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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목회처신법

[스크랩] 후임 목회자에 확신 미련없이 내려놓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

후임 목회자에 확신 미련없이 내려놓다.

‘조기 은퇴’하는, 총회장 출신 유덕식 목사

 

“너무 빠르게, 쫓기듯 은퇴하는 게 아니냐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좀 서운하다 싶을 때 내려와야죠. 5년 더 한다 해도 제게 플러스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준비된 사람이 있을 때 빨리 물러나는 게 좋죠. 무엇보다 저보다 조 목사가 설교도 목회도 훨씬 잘 해요.”

제39대 예장 대신 총회장을 지낸 유덕식 목사가 35년간 섬기던 영진교회에서 다음달 6일 물러난다. 그는 이제 교회에서 ‘선교목사’로 임명받아 65세의 나이에 2기 사역을 시작한다. 후임은 10여년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수학하며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한국교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조용식 목사(48)다.

 

최근 안팎으로 시련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에서 ‘건강한 사역계승’이 하나의 트렌드가 돼 가고 있다. 영진교회 유 목사의 조기 은퇴는 사랑의교회, 할렐루야교회, 지구촌교회 등 일부 대형교회들 뿐만 아니라 중소형교회들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는 하나의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선-후임 목회자의 ‘父子’ 같은 관계… 이면에는 은혜의 ‘대 잇기’

▲“조 목사 부흥회 할 때 한번 취재를 와야 하는데…. 이제 내가 조 목사 덕 보고 살아야지.” “우리 목사님이 요즘엔 제 매니저 같으세요.” 성은 다르지만 이름 마지막 글자가 같은 이 두 목사는 영락없는 부자 관계 같아 보였다. ⓒ이대웅 기자

 

유 목사는 지난 1968년 대한신학교, 1972년 안양대 신학연구원(현 신대원)에 입학했다. 그는 대한신학교 졸업 직후 정릉에 덕암교회(현 성북제일교회)를 개척했다. 열정적으로 사역하던 그는 폐병을 얻어 각혈을 하는 등 목회가 더 이상 어려워져 눈물을 머금고 교회를 사임했다.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상계동에서 그는 몸을 추스르며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인 회복의 역사를 체험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1976년 노원 지역에 다시 영진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35년간 지역을 섬기며 한 자리에서 목양에 힘썼다.

 

유 목사가 신학생 시절 전도사로 시무하던 교회에는 조용식 목사의 모친이 출석하고 있었다. 조목사와의 인연을 그 때부터 시작된다. 어릴 적부터 목사가 되려 했던 조 목사는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했고, 지난 1991년 유 목사가 목회하는 영진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후 대신교단의 총회신학연구원을 거쳐 영진교회에서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이때부터 영진교회는 조 목사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10여년의 유학 기간 동안 교회에서 뒷바라지를 했으며, 그런 조 목사는 유학을 마치고 영진교회로 돌아왔다. 유독 논문 심사가 엄격한 히브리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내주지 않자 다시 1년을 이스라엘로 보내 기어이 지난 2007년 학위 승인을 받게 했다.

 

유 목사는 지난 2003년 조 목사가 이스라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고 나서야 목양의 걱정을 떨치고 교단 부총회장에 출마했다. 그리고 2년간 부총회장-총회장을 지내고 나서야 미진한 학업 완료를 위해 조 목사를 다시 이스라엘로 보냈다. 다시 돌아온 조 목사를 교회는 설교목사로 임명했고, 유 목사는 2009년 12월부터 1년간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안식년을 보냈다.

두 목사는 이렇듯 ‘피를 나눈’ 부자 관계는 아니지만, 그 이상 각별한 관계다. 그래서인지 유덕식 목사는 입만 열면 후임인 조용식 목사 칭찬에 침이 마른다. 조 목사는 유 목사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원로-후임 목회자 간의 긴장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후임 목회자에 대한 확신 서자 미련없이 내려놓다

▲유덕식 목사가 35년간 섬기며 ‘쿨(Cool)’한 지성과 뜨거운 영성으로 무장한 젊은이들로 가득한 영진교회는 권위 대신 미소를, 강요 대신 격려를, 금욕 대신 기쁨을, 시설 보다 사람을, 조직 보다 우정을, 논리 보다 사랑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대웅 기자

 

“사실 모든 게 준비가 돼서 물러나는 건 아니에요. 주님께서 새로운 사명을 주시리라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교회에서 선교목사로 임명해 주셔서 여러 선교지들을 방문하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 목사는 이미 한 공산권 국가의 신학교 학장으로서 현지인 양성을 시작했고, 교회가 돕고 있는 국내외 선교지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돌아보고 있다.

유 목사가 처음부터 조기 은퇴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교회가 아니라 애정이 있으면서 건강하게 신앙생활의 유산을 이어가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목회철학을 조 목사가 충분히 이어갈 수 있고, 자신보다 젊고 뛰어나다는 확신이 서면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10년간의 유학 생활 등으로 조 목사의 나이가 찼다는 점도 고려됐다.

 

리더십 교체 과정도 물 흐르듯 잡음이 없었다. 공동의회에서는 성도들이 만장일치로 조 목사의 위임목사 초빙과 유 목사의 선교·원로목사 추대를 결의했다. 노회와 총회 차원에서도 총회장까지 지낸 유 목사의 조기 은퇴에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다.

 

교회는 유 목사가 70세가 될 때까지는 담임목사와 같은 수준으로, 71세가 되는 2016년 6월부터는 담임목사의 70% 수준으로 생활비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후임 조용식 목사는 “우리 교회의 목표는 담임목사는 굶어도 원로목사는 굶지 않는 것”이라며 거들었다. 여느 교회들과는 다른 풍경이다.

 

목회자가 교회에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려 해서는…

이처럼 교회와 목회자간의 좋은 관계의 비결로 유 목사는 “목회자가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교회는 목회자에게, 목회자는 교회에게 무엇을 더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서로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 목사의 목회 동안 교회는 자녀들이 대학교를 다니고 유학을 갈 수 있도록 오랫동안 지원했고, 유 목사의 가정 역시 영적·물질적으로 교회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다.

 

유 목사는 선임-후임 목회자간 갈등 우려를 놓고서는 “담임목회자가 바뀌면 예배 스타일에서부터 정치와 행정 등 모든 부분이 다 달라진다”며 “소신껏,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게 울타리가 돼 줄 생각”이라고 말해 힘을 실어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까지는 일단 교회 주일예배에 출석할 예정인데, (계속 나오는게 좋을지도) 찬찬히 생각해보겠다”고도 했다.

 

실제로 유 목사는 ‘간섭’, ‘참견’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조 목사의 새로운 목회를 적극 돕고 있다. 6년 전 교회학교 모임 장소 마련을 위해 오랜 기간 모아놓은 헌금을 청년들의 유럽 비전트립에 사용하려 할 때도, 지난해 청년부가 ‘찾아가는 예배’를 슬로건으로 근처 영화관을 빌려 6개월간 예배드리려 할 때도 유 목사는 장로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솔직히 저도 잘 이해가 안 됐지만, 목회자가 하고 싶은 걸 못하면 안 된다고 당회원들을 설득했지요.”

 

“우리 조 목사는 설교도 잘 하고, 글도 잘 쓴다. 한국교회의 재목으로 기대해 달라”고 연신 강조한 유 목사는 후임 목사에게 조언할 것이 없느냐고 하자 “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오래 공부한 만큼 이론과 현실이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면서도 “조 목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 잘 해 나갈 것”이라고 믿음을 표시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가장낮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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