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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목회처신법

[스크랩] 목회자의 영적 침체, 어떻게 할 것인가?/강준민 목사

(목회자의 영적 침체와 자기 관리)

                         강준민┃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

나는 1989년 2월 5일 로고스교회를 개척한 후에 혹독한 영적 침체를 경험했다. 내게 있어서 영적 침체는 잠시 지나가는 소낙비와 같은 경험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동안 나를 무척 아프게 했던 경험이었다. 나를 쓰러뜨리기 위해 찾아 왔던 고통이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침체는 나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한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의 영적 침체에 관한 글을 부탁 받은 후에 많은 시간동안 글 쓰기를 머뭇거리는 자신을 보았다. 그 이유는 내가 목회자로서 경험했던 영적 침체를 다시 상기하는 것조차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영적 침체 중에 불렀던 찬송가마저도 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놀랄 때가 있다. 그때 불렀던 찬송을 다시 부르노라면 영적 침체 중에 경험했던 아픔이 재연되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고난을 혹독하게 경험한 사람은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난 중에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그만큼 고난의 아픔이 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사명임을 알기에 나와 같이 영적 침체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특별히 이 글은 개척교회를 시작하거나 개척교회를 하면서 영적 침체 중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영적 침체를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예방의 차원에서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개척교회를 시작한 지 정확히 4개월이 지나서 나는 영적 침체로 쓰러졌다. 그 당시 미국교회를 빌려서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우리 교회 예배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 미국교회와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 오전에는 미국교회에서 영어로 예배를 드리곤 했다. 정확히 1989년 6월 13일에 미국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가슴이 답답하면서 숨이 막히는 것을 경험했다. 두려움이 엄습해 오면서 절망감이 찾아왔다. 나는 예배 중에 밖으로 뛰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창백해진 얼굴을 한 채 쓰러져 있었다. 미국교회 교인 몇 사람이 따라 나왔다. 그 중에 한 분이 남자 간호원이어서 쓰러진 내 곁에서 상태를 점검해 주었다. 가슴은 뛰고, 손에는 식은땀이 났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찾아 왔다. 건네주는 포도 쥬스를 마셨다. 무엇인가 마셔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날 예배를 그 당시 같이 동역 했던 이현수 목사님께 부탁하고 나는 카이저 병원으로 갔다. 예배만 부탁한 것이 아니라 가족까지 부탁을 했다. 그 의미는 죽음이 곁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 보았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육체적으로 나타난 것만 가지고는 나의 문제를 찾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내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독한 싸움뿐이었다.

영적 침체가 찾아 왔을 때 내게 나타난 현상은 다양했다. 첫째는 믿음을 상실했다.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역설적인 확신이 찾아왔다. 하나님도, 의사도 나를 도울 수 없고, 나를 가장 귀히 여기는 어머님의 손길도 나를 도울 수 없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영적 믿음은 뒤로하고 자연적인 믿음마저도 상실했던 것이다.

둘째는 의욕을 상실했다. 내 안에 있던 모든 의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에 유학 와서 공부를 마친 후에 무엇인가를 성취해 보고 싶었던 열망이 사라졌다. 그토록 좋아하던 책들을 모두 덤프 트럭에 담아 버리고 싶었다. 식욕, 성욕, 성취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의 소원이 사라진 것이다. 소원과 함께 소망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셋째는 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현실이긴 했지만 죽고 싶었다. 자살이 죄가 아니라면 자살하고 싶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엑셀레터를 밟고 싶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로 위험한 생각이 찾아 왔던 것이다.

넷째는 무력감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기력이 쇠진한 것을 느꼈다.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다. 자신감은 능력에서 온다. 그런데 무력감으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한 것이다.

