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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사람 때문에/롬5:12~21/ 2004년 2월 29일

한사람 때문에

로마서5:12~21

2004년 2월 29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5:16 또 이 선물은 犯罪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설교:

4년마다 한번씩 맞이하는 2월 29일입니다.

오늘 태어나는 사람은 생일을 4년마다 한번씩 해야 합니다. 제 친동생이 생일이 음력 2월 29일이었습니다. 그런데 住民登錄번호가 오류가 나서 법원의 재판까지 받아 정정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이 질문은 제게 洗禮문답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가 다 받아본 질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모든 사람이 대답하기를 우리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죽어야만 罪 문제가 해결됩니까? 안 죽고는 안 됩니까? 그것은 대부분이 잘 대답을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죄를 속하기 위해 죽어야만 하느냐? 그것도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아담의 에덴동산의 약속 때문입니다. 선악과 약속의 핵심은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 명령을 어기고 따먹었습니다. 하와가 먼저 먹었으나 아담이 계약의 책임이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아담 한사람의 犯罪로 다 죄 가운데 태어나고 죄 가운데 멸망케 되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키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였고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는 대명제를 이루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거룩한 사건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당신 스스로가 맺으신 約束을 지키신 공의의 하나님임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의 基本原理로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구속사의 대표성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美國에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하는 중에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처한 狀況과 환경의 대부분은 나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주어집니다.

우리가 한국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태어나서 봤더니 한국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어떤 사람은 부자 집에 태어나서 부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이렇게 우리의 환경과 상황의 대부분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인류의 시조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不順從하므로 타락 하였고 그 죄 값이 우리에게도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 용어로 "죄의 전가" 라고 말합니다. 즉 아담으로부터 전가된 "原罪" 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지식인들이 이 원죄에 대해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죄는 사실이고 眞理입니다. 원죄는 한마디로 말해서 "대표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류의 대표로 아담이 범죄하므로 그 모든 후손들이 죄의 종이 되었다는 논리입니다.


이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원죄를 인정할 수 없고 이 대표성의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도 인정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과 한 사람의 범죄 곧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다 범죄하게 되었다는 명제가 사실은 똑같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의 범죄로 전부 죽음에 이르렀고, 한사람이 순종하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이 대표성의 원리는 원죄를 인정하는 원리도 되지만, 십자가의 구속을 인정하는 동일한 원리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대표성의 원리는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생활에 부딪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이것을 이론으로 생각하니까 어렵게 느껴 질뿐입니다.


얼마 전 한국 축구팀이 일본에 졌습니다. 너무 자만하여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출전을 했다가 2:0으로 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했었는데 분명이 한국이 졌습니다, 나는 상관없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할지 모르나 우리가 진 것은 분명 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재작년 월드컵 4강때 그토록 기뻐하며 신이 났습니까? 대표팀이 이긴 것 하고 우리하고 뭔 상관입니까?  그 팀이 곧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축구 선수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나가서 축구를 했기 때문에 그 선수들이 지면 우리가 진 것이고 그들이 이기면 우리가 이긴 것입니다. 이것이 代表性의 원리입니다.


대표성의 원리는 비단 원죄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홍수 이후에 노아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루는 노아가 포도주를 먹고 만취된 상태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술을 먹고 잠을 잤기 때문인지 더워서 그랬는지 모르나 옷을 다 벗고 잤습니다. 이때 그 아들중 하나인 함이 아버지의 그 벗은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다른 형제들에게 가서 놀렸습니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덮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제들에게 그 사실을 폭로하며 놀렸습니다. 반면에 다른 아들들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보지 않으려고 뒤로 가서 자기 옷으로 그 치부를 가려 주었습니다. 나중에 술이 깬 아버지가 이것을 알고 대노하여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함의 아들 가나안을 지칭하여 저주 했습니다.

나중에 함 혼자서 저주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자자손손 저주가 임했습니다.

영적인 世界에서 대표성의 원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아담과 우리 사이에 형성된 이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섯 번이나 강조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5절/한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16절/심판은 한사람을 인하여

17절/한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18절/한 범죄로

19절/한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처럼 아담이 우리의 대표로 범죄 함으로 그 죄악이 우리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그의 후손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었던 사람임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 다시 은혜를 입고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향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한마디로 은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恩惠요 恩賜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2. 그러기에 나 한사람이라도 죄와의 영적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아담 한 사람이 불순종함으로 죄가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고 사망이 모든 사람 위에 왕노릇하게 되고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완전히 뒤바꾸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고 모든 사람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사망 아래 놓인 것에서 완전히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 만드셨을 때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간창조의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戰爭을 선포해야 합니다.

과거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속으로 웃었습니다. 누가 누구하고 뭘 가지고 전쟁을 한단 말인가?

경찰력으로 범죄를 잡는다구요? 법으로 범죄를 멈추게 한다구요.? 하나님이 웃을 일입니다.

범죄의 뒷 배경에는 사단이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법으로, 권력으로 아무도 막지를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으로 됩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宣布했는데 범죄는 더 기승을 부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法治國家라고 하는 미국을 보세요. 정전이 한번 이루어지면 온 도시가 약탈과 강도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나라입니다.

인간의 罪性은 사람의 의지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이겼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제 그분의 功勞로 죄 문제에서 해방된 저와 여러분! 이 죄와의 싸움을 주님이 완성하셨으나 우리는 계속해서 그 죄와의 전쟁을 치루어야 합니다.

이미 이긴 싸움인데도 사단은 계속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다시 죄에게 종노릇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이 함께하는 우리는 이 싸움에서 넘어져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루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죄와의 영적전쟁입니다. 조그만 빈틈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때처럼 어찌 보면 게임이 안 되는 전쟁이나 그래도 우리 편이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저질러지는 작은 범죄들, 그리고 사단의 유혹들이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전략입니다. 작은 것을 용납하면 결국은 나중에는 내 목숨을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단이 우리를 삼키려고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우리를 청구한다고 했습니다. 가지고 놀려고 한단 말입니다.

 

3. “나 한사람”도 매우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 한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에 이르고 예수 한분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사람의 역할이 전체의 興亡盛衰를 주관합니다. 아브라함 한사람으로 모든 족속이 복을 받습니다. 에스더 한사람 때문에 모든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합니다. 요나 한사람이 순종함으로 모든 니느웨 사람이 심판을 면합니다.

예수님께 떡 5개, 물고기 2마리 드린 한사람 때문에 5000명이 배불리 먹습니다.

한사람이지만 그 한사람이 미치는 影響力은 엄청난 것입니다. 언더우드 한사람의 선교사가 한국 땅에 들어옴으로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고 무수한 인재들이 양성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 한사람, 여러분 한사람,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 한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 나 한사람 죽는다고 큰일 나거나 지구가 멈추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 한사람이 예수님을 모시고 살 때 세상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옵니다. 내 가문이 나 한사람 때문에 달라지고 내 직장이, 내 주변이 달라지는 역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신 한사람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나를 오직 한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고유의 독창적 존재이고 그러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너무도 쉽게 자살을 합니다.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빠졌고 예수 한분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의 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 한사람은 하나님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쓰실까요? 그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단, 죄의 종노릇 하지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서 왕노릇하며 사실 때 가능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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