 주는 이 없는데, 아무도 삭개오가 내놓은 음식을 먹는 이가 없는데 예수님은 찾아와 주시고 먹어주시고 대화를 나누어 주십니다. 사람대접을 몇 년 만에 처음 체험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섬김이 행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1)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2)교회를 지극정성으로 받드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3)더 나아가 목회자를 잘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비결입니다.  

 

 

4. 자발적인 회개가 있어야 행복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셔서 한번도 그 罪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부자였던 삭개오 집은 화려했을 것입니다. 그 모든 부가 어떤 방법으로 얻어진 것인지를 예수님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마디도 책망을 하거나 회개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마디도 안하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순간부터 자신의 죄가 느껴집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자발적인 회개를 합니다. 소유의 折半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합니다. 누구 것을 討索한 것이 있다면 4배를 갚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진정한 悔改를 하자 삭개오는 구원의 은총도 누리고 참된 행복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삭개오 그는 예수님을 만난 후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서 행복을 찾습니까? 그 행복은 이미 여러분 옆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장애물이라 부르는 그것이 행복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를 迎接한 분이라면 이미 행복을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행복이라 믿지 못하고 불행이라 생각한다면 이 얼마나 불쌍한 사람일까요?


참 행복은 예수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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