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6-52 2004년 6월 13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0: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10: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10: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10: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설교: 세상에는 주어진 運命에 順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운명을 극복하고 바꾸어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 八字, 이런 것에 매여 사는 자신의 운명을 신앙으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는 視覺障碍를 갖고 살았습니다. 소경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시각을 잃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시각을 잃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고통입니다. 그러나 자기 앞에 놓여진 현실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자포자기하며 사는 사람은 평범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내게 있는 뛰어넘기 어려운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운명과 같은 苦難, 難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입니다. 신앙의 힘은 우리 앞에 놓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오늘 봉독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劣惡한 環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오직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놓여있는 운명,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각종의 장애물을 뛰어 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믿음은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1. 믿음은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합니다. 바디매오는 소경에다가 거지였습니다. 이 둘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경이라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했기에 생활 능력이 없어졌고, 생활 능력이 없으니까 구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완전히 疏外되고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蔑視와 嘲弄으로 이미 자존심은 망가졌고, 오래 전에 자포자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시각은 잃었으나 청각은 뛰어났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지나가며 하는 소리,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선지자가 아니고 약속된 메시야임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을 소유한 그는 자기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앞에 찾아온 기회를 그냥 지나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 기회를 붙잡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위기가 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위기를 위기로 맞아 자멸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선용하며 대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은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것은 기회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나사렛 예수, 그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다”라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는 그 순간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만약 바디메오가 이 기회를 놓쳤다면 그에게는 다시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成功者와 실패자는 기회 앞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기회를 적절하게 잡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그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 기회를 기회로 알게 되려면 보통 사람과 같은 시각으로는 기회를 얻을 수가 없고 잡을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있으며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 하게 하는 것이며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주는 놀라운 선물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와 어떤 관계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인생관이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결국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믿음은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하게 합니다. 실패자의 대부분은 환경을 탓합니다. 나는 부모를 잘 못 만났기 때문에, 혹은 가난하기 때문에, 줄을 잘 못 섰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등등의 핑계로 자신의 실패를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의 共通點은 자신의 환경을 역으로 이용할 줄 압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사람들의 자라온 환경은 한결같이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헬렌캘러는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의 3중고의 고통을 이기고 인간승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나폴레옹도 영웅이었지만 나름대로는 핸디캡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신적으로는 심한 우울증에 육체적으로는 작은 키가 콤플렉스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환경을 극복하고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부끄럽습니다만 저도 저의 운명을 뒤바꾼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신체장애라는 남다른 장애가 있어 남에게 신세를 지며 평생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고 앞에도 산, 뒤에도 산인 시골에서 그럭저럭 사는 인생일 수밖에 없었으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제 인생관이 달라졌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대충 살다가 갈 인생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라는 사람에게 특별한 일을 맡기려고 남들이 갖지 못한 십자가를 하나 더 맡기셨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 땅에 이런 모습으로 보내셨나? 여기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믿음이 내 인생관을 바꾸었고 내 시각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복음을 온 천하에 전하는 종으로 여기까지 쓰임 받으며 살았습니다. 현대그룹 정주영씨도 소 한 마리 판돈을 가지고 집을 나가지 않았으면 농사나 짓다가 죽을 평범한 농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도 결단과 개척정신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결단이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그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수많은 인재들을 부려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를 가로막는 운명 앞에, 난관 앞에 그냥 주저앉아 살수 있습니까? 바디매오만큼 열악한 환경을 가진 사람은 당시에도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내 세울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학력은 무학에다가 신분은 거지입니다. 신체적 조건은 소경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귀가 번쩍 뛰었습니다. 그는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왜요? 그가 믿는 바로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예수님의 기적으로 보고도 믿지 않았으나 그는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아는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고 사람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다윗의 자손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그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잠잠하라고 야단을 칩니다. 이것도 나를 가로 막는 장애물입니다. 우리의 장애물은 내 처지와 환경도 장애물일수 있으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 장애물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 장애물을 어찌 합니까? 바디메오는 그것을 뛰어 넘습니다.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더욱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주님의 발걸음이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디메오를 부릅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무엇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까? 그의 믿음입니다. 그의 믿음이 환경을 뛰어넘게 했고 장애물을 극복하게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주님 앞에 서게 되고 그 운명과 같은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얽어매는 환경을 그냥 두게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3. 믿음은 꿈을 갖게 합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100사람을 조사해 보았더니 학력이나 어떤 다른 조건보다도 꿈을 가진 사람임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나가는 사람들 보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학력이나 경력이나 모든 면에서 별로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훌륭한 분이지만 그 분의 배경은 별 것 아닙니다. 그는 당시에 무인가 신학교를 나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세계적인 목사가 된 것은 그에게 있는 믿음의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들어 쓰실 것이라는 꿈입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도 학력이래야 안동 성서신학원과 서울장로회신학교 별과를 수료한 것이 그의 학력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과 열정이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믿음을 통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라면 나를 볼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물으실 때 믿음의 소원을 말합니다. 내게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그가 말합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만들어낸 꿈입니다. 그 꿈이 세상 사람들은 헛된 꿈이라고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나 이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메사야임을 믿기에 그 꿈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기에 그가 그런 고백을 한 것입니다. 믿음은 꿈을 만들어 냅니다. 믿음은 소망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꿈과 소망은 결국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바라는 대로 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믿음이 만들어낸 꿈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꿈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이 바디메오에게 하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고쳤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치유하였노라 하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고 합니다. 백부장의 하인의 中風病을 치유 할 때도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할 때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고 그 시로 나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디매오의 믿음이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믿음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게 했고 그 믿음이 넘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그 믿음이 그의 마음속에 꿈을 갖게 했고 결국 그는 그 꿈을 믿음으로 구하여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죄 가운데 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팔자를 바꿀 수 있고 영원히 죄의 종노릇하게 되어 있는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로 믿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를 구원하러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믿음을 온전히 가지면 여러분의 인생은 놀랍게 달라질 것입니다. 갈릴리 어부 베드로도 이분을 만나 위대한 사도가 되었고 율법주의자 바울도 이분을 만나 인류역사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만났던 예수, 여러분도 만나시고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시간도 여러분에게 기회입니다. 이 機會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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