다섯째는 정체성의 혼돈이 찾아왔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누구냐”는 질문을 심각하게 시작한 것이다. 영적 침체로 쓰러져서 개척한 교회를 그만 둔다면, 그렇다면 나는 누구냐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목사라는 신분으로 지탱해 왔고, 공부하고 있다는 학생의 신분으로 지탱해 왔는데 그 모든 것을 놓아 버린다면 나는 누구냐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개척한 교회를 내려놓고, 목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가슴에 품었던 큰 꿈도 내려놓는다면 나는 누구냐는 질문이 엄습해 온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 가장 혹독한 시험은 정체성의 시험이었다. 마귀는 세 번다 “만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예수님께 의혹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세 번 중에 두 번은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정체성을 흔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여섯째는 모든 세상이 어둡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을 상실했다. 목회에 관한 긍정적인 안목을 상실했다. 모든 것이 어둡고, 부정적이고, 힘들게만 보였다. 핍절의식, 실패의식, 절망의식, 불가능의식, 피해의식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염려와 두려움이 시시때때로 찾아 왔다. 사람들이 조롱하고 비난하는 음성이 들려 오기 시작했다. 교회 개척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세상이 문제였다. 내 안에 있는 영혼의 창이 맑지 못함으로 모든 세상이 어둡게만 보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의 내면은 어두웠고, 나의 내면의 대화는 너무나 부정적이었다.

일곱째는 생각의 초점이 흐려졌다. 스트레스란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데서 생긴다.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일어나면서 짐이 무겁게 느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 스트레스다. 만약에 생각이 분명하고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스트레스는 쉽게 극복된다. 영적 침체는 생각의 초점을 흐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욱 나의 목회의 짐이 무겁게 느껴졌다.

여덟째는 몸이 연약해 지면서 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영적 침체를 통과할 때 받은 염려라는 괴물 때문이었다. 염려가 찾아오면서 두려움이 일어났다. 염려가 찾아오면서 믿음이 약해졌다. 염려가 찾아오면서 심장이 뛰고, 손이 차가워지면서 식은땀이 났다. 생각에 따라 육체가 급격하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홉째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영적 침체를 통과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다. 특별히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개척을 반대했던 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다. 내게 일어난 영적 침체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느끼는 것보다 사람들을 탓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가장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그때에 오직 홀로 있기를 원했다. 그런데 더 괴로웠던 것은 홀로 있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이다. 영적 침체를 통과하기 전에는 홀로 있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영적 침체 중에 있을 때 홀로 있음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홀로 있는 동안에 어두운 생각들이 나를 찾아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무서운 시련은 사명감을 상실한 것이었다. 목회자는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는다. 사명감이 투철할 때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사명감은 우리를 고고하게 만든다. 환경을 초월하게 만들고 죽음마저도 극복하게 만든다. 바울은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라면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았다(행 20:24). 그런데 나는 영적 침체로 사명감을 상실하면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졌던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생명 거두기를 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영적 침체의 원인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알면 해결책을 찾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경험을 결코 절대화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나누는 영적 침체의 원인은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많은 학습을 통해 배우게 된 공통분모임을 밝히고 싶다. 개척교회 목회자의 영적 침체의 원인은 다양했다.

첫째는 꿈과 현실의 차이 때문이었다. 큰 꿈을 가지고 개척교회를 시작했는데 현실은 너무나 암담한 것이었다. 교회만 시작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1988년 12월 18일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두 딸을 앉혀 놓고 교회 개척을 선포한 이래로 1월 중순에 가서야 첫 신자를 얻었다. 동역하기로 한 이현수목사님 가족, 그리고 1년 동안만 도와주겠다고 찾아온 장로님 가족과 함께 시작된 교회 개척은 초라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방문객과 위로객들이 찾아오더니 개척한 해 6월이 되면서 그 발길이 점점 끊어지면서 좌절감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꿈이 크면 기대도 크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실망이 크면 분노가 일어나고, 분노가 깊어지면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성경은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잠 14:12)라고 말씀한다.

둘째는 철저한 준비의 부족 때문이었다. 32살의 나이에 이민 교회를 개척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민 목회현장은 열악하다. 마치 선교지와 같은 곳이 이민 목회 현장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준비되어야 이민목회를 잘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모든 면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설교 한편을 준비하는데 30시간 이상이 걸렸다. 내 영혼이 고갈된 상태에서 주기만을 힘쓰면서 탈진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는 자기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영적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사실 내 자신을 잘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생각을 잘 관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란 생각관리이다. 생각관리가 곧 마음관리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을 관리하는 생각을 잘 관리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육체가 상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마음이 상하는 것이다. 잠언 18장 14절에 보면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고 말씀한다.

