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러지 말자
고전10:1~12
2004년 8월 22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0: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10: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10: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10: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0:12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설교:
사람들은 오늘의 시대를 末世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말세 중에서도 말세입니다. 웬고하니 성경에 예언된 말세의 증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럭저럭 살만한 세상이라고 보십니까? 그렇지요, 돈 만 있으면 살만한 세상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껍데기만 보았을 때 입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하나님의 震怒의 심판이 문 앞에 와있는 시대임을 아셔야 합니다. 왜요? 온갖 罪惡이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노아 때처럼,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성 때 보다 더 무서운 불의 심판이 우리 눈앞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대를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시대,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는 시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 않는 시대가 오늘의 시대입니다. 마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그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대입니다.
봉독한 말씀을 보세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악행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러기에 온갖 문제가 교회안에도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한 예를 들어 그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모세의 인도를 받아 나올 때 그들은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이것은 洗禮를 의미합니다. 모두 하늘로부터 임하는 만나를 양식으로 먹었고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신령한 음식이며 신령한 음료를 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구원받은 백성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그들의 다수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왜 하나님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구원한 이스라엘 백성들 다수를 광야에서 명망하게 했을까요? 여기에는 그렇게 심판을 받을 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만한 일들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 세 가지로 지적하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
1. 우상숭배를 하다 망했습니다. (7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 애굽은 ‘바로’가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바로’란 “파라오”라는 말인데 애굽의 역대 왕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입니다. 그 뜻은 “태양신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러기에 바로는 “인간 가운데 거하는 神의 존재”였으며 “우주의 신과 인간들의 중재자”로 당대의 사람들에게 숭배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우상의 땅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려고 모세를 통해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그토록 하지 말라고 하는 우상숭배를 합니다.
인간의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며 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우상 숭배는 그 어떤 형태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심각한 것은 바로 이 偶像崇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震怒케 하는 어리석은 짓이며 무서운 審判이 임하는 道具입니다.
출애굽기 20:4절 이하를 보면 “20: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우상숭배를 싫어하실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세상의 피조물로 형상화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수백 곳에서 우상숭배에 대해 경고하고 심판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6: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신명기4:23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어버려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아무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지 말라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4:25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하면 4:26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부분에서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고 그럼에도 그렇게 할 때 반드시 멸망시키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당할 것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막을 것입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그 진노와 심판을 막을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회개하고 모든 우상을 버리는 것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를 보세요. 유명 名山에는 다 佛像이 세워져 있습니다. 좀 괜찮다 하는 풍경이 있는 곳에는 寺刹들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불상이 세워져 있고 엄청난 백성들이 그를 향해 복을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산과 계곡에 각종의 우상제단들이 만들어져 전국토를 우상 제단화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보면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政治가 복잡하고 經濟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로서 영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 전 분야에 정치, 경제, 문화뿐 아니라 교육과 언론에 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偶像崇拜입입니다.
단군신상이 전국 초등학교에 369개나 세워지는 것을 봐도 그렇고, 신문마다 ‘운세보기’나 ‘오늘의 행운’ 난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텔레비전을 보십시오. ‘전통문화’라는 이름으로 살풀이, 마당놀이, 그리고 집신 밟기 등 무당과 굿판을 벌입니다.
또 우상숭배의 행위들이 文化財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개발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런 사람들 중에는 “인간문화재”라는 칭호를 붙여 硏究費를 稅金에서 주면서 조장시키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또 젊은이들의 音樂을 보십시오. 뉴 에이지 음악이나 사탄의 음악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것이 우상숭배요,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러한 우상 문화나 사탄 문화에 대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타종교를 容納하고 共存하여야 한다며 손을 잡아야 한다고 , 그래야 기독교가 산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는 실정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망합니다. 분명 하나님이 망하게 하십니다.
요즘 올림픽이 벌어지고 있는 아테네는 사도행전18장에 나오는 “아덴”인데 그 도시는 哲學과 偶像의 도시였습니다.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도중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우상의 형상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바울은 그 마음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아덴에 세워진 우상들을 보고 분노하는 바울과 우리 사이에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그 우상들을 부수거나 깨트리지 않았으나 아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물론 아덴 사람들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관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당한 바울, 늠늠한 바울, 겁 없는 바울을 상상해 보십시오. 철학과 우상에 익숙한 아덴 사람들과 유창하게 논쟁하는 바울에게서 놀라운 성령의 능력이 느껴집니다.
