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입의 말이 기적을 만듭니다.
민수기13:25~33
2005년 3월 13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3: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13: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13: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젓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13: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13:29 아말렉 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 인과 여부스 인과 아모리 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 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설교: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향해 외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참으로 담대하게 명령합니다. 그 말에 그가 일어납니다.
아무나 그렇게 말하다고 일어나게 된다면 아마도 이 땅에는 그런 장애인이 없을 것이고 정형외과의사들은 직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베드로의 말에 그 앉은뱅이가 일어났을까요?
그가 예수님의 수제자이기에 그만이 특별한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의 말 속에는 놀라운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의 광풍사건과 무화과나무 사건에서 말의 권세와 능력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에도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그 말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분명히 믿고 의심치 않는데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왜 안되나?” 라고 묻는 그 자체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말로 기적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1. 끊임없이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안되면 어쩌지요? 누구나 다되나요? 나도 될까요? 현대과학에서도 이루어질까?” 그런 말 자체가 믿음 없는 말입니다.
아마도 베드로가 내가 외쳤을 때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면 그렇게 명령도 못했을 것입니다. 설사 명령을 했더라도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매사에 믿음의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난주간 외국을 다녀왔는데 사실은 제가 큰 실수를 해서 들어가지 못 할 뻔 했습니다. 저는 수시로 들어가야 하기에 비자를 1년짜리를 내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3일 비자가 종료되었습니다. 그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아직 여유가 있겠거니 하고 공항에 나갔는데 티켓팅을 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함께 가시는 S 목사님은 들어가실 수 있는데 나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찔하고 참담하였습니다. S 목사님 혼자가야 할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그분은 제가 하는 일정에 따라가서 구경만 하기로 하고 가셨는데 이제 내가 못 들어가니 전체를 인도해야 할 판이니 얼굴이 노래지셨습니다.
여행사 사장에게 방법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긴급 당일비자도 이미 월요일 접수 시간이 지나버려 가게 되더라도 화요일에 신청하면 수요일이나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길이 있을테니 알아보라”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여행사 하는 분들에게 여기 저기 전화를 하더니 길이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C항공여행사에서 초청장을 팩스로 받으면 그 팩스를 소지하고 출국하면 현지 공항에서 비자를 받는 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라도 가겠다고 하니 결국 몇 시간 기다렸다가 다른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안된다는 말을 듣고 정말 절망했는데 길이 있을 것 같아 두드려보니 길이 있었습니다.
그 여행사 사장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이제 한수 배웠다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고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을 가지고 길을 찾고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의 말이 전혀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된다고 하고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은 불가능하다고 한 것을 보세요. 불가능하다고 한 사람들은 결국 못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시면 능히 들어가리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갔습니다.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 닥쳐도, 절망적인 문제가 닥쳐도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2. 믿음이 부족하면 될 때까지 믿음을 채워야 합니다.
생각으로 믿는 것은 생각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내가 믿는다”는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믿음으로 마음이 꽉 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믿음으로 꽉 찬 상태에서 말이 나오면 기적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 믿음으로 꽉 채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해안에 가면 아산방조제와 대호방조제를 보게 됩니다. 그 방조제는 하루아침에 뚝딱 생긴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이 바다를 막으면 엄청난 땅을 얻게 되고 또 엄청난 농수를 확보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를 그리고 그 설계대로 흙을 계속해서 매웠습니다. 몇 년 동안 덤프트럭이 엄청난 양의 돌과 자갈을 가져다 부었습니다. 쉴 새 없이 가져다 부었습니다. 결국은 둑이 만들어졌고 이쪽 섬과 저쪽 섬이 연결이 되어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계속해서 흙으로 메워 육지가 되게 했습니다. 결국 도저히 불가능한 모습을 현실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불가능을 불가능이라고 단정하고 아무것도 안하면 기적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믿음으로 계속 채우면 결국 내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계속 성경을 앍고 설교를 듣고 하면 내 믿음이 채워집니다.
