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마태복음10:40~42 2004년 6월 20 주일 낮 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설교: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며 그들을 격려하십니다. 여러 가지로 격려도 하시고 권세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특별한 약속을 그들에게 주십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이다.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약속입니까?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엄청난 힘이 되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들고 나가면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전권대사”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 주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영접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영접은 어떻게 하는 것이며 누구를 영접해야 하며 어떤 결과가 찾아오는 것일까요? 1. 영접한다는 의미는? 1) 환영하며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기뻐하며 환영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기뻐하며 환영하며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사람을 정말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영접합니까? 혹 매우 부담스럽게 여기거나 귀찮은 존재로 대하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모셔 들이셔야 합니다. 그냥 모셔 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며 환영하며 맞이해야 합니다. 2) 영접은 대접하며 섬긴다는 것입니다. 영접은 그냥 모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대접하며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정성으로 섬기며 그를 받드는 것이 곧 영접하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처럼 지극정성으로, 예수님께 옥합을 깨뜨려 대접한 여인처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올 테면 오시고 갈 테면 가시오. 는 영접이 아닙니다. 제가 요즘 필리핀을 안갑니다. 왜요? 그들은 영접하는 자세가 없습니다. 주의 종들이 당연히 자기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거지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필리핀 집회에 가서 점심을 햄버거 하나 사먹으며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심지어 나를 초청해 놓고 담임목회자가 집안 사정이 있다며 코배기도 안보입니다. 뭘 안 가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3) 영접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영접한다는 것은 단순히 대접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그들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접입니다. 2. 누구를 영접해야 하나요? 한마디로 주님이 보낸 사람,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영접함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주님이 보낸 사람이고 누가 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일까요? 구약에서는 천사들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군대 장관으로 오시기도 하시고 선지자를 보내셔서 찾아오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에서 "너희"는 바로 예수님의 12제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곧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나 보내신 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신약시대는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 전도자, 목사 선교사들이 주님이 보내신 자들이고 그들을 잘 영접하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예수님을 대신하는 것일까요? 그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아 복음을 들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1)선교사 특별히 복음을 들고 나선 선교사, 복음전도자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보낸 사람이며 주님의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명을 받은 사신이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를 "Ambassador"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대사는 여러 가지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함부로 다룰 수가 없습니다. 대사는 곧 그 파송한 나라의 왕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사를 추방하는 일은 곧 국교를 단정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고 대사를 모독하는 것은 곧 그 나라를 모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에게 주님은 늘 약속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선교지에서 영적 전쟁을 치루는 그들은 오직 주님의 명령을 따라 낯설고 물 설은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2)목회자 목사와 교역자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 양들을 맡아 책임을 지도록 세우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보내셨고 주님이 책임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목회자들도 잘 영접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3)신학생들 지난주 여러분에게 한 가정에 한 학생씩 맡겼습니다. 왜 우리가 그들을 맡아야 합니까? 왜 우리가 그들을 섬겨야 합니까? 마찬가지로 그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HD신학교 학생 한사람 한사람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앞으로 30년 40년 동안 엄청난 일들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을 섬기며 이들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푸는 것은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누가 섬길 것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왜 영접해야 하나요?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욕보였던 어린아이를 곰이 나타나 찢어 죽인 사건을 아십니까? 가만히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하나님이 좀 너무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하나님이 당신의 종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권위를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종들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셔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외모로 잘나서가 아니고 지식이 많아서도 아니며 우리보다 더 잘나서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였고 그들에게 특별 권세와 지위를 부여 하셨기에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혹, 그들을 외모로, 또는 실력으로 판단하거나 함부로 대하거나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아무렇게나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정말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의 종이라면 조심하여야 합니다. 영접하면 어떤 결과가 주어집니까? 1)주님을 대접하는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평생 사는 동안 주님을 눈으로 보며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대접하는 그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도들의 대접을 받을 때마다 좀 부담스러우나 주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것이기에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제가 외국에 가서 집회를 하고 강의를 할 때 이분 저분이 경비를 댑니다. 요즘은 하도 많이 나가서 그런지 별로 없지만 그들은 저를 대접하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2)상을 동시에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이 하는 사역을 도우며 섬기면 주님을 섬기는 동시에 그가 받을 상을 같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41절을 보세요.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여러분은 현세와 내세에 상이 있음을 믿습니까? 정말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며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사십니까? 솔직히 성도들이 저를 대접할 때 어떤 대접은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말리려고 하다가도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생각을 하고 그냥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지요. 그 대접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복을 주십니다. 제가 성도들의 예를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 들까 염려되어 포기합니다. 대신 성경의 예를 보겠습니다. 열왕기상17장에 가뭄이 들어 그릿 시냇가로 피신한 엘리사를 하나님이 시돈 땅 사르밧으로 보내십니다. 그곳도 역시 가뭄으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그 땅으로 보내 그곳 과부를 통해 공궤하게 하시겠답니다. 엘리사는 그대로 갑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마지 성밖에서 나뭇가지 줍는 과부를 만납니다. 그에게 자신을 먼저 물 대접을 하라고 명합니다. 그 기근 속에서 물 대접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여인은 물을 가져옵니다. 물 가져온 그에게 떡을 달랍니다. 그러자 가루 한 움큼, 기름 조금 남은 것으로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한다고 하자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아닙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놀라운 상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보세요. 왕상17장 15절 이하를 제가 읽습니다. "17:15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할렐루야! 3) 빚을 갚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돌아보세요. 많은 발전과 부흥이 있었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 미국이 강대국입니까? 그 조상들이 예전에 세계 각국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며 수없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2000년 현재 64,000명의 선교사가 세계 각국에서 사역하고 있답니다. 그 사랑의 빚을 우리도 받았습니다. 여기계신 분 중에 40대 이상 되신 분들은 초등학교 다닐 때 거의 다 옥수수 빵을 급식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미국이 잉여 농산물이라고 보내준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남아서 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던 선교사들이 우리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도와달라고 자기 나라에 가서 외쳤기 때문에 그들이 막대한 운반비 들여가며 퍼다 부어 주었습니다. 다 빚진 자들입니다. 그때 얼마나 배고팠습니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때 초등학교 때 아니 중 고등학교 때까지도, 예방접종 돈 내고 받은 분들 있습니까? 전부 사랑의 원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 반대하시는 분들, 깊이 생각해 보세요. 과거 우리가 공산당과 싸울 때 마군이 우리나라에 와서 죽은 숫자가 얼마인줄 압니까? 자그마치 54,000명입니다. 그들이 왜 이 땅에 와서 죽었을까요? 단순히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기에 그랬을까요? 우리는 엄청난 빚을 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라크 전쟁에 왜 우리가 참전하느냐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괘씸한 짓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집니다. 선교사들이 뭐 하러 이 땅에 와서 그렇게 죽었을까요? 합정동에 선교사들 묘지에 가보세요. 그들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 병 걸려 죽고 자기 자식들이 더러운 환경 속에 죽어갈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비단 우리 한국 땅만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 가서 그런 사역을 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 빚을 갚을만한 환경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 세계에 10,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은 결코 상을 잃지 아는 행위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은 엄청난 약속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부담을 갖지 말고 영접하셔야 합니다. 상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냉수 한 그릇 베푼 상도 결단코 잃지 않는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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