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신 7:1-11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를 진찰할 때 다른 과 의사들과는 사뭇 다르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환자들에게 묻는 질문이 다르답니다.
다른 의사들은 대부분 진찰을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디가 아프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정신과 의사들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어디에 사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가 정신과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정신과 의사가 제게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데 “박근혜입니다.”라고 답을 하고, “어디에 사십니까?”라고 묻는데 “청와대입니다”라고 답을 한다면, 정신과 의사는 바로 저를 진료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자기다운 삶을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만일 자기가 누구인지를 망각하고 자기답지 않은 일을 하게 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갖가지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이 때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제 정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자기다운 삶을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영적으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망각하고 자기답지 않은 일을 하게 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살면서 이런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때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살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늘 의식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우리답게 사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말씀 가운데 일부분입니다. 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지금 모세와 함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 부모를 따라 애굽을 탈출했거나 출애굽한 뒤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출애굽 2세대들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볼 때 이 출애굽 2세대들은 신앙적으로 미덥지가 못합니다.
우선 이들은 대부분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 놀랍게 역사하신 것들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10가지 재앙의 그 놀라운 광경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그 경이로운 장면을 직접 본 사람들도 거의 없습니다. 다만 말로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체험적 신앙이 부족합니다.
다음으로 이들이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버티고 있는 일곱 족속들은 저들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일곱 족속들이 향유하고 있는 이방 문화는 저들이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저들에게 유언처럼 권면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저들만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민임을 알라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이 출애굽 2세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권면의 말씀, 당부의 말씀 가운데 하나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한 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민임을 알라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항상 자기들이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선 저들이 들어가려는 가나안 땅에는 이미 오랜 세월 터 잡고 살아온 원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무려 일곱 족속이나 됩니다. 저들과 전쟁을 해서 다 내쫓아야 합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정당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가능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문화적으로 가나안 족속들에게 동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살던 족속이고 지난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던 족속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일곱 족속은 농경문화와 자기들 나름대로의 이방 종교문화를 꽃피우고 살아온 족속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이 저들에게 하나님 신앙을 전하기보다는 이방의 우상숭배 문화에 동화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모세가 볼 때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저들이 확고부동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차동엽이라는 분이 쓴 [무지개 원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자기 개발서로 150만권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책에 성공학의 권위자 지그 지글러 박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번은 지글러 박사가 뉴욕 지하도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한 거지가 구걸을 하면서 연필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지글러 박사는 연필이 필요가 없어서 그냥 1달러를 적선하듯 쥐어주고 지하도를 내려갔습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지글러 박사가 그 거지에게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당신에게 1달러를 주지 않았소 내게도 연필을 주시오” 그리고 연필을 받아들고서는 그 거지에게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나와 같은 비즈니스맨이요 당신은 더 이상 거지가 아닙니다.”
이 말 한 마디가 이 거지의 마음에 송곳처럼 박혔습니다. “그래 난 거지가 아니야 거리에서 돈을 받고 연필을 파는 사업가야!” 그러면서 자아상이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가지게 된 것입니다. 새롭게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이 거지는 더 이상 거지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업가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거지는 후일에 사업가로 성공한 뒤 다시 지글러 박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사님은 저를 향하여 ‘당신은 더 이상 거지가 아니라, 사업가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늘 거지의 자아상을 갖고 있었는데 박사님의 말 한마디가 나의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 모세가 지글러 박사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 주기 위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의 성민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가 싸워 이겨 내가기 버겁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앙을 지켜가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여호와의 성민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성민이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성민이 된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하셔서 저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성민이 된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기뻐하셔서 택하신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보다 대단해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민이 된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민이라고 긍정적인 정체성을 가지려고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안에 그만한 자격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만큼 성품이 선한 것도 아니고, 남달리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남달리 윤리 도덕적인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만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민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택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를 택하셨는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셔서 택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고슴도치의 자식 사랑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남들이 볼 때 고슴도치 새끼는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제대로 나다만 털에다 생김새도 나무에서 막 떨어진 밤 톨 같습니다.
그러나 고슴도치 어미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새끼가 사랑스럽습니다. 누가 뭐래도 새끼에 대한 사랑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마치 고슴도치가 자기 새끼를 사랑하듯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7절에 기뻐하셔서 하나님의 성민으로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면 애굽의 바로에게서 구원해 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절을 보면 장차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하신 아들 예수를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게 하시고 그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리고 광야같이 이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돌보아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성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민임을 잊지 말라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출애굽 2세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들이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 뒤에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더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결코 하나님의 성민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요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 전쟁을 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승리하게 될 텐데 그때 저들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말씀입니다.
대체로 고대 시대의 정복전쟁 때 정복자들은 정복당한 백성들에게 두 가지 정책을 폈습니다. 하나는 정복당한 백성들을 살려두고 노예로 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정복당한 백성들에게 종교적인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들을 진멸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살려두지 말고 다 처단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명하셨을까요?
하나는 가나안 땅의 거민들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을 저들이 죄악이 가득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심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저들을 진멸하라 하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결을 지키며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신정 국가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행여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거민들의 영향을 받아 이방문화에 동화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행여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거민들을 따라 우상숭배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이방의 세속문화가 창궐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성결함을 잃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성민임을 잊어버릴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가나안 땅에서 철저하게 제거하게 했던 것입니다.
특히 2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거민들을 철저하게 격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치 에이즈 환자들을 격리하듯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거민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민임을 잊지 않는 길은 무엇보다도 가나안 거민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했기에 그 영향력을 차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세속문화가 창궐하고 우상숭배가 가득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성민임을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처럼 저들을 진멸해야 할까요? 아니면 저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제한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저들이 지금은 우상숭배를 할지라도, 지금은 세속문화에 빠져 살지라도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저들을 사랑하며 복음을 들고 다가가야 합니다. 저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냥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또 철저하게 훈련 받은 뒤에 나아가야 합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조하는 구조대원들처럼 철저하게 훈련받고 또 철저하게 준비하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동화되어 결국 믿음도 잃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성민으로의 삶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한 마디로 영적인 면역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바이러스나 세균이 득실대는 곳이라고 해도 면역력이 강한 사람들은 잘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영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이 득실대는 세상 한 복판에서도 영적인 면역력이 강한 사람들은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영적인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영의 양식인 말씀을 충분하게 섭취해야 합니다. 열심히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영적인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며 성령충만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민임을 잊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마치 가나안 땅과 같이 우상숭배와 세속문화가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성민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성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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