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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인류역사의 클라이맥스 고전15:20~28 2005년 3월27일 부활절 설교

인류역사의 클라이맥스

고전15:20~28

2005년 3월 27일 부활절 주일낮예배 최일환목사 설교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24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설교:

제가 시간이 있으면 목사의 주된 업무에서 이탈하여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旅行과 映畵는 내 視野를 넓히고 생각의 폭을 넓게 하는데 그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위대한 작품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숨이 멈춰지는 듯한 緊張과 스릴이 있습니다. 내용이 어떻게 흐를지, 어떻게 반전이 될지 전혀 예측이 안 되면서 흥미를 가져다주는 그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클라이맥스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 드라마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와 중국, 몽골, 일본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른바 “韓流”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여러번 한국 드라마가 중국말로 더빙되어 방송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많은 인기가 있습니다. 요즘 베트남에서는 한국 ‘대장금’이 한참 인기가 있는데 그 방송시간대는 시내에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용도 재미있고 어른에 대한 예절이나 예의가 배울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한회가 마쳐질 때 그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지 안보고는 못 배기게 끝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주된 이야기 꺼리고 그 드라마에 나온 한국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일본이 독도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한류열풍을 잠재우기 위한 작전일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의 아줌마들이 너무 배용준에게 미쳐 있으니까 일본 남자들이 기분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한국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 그 열풍을 식히려는 것이란 말입니다.


대부분의 재미있는 드라마는 주인공이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삶에서 교훈이 되는 것이 많고 감동을 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클라이맥스에서 대단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면 인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지금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드라마에 主人公은 누구입니까? 혹시 여러분이 아니십니까? 그러면 그 드라마는 재미없는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이 여러분이 아닌 예수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의 인생드라마를 아름답고 멋있게 만드시려고 여러분의 인생드라마 속에 들어가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客으로, 게스트(guest)나 액스트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셔야 여러분의 인생 드라마가 멋이 있고 성공적인 인생이 될터인데 사람들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예수님을 자꾸 밀어내고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결국 그 드라마는 재미없는 평범한 드라마가 되고 맙니다.


이제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 드라마에 주인공이 되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도록 그를 초청하시고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사이엔가 예수님은 우리 인생드라마를 멋지게 만들어 결국은 우리가 주인공이 되도록 만들어 버리십니다. 그분은 우리생명의 주인이시며 또한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주인공으로 만들면 내 인생 드라마는 분명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던 마리아를 보세요.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을 때 그 주인공인 예수님께 최고의 예우로 섬김을 베풀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그 마리아의 행함을 칭찬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그를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그 예수님이 주인공인 잔치에 마리아가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언젠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500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류역사는 사람이 이끌어 가는듯하나 실상은 하나님이 이끄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류역사의 주관자요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죄 문제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장면과 3일만에 부활하신 장면은 인류역사의 클라이맥스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맞이한 부활은 인간의 그 어떤 표현으로도 온전히 표현이 안되는 클라이맥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것은 그야말로 인류역사의 클라이맥스이며 대 전환점입니다.


왜 예수님의 부활이 인류역사의 클라이막스인가요?

1.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죄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에게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 문제입니다. 이 죄 문제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영원한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모든 인류의 숙제인 그 죄를 대신 지신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제 죄 값을 치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그냥 죽음으로 멈추었다면 기독교는 소망이 없는 죽은 종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끝을 내신분이 아니고 그 사망을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창세기 3:15절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뱀의 후손이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여인이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역사에 최대의 사건이고 최고의 사랑인 것입니다. 누구나가 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죄에서 해방되었고 더 나아가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돈으로도 안되는 일이고 힘으로 안되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사건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절은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누리며 그 부활을 감사하며 축하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97년 이후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60명이랍니다. 김대중 정부이후로 한번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루하루가 죽음의 맛을 보는 날일 것입니다. 사형집행은 주로 오전에 하는데 12시를 넘기면 살았구나 하며 한숨을 쉰답니다. 언제 대통령이 사형 집행 허가장에 사인을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사형수라 합시다. 사형수가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사형수들을 향해 특별 사면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것입니다. 얼마나 신나는 날일까요? 


