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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님만 바라보세요/마14:22~33/2004년 8월 15일

예수님만 바라보세요.

마14:22~33

2004년 8월 15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14:26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설교: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 통치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애국투사들이 엄청난 피를 흘리며 독립운동을 했으나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간단하게 독립이 될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우리의 남북 통일동 그렇게 될줄 믿습니다. 통일만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든 방면에서 다 다른 남과 북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을까 염려 되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어느날 갑자기 간단하게 이루어질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 찬송가를 461장을 불렀습니다. 김활난 박사가 작사한 찬양으로 우리 민족의 캄캄한 앞날을 내다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찬송으로 만든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말하는 意圖, 核心을 잡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뭘 말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후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강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당신은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저물 때 떠난 제자들이 탄 배가 육지에서 한참 떨어진 상태에서 바람이 거슬려 풍랑이 일어나 여러 시간동안 제자들은 그 풍랑 속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기도하시던 주님이 기도를 마치시고 밤 4경쯤 바다 위를 걸으셔서 제자들에게 찾아 갑니다. 그때 그 바다는 엄청난 풍랑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위를 마치 육지처럼 걷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열심히 노를 젓다가 바다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바라보고는 유령인줄 알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 주님이 그들에게 “내니 두려워 말라” 말씀 하십니다. 아마도 제자들 중에는 이젠 살아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는 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임을 알아보고 가만있지 않습니다. 소리쳐 외칩니다.

“주님 만일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그러자 주님이 “오라” 하십니다. 배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갑니다. 그러나 걷다보니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다가 시퍼렇습니다. 또 무섭게 부는 바람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러자 점점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주님이 얼른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 하시며 책망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배에 함께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가지 질문을 가져야 합니다.


1. 왜 주님은 4경까지 오지 않으시고 기다리셨을까?

2. 왜 예수님은 물위로 걸어 오셨을까?

3. 왜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 갔을까?

4. 왜 주님이 배에 오르시자마자 바람이 그쳤을까?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분명하고도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이 뭡니까?

단순히 겉으로 들어난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면 물위로 걷지 못하는 사람은 다 믿음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앞에는 오병이어의 이야깁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막 재촉하여 무리들과 分離시켜 배를 타고 건너가게 허십니다. 왜요? 오병이어의 기적의 本質은 떡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으로 이 땅에 오신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것은 생각지 않고 이제 먹고사는 문제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들의 가슴에는 이제 살판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자기들의 주님이라는 사실에 한껏 마음이 들떠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런 제자들을 군중들과 분리 시켰습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그들이 교만해 질것이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오병이어의 意圖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 먹인다”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만물의 창조주이시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마음에는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이제 먹고 사는 문제는 다 해결 되었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건너편으로 보냈는데 가는 도중 십리도 못가 풍랑에 꼼짝 달싹 못하는 것입니다.


1. 왜 주님이 재촉하여 보냈는데 풍랑이 닥쳤습니까?

그리고 왜 예수님은 밤 사경이 되도록 기도하시며 계신 후에 왜 사경이 되서나 걸어서 오신 것입니까? 

여기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바다에서 고생하도록 일부러 놓아두십니다. 그 바다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제자들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는 바다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그곳에 갇혀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의도가 뭡니까? 자신들이 얼마나 한계가 있는 자들인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베드로 요한 안드레 야고보의 “專功分野”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평생 먹고 살던 전공분야에서 꼼짝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은 헛된 생각으로 驕慢한 모습을 갖는 것을 容納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풍랑 속에 그냥 두고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해지면 우리를 “전공분야”에서 손들게 만듭니다. 자신 있다고 여기는 분야, 이 분야는 내 손안에 있소이다, 하는 그 분야에서 손들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한계를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교육에 자신이 있는 교사들은 자식 교육문제로, 健康을 자신하는 의사는 건강문제로, .....

 

대체로 풍랑이 한두시간 일어나는 것은 가끔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저물 때 시작된 풍랑에 붙들려 새벽 3시에서 5시사이인 사경까지 꼼짝 못하게 하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손들 때까지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자지 전공분야라 7~8시간 버텼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오래 기다립니다. 빨리 손을 드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내 교만을 버리고 겸손히 주를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때 주님은 그들이 헤매는 그 바다 위를 걸어오십니다. 걸어오시는 그 모습속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겁니다. “너희들이 헤매는 이 바다, 나는 걸어올 수 있다. 창조한 자는 바로 나다”라는 시청각 교육입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말을 새롭게 의역하면 “창조주인 내가 왔으니 두려워 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시 힘들어하며 헤매시는 분이 계십니까?

