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낫게 하신 예수님! (막1:29~31)
막1: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막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막1: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막1:1에서 밝히고 있듯이, 마가복음의 주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마가복음은 먼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한 후, 계속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그의 사자가 앞서와서 그의 길을 준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마가복음은 예수님보다 앞서온 세례 요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막1: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사람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지 못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가복음은 먼저 세례 요한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지면서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습니다.
막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막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의 증언을 뒤이어서, 성령 하나님도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셨습니다. 아울러 성부 하나님도 하늘에서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셨습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죄 사함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네 명의 어부들을 불러서 자신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사탄에 대한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죄에 대한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서 그의 제자로 삼으심으로, 죄인들에 대한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말하자면 이와 같은 권세들을 통하여, 예수님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친히 우리에게 증언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과, 성령님과,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신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이해서,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때 더러운 귀신이 떨면서 이와 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막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이와 같이 더러운 귀신조차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시 귀신들은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을 섬기던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귀신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있으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십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범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의 영과 육이 동시에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아울러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영과 육을 동시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구원하셔서, 우리를 하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의 육을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영화로운 부활의 몸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더욱 사랑하며, 더욱 높이고, 더욱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Setting).
막1: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이하여, 네 명의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있는 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여기서 네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부르신 시몬과 안드레의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의 형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치심을 들으면서, 또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심을 보면서 크게 놀랐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회당, 곧 “시나고그”(synagogue)는 유대인들의 집회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회당이라는 명칭이 전연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때는 유대인들의 모든 종교 활동이 예루살렘 성전, 곧 “템플”(temple)을 중심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주전 586년, 하나님의 심판으로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 그 곳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것이 바로 회당이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그들은 바벨론 곳곳에서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때 그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던 곳을 가리켜서 회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포로생활을 마치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 때 그들은 회당의 개념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곳곳에 회당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나서도, 계속적으로 회당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안식일이면 그들은 회당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평일이면 그들은 회당을 학교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주민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마을의 장로들이 회당에 함께 모여서 재판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인 남자 열 명만 있으면, 회당을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는 500개 정도의 회당들이 세워졌습니다. 성인 남자 열 명이 없을 경우에는, 행16:13에 나오는 바와 같이 기도처를 정해서 안식일에 함께 모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가버나움은 갈릴리 해변에 위치한 마을들 가운데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그 곳에는 로마의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아울러 그 곳은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세리 마태가 사람들에게서 세금, 곧 관세를 거두던 곳도 바로 이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당시 가버나움에도 많은 회당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있는 한 회당에서 안식일에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는 더러운 귀신도 쫓아내셨습니다. 안식일의 집회는 대개 그 날 정오 무렵에 끝이 납니다.
안식일 예배가 끝나면,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가족들과 함께 안식일 만찬을 듭니다. 말하자면 바로 이 안식일 만찬을 함께 들기 위해서, 시몬과 안드레는 예수님과 더불어서 야고보와 요한의 두 형제를 자기들의 집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요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이와 같이 베드로, 곧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는 본시 벳새다 출신이었습니다. 그 곳은 갈릴리 바다의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곳에서 계속 살지 않고, 갈릴릴 바다의 북서쪽에 있는 큰 도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말하자면 시골 사람들이 도시로 이사를 온 셈입니다. 시몬이 결혼을 하면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왔는지, 아니면 그가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사업차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시몬과 안드레의 집은 가버나움에 있었습니다.
마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마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오늘날의 가버나움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회당도 폐허가 된 채, 그 터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곳에서 해변 쪽으로 약 일 분 정도 걸어가면, 이른바 베드로의 집이 나옵니다.
오늘날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건물의 잔해들이 많이 발굴되었습니다. 그 잔해에는 기독교 신앙을 나타내는 글들이 많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을 베드로의 집이라고 결론을 짓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그 집에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가족들이 살았습니다. 시몬의 동생 안드레도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장모도 함께 살았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집이라고 불리는 곳은 여러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을 만큼 집터가 아주 넓습니다. 그리고 건물도 상당히 큽니다.