한두 대의 트럭으로 채워지지 않듯이 한두 번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다가 육지가 될 때까지 계속 흙을 쏟아 붓듯이 내 마음의 의심과 불신의 안개가 걷히고 믿음이 견고해 질 때까지,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날 때까지 끊임없이 내 믿음의 말을 마음에 쏟아 부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을 보게 하고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으리라” 하셨고 또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생각만 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통해 계속 동서남북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을 것이고 산에 오를 때마다 그 약속을 믿고 그 믿음을 채웠을 것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지 않으면 곧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식어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시청각 재료를 하락하시면서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무지개를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하고, 길갈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그것을 보게 하면서 요단강을 건넌 것을 믿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지난번 비젼 트립에서 학교를 보고, 학생들을 만나 보신 분들과 저 그림으로만 보는 분들보다 중국의 앞날을 보는 자세가 다를 것이고 기도의 자세나 내용도 다를 것입니다.
3. 기적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왜 많은 사람이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불신앙입니다.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 믿음이 내 경험과 상식에 붙들려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과학, 상식, 지식이 최고인줄 압니다. 그것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을 짓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세례요한이 잉태할 것을 예고합니다. 그런데 그때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자기와 부인이 나이가 많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눅1:18)”
그러자 하나님은 그 사가랴의 입을 세례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게 합니다.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왜 하나님은 사가랴를 벙어리로 만들었을까요? <사가랴>가 더 이상 불신의 말을 내면 세례요한을 낳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하루에 한번씩 일주일을 돌게 했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에게 “외치지 말라,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그 이스라엘 백성이라 생각해 보세요. 아마도 별소리 다 했을 것입니다. 뜨거운 땡볕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백성들 중에 “이게 무슨 지랄이냐? 여호수아가 정신나간 것 아니냐? 이런다고 성이 무너지냐? 무너지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별소리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호수아는 그것을 알기에 침묵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한두 사람이 불평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백성이 불신의 눞에 빠지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기에 입 다물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앙은 기적을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러기에 내 생각, 내 지식,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면 그대로 따르는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안되겠지요? 어렵겠지요? 하면서 한두번 불신을 말을 내뱉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분이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맛있게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이고 있는데 뒤적거리다 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빠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에이 까짓것 한 마리인데 하고 젓가락으로 집어내고 남편 먹으라고 내 놓을 것입니까? 혹시 남편에게는 먹으라고 내 놓을 수 있을지 모르나 여러분 자신은 절대 먹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입에서 나오는 한두 번의 불신의 말은 열번 백번의 믿음의 말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내용을 보세요.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단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을 악평하며 말합니다.
32절 33절을 보세요.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한마디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한번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은 한번도 고려하지 않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진노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원망불평입니다.
여리고를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결과를 백성들에게 보고합니다. 그 정탐꾼 중 10명의 보고내용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모세를 향해 원망불평을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세요.
“14장 11절/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4장27절/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성도 여러분!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그들을 쳐서 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고 수십년을 믿어왔어도 원망불평을 달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말은 아무런 권세가 없고 기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남들이 만들어 놓은 믿음의 방조제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리고 정말 예상치 못했던 환난이 닥치더라도 욥처럼, 그리고 요셉처럼 입을 무겁게 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4. 우리 성도는 어떤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할까요?
1)입으로 시인하는 말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이 주어집니다. 성경에서 “구원”이란 말은 여러 경우 쓰이는데 1)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2)위기를 해결받는 경우, 3)질병에서 나음을 받는 경우를 구원이라 씁니다. 다시 말하면 입으로 천국도 가고 위기도 해결되고 질병도 입으로 시인하여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 탄생의 통고를 받았을 때 그가 입으로 시인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사실 마리아 입장에서는 심각한 이야깁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그대로 시인하자 하나님이 그를 들어 쓰십니다.
2)아멘 해야 합니다.
아멘을 제가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아멘을 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황수관 박사가 말하기를 아멘은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기적과 신비를 체험하는 사람들은 아멘을 잘합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셨으니 아멘을 잘하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멘이 뭡니까? “맞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그렇습니다.”라는 뜻이 아멘이잖습니까?
따라서 합시다. /아멘만 잘해도 /기적은 찾아온다./
3)고백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나는 시편 23편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왜 좋아하느냐 하면 그 시가 다윗이 평안할 때 쓴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정말 고통스러울 때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울왕에 의해 죽음을 당할 위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지고 한순간도 평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입으로 告白하십시요. 성경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6:14)
고백이란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감사를 고백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고백하세요. 더 나아가 내 신앙을 올바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고백을 선포하시고 믿음의 고백으로 문제를 향해 명령하십시요. 그러면 그 고백이 내 환경을 바꾸고 내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장안의 성도 여러분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내 입에 달려 있습니다. 내입에서 어떤 말을 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짐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매일매일 기적을 만드시는 福있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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