자기 관리는 곧 시간관리에서 비롯된다. 시간관리는 우선순위관리이다. 우선순위관리란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관리란 인생관리다. 시간관리를 잘 하는 사람은 인생관리를 잘하고,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넷째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것 중에 하나가 인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다. 인간 관계의 갈등이 깊어지면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탈진 현상이 나타난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겪는 고통 중에 하나는 인간 관계의 갈등에서 기인하는 것이 많다. 개척교회를 찾아오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은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조심스럽지만 이민 교회 현실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큰 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분들, 안수집사나 장로 직분을 받을 수가 없는 분들 가운데 개척교회를 찾아오는 분들이 상당히 있다. 그들 중 많은 분들이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을 때 찾아온 사람들처럼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임을 알 수 있다(삼상 22:2). 그렇기 때문에 개척교회는 인간 관계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 많다. 작은 문제가 커지고, 작은 갈등이 큰 이슈로 등장하는 것을 본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나는 갈등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말 한 마디에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주는 한 마디 때문에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할 때도 있었다.

다섯째는 인생 전체를 함께 보는 시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목회자는 어떤 문제든지 인생 전체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영원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인생의 사건을 보아야 한다. 어떤 사건을 인생 전체의 시각에서 보게 되면 사건이 새롭게 해석된다.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우리는 사건보다는 사건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영적 침체를 목회자가 통과해야 할 하나의 과정으로 알고 있었다면 조금 더 쉽게 통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나친 자기 연민 속에서 영적 침체를 너무 큰 문제로 부각시켰던 것이다.

여섯째는 영적 침체를 통해 나를 깨뜨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지 못한 데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편안함에 관심이 있지 않으셨다. 나의 성숙에 관심이 있으셨다. 영적 침체를 통해 하나님은 나를 깨뜨려 나를 새롭게 만드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고 나의 영적 침체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마저도 선용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다.

일곱째는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리를 배우고, 원리를 터득하고, 원리중심으로 목회하기를 원했다. 존재의 넉넉함을 중요하게 여겼고, 인격적인 성숙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았다. 그런데 내게 부족했던 것은 구체적인 삶의 기술과 방법이었다. 목회자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무조건 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표현 중에 하나는 “영적 전쟁”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영적 전쟁 중에 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사단과의 싸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가르치지 못했다.

사단이 생각을 따라 역사 한다면 생각을 어떻게 선택하고, 생각을 어떻게 관리하는 가를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영적 침체를 통과하면서 나는 질문해 보았다. “누가 내게 생각의 중요성과 생각을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가?” 나는 어릴 적부터 “무조건 믿어라. 덮어놓고 믿어라. 무조건 기도하면 해결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정작 어려운 시련을 통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 분들을 많이 만나 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분별력이었다. 나는 목회자가 경험하고 있는 영적 침체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지혜가 부족했다. 그것이 영적 전쟁의 문제인지, 육체적인 문제인지, 감정의 문제인지, 생각의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인간 관계의 갈등에서 오는 문제인지를 분별하지 못했다. 영적 침체의 현상은 같지만 원인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원인을 치유하는 것이다. 뿌리를 치유하는 것이다. 핵심을 간파하는 것이다. 그 때 중요한 것은 분별력이다. 분별력을 소유하는 것이 살아가는 기술을 터득하는 데 가장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목회자의 영적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관리의 원리와 기술이 무엇일까 질문하게 된다.

첫째, 영적 침체를 목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라. 밀물이 있고 썰물이 있는 것처럼, 낮이 있고 밤이 있는 것처럼 침체도 삶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영적 침체는 목회자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을 보라. 모세, 엘리야, 다윗, 세례 요한, 예수님까지도 영적 침체를 통과해야만 했다. 자기 관리의 기술 중에 하나는 어느 정도의 문제는 안고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문제가 기회임을 알아야 한다. 문제 속에 비전이 있고, 문제 속에 해결책의 씨앗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많은 문제는 우리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은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늘 기억하라. 문제와 갈등을 성장의 기회로 삼도록 자신을 훈련하라.

