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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요 5:19-29)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요 5:19-29)

 

   노벨상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입니다. 모두가 받고 싶어 하고 또 수상자들은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습니다. 이 상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이 상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사업가인 알프레드 노벨에 의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유명해졌고, 또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용으로 사용되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형인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는데, 프랑스의 한 신문이 실수로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기사를 실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는 기사가 실린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본 노벨은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벨은 마음속으로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번 돈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써야 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895년 11월 27일 유서를 작성했고, 자신의 유산 중 94%인 3천 1백만 SEK (340만 유로, 4백4십만 달러)를 노벨상 설립을 위해 남겼던 것입니다.

   노벨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자기가 정해 놓은 인생의 목적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처음 부고기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자기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막 살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들여다보신 일이 있습니까? 객관적인 눈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성찰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인생을 내 멋대로 막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이보다도 더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히 9: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가 반드시 한번 죽게 될 것이고, 그 후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의 인생을 살펴본 결과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계 20:12-15에서는 그 심판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이런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은 뒤에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록해 두셨던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서가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그 평가서대로 우리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판대 위에 세워놓으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 자신을 보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장차 우리가 받게 될 심판을 염두에 두고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심판에 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누가 심판하는가?

   오늘 본문 22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그리고 26-2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한 마디로 심판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재림하신 뒤에 직접 심판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경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말씀되고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예수님께서 직접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으셔서 친히 모든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딤후 4:1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예수님을 심판주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후 5: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장차 우리가  서게 될 심판대를 그리스도의 심판대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장차 심판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받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중보기도 하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정죄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심판하는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대 앞에서 모든 인생들을 심판하실 때 책들을 근거로 심판하십니다. 계 20:12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여기 두 종류의 책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생명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소위 ‘행위의 책’입니다.

 

   우선 생명의 책이 펼쳐집니다. 생명책은 무엇이고 누가 그곳에 이름을 등재할 수 있을까요? 말 3:16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 곧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이 이 생명록에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 21:27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이 생명책을 어린양의 생명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책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 책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책에 따라 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요? 계 20:15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과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을 나누십니다.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나누십니다. 이것이 심판에서 먼저 이루어질 일입니다.

   다음으로 행위의 책이 펼쳐집니다. 이 행위의 책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행했던 모든 것들이 다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제 이 행위의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경 여러 곳에 같은 말씀이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마 16:2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또 시 62:12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롬 2: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분명히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의 행위 심판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의 행위 심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의 심판은 상급의 심판입니다.

   마 5:1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이 땅에서 박해를 당하고 심지어 순교까지 감당한 사람들은 그 상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입니다.

   계 2: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땅에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사람들은 생명의 관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딤후 4:7-8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이 땅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 그들은 의의 면류관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을 살면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행위의 심판을 받을 때 저마다 그 믿음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형벌의 심판을 받습니다.

   살전 1:8-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렇습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형벌의 심판을 받습니다. 형벌의 심판을 받을 때 그가 행한 대로 그 형벌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나름대로 양심에 따라 살려고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그 형벌이 가벼울 것입니다. 그러나 악하게 산 사람들은 그 형벌이 무거울 것입니다. 특히 적그리스도의 대열을 따랐던 사람들은 그 형벌이 극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은 그저 상징적으로 기록된 말이 아닙니다. 비유적으로 기록된 말도 아닙니다. 구체적입니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프랑스 파리에 가면 로뎅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에 저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벌거벗은 남자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엇을 저렇게 골똘히 생각하는 것일까요? 장난삼아 어떤 분인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내 팬티 어디에 있을까?’ ‘아 휴지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

  이 작품은 [지옥의 문]이라는 여러 조각으로 이루어진 작품 안의 하나였습니다. 로뎅은 시인 단테의 신곡의 영향을 받아서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에는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 그리고 죽음을 보여주는 인물 조각상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로뎅은 여기에 이들을 심판하는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등장시키지 않고 대신 이 심판 과정을 지켜보는 생각에 잠긴 사람 곧 [생각하는 사람] 상을 문 중앙에 자리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시인 단테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구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 펼쳐질 최후의 심판을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아서 형벌의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의 저 고통스런 모습을 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로뎅의 이 작품의 인물처럼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장차 우리가 서게 될 저 최후의 심판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단테가 신곡이라는 작품을 쓰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보좌 위에서 행하실 저 심판을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믿음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딤전 1:19을 보면 주목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이 예수를 잘 믿다가 그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말씀입니다.

   출 32:33을 보면 이런 말씀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버리리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어도 그가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아무리 기록을 단축하여 잘 달려도 마지막 골인 지점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믿음 생활을 잘해왔어도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제로 우리 주변에 믿음이 파선된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처럼 돼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다음으로 상 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히 11:6을 보면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 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상이라는 말은 ‘아포디도마이’(apodidomai)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아포’(apo)라는 “뒤로” 또는 “거꾸로”라는 뜻의 말과, ‘디도마이’(didomai)라는 “주다”라는 말의 복합어입니다. 그러니까 상이라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행한 것을 하나님께서 되돌려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짜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만 해도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게다가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온전히 헌신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실 상은 점점 더 커집니다.

   마 6:20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늘에서 받을 상을 쌓아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저축할 때 푼돈을 조금씩 모아 저축하지만 때가 되면 목돈을 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조금씩 저 하늘에서 받을 상을 쌓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장차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큰 상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받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앙고백할 때 심판하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장차 우리가 서게 될 저 심판대를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마지막까지 믿음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 받을 상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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