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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가 넘어야 할 마지막 벽/창32:22~32/2004년 2월 15일

우리가 넘어야 할 마지막 벽

창세기32:22~32

2004년 2월15일 주일낮 예배 최일환목사 설교

32: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설교: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자기 뜻대로 성공하는 사람은 극희 드믑니다. 성공이 어려운 이유는 능력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공이라는 골인지점을 향해 가려면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그 장애물을 제압하든지, 피하든지, 아니면 뛰어 넘어야만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며 복된 생활을 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그런 장애물을 넘어야만 하나님께 인정도 받고 쓰임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난과 역경, 그리고 환난과 시련이라는 장애물을 극복하게 될 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요셉도, 모세도, 그리고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뛰어넘기 가장 힘든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이라는 장애물입니다.

재난이나 환경으로부터 오는 장애물도 힘들고 어려운 것이 있으나 가장 넘기 힘든 것은 사람이라는 장애물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이 장애물이기도 했고,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장애물이기도 했습니다. 모세는 바로가 장애물이기도 했고 고라가 장애물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가롯 유다, 바리새인, 제사장, 장로들 등, 뛰어넘기 힘든 장애물을 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크게 쓰신 사람일수록 사람 벽, 사람 장애물을 많이 뛰어 넘었던 것입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의 주인공인 야곱은 그 대표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에서라는 형, 라반이라는 외삼촌, 정말 감당키 힘든 사람 벽을 잘 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사람의 벽을 뛰어 넘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 생활하다 실족한 사람들 중 사람이라는 장벽에 걸려 넘어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비단 신앙생활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생활,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행복을 맛보며 살아야 할 가정이 깨어집니까?

왜 직장생활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합니까? 사람이라는 벽을 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되돌아서거나 갈라서거나, 아니면 직장을 버리고 나옵니다. 그러나 그곳의 사람 벽을 넘지 못하고 피하면 다른 곳은 그런 사람이 없을까요?

교회에서도 그 사람 꼴 보기 싫어 교회 옮기면 다른 교회는 그런 사람이 없나요? 겉으로만 보면 다 천사들만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좀 들여다보면 다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 벽을 넘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1.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1)모든 인간은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아담이 범죄함으로 모든 인간은 죄를 짓게 되었고 결국 의인이 한사람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누구나가 완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사람은 행위로는 완전한 사람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누구도, 아무리 거룩해 보이고 위대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행위로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고 인정 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50보 100인 것입니다. 다만 죄인은 죄인이되 용서 받은 죄인과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또 들킨 죄인과 안 들킨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교도소 안의 사람과 밖의 사람은 그 차이뿐입니다. 그러기에 들킨 죄인은 마음이 평안하고 안 들킨 죄인은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어름 판을 걷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 대신 십자가에서 죄를 속하시는 은총이 필요한 것입니다.

 

3)그러기에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의지할 대상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벽을 넘으려면 이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확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그래서 시편146편 3절에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했고 5절에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를 믿을 수 있나요? 누구를 의지 할 수 있나요?

하나님은 이부분에 대해 철저하게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사람 의지하고 환경 의지하고 내 힘 의지하면 반드시 실패하게 하십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한분만을 신뢰할 때 영광이 나타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사람은 믿을게 못돼!” 하면서도 또 믿고 실패하고 또 믿고 낙심하곤 합니다. 신뢰의 대상도 아닙니다. 의지할 대상도 아닙니다. 오직 주의 사랑으로 사랑할 대상이며 섬길 대상입니다.


2. 사람 벽은 꿈이 클수록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겪었던 모습을 보세요. 부모를 속이고 형 ‘에서’의 복을 훔쳐 도망을 쳤습니다. 그 댓가로 엄청난 세월동안 속임을 당하고 착취를 당합니다. 그러고도 사람 벽은 뛰어넘지 못합니다. 외삼촌 벽은 뛰어 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벧엘’로 올라가면서 에서의 벽을 넘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게 해결되질 않습니다. 결국 그는 해결방법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과 단판을 짓는 것입니다. 싸움의 결국을 보세요. 하나님이 문제 해결을 약속하지 않고 이름만 바꾸어주고 환도 뼈만 부러트려 놓습니다.

