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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창3:22~24)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창3:22~24)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지난 주일에 우리는 구원의 원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요소는 두 가지였습니다. 사람 편에서는 믿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대속의 은혜를 베푸셔야 했습니다. 이는 필히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창3: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본시 아담은 창2:23에서 자기 아내의 이름을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여기서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새롭게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하와가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아담은 자기와 자기 아내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때 그들에게는 자녀가 전연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하와도 그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때 그들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회개하고 다시금 믿음의 사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이때 그들이 믿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는 하나님이 사탄을 심판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사탄은 여자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으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여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탄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자에게서 그의 후손들이 태어날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이들 가운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탄에게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과 서로 원수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장차 여자의 후손인 “그”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며, 사탄은 단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실 것을 뜻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흔히들 창3:15 말씀을 가리켜서, “원시복음”(protoevangelium) 또는 “최초의 복음”(primus evangelium)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 말씀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성경에서 최초로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복음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고, 하와도 그 이름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대속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 결과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치마가 감추지 못했던 그들의 부끄러움이 비로소 가려질 수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기 위해서 짐승을 죽이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짐승을 대신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대속의 원리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대속의 원리에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은 구원받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영원한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을 지키시되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요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잃어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다시금 사탄에게 속아서 사탄의 종노릇을 하다가 결국 사탄과 같은 운명에 처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것도 끝까지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게 보장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처지를 아셨습니다(22절). 둘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키셨습니다(23절). 셋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끝까지 지키셨습니다(24절).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지키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의 복된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처지를 아셨습니다.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려는 욕망을 가졌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1) 사람이 선악을 알게 됨

오늘 본문 22절 상반부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우선 여기에서 하나님은 삼위일체론적 표현을 사용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 중 하나”라고 할 때의 “우리”는 삼위로 계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삼위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삼위일체론적 표현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삼위일체론적 표현이 맨 처음으로 사용된 경우는 언제였습니까? 천지창조의 여섯째 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였습니다.


창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은 한 분, 곧 일체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그러기에 여기서도 하나님이 홀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가리켜서 “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또한 삼위일체론적 표현입니다.

창1:26의 말씀과 같이, 본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선만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에덴 동산에서 선만을 알며, 선만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난 뒤에, 사람은 선과 함께 동시에 악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악을 아시는 것과 사람이 악을 아는 것은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악과는 전연 상관이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악을 아시는 것은 하나님 밖에 있는 악을 지각적으로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악을 아는 것은 이와는 다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악을 직접 행했습니다. 그 결과 악이 사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악을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해봅니다. 의사가 폐암에 걸린 환자를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때 의사도 폐암을 알고, 환자도 폐암을 압니다. 그러나 의사는 자기 몸 밖에 있는 폐암을 아는 것입니다. 반면에 환자는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온 폐암을 아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아시되, 악과는 전연 상관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지각적으로 아실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은 악을 행함으로, 악이 그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악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악이 사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죄와 악은 누룩과 같이 퍼져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그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악에 대한 충동과 욕망을 품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그와 같은 사실을 다 아셨습니다.


(2) 아담과 하와의 그릇된 욕망

오늘 본문 22절의 하반부 말씀입니다.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아담과 하와는 죄로 인해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살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품고 있는 그릇된 욕망을 아셨습니다.

에덴 동산 가운데에는 두 그루의 특이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 나무였습니다.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반대로 사람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생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선악과에 독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이 죽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죽게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벌을 받아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명 나무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열매 자체에 영생을 주는 특별한 DNA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지 않고 영생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본시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은 단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에덴 동산에서 한번도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죽음이 전연 없었기 때문에, 사람은 생명 나무의 열매를 구태여 먹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은 죽음이 어떠한 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이미 한번 죽음을 목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였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였습니다.

그때 짐승은 붉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거리며 죽어야 했습니다.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 광경이 참으로 끔찍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담과 하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음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끔찍한 죽음을 어떻게 하든지 피해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들 속에 있는 그릇된 욕망을 다 아셨습니다.

우리말 성경과는 달리, 히브리어 성경은 오늘 본문 말씀이 완전하게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도중에서 중단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직역하면 이와 같이 됩니다.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면 안 되니까...”

