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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행9:10~22/2004년 7월18일 설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법

사도행전9:10~22

2004년 7월 18일 주일 낮 설교 최일환 목사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설교:

많은 성도들이 착각을 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 알지 못하는데서 생긴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선택되는 분이 아닙니다.  요한복음15장16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면 우리가 기독교를 믿기로 결정한 것 같고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도 아직도 내가 기독교를 선택하였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겠으나 얼마 못되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였다는 말은 불행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이 복입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였다면 그런 하나님은 수준 낮은 하나님이고 결국 인간에 의해 영향을 받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은 전능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낮고 천한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우리의 구원은 든든한 것이고 확실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요? 그 방법은 무엇인가요?


1. 창세전에 선택하시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우연히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4이하를 보면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 4절에 創世前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이 언제입니까?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 우주가 시작되기 전, 그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이 사실, 이것이 믿어집니까? 믿어지든지 안 믿어지든지 상관없이 이것은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그러기에 저나 여러분은 창세전부터 계획된 존재요,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를 통해 구원을 받은 백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選擇의 반대말은 不擇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택하였다면 선택이란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다 택했다면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은혜를 입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그들에게 복음이 들려지게 하시고 그 복음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에서는 사울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충격을 받습니다. 이제까지는 예수를 이단으로 생각하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고 가두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꼬꾸라졌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나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 말에 완전히 꼬꾸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제껏 자기가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던 것을 깨닫습니다. 결국 식음을 전폐하며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 사울에게 아나니아를 붙여주십니다. 


아나니아와, 그는 다메섹에 살고 있던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는 12제자는 아니지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였습니다. 성경은 그를 제자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생각해야 할 것은 누가 제자냐 하는 것입니다. 제자와 성도는 어떻게 다른가 말입니다.

성도가 곧 弟子고 제자가 곧 성도지만 굳이 구별한다면 성도는 예수를 믿는 모든 자를 말하고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요, 제자는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된 자를 두고 부르는 말입니다.

주님 가신 길을 뒤 따라가는 사람이 주님의 제자라고 할 것입니다.

아나니아, 그는 참으로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患難과 逼迫을 覺悟하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는 사울이 왜 다메섹에 오는지, 그가 예루살렘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메섹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주님이 그에게 다메섹 지역을 맡기셨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환난과 핍박, 심지어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도 주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환난 핍박이 닥칠 터인데 그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남편의 반대, 시부모의 꾸중이 두려워 눈치를 보며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나니아는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초월 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를 들어 쓰십니다.

지난번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 반드시 사람을 통해 전하신다고요. 그래서 8장에서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하기 위해 빌립을 준비하셨다가 쓰시고 9장에서는 사울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나니아를 쓰시고 10장에서는 고넬료를 구원하기 위해 베드로를 준비시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을 통해서는 어떤 사람을 구원하실까요? 분명 이 땅에 크리스챤이 1200만 명밖에 안 되는데 우리를 먼저 부르신데 는 뜻이 계시고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3500만 명이 예수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에 여러분을 쓰시기 원하시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명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 우리를 준비시켜 어떤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일에 쓰임 받도록 준비 되는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대상이 사울과 같은 사람일수도 있고 고넬료와 같은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사람 하나로 그치지 않고 그를 통해 또 엄청난 일들이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는 그 사울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를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울이 바울이 되어 그 엄청난 일을 이루실줄 상상치도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은 엄청난 계획을 갖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5절을 보세요.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의 선택한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를 구원하는 일에 아나니아가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예수님을 제외하고 바울 같은 위대한 인물은 또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없으나 아마도 아나니아는 사울이 바울 되어 쓰임 받는 것을 보면서 매우 감격스러워 했을 것이며 또 그가 하늘나라에게 가서도 엄청난 상도 받았을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은 이런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게 됩니다.


3.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그를 쓰셨나?

1)그는 주님이 내린 명령에 즉각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명령입니다. 그토록 사악하고 잔인한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라니 이해가 안 되지요. 그런데도 그는 그 명령에 즉각 순종합니다.

순종이 그의 능력이었습니다. 내 머리로도, 환경으로도 도저히 용납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가라시니 갑니다. 이것이 쓰임 받는 비법 중에 비법입니다.


장안의 성도 여러분!

순종과 복종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순종은 자원하여 하는 것이 순종이고 복종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남들이 할 수 있는 것 나도 하는 것은 순종, 복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남들이 못하고 내 환경도 안 따라주나 그러나 주님의 명령을 적극 순종하는 것이 그것이 능력이요, 그것이 쓰임 받는 비법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의 승리 비법은 순종입니다.

민수기 32:12

“다만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신명기28장을 아시나요?

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28: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28: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28: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사도행전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나니아!. 그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라, 그가 기도하고 있다. 그가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와서 안수하는 것을 환상 속에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그는 순종합니다. 즉시 찾아갑니다. 이것은 목숨을 걸고 가는 것입니다. 


왜 아나니아를 쓰셨을까요?

2)그는 개인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사울을 찾아가서 첫마디가 뭡니까? “형제 사울아”

참 어려운 말입니다. 오히려 “원수 사울아” 하면 맞을 것입니다. 그는 스테반을 죽인 자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형제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 자입니다. 그런데 어찌 형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는 개인적인 감정을 극복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 살인전과 10범인 사람이 출소하여 등록하였다면 어찌 될까요? 그 사람을 향해 “형제님”하고 손잡을 수 있나요? 그 사람의 과거 때문에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누구든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도움이 안 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일에 하나님의 일에 개인적인 감정이나 과거에 매여 있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에 매여 있으면 하나님께 쓰임받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요, 자매인 것을 믿으시기 축원합니다.

“며칠을 같이 있으며” 이구절도 참으로 위대한 말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제자 훈련을 시켰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아나니아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예상치 못한 인물을 구원하는데 쓰심 받습니다. 아마도 아나니아 자신도 놀랄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예수 믿는 사람 될 것을 전혀 상상치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 그 일에 자신이 쓰임 받을 줄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비단 아나니아만 놀란 것은 아닙니다. 사울 자신도 매우 놀랐을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를 믿게 되다니, 며칠 전에만 해도 그토록 극열하게 핍박하던 사람이 예수 그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다니니 자신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는다는 것도 깜짝 놀랄 일이지요?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의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도,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선택된 백성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통해, 그리고 우리 교회를 통해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루시고 계십니다.

그 거룩한 일에 아름답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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