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관심사와 나의 관심사
누가복음15:1~10
2004년 1월18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15: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15: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15: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5: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15: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설교:
미국의 어느 잡지에 ‘뒤틀린 가치관’이라는 특집 기사가 실렸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우상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한 시간 노래를 부른 대가는 12만 5천 달러인데 이 금액은 미국 대통령이 받는 1년의 월급이며, 미국 대법원장의 연봉 3배가 되는 금액”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통령도 년봉이 약1억3천만원이랍니다. 이승엽 선수의 300호 홈런 볼 가치가 1억2천만원이라합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가치가 뒤틀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사를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사십니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치관을 형성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올바르게 보려면 가치관이 어떤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이 최고인 사람은 교회 나오는 일이 매우 부담이 됩니다. 십일조를 드리며 선교헌금을 드리는 일들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가치관이 변해야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명예가 최고인 사람은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갖게 되면 열심히 일하나 그 명예를 잃게 되면 금방 시들해지고 교회를 떠납니다.
권세가 최고인 사람은 정치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듭니다. 그래서 쇠고랑 찰줄 알면서도 뇌물을 챙기고 불법을 행합니다. 권력만 잡으면 다 해결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돈, 명예, 권세, 건강 이런 것과 은혜, 예배, 찬송, 구원, 이런 것의 가치를 어디에 더 두고 사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관심사와 주님의 관심사가 다르다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요한복음 12장에서 보세요.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눈물로 그 발을 닦을 때 가룟유다는 그것을 왜 허비하느냐고 힐난합니다. 그 때도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가 옳고 유다의 행위가 옳지 않음을 분명하게 정리하셨습니다. 역시 가치관의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도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해 주님을 외면하고 주님의 영광을 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주님의 최대의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 주님의 최대의 관심사는 정치도 아니고 , 경제도 아니고, 우리의 건강도 아닙니다.
오직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최대의 관심사와 어떻게 다릅니까?
아마도 여러분의 최대 관심사는 자녀에게 있을 수 있고 직장에 승진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며 주식 시세일수도 있고 건강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관심사에 여러분의 교회와 신앙생활, 그리고 영성,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 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관심사가 차원이 높아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의” 이것이 뭘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그리고 그분이 옳다고 보시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으라는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교회요, 영혼구원이요, 하나님 나라 확장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의 주님의 자세를 보세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관심사와는 전혀 다릅니다.
주님은 누구에 무엇을 관심을 갖고 계실까요?
1. 말씀을 들으려고 나오는 모든 자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1~2절)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님은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다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누구든지 상관없습니다. 세리도 죄인들도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들으려고 나오자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식사를 같이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재가 말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것을 귀히 여깁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예수님이 마르다 집에 들어갔을 때를 보세요.
예수님이 말씀을 강론하실 때 동생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하는 일에 정신이 없습니다. 손길이 딸려 동생을 찾아보니 예수님 발앞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결국 주님 앞에 나아와 마리아를 야단쳐 달라고 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이 때 예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리아가 선택한 것이 현명한 것이고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인정을 해 주십니다.
우리는 봉사하고 일하고 대접하는 일이 귀하게 여겨지나 주님은 그것보다 더 관심이 있는 일은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간혹 심방을 가면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분은 예배 후에 대접할 것을 신경 쓰느라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물 올려놓고 밥을 압력밥솥에 올려놔서 치치푹푹하며 소리를 냅니다. 설교 마치면 일어나 사과 깎고 이것저것 분주합니다. 그럴 때는 내 맘이 아주 불편합니다. 설교를 한 것인지 만 것인지, 그런 사람에게 막 소리치고 싶습니다. “가만 좀 계세요. 설교 좀 들으세요. 왜 그렇게 오두방정을 떱니까?”하고 싶은데 상처받을까 말을 못합니다.
주일예배 때도 그런 분이 계십니다. 식사 봉사 담당하신 분들은 1부 예배에 오셔서 먼저 예배를 드리고 2부 예배 시간에 봉사해야 하는데 아예 늦게 와서 예배는 뒷전이고 식사 봉사만 하시는 분들이 간혹 보입니다.
