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주님의 가치관과 내 가치관 /막10:35~45/2004년 2월22일

주님의 가치관과 내 가치관

마가복음10:35-45

2004년 2월 22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설교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10: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10: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10: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10: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10: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설교:

요즘 대학들이 난리입니다. 학생들이 모집이 안되어 그렇습니다. 소위 일류대학이나 수도권 대학은 정원을 다 채웠는데 지방대학들은 추가모집광고를 계속내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면 성공이고 지방에 있는 대학에 가면 실패라고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왜 사람들이 서울대학교가면 성공한 것이고 지방에 있는 대학이나 신학대학 가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또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성공의 기준을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박사 학위를 얻었느냐”, “명예를 얼마나 누리느냐” 하는 데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서울의 일류대학을 간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지방의 대학을 간 사람을 실패한 인생입니까?

돈을 많이 벌고 넓은 아파트에 살면 성공한 사람이고 영세민 아파트에 살면 실패한 인생입니까? 차를 에쿠스나 그랜저를 타면 성공한 사람이고 엘란트라나 소형차를 타면 실패한 사람일까요?


만약 예수를 믿는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면 우리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관이 한 차원 높은 것을 원하십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고 “성경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도 육신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삶에서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에서 올바른 가치관, 신앙적 가치관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뒤바뀌고, 뒤집힌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딴에는 실패했다고 너무나도 쉽게 자살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성공했다고 헛된 자랑과 허영 속에 있기도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뭘 더 귀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제자들을 뭔 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차원 높은 가치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기뻐하는 성경적 가치관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1. “무엇을 했느냐” 보다 “무엇이 되느냐”를 더 가치 있게 여겨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17절이하에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했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열매는 저절로 맺게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면 복의 열매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좋은 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고 좋은 열매만 맺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즉, 중심, 심령이 변화되지 않고 겉만 변화된 것 같이 살려고 하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가시나무가 사과를 맺으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신앙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심령과 행동이 일치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그 방법은 내 가치관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내가 정말 가치 있게 여기는 그것이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가 정말로 귀히 여기는 것이 뭡니까? 그것과 성경이 귀히 여기는 것이 일치되면 내 신앙생활은 행복하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는 예배가 귀하고 구원이 귀하고 하나님을 섬김이 귀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이중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 제사장, 사두개인들을 그토록 싫어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령이 변화 되어야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보세요.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 먼저 좋은 나무가 되면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므로 저절로 좋은 열매를 많이 따게 되는 법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열매를 많이 따서 위대한 사람이 되어 보려고만 애쓰지 먼저 좋은 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Doing 보다 Being이 먼저이며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나 우리나라의 ‘조 만식’ 장로 같은 분은 그 분의 인격, 사람됨이 너무 훌륭해서 모두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 보다 어떤 사람이 먼저 되느냐에 가치를 더 두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축복받을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복 받을 그릇이 아직 안되었는데 복만 받으려고 한다면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얼마나 소유했느냐” 보다 “어떻게 썼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느냐, 얼마나 큰 권세를 잡았느냐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이 얼마나 돈을 가치 있게 썼느냐를 귀중히 보십니다.

그래서 누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버는 돈을 계산하시지 않고 쓰는 돈을 計算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수십억의 재산을 벌었어도 자기와 자기 가족만 위해 썼거나 술 먹고 도박하고 방탕한 생활에 다 써 버렸다면 차라리 엽전 두 푼이라도 값있게 쓴 가난한 과부만도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12장에 그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이 헌금했다고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만 위해 쌓아둘 줄 아는 어리석은 부자를 향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고 했습니다.

수백억의 재산을 가졌어도 자기만 위해 사는 사람보다 꽁보리밥에 된장찌게만 먹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도우며 사는 사람이 더 가치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돈의 액수는 같아도 어디다 썼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전혀 다르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5만원을 술 한 잔 먹는데 써 버린 것과 병들어 죽어가는 자를 도와주는 것, 그 가치는 전혀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을 소유하는 데만 흥미를 가지고, 무엇이 되자고 하는 데에는 흥미를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되어야 할 사람이 되면 가져야 할 것을 소유하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바르게 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맡겨 주실 수 있습니다.


3. 육신보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더 가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3서 2절에 "사랑하는 자 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육신은 수박의 껍질에 비한다면 영혼은 수박의 알맹이 같고, 육신은 식물의 잎과 같다면 영혼은 식물의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육신보다 더 중요하고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건강이 먼저가 아니고, 사업이 잘 되는 것이 먼저가 아니며 영혼이 먼저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가치있는 것입니다.

육신은 잠깐 있다가 늙고 시들고 썩어 없어지는 것이요 영혼은 지금부터 영원히 살아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도 잘 되기를 원하시고 건강하기를 원하시지만 그 보다 영혼이 잘 되는 길을 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영혼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 육신의 고통도 허락하시고 사업의 실패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염려 되는데 어느 교회 성도가 아주 신앙이 돈독한 청년이 있었답니다.


어느 교회에 주일학교 교사로, 집사로, 남전도회 봉사로 충성스럽게 일하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이 그가 하는 사업을 위해 축복도 자주 해 주었습니다. 그래선지 사업이 자꾸 번성하기 시작해서 십일조를 한 주일에 몇 백 만원까지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바빠서 교회 봉사직을 그만두어야 했고 또 다른 도시에 지점들을 내게 되자 그 도시에서 주말을 보내느라고 교회에 출석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십일조는 현상유지는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찾아가서 권면을 했답니다.

"집사님, 나는 집사님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계속 예배에 계속 불참했고, 하나님의 일에 흥미를 잃어 가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목사님 그래도 저는 십일조를 몇백씩 하잖아요, 너무 바빠 그러니 양해 해주세요“ 하더랍니다. 이 때 그 목사님이 “집사님 우리 함께 기도드립시다.”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주께서 우리 집사에게 지나친 번영을 주셨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성공했습니다. 주님, 그를 위하여 그의 상점 몇 개는 불태워 주옵소서. 상점 몇 개는 실패하여 문을 닫게 하여 주옵소서. 너무 바쁘다고 하니 안 바쁘게 해 주옵소서” 그러자 그 집사는 목사님의 기도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죄를 깨닫게 되었답니다.

왜 그 목사는 그런 방법을 썼을까요? 그의 영혼을 육신이나 사업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4. 섬김을 받는 것보다 섬기는 생활에 더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43절이하를 보세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섬김을 받는 것에 더 가치가 있는 줄 알지만 실상은 섬김을 받는 것보다 남을 섬기는 데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섬김의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며 섬김을 받는 자리를 달라고 합니다. 형제가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좌정승 우정승 다 해먹겠다는 말입니다.


이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십니다.

"인자 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 예수님의 말씀을 한낱 지나가는 말이나 헛된 교훈으로 아는 이들이 많습니다. 믿음이 깊을수록 더 겸손해지고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에서 중한 직분을 맡으면 勢道나 부리고 대접이나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높아도 낮은 자같이, 있어도 없는 자같이 부자라도 가난한 자같이, 벼슬이 있어 도 없는 자같이 겸손히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 앞에 가치있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같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높아지는 비결은 섬기는 것이며 참으로 으뜸이 되는 비결은 종의 자세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때가 되면 높여 주시고 섬김을 받게도 해 주시고 존경을 받게도 해 주십니다. 참으로 價値있고 보람있는 생활은 섬김을 얼마나 받았느냐에 있지 않고 얼마나 섬기는 생활을 했느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누가 변해야 하겠습니까?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