물론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품꾼들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기껏 낚시나 던져서, 하루에 몇 마리의 고기를 잡는 정도의 어부들이 아니었습니다.
눅5: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막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눅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이와 같이 시몬은 자기의 배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갈릴리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야고보와 요한과 동업을 하면서, 분명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들을 예루살렘 등지로 내다 팔기도 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는 겨우 입에 풀칠하면서 살 정도로 가난한 어부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업에 종사하면서 꽤나 윤택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막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들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을 잘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보다도, 자신들의 그물보다도, 또한 자신들이 잡은 물고기들보다도 사람의 영혼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배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배와 그물이 아무리 소중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다 버려 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로 인하여 구원함을 얻은 영혼은 우리와 함께 영원토록 하늘 나라에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우리로 인하여 구원받은 영혼을 보게되는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온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늘 힘쓰기 바랍니다.
둘째로,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입니다(Disease).
막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안식일 예배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회당에서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과 안드레의 초대를 받으시고,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그들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자 곧 사람들이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고전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요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여기에 시몬과 게바와 베드로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들 세 이름들은 똑같은 인물을 가리킵니다. 본명은 시몬입니다.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아람어로 바위를 뜻하는 게바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시몬 베드로, 곧 게바는 독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결혼을 했기에,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녀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뒤에 그가 전도 여행을 다닐 때, 우리는 그가 자기의 아내를 함께 데리고 다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비롯한 귀한 손님들이 그의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병이 중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에 사용된 “누워 있다”라는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형입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형은 계속되는 동작을 뜻할 때 사용하는 시제입니다. 말하자면 시몬의 장모는 이미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그의 병은 만성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시몬의 장모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는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그가 앓고 있는 증세만 나타날 뿐입니다. 그는 열병을 앓았습니다. 그것도 눅4:38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중한 열병이었습니다.
아무튼 시몬의 아내는 병든 어머니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시몬도 많이 걱정했을 것입니다. 시몬의 자녀들도 할머니가 얼른 낫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함께 사는 안드레도, 또한 그 자리에 함께 한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시몬의 장모가 병 낫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 예수님에게 그가 열병으로 누워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눅4:38에 보면, 그들은 시몬의 장모를 위하여 예수님에게 구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은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한 열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좀 고쳐주시도록 예수님에게 간청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에게는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이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나 똑같이 쉬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들도 다시 살리셨습니까? 그들이 더 이상 병들거나 죽지 않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라고 그렇게 하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사람이 타락한 결과, 사람은 누구나 다 죽도록 정해졌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단지 두 사람, 곧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에녹과 열왕기하 2장에 나오는 엘리야만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그 외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지금의 몸으로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빌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가 원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낮은 몸, 곧 썩어져서 흙으로 돌아갈 몸으로 계속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영광의 몸으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낮은 몸을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우리의 낮은 몸을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하실 것임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낮은 몸이 영광의 몸으로 변하게 될 것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늘 힘있게 의지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병든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신 예수님입니다(Healing).
막1: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먼저 그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여기의 손은 단수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의 한쪽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그를 측은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잡으신 손으로 시몬의 장모를 일으키셨습니다.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누가복음에 의하면, 이 때 예수님은 열병을 꾸짖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회당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명하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은 열병를 꾸짖으셨습니다. 이 때도 예수님은 이와 같이 명하셨을 것입니다.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
귀신을 꾸짖으심으로, 예수님은 영의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열병을 꾸짖으심으로, 예수님은 육의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심으로, 예수님은 자연 세계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영과 육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열병을 꾸짖으시며 명하실 때, 열병은 예수님의 명에 순종해서 시몬의 장모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여기서 여자가 곧 일어났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몬의 장모가 얼마나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열병을 꾸짖으시며 그를 일으키실 때, 열병이 떠남과 동시에 그는 그 즉시 병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병을 앓고 나면, 아무래도 기운이 진해서 몸이 많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병이 낫더라도, 한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만 합니다. 음식도 남이 해주는 미음이나 먹으면서, 서서히 건강을 회복해나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시몬의 장모는 어떠했습니까? 열병이 떠나자마자,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수종을 든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되, 순간적으로 완전하게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몬의 장모에게는 회복의 기간이 전연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언제 아팠는가 하는 듯이, 이전의 건강한 몸으로 되돌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때는 안식일 예배가 끝나고 안식일 만찬을 들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주변에 음식점들이 있어서, 음식을 주문해올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각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음식을 장만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시몬의 장모는 안식일 만찬을 위하여 손수 음식들을 장만했을 것입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들을 장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 집에 찾아오신 손님들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극진히 대접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신약성경에 있는 네 권의 복음서에는 90여 곳에서 예수님이 각종 병을 고치신 사실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오늘 본문과 다른 곳의 말씀들을 통하여, 예수님이 병든 자들을 어떻게 고치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 곧 병을 낫게 하신 사역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말씀이나 손을 대심으로" 병을 고치셨습니다(with a word or a touch).