어떤 의미가 들어 있습니까? 사람 의지하지 말라, 네 힘도 의지하지 말라, 하나님만이 해결자이다. 그것을 의지하게 합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만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그의 가장 큰 사람 벽인 에서문제를 해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게 쓰임 받을 사람일수록 사람 벽을 높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 해결책을 사람에게서 찾지 못하게 하고 자기능력에서 찾지 못하게 합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겪을 때도 예수님은 밤 사경 즈음 나타납니다.  왜 그때서 나타나셨나요? 예수님은 산위에 올라가셔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즉시 찾아가지 않고 기다립니다. 뭐를요? 제자들이 손들 때를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 때문에 힘듭니까? 그럼 속히 하나님께 손을 드시기 바랍니다. 사람 때문에 살맛이 안 납니까? 그 사람을 내게 부쳐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 사람 벽을 넘어야 나를 쓰십니다. 그 사람 벽을 못 넘으면 거기서 끝입니다. 사람 벽이 너무 큽니까? 

 

3. 사람 벽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길이 열립니다.


1)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야곱의 문제는 에서가 문제가 아니고 자신이 문제였습니다. 속이고 빼앗고 했던 이기심이 가득한 야곱, 그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로 나타나 그를 꺾어놓으시고 그 이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사람 벽을 넘을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은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고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벽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가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바뀌면 문제는 금방 해결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벽입니까? 남편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원수가 아니고 축복의 도구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바뀌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남편을 고쳐주세요,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나를 고쳐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세요.

여러분이 남자라면 여러분 같은 아내에 만족하며 죽도록 돈벌어 오겠습니까?

남자들도 마찬가지, 여러분이 여자 같으면 여러분 같은 남편에 죽도록 수발들며 내조하겠습니까?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나는 안 바꾸고 저쪽만 바꾸어 달라고 철야를 하고 금식을 하고 난리를 쳐도 안 바뀌는 것입니다.

남편이 예수 안 믿는 여자성도 여러분! 깊이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예수를 믿는 여자 성도여러분!  정말 행복한 아내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2)철저하게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사람 벽을 넘을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속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 벽이 내게 유익일수 있습니다. 사람 장애물이 나를 더 기도하게끔 하고 내 신앙을 더 든든히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다윗 된 것은 사울이라는 사람 벽과 압살놈이라는 아들 벽이 있었기 때문에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욥이 욥 된 것은 그의 악처 때문이며 그의 못된 친구들 때문에 더 굳건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때로는 염소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을 내 옆에 붙여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낙망과 절망이 기쁨과 감사로, 우리에게 다가 오게 됩니다.   

  

3)그 사람이 내 아군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중 많은 사람이 목사, 장로, 권사 등 중직자들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또는 한 구역, 목장에서 상처를 받고 넘어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원수가 아닙니다. 내 적이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 속한 아군입니다. 그런데 아군을 적군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생각과 다르다고, 내게 손해를 준다고, 전부 적군으로 여기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물론 적군의 종노릇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적군은 오직 마귀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아군입니다.


그런데 사람 벽을 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군을 적군으로 오인하고 그들과 싸우다 부상을 입습니다. 아군인데 내 편견, 내 생각, 내 이익만을 앞세우다가 아군을 적군으로 생각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 모든 성도는 아군입니다.

아군 적군을 제대로 구분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주님의 방법이 해결책입니다.

1)내 욕심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편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2)지금 당장을 보지 마시고 앞날을 크게 보고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3)그리고 주님이 베드로를 대하듯 사랑과 용서로 넘어가야 합니다. 

4)그리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적군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도 내편이 되고 나를 가로막는 모든 사람 벽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 벽만 넘으면 환경의 벽, 재난의 벽, 그리고 물질의 벽은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마지막 벽인 사람의 벽을 넘어 주님의 신령한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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