둘째, 깊은 묵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도록 하라. 내게 있어서 묵상만큼 유익을 주는 자기 관리가 없었다. 명상을 통해 자신을 관찰하고, 묵상을 통해 내면을 말씀으로 채우는 삶을 살았다. 많은 문제가 깨달음의 결여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깨달음을 통해 영적 침체의 원인과 해결책을 얻게 된다. 깨달음을 통해 고통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깨달음을 통해 전체의 시각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깨달음을 통해 분별력을 얻게 된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묵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영성 훈련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 묵상하는 훈련을 구체적으로 안내해 준다. 깊은 묵상과 평강의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호흡법을 배우고, 집중함으로 깨달음의 상태에 들어가는 묵상 훈련을 터득하라.

셋째,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지혜를 얻도록 하라. 영적 침체를 통과하면서 나는 마음이 심히 아픈 것을 경험했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들었던 것이 마음의 고통이었다. 마음에도 양식이 있다. 마음은 양면성을 가졌다.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요(렘 17:9), 또한 생명의 근원이 담겨 있는 것이 마음이다(잠 4:23).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을 정원처럼 가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마음에 양식을 공급하도록 하라. 마음은 무엇을 보고, 읽고, 듣고,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글들을 읽도록 하라. 목회자는 영의 세계와 함께 의식, 무의식, 그리고 초의식의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영적 침체를 통해 누리게 된 축복은 영적 침체를 통과하면서 마음의 세계를 깊이 연구하게 된 것이다.

넷째, 꿈을 성취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도록 하라. 하나님은 목회자의 가슴속에 꿈을 주셨다. 꿈이 없는 목회자는 없다. 문제는 그 꿈을 성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원리와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이치가 있고 법칙이 있다. 꿈을 성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꿈을 성취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길은 책을 통해서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꿈에 관한 책을 읽으라.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전기를 읽으라. 훌륭한 인물들의 자서전을 읽으라. 나는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도전과 위로를 받았다. 그들의 이상을 나의 이상으로 받아 들였고, 그들이 통과했던 고난의 강과 정복해야 했던 장애물의 산을 보면서 나의 문제가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째, 저수지와 같은 목회자가 되도록 하라. 목회자가 영적 침체를 경험하는 것은 충만하지 못해서이다. 쉽게 고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저수지와 같이 충만해지면 고갈을 쉽게 경험하지 않는다. 저수지와 같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습을 해야 한다. 학습을 통해 실력을 쌓도록 해야 한다. 개척교회 목회자의 가장 큰 문제는 조급함이다. 하루아침에 급성장하는 교회를 세우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개척교회를 성장시키기 전에 개척교회 목회자를 성장시키신다. 하나님은 고난과 고통을 통해, 영적 침체를 통해 목회자를 먼저 성장시키신다. 개척교회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열등의식이다. 비교의식이다. 경쟁의식이다. 이 세 가지 의식이 개척교회 목회자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계속해서 실력을 쌓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는 양을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는 사람이다(렘 3:15).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호 4:6). 영적 침체를 통과하면서 나는 학습하는 데 주력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학습했다. 몸과 마음의 관계, 마음과 영혼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간 관계의 갈등과 해결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적 침체를 통과하지 않았으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진리를 학습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학습은 내게 필요한 지식을 제공했다. 설교에 탁월함을 더해 주었고, 많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책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준비된 자에게 기회를 주신다. 그리고 그 준비는 목회자 자신이 해야 한다. 우리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앞길을 개척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 자신이 해야 한다.

21세기는 더 이상 학위시대가 아니다. 학습시대이다. 학습혁명시대이다. 학습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실력을 쌓으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다. 선택하고 결단하면 얼마든지 실력을 쌓을 수가 있다. 문제는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데 있다. 꾸준하게 성실하게 안하는 데 문제가 있다. 끝까지 안하는 데 문제가 있다. 목회자는 학습할 때 자신감을 갖게 된다. 여유를 갖게 된다. 재충전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큰 꿈을 갖되 작은 일에 충성하라.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그 길이 깊은 영성의 길이며, 탁월함에 이르는 길이다.