예수님은 열병을 꾸짖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의 손을 잡으시고 일으키셨습니다. 이와 같이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손을 대심으로, 때로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하셔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안수한 물을 성수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그 물을 마시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바르게 서있는 사람을 괜스레 벌떡벌떡 자빠지게 만들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말씀으로, 또는 손을 대심으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즉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instantly).
시몬의 장모가 서서히 기력을 회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열병을 꾸짖으시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그는 그 즉시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언제나 바로 그 즉시 사람의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마8:13에서, 백부장의 하인이 그 즉시 나았습니다. 막5:29에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자도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며 병이 나았습니다. 요5:9에서, 서른여덟 해 된 병자도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 즉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완전히"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completely).
시몬의 장모는 오랜만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연 후유증이 없었습니다. 그의 기력은 쇠하여지지 않았습니다. 어지러움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하셨기 때문에, 그는 건강한 몸으로 사람들에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병을 고치실 때, 그저 조금씩 차도가 보일 정도로 병을 고치지를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완전하게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러기에 병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는 후유증도 전연 없었고, 또한 같은 병이 또다시 재발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모든"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totally).
예수님은 열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에 있는 3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이는 같은 날에 되어진 일입니다. 그 뒤로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모든 사람의 모든 병을 다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에게는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에게는 어떤 병을 전문으로 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위배되는 일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조건 없이" 병을 고치셨습니다(unconditionally).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에게 아무런 조건을 요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을 요구하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셨을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언제나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충성과 헌신을 요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더더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물질이나 금전을 요구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오늘날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원이나 교회에서 집회를 열고서는, 그 곳으로 오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광고를 합니다. 그래서 병든 사람들이 그 곳으로 가면, 그들은 병든 사람들에게 먼저 예물을 바치라고 은연중에 강요합니다.
그런 후에 그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세요? 병든 사람에게 믿음을 요구하는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낫지를 않더라도, 자기들에게 책임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에게 믿음이 없어서 낫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미혹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병원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들이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면, 병원으로 가서 병든 사람들을 다 고쳐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병원으로 찾아가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항상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요구하며, 물질을 강요합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실제로는 그들에게 신유의 은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어떻게 병을 고치셨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병을 낫게 하신 것과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병을 고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점이 있는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예수님은 “말씀이나 손을 대심으로” 병을 고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즉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완전히”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모든”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하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에게 밝히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열두 사도들에게, 그리고 70인의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 권위를 더하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병을 고치는 일을 통하여, 말씀의 권위를 나타낼 필요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충실하게 전하며 가르치기만 하면 됩니다. 바로 그 때 말씀의 권위가 서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후12:7에 의하면, 바울의 육체에도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도 병이 있었습니다. 딤전5:23에 의하면, 디모데도 병에 걸렸습니다. 빌2:27에 의하면, 에바브라디도도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딤후4:20에 의하면, 드로비모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누구나 다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내게만 이런 병이 있는가? 내게 믿음이 없어서인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셔서인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늘 예수님을 힘있게 의지합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구원하셔서, 우리를 영화로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도 구원하셔서, 우리의 몸을 영광의 몸으로 바꾸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맡깁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며, 그를 더욱 사랑하며, 그를 더욱 영화롭게 하며, 그를 더욱 본받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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