그런 봉사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봉사입니다. 먼저 예배를 드리고 혹 1부에 미리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으면 2부에 예배를 드리시고 다른 분에게 봉사를 맡기셔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2. 우리 주님은 잃은 양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4절)
4절: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잃은 양은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의 택한 받은 백성인데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며 또 예전에는 믿었는데 현재는 믿음을 잃고 방황하는 백성을 말합니다.
그들이 잃은 양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입니다. 1)누군가에게 시험을 당해 실족했던지, 2)아니면 직장일로, 3)가정 사정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잃은 양이 길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그런 잃은 양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은 별로 심각하지 않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우리는 믿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별종인간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왜 그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나요? 단지 그들의 믿음 부족 탓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그들의 실족은 우리 탓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바르게 믿지 못해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바르게 목회를 못해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덕을 세우지 못하였기에 그가 넘어 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가슴아파하며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간정히 고대하며 기도해야 하고 그들을 돌보며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을 보세요. 4절에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8절에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누군가가 찾아와 “교회 갑시다, 예수 믿어야 합니다. 나와 함께 갑시다” 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제가 잘못 믿어 그렇지, 내가 알바가 아니야 한다면 그것은 구원의 가치도 모르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다가 안다니는 사람만 잃은 양이 아닙니다.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잃은 양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서도 내백성이라 말씀하시며 그들을 구원해 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엊그제 감동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주간 15일 밤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 “원일한 박사”가 향년 87세를 마치고 召天하셨다는 것입니다.
1885년 언더우드 목사가 선교사로 이 땅에 첫발을 내디딘 이래 2대 “원한경 박사”를 거쳐 3대 원일한 이사, 그리고 증손자 “원한광 박사”까지 4대에 걸쳐 한국에서 계속하여 선교와 교육발전에 헌신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헌신이 한국교회와 국가전체에 미친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언더우드 한사람을 통해 한 나라, 대한민국의 수많은 영혼을 구원해 내신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소천입니까?
그래서 우리도 주변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주께로 인도할까를 늘 생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명절 때만 교회에 나오는 어느 사회지도층 인사를 위해 특별히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기로 하고 부인을 통해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그 때문에 초대받은 그 손님은 교회에서 그리 멀지 곳은 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끝내 오지 못했습니다. 이에 실망한 목사는 자책하듯이 “아, 세상에 이럴 수가” 그는 그 사람이 약속을 어긴 것을 생각하며 크게 실망해 있었습니다. 그가 실망하며 기도하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답니다.
“사랑하는 종아 왜 실망하느냐? 네가 왜 내가 몸소 실천했던 모범을 따르지 않느냐. 만약 그의 집에 불이 났다는 것을 알면 가서 깨우지 않겠느냐? 왜 가장 귀한 일을 하지 않느냐?”하면서 책망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 그가 안 오면 내가 가면 되지”하며 그 목사는 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뚫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악천후 속에서도 자기를 찾아온 목사를 보자 그 사람은 눈물겹도록 반갑게 맞으며 말했습니다. 결국 그날 밤 그 목사는 그에게 진리를 설명했고 그 사람은 그 말을 받아들이며 결신을 했습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복음을 들고 가십시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 복음을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전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3. 우리주님은 우리의 과거보다는 현재에 관심을 갖습니다. (7절)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 죄인들과는 상종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그들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먹으며 그들과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왜 주님은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과거 보다는 그들의 현재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과거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과거보다는 그들의 현재를 더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느냐를 중요시합니다. 그의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불문에 붙이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며 나온 현재를 보시며 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미래를 보십니다.
그래서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과거를 한마디도 언급치 않습니다. 단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시며 현재를 묻고 계십니다.
잃은 양의 과거를 따져 뭘 하겠습니까?
과거를 따진다면 바울도 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과거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迫害했습니까? 예수쟁이 잡아 죽이는 일을 인생의 낙으로 생각하고 자기 사명으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위대한 일꾼으로 들어 쓰십니다.
여러분 주변에 아무리 악한 사람, 강퍅한 사람도 하나님은 찾아 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레짐작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여러분의 과거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과거를 불문하고 부르시고 과거를 불문하고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사람들 대할 때 과거를 따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그리고 하나님이 들어 쓰실 미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그 잃은 양을 열심히 찾으시는 주님의 그 열심에 우리도 동참하여 영혼구원에 앞장서시기를 바랍니다.
10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하나님의 관심사를 내게 맞추려 하지 말고 내 관심사를 하나님의 관심사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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