우리도 과거에 그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赦免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구속의 은총이 내게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어찌 보통 사건입니까? 이보다 더 큰 기쁨의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2. 부활은 인류의 과학과 지성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은 인간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까지 왔습니다. 과학의 발달 속도가 가속도가 붙어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1500년의 기술을 200년만에 따라잡고 200년의 기술을 50년만에 따라 잡고 50년동안의 기술을 10년만에 뒤집더니 이제는 지난 10년의 기술을 1~2년이면 따라잡습니다.

제가 요즘 제 컴퓨터 때문에 속을 썩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컴퓨터가 한 4~5년이 넘으니까 이제는 완전 구형입니다. 원도우 98을 깔고 있으니 여러 가지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감당을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컴퓨터를 살 때가 96년경 메킨토시를 샀습니다. 그때는 IBM보다 매킨토시가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IBM은 도스로 운영될 때 매킨토시는 윈도우를 쓰던 때였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감격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않고 서재에 갖고 있습니다.


85년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는 타자기를 가지고 주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90년경에 워드프로세서를 샀고 그러다가 92년경에 전동 워드프로세서를 샀는데 40여만원을 들여 샀는데 완전히 죽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부터 286컴퓨터가 난리를 치다가 93년경에 개인PC를 사는 목사님들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도스로 운영되던 컴퓨터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몇 년도 못 되어 386을 거쳐 486, 그리고 586 팬티엄 이제는 윈도우 ME를 거쳐 XP까지 10여년만에 컴퓨터는 수백배 아니 수백만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과학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삶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핸드폰역사도 이젠 첨단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97년도에 무전기 같은 핸드폰을 어떤 성도가 사주셨는데 그때 돈 100만원정도였습니다. 그것만 갖고 있으면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초등학교 학생들도 갖고 다닙니다. 만약 50년전 어르신이 다시 살아나서 우리나라를 돌아다닌다면 어떤 상태가 되실까요? 아마 제정신으로는 살수가 없어 미쳐서 돌아가실 것입니다.

왜요? 100년 전, 아니 50년 전만해도 말도 안된다는 일들이 오늘날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신비들이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사실로, 현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몰랐을 때는 그것이 기적이고 신비이지만 과학이 발달해보니 다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인류의 과학을 초월한 최고의 드라마틱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아니 우리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처럼 그 부활체를 입으면 그때는 아!~ 그런거였구나! 하고 이해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대 과학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고 못 믿을 것입니까? 시골 할머니가 서울에 와서 며느리가 전자렌지로 국을 데우는 것을 보면서 “말도 안돼! 나는 절대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불도 안 때는데 국이 끓는단 말이야 나는 못 믿어” 한다면 누가 문제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것이 아닙니까?

현대과학으로 아직 이해가 안 되는 초 과학이지 미신이나 맹신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맹신자들이 헛소리로 생각하지 마시고 머지않아 우리 믿는 성도가 다 체험할 위대한 사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우리 인류역사는 대전환을 이루고 그야말로 최대의 클라이맥스를 맞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에게는 첫 열매로 장차 우리의 부활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우리와 직결되는 중대한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 말씀을 살펴보세요.

20절을 보세요.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첫 열매란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뒷 열매로 그처럼 부활한다는 것을 보여준 증거입니다. 

그래서 22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은 예수님이고 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할 때 그에게 붙은 성도들입니다. 이미 천국에 영혼으로 가있는 성도들과 지상에서 구원얻어 살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할렐루야!


어느 절에서 성탄절을 맞아 이웃하고 있는 교회 앞에다 “축 성탄” 프랭카드를 걸었다고 합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석가탄일에 그 교회에서 “축 부처님 오신 날” 하고 프랑카드를 걸어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기 좋다고 하며 뉴스거리로 삼습니다.

그러나 정말 왜 예수님이 오셨는지, 그리고 왜 부활하셨는지를 그들이 알면 그러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 교인만의 축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불신자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예고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모르기에 “축 성탄” “축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우리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임을 믿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멀지 않아 우리가 맛볼 부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부활은 지구의 역사뿐 아니라 우주역사를 새롭게 하는 대사건입니다. 그 대사건의 클라이맥스는 우리의 부활입니다. 그 부활의 영광을 여러분 모두가 누리실 것을 믿고 부활의 주를 찬양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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