혹시 그 헤매는 분야가 전공분야라고 생각하는 분야입니까?

그런데 그토록 오래 동안 헤매고 있는데 돕는 자가 없습니까?

세상을 바라보지 마세요.

사람을 바라보지 마세요.

주님을 바라보세요. 주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살려주세요, 나도 도와주세요. 그럴 때 주님은 놀라운 모습으로 찾아와 말씀 하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주님은 여러분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손을 들고 give up(기브업) 하느냐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신 의도는 뭡니까?

왜 예수님은 배를 타고 오지 않으셨을까? 어떻게 그 엄청난 풍랑을 이기고 걸어오셨을까? 예전에 주님은 여러 차례 배를 타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위를 걸어오십니다. 이유가 뭡니까? 예수님은 천지 만물을 다스리고 통제하시는 절대 주권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사건에서 그것을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때는 전혀 생각도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한번 만물의 주권자이시며 통치자이심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물 위로 어떻게 걸을 수 있냐구요? 중력의 법칙과 부력의 법칙을 어떻게 超越하느냐구요? 그러니까 전능자이시구요, 그러니까 창조주십니다. 어떤 분은 지금도 물위를 걸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스티로폴로 물위에 뜨는 신발을 만들어 신고 다닌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걸으심은 어떤 도구를 이용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이 사실을 신화로 믿고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것도 못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것도 못하면 어떻게 죽었다가 다시 살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절대 주권의 능력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한순간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특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 찾아오십니다. 오셔서 내가 메시야라고, 믿으라고 말씀하심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3. 왜 베드로는 물위로 걷다가 빠져 들어간 것일까요?

베드로는 모험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물위로 걸으시는 장면이 너무 신기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소리칩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우리 주님은 이런 모험을 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세상에서 물위로 걸어본 사람은 아마도 베드로가 唯一無二할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나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베드로밖에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모험입니다.

여러분은 걸을 수 있을까요? 그는 주님이 허락하시자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님이 명하여 걷기는 했는데 물을 내려다보니 두려움이 임합니다. 그러자 서서히 몸이 물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자 소리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결국 주님이 손을 잡아 구해주십니다.


왜 베드로는 물에 빠진 것입니까? 

1)바다, 즉 환경을 쳐다보자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2)그러자 의심이 생긴 것입니다. 주님이 무엇이라 하십니까?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環境을 바라보고 形便을 내다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나는 못해, 나는 안돼, 어쩌나? 그러다보니 의심이 생깁니다. 결국 의심은 믿음을 갉아먹는 도구가 됩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이유는 믿음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물위로 걷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이 걸으라 하면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여주기 위해 걸으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의심치 말고 믿으라, 세상을 바라보지 말라, 환경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할 수없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라” 그러면 놀라운 능력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어찌 보면 돈 문제요, 사람문제요, 환경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어찌 보면 運이 안 따라 주어 그런 것 같고 어찌 보면 실력이 안 따라주어 그런 것 같습니다. 子息문제, 어찌 보면 나라 敎育이 제대로 안된 탓이고 經濟문제, 정치가 바로 안되서 그런 것 같고 政治 문제, 어찌 보면 정치인들의 哲學이 없어서 그런 것 같고 ‘유영철’이 같은 사람이 생기는 문제는 윤리교육, 인성교육이 부재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뿐입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믿음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이 없으니 힘이 있으면 정의고 힘이 없으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하든지 힘을 가지려고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이 가득하니 죄를 만들고 죄가 세상 가득해지고 결국 이것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서면 문제의 해결책이 보입니다. 믿음으로 서면 죄를 용서 받고 믿음으로 서면 욕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면 기적을 체험합니다. 믿음으로 의지하면 물위를 걷게 되는 듯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우심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시고 계십니까?

혹시 내가 딛고 있는 세상만을 바라보고 두려워 떨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곧바로 의심이 생기고 세상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세요.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며 찾아오신 주님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 손을 잡고 배에 오르면 우리 문제는 순식간에 해결됩니다. 


4.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마자 바람이 멈춘 이유는 뭡니까?

그것도 예수님이 천지를 주관하시는 통치자이심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며 그를 영접하시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분은 내안에 있어 내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여러분의 인생길에 주인으로 영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사업에 예수님을 모셔 들이시면 주님은 놀랍게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온전히 믿도록 주님은 지금도 부단히 우리에게 도전을 주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그것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제대로 고백되어지면 우리 신앙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또 이것만 제대로 믿게 되면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수시로 맛보며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십니까? 예수를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실 수 있나요?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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