물론 우리는 그 뒤를 이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리라.”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는 이미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품은 생각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탄에게 속아서, 선악을 자의로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을 알게 된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불행해졌습니다. 그들은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늘 명심합시다. 그리해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을 풍성히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키셨습니다.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앞 절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사람을 내보내신 것도, 또한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1)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사람을 내보내심

왜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셨습니까? 그가 생명 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사람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사람이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살지 못하게 하셨습니까?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미 사람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수고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남자는 먹을 것을 위해서 얼굴에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여자는 자식을 낳기 위해서 수고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만일 사람이 타락한 상태 그대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영원토록 수고하며, 영원토록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축복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벌이요, 또 하나의 심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시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지옥입니다. 그곳에 타는 불은 영원토록 꺼지지 않습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습니다. 그곳에 빠진 사람은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이와 같이 영원한 불행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심

사람의 근원은 땅입니다. 왜냐하면 창2:7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땅을 갈게 된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타락한 사람에게 힘든 일을 주심으로, 그를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셨기 때문입니까? 물론 많은 범죄가 한가한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컨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을 때가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때 다윗은 한가로이 왕궁 옥상을 거닐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는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땅을 갈게 하신 것은 그에게 죄가 틈타지 못하도록 배려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깊이 생각하면, 여기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사람에게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람은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사람은 밭의 채소를 먹기 위해서 수고로이 땅을 갈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사람은 저주를 받은 땅이 내는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계속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요즘처럼 그 일을 20년이나 30년 정도하고 은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그의 평생에 수고해야 했습니다. 아담은 930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니 아담에게 100살, 200살은 요즘말로 하면 틴에이저 곧 십대에 불과했습니다.

그야말로 아담은 긴긴 세월 동안 고생해야 했습니다. 아담만 수고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와도 똑같이 수고해야 했습니다. 하와도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낳느라고 고생하고, 키우느라고 고생하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식사 때가 되면 가관이었을 것입니다. 흥부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은 비교도 안 되었을 것입니다. 수십 아니 수백 명이 떼거지로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아담과 하와로서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약과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얼마 가지 않아서 정말로 가슴아픈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들 가인이 또 다른 아들 아벨을 쳐죽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들의 고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의 오대 손인 라멕이 살인하는 것을 또 겪어야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후손들이 나중에 홍수로 심판을 받아야 할만큼 점점 악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땅에서의 수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육신의 장막을 벗은 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기쁨을 누리도록 예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삶의 고통을 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는 소망 가운데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사람을 내보내셨습니까? 그가 영원한 불행에 빠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셨습니까? 그가 저주를 받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사람을 내보내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 선하신 뜻으로 늘 지켜주십니다.


시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146: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도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에게 둡시다. 늘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우리의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내보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금 에덴 동산에 되돌아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조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영원한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을 지키시되 끝까지 지키셨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심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여기의 “그 사람”은 아담과 하와를 동시에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둘이 아니오, 한 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쫓아내셨다”라는 단어는 앞 절에 사용된 “내보내셨다”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를 주고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살았던 에덴 동산은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은 저주를 받은 땅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 스스로 에덴 동산에서 나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압적으로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들은 풍요로운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하물며 이제는 악이 그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려고 들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그들은 저주를 받은 땅에서 영원히 살면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흙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그들을 또 다른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고통이 전연 없는 곳입니다.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강압적으로 쫓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하늘 나라의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서, 그들이 이 땅에서 영원한 고통과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을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2)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심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대속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그들을 구원하셔서,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지키시기 위해서, 에덴 동산에서 그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은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시되 끝까지 지켜주시기 위한 특별한 조치였습니다. 

우선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타락한 후에도 에덴 동산이 한 동안 그대로 존속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이 언제 없어졌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에 의해서, 에덴 동산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에덴 동산에서 내어쫓긴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풍요로운 에덴 동산이 몹시도 그리웠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그들은 에덴 동산으로 쫓아가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에덴 동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어떠한 조치를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셨습니다. 여기서 그룹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이는 성경에서 천사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나오는 경우입니다.

겔28:14에 의하면, 타락해서 사탄이 된 천사장 루시퍼도 본래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룹은 천사들 가운데서도 장 급에 속하는 천사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룹들, 곧 천사장 급에 속하는 천사들을 두어서 에덴 동산을 단단히 지키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그룹들을 에덴 동산 동쪽에 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 동쪽으로 내어 쫓겼다는 사실과 아울러 에덴 동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에덴 동산의 동편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구약시대의 성막과 그 뒤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도 모두 그 입구가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아마도 에덴 동산의 입구가 동쪽에 있었다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연유했을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에덴 동산 입구에 그룹들을 두어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두루 도는 불 칼을 그곳에 두어서 또한 에덴 동산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어느 쪽에서도 감히 에덴 동산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처럼 철저하게 에덴 동산을 지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사람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영원한 불행에 빠지도록 내어버리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특별한 조치로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의 완벽한 환경에서도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저주받은 땅에 살면서, 타락한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그들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힘으로는 결단코 스스로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로 그들을 지키시되, 끝까지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대속의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우리의 모든 처지를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되 끝까지 지키십니다.

그러기에 무엇이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Nothing!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우리를 지키시되, 우리를 끝까지 지키셔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반드시 인도해주십니다.

그러기에 계2:7의 말씀과 같이, 장차 우리는 하나님의 낙원에서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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