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말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21:18~22
2005년 3월 6일 장안중앙교회 최일환 목사 주일 낮 설교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설교:
우리나라 성경에는 “말씀”이라고 번역된 부분이 많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요한복음1장 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성경 원어 헬라어 성경에서는 로고스(logos)로 되어 있고 영어 성경에서는 워드(word)로 되어 있습니다. 이 word는 “말” “단어” “언어”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말은 말씀, 사람이 한 말은 그대로 말이라고 구별하여 번역했으나 실상 성경은 똑같이 “말”입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의 “씀”자를 빼고 요한복음1장 1절을 번역하면
“태초에 말이 계시니라. 이 말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번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태초에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이 하나님이이며 이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에는 신적인 권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권세가 있어서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했습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명심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우리 인간만이 쓰는 것이며,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말에도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모든 세계를 움직이는 놀라운 힘과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총칼로 죽는 사람보다 말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쓰는 말에는 어떤 권세가 있을까요?
마가복음11장을 보세요. 거기에 보면 예수님은 사람이 가진 말의 권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십니다. 가시는 길에 무화과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좀 사장하셨는지 그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있나를 보셨는데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무화과나무에게 말하십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의사소통이 안 되는 나무에게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 하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제자들이 놀라 기절초풍 할일입니다.
왜 예수님이 그 무화과나무를 죽였을까요? 때가 되지도 않은 무화과나무에게 열매 없다고 저주를 선포하신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뭔가를 가르치시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그 다음 말씀을 보세요. 오늘 본문 21절 22절입니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의 말은 능력과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싶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세계의 피조물이 사람의 말의 권세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몇가지 사건을 보게 되는데 예수님이 바람과 파도를 향해 “고요하라 잠잠하라” 명령하십니다. 그대로 잠잠케 되었습니다. 또 사단에게도 말로, 명령으로 “나가라 물러가라”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만 하시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태양에게 명령했습니다.
여호수아 10장 12절에 보면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 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다”고 했습니다.
뭔 말입니까? 세상 모든 피조물이 사람의 말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 함락도 이스라엘 백성이 외치는 소리에 무너졌고 베드로와 요한이 말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문제는 예수님만 행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21절을 다시보세요.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너희가” 믿음이 있다면 너희도 이런 무화과나무 사건보다 더 큰 것을 명해도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최근 신경의학계에서 연구 발표된 것은 사람의 뇌속에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최근 언어 치료법이 등장했는데 사람이 하루에 2~3차례 10분에게 15분정도 “나는 정상으로 치료되고 있다, 나는 급속히 치료되고 있다”라는 말을 반복하게 하면 놀라운 치료가 이루어진다는 임상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병원에서 말기암 환자에게 이 언어치료법을 사용하여 치료를 시도 했는데 3주후 진통이 말끔히 사라졌고 조사해보니 암이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었답니다.
예수님도 문등병자나 모든 병자들을 치료하실 때 대부분이 말씀으로 치료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병자를 대할 때 또는 대신 문제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실 때 주로 확인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확인된 후 하시는 말씀이 뭡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습니다.
말의 권세가 있으나 그 말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을 할 때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믿음의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을 할 때 어떻게 믿음의 말을 할 수 있을까요?
1. 信念이 아닌 約束에 근거한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지혜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도 이 지혜를 통해 말을 잘합니다. 그들도 말의 권세로 대단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사상을 믿는 바탕하에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기적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식을 가지고 그들의 경험과 노력으로 큰일을 해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닌 신념입니다. 이 신념을 가지고도 권세있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유명한 탤런트 김창완씨가 담배를 끊은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 끊으니까 피우고 싶어 견딜 수 없더란 것입니다. 대부분이 이 욕구를 이기지 못하여 실패를 합니다. 그런데 그 탤런트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이 정도라면 참을 만 하지” “이 정도도 못 참으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늘 소리쳤답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금연을 광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결국 끊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성경의 약속과 말씀을 근거로 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약속이 있다면 믿음이고 약속이 아닌 경험이나 내 지식을 근거로 한 것은 신념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신 말씀은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신약, 구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약속이 없는 것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해도 안 되는 것은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또 하나 “의심”은 믿음의 말을 방해하는 암초입니다. 참 기적은 의심을 벗어버릴 때 일어납니다.
