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갖기 쉬운 오해
마태복음11:28~30
2004년 6월 27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낮설교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설교:
우리 인생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키 어려운 힘들고 무거운 짐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무겁게 여겨져서 때로는 지쳐 쓰러지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누구일까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왜 다 내게로 오라 하시는 것일까요? 많은 성도들이 이부분에서 오해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오해를 하느냐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려고 오라고 초청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짐을 벗겨주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벗겨준다는 말이 없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쉼은 어떤 쉼일까요?
29절 하반절을 보세요.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육신이 아닌 마음이 쉼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쉼은 평안, 기쁨, 감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이런 마음, 이런 쉼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의 쉼을 주신다는 것일까요?
1.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하며 합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29절을 보세요. 두 가지 마음입니다.
1)주님은 마음이 온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온갖 수고와 무거운 짐을 능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溫柔하다는 것은 따듯하고 부드럽다는 뜻이나 이것은 힘이 없는 연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온유라는 단어는 “프라테스”라는 단어로 힘이 있고 강하나 하나님께는 철저하게 복종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이 길들여 진 상태, 매우 강하고 능력이 있으나 주인에게는 철저하게 순종하고 낮아지는 상태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셨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이시나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모세도 40년 광야의 연단으로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온유한자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온유함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온유함이 만들어질 때 우리의 온갖 무거운 짐은 가볍게 변화될 것입니다.
2)주님은 마음이 겸손해졌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교만을 벗어버리고 겸손의 마음으로 바꾸어져야 무거운 짐이 가벼워지고 힘든 것이 변하여 힘들지 않게 감당이 되는 것입니다. 왜 남 때문에 열을 받고 고통스럽습니까? 왜 남이 내 뜻대로 안 따라주면 힘들고 어렵습니까? 교만입니다.
내 마음이 겸손해지면 남의 허물이나 약점이 보이면 긍휼의 마음이 생깁니다. 겸손해 지면 좀 답답하고 어려울 것 같으나 자신을 평안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낮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사람으로 오셔서 온갖 부당한 대접을 다 견디어 내셨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그를 조롱하고 로마 군병들이 그를 채찍질할 때 그 얼마나 참기 힘들었을까요?
그래도 주님은 겸손하시기에 다 참아 내셨습니다. 겸손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무겁게 여기지 않게 합니다.
2.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합니다.
왜 마음이 변해야 할까요? 마음이 변한다는 것은 가치관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또 가치관이 변한다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가치관의 변화는 우리의 문제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며 무거워 하는 짐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이 단순히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죄를 지어 벌을 받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주시기 위한 방편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힘든 것이 힘든 것이 아니고 그 고통스러운 것이 고통이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갈 때 그 시각이 변화 됩니다. 세상에서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엄청난 고통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엄청난 복일 수 있는 것입니다.
공부 안하는 자녀 때문에 속이 썩는 부모, 염려하지 마세요. 공부는 못하나 건강하면 됩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어떤 교수님께 장애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분은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워 남에게 말도 못하고 아들을 숨겨 키웠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아들 때문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는데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그 집사님이 원망불평을 떨어 놓습니다. 속에 맺어 있는 아픔을 다 털어 놓으셨습니다. “왜 내게 이런 아들이 태어났나요? 내가 무슨 죄가 있나요?”
그때 목사님이 하신 말씀의 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집사님 그 아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특별히 받아야 할 아이인데 하나님이 세상 여러 가정을 살피다가 누가 이 아이를 맡을 만 할까 고르시다가 집사님이 감당할 것 같아 맡기신 복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은 집사님을 믿으셔서 특별히 맡기신 것이랍니다.” 고 하셨답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간 것, 그리고 보디발 장군의 부인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사건은 엄청난 고통이며 저주와 같은 것이나 알고 보면 그것이 하나님이 그에게 복 주신 통로 인 것입니다. 그 사건 때문에 그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그가 형제들을 기근에서 살려내는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드라마 작가 같습니다. 기가 막힌 반전을 만들어 내시는 분이십니다. 다 망하는 곳 같은데 다시 일으키십니다. 망한 것 같으나 일으키시고 된다 싶어 교만하면 다시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를 새로운 시각 속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생애는 복된 생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시각입니다.
3. 주님이 지워준 멍에를 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기를 그냥 배우라고 하지 않습니다.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짐을 벗으라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주님의 멍에를 지라 하십니다. 그 멍에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주님이 맡기신 사명입니다. 또 그가 허락하신 환경입니다. 그것을 벗어버리고 와서 배우라가 아니고 그것을 메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직분 때문에 힘드십니까? 그 책임이 무겁습니까? 감당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래도 사명은 걸머지고 주님께 나가시기 바랍니다.
환경이 고통스럽습니까? 정말 견딜 수 없습니까? 그 환경 그대로를 걸머지고 주님께 나오셔서 주님의 자세를 배우십시오.
주님은 어떻게 십자가를 지셨나? 주님은 어떻게 그 모욕과 수치를 견디셨나? 또 주님 갖고 계신 무거운 짐은 어떤 것이었나?
1)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2)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3)당신이 져야 할 십자가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님은 그것을 “아 힘들다, 무거워 미치겠다” 하시며 어쩔 수 없이 괴로워하며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면서 나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있는 수고스럽고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1)육체의 연약함입니까? 병들었습니까? 늙으셔서 고통스럽습니까?
2)자녀의 문제입니까? 자녀가 속을 썩입니까? 자녀가 내 뜻대로 안 따라줍니까?
3)더 나아가 하나님이 맡기신 직책과 사명입니까?
4)또는 남들에게 말하기조차 어려운 나만의 문제입니까?
그런 문제를 벗으려고 발버둥치지 마십시오. 그냥 그 짐을 지고 주님께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오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는 것만이 주님의 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거기다 한가지 멍에를 더 지라 하십니다. 주님의 멍에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배우라 하십니다.
주님은 그 문제를 벗겨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주님의 마음처럼 마음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되고 결국 그것이 우리의 짐과 수고를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실 수도 있으나 다 그렇게 하시지마는 않습니다. 오히려 벗겨주기는커녕 마음을 배우랍니다. 그리고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멍에를 함께 매고 배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환경을 변화시켜 달라고 하지만 주님은 네가 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변하여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우리의 짐과 수고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감히 주님의 멍에를 질 자격도 능력도 없으나 주님은 우리에게 함께 지자고 하십니다. 그것이 복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그 짐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복입니다. 여러분의 시각으로 보지 마시고 주님의 시각으로 보십시오. 그러면 원망과 불평이 감사와 찬양으로 바뀔 것입니다. 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기 지고 있는 짐이 바뀝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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