요즘 저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우승을 할 때마다 무릎 꿇고 손 모으고 기도하는 장면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낍니다. 방송 매스컴에서 그 땅을 “신들의 땅”이라 부르고 “승리의 여신”이 미소를 지었다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우리 기독교인 선수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땅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공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할지라도 담대하게 기독교인임을 증거하며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르다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우상을 멀리하고 오히려 담대하게 복음을 확실하게 전하는 증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이민족과 나라를 살리는 길이며 후손과 가정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절대로 우상숭배하지 맙시다. 아멘?
2. 姦淫하다 망했습니다. (8절)
여기서 말하는 간음은 不道德한 性行爲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짝 지워준 정상정인 夫婦관계 외에 얼마나 많은 부도덕한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성적 타락은 인류역사 이래로 亡하는 秘法입니다. 노아홍수가 왜 생겼습니까?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가 뭡니까? 로마가 망한 이유가 뭡니까? 전부 성적 타락이 가져다 준 結果입니다. 聖經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간략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출20:14 간음하지 말지니라” 더 이상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치 않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을 보세요. 동성애도 심각한 성적 간음이고 타락입니다. 유럽의 독일은 유명정치인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고백하고 떳떳하게 밝히는 시대입니다. 또 그것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호주의 시드니는 도시인구의 10%인 40만명이 동성애자라고 합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나라는 좀 낫다구요? 아닙니다. 우리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어느 날 여러분의 아들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 결혼하겠다고 할지 모릅니다. 어느 날 여러분 자식이 동성애를 하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날 여러분이 충격을 기절하게 되고 좀 심하면 그날 하늘나라 가는 날이 될지도 모릅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 음란 채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 또한 무서운 간음이고 남편이나 아내를 둔 사람이 애인을 두고 交際하는 것조차도 간음입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안 할텐데,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그것이 마귀의 계략인줄 알텐데 그것을 모르니 안타깝습니다.
마찬가지, 혹 이 자리에 부도덕한 짓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들으시기 바랍니다. 정신 차리세요. 여러분 자식이, 여러분 사위가, 그런 짓 하면 좋습니까? 어느 날 여러분 사위가 “나 애인이 생겼소, 나는 당신 딸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겠소” 한다면 어쩔 것입니까? 달려가서 다리 몽댕이를 부러트려 놓는 다구요? 그 짓을 누가 했는데요?
간음은 순간은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그 결과는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내 앞길을 망치는 첩경이고, 자식의 장래를 망치는 장애물입니다.
그럼에도 텔레비전이나 영화, 비디오에서는 그럴듯하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을 하고 멋있을 것처럼, 한번쯤 해볼만한 것으로 위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고도 전략입니다.
8절을 다같이 다시 한번 읽습니다.
“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하루에 몇 명이 죽었다구요? 이만삼천명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토록 무섭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맙시다! 아멘?
3. 주를 시험하다가 망했습니다.(9~10절)
여기서 주를 시험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들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민수기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그때 모세가 중보 기도하여 놋 뱀을 장대를 매달고 그 뱀을 쳐다보면 산다고 선포했으나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결국 망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지자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시비를 벌입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지자 하나님이 살았느냐 죽었느냐 하며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혹시나 여러분 중에 혹이라도, 혹은 장난이라도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아?” 또는 “하나님이 있기는 뭐가 있어, 있으면 왜 이렇게 놔두시는 거야” 라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를 가지고 원망불평하면 절대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홍해를 기적으로 건넜습니다. 바로의 군대의 추격에서 기적같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물이 없다고 원망불평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무서운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똑같습니다.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체험했으면서도 어떤 때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불신하고 원망 불평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열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또 뱀에게 무려 죽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과 주의 종을 향하여 시험하고 원망하다 망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주의 종을 향해 원망하면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망합니다.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저들처럼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경고의 음성을 듣고 죄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11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최후 통첩인줄 알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성경의 교훈처럼 망하게 됩니다.
11절을 보세요. 저희의 당한일이 거울이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로 기록하였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너도 이처럼 망할 수 있으나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2)교만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12절)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괜찮아 나는 끄떡없어 하는 사람입니다. 또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자만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늘 영적으로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늘 조심해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상숭배에 동참하게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으로 간음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며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할래했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했습니다. 엉겁결에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 가집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선줄로 생각할 때 깨어 있어 기도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 간음, 원망불평과 시험을 하지 맙시다.
세상이 다 그리로 갈지라도 우리만큼은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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