마태복음14:31에 예수께서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갈 때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셨습니다.
또 마가복음11:23에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고보 1:6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고 했습니다.
2.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를 활용해야 합니다.
지난주 우리는 믿는 자의 말의 권세를 살펴보았습니다. 자녀의 권세, 하나님의 종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도 해야 하나 어떤 것은 명령으로 해결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의 권세는 예수님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있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권세는 있는데 권세를 활용할 능력이 없다면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당선자로 있을 때나 선서하여 취임했을 때나 겉모습은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그러나 권세는 분명하게 다른 것입니다.
당선자로 있을 때는 명령을 해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취임하면 그 말에 권세가 주어져 명령하면 움직입니다.
육신의 힘으로는 자가용한대도 못 움직이나 그의 입의 말은 군대도 움직이고 전차도, 비행기도 움직입니다.
문제는 모든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세는 동일한데 그 권세를 활용하는 능력은 대통령마다 다릅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대통령 모두 같은 헌법에서 같은 권한을 가지고 일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다 달랐습니다.
權勢란 다른 말로 말하면 權限입니다. 그리고 能力이란 그 권세를 활용하는 智慧와 知識, 技術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권세란 운전면허증이고 능력은 운전면허 받은 사람의 운전기술입니다. 면허증이 있다고 다 운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집사람처럼 장롱 면허라도 7년이 넘으니 녹색면허증입니다. 그 면허는 권세는 있으나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나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 말의 권세를 믿고 기도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비록 짧은 기도를 한다 할지라도 말의 권세를 아는 사람의 기도는 엄청난 능력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기도 내용도 다릅니다.
이미 자신이 말의 권세를 가진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기도는 확신이 있습니다. “주세요!” 라고 기도하지 “주실 줄 믿습니다.”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말의 권세를 믿으므로 의심치 않고 기도하므로 언제든지 그 기도는 현실로 응답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의 권세를 아는 사람의 기도와 모르는 사람의 기도는 태양빛과 촛불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멘
그러기에 이제부터 여러분의 말에는 권세도 있고 그 말대로 되는 능력도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긍정적인 말을 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말로 우리의 앞길을 막아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예 시도도 안 해보고 안 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으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렇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우리의 말로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의 말과 믿지 않는 사람의 말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입에서는 믿음없는 소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입에서 늘 믿음의 소리가 나옵니다. 왜요? 믿음이 들어 있기 때문 입니다.
왜 하나님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신다고 하셨을까요?
안된다, 못한다, 해 보나마나다 라는 사람은 안 되고 못합니다. 왜요? 그게 그들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죽었습니까? 그토록 기다리고 고생하여 모세를 통해 구해 내시고 왜 가나안땅에 못 들어가게 죽이셨습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들의 말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엄청난 기적을 보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애굽 땅에 임하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도 체험했습니다. 심지어 하늘에서 날마다 내리는 만나도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가나안땅 정탐꾼의 말을 듣고 난리를 치고 원망불평을 하며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낫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니 그들의 말대로 되는 것입니다.
왜요?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은 똑같은 땅을 보고 와서 믿음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말 때문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말이 곧 우리의 믿음의 수준입니다.
천국은 무엇으로 간다고 했나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입으로 갑니다. 믿음의 말로 간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앞에 고백한 말을 아십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의 대답을 아시지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한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 말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로 그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말이 음부의 권세를 이긴다는 것입니다.
또 마가복음7장에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이 딸이 귀신들려 예수님께 찾아왔을 때 주님께서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이 말을 참 잘했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얼마나 힘든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보세요.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할렐루야!
“이 말을 하였으니”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믿음의 말입니다. 그 말이 그 여인의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입의 말이 여러분의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말만 잘해도 하나님 앞에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말이 우리의 앞길을 열어줍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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