여섯째, 목적지향적인 삶을 살도록 하라. 인간은 목적지향적인 삶을 살 때 가장 역동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예수님도 목적지향적인 삶을 사셨다. 목적은 삶의 방향을 의미한다. 인생의 끝을 먼저 보면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방황하지 않는다. 목적지향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일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살도록 해야 한다. 목회자의 자기 관리 중에 하나는 매일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글을 씀으로서 자신을 관리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글을 쓰면서 나의 세계를 드러낸다. 글을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다. 사람들이 내게 왜 책을 계속해서 출판하느냐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목회자로서 자신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글을 쓸 때 나의 생각은 명백해 진다. 본질을 추구하게 된다. 감정을 다스리게 된다. 잘못된 동기를 발견하고 회개하게 된다. 불순물을 제거하게 된다. 자전거는 멈추면 쓰러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목적 지향적인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잠시 안식하라. 그러나 너무 쉬려고 하지 말라. 안식해야 한다면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재충전의 시간으로 삼도록 하라.

일곱째,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하라. 목회자에게 기본은 기도와 말씀이다. 성령충만한 삶이다. 감사하고 용서하는 삶이다. 우리 마음에 상처를 주고 침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용서하라. 그들을 무조건 사랑하도록 하라. 기본기에 충실한 삶이란 초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초심이란 늘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며 배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초일심이며, 항상심이다. 동심을 갖고, 농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깊은 영성은 기본기에 충실하는 데 있다.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린 삶을 사는 데 있다(골 2:7). 뿌리를 잘 돌보면 나무는 절로 건강하게 자라게 되어 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여덟째, 균형 잡힌 목회자가 되도록 하라. 침체는 균형을 상실할 때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침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나타난 현상만이 아니라 상실된 균형감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전인 치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질병을 치유하지 말고 환자를 치유하라는 의사들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 목회자는 목사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육체와 마음과 영혼을 소유한 인간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결코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며 한계를 가진 인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삶을 살도록 하라. 목회자의 아름다움은 사명을 위해 전심전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를 가지고 살도록 하라. 목숨을 바쳐 목회를 한다면 불가능이 없을 것이다.

물론 목회자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목회라는 것이 열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로서 탁월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혜가 있어야 한다.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말씀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통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명을 완수하는 일과 연결되어야 한다.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면 목회자로서 내가 경험했던 영적 침체는 커다란 시련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영적 침체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었다. 나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었다. 영적 침체를 통해 나는 더욱 성장했고,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영적 침체를 통과하고 있는 목회자는 영적 침체를 스승으로 삼아 성장하도록 하라. 아직 영적 침체를 통과하지 않은 목회자는 영적 침체를 예방하도록 하라. 고통을 일부러 선택할 필요는 없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는 것이 지혜다. 에너지를 생산적인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경험을 직접할 필요는 없다. 간접 경험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그것도 축복이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이여, 힘을 내라. 하나님을 앙망하라.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신다(사 40:31).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사명감을 갖고 살라. 숫자에 노예가 되지 말라. 성공에 노예가 되지 말라. 재능과 은사와 장점을 따라 일하라.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으라. 성장 지향적인 교회보다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라. 교회를 키우려고 몸부림치기 전에 목회자 자신이 성장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기도하고 준비하고 기다리도록 하라. 때가 되면 더욱 요긴하게 사용하실 것이다. 꿈을 크게 갖되 현실 감각을 잃지 말라. 하나님이 큰 꿈을 주셨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라.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가 깊고, 큰 나무일수록 뿌리가 깊은 것처럼 큰 꿈을 가지고 교회를 개척했다면 깊은 골짜기를 사양치 말라. 인생에서 쉬운 것은 없다. 값진 것은 모두 값진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기억하라. 쉽게 결론을 내리지 말라. 결코 포기하지 말라. 실패자가 되는 것은 실패 때문이 아니다. 포기하기 때문이다. 최후에 웃는 자가 최후의 승리자임을 기억하라. 부디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님과 함께 정진하라.



강준민 서울신학대학을 나와 미국 아주사 태평양신학대학원(M. A., M. Div.)과 탈봇신학교(Th. M.), 풀러신학교(D. Min.)에서 공부를 했으며, 현재는 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지혜」, 「가슴 아픈 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행복」등 여러 권이 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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