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
Ⅰ. 본문해설
예루살렘 교회에 커다란 시험이 닥쳤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초대교회의 기둥과도 같던 사도였는데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고, 베드로도 붙잡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예루살렘 교회에는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고, 성도들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성숙한 교회였다. 성도들은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기 위해 정치적인 협상단을 꾸리지도 않았고, 감옥을 습격할 군사를 모집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이 모든 일을 맡기기로 작정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Ⅱ. 교회가 기도할 때
A. 교회가 기도함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하였다. 이것은 교회 전체가 마음을 모아서 교회의 기도제목을 마치 자신의 기도제목인 것처럼 여기며 기도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꺼지지 않는 기도의 불씨는 가족과 교회, 국가와 인류 공동체를 위한 기도의 큰 불이 타오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개인기도가 살아 있을 때 그 기도의 불꽃으로 더 큰 영역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도가 공동체를 향해 확장되지 않고, 자신의 기도제목에만 머문다면 이것은 그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 안에는 교회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의 신앙도 온전한 것일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을 때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셨으며, ‘나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셨다. 또한 죄 지은 자를 사하여 달라는 것도 ‘우리’를 향해서였고, 시험에 들지 않게 악에서 구해달라는 것도 ‘우리’를 향해서였다. 기도에 있어서 이러한 공동체적인 성격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성령님 자신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B. 간절히 기도함
예루살렘 교회는 간절히 기도하였다. ‘간절히’라는 말은 ‘없다’라는 뜻의 "아"와 ‘안식’, ‘쉼’, ‘휴식’이라는 뜻의 "카타파우시스"가 연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그러니 ‘간절히’라는 말은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는 의미이다. 이 기도의 제목이 워낙 절박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한 차례도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지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이다. 2차적으로는, 기도하면 할수록 더 마음이 녹는 것 같은 간절함이 깃드는가를 보는 것이다. 사람보기에 올바르게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의 본보기이다. 하나님께서는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한 기도나 마음은 실리지 않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설득되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비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가신다.
C. 하나님께 기도함
또한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께 기도하더라.’는 단순히 기도의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때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된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랑의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의지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킨 것을 의미한다.
염려하는 마음, 이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육적인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마음은 마음을 나누어지게 만들고,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없다. 분산되지 않는 마음, 하나님 한분의 영광과 그분의 은혜에 자신의 마음을 고정시키고 범사에 일체의 경건함과 성숙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가슴 저미는 기도는 그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가 올바른 기도라는 사실을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입증하는 것이다.
Ⅲ. 결론
마귀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교회를 노린다. 그리고 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서 쉼 없이, 간절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시련은 우리 안에 흩어진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각자가 가진 믿음이 공동체의 시련에 그렇게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교회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비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Ⅰ. 본문해설
예루살렘 교회에 커다란 시험이 닥쳤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초대교회의 기둥과도 같던 사도였는데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고, 베드로도 붙잡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예루살렘 교회에는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고, 성도들의 마음은 불안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성숙한 교회였다. 성도들은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기 위해 정치적인 협상단을 꾸리지도 않았고, 감옥을 습격할 군사를 모집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이 모든 일을 맡기기로 작정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Ⅱ. 교회가 기도할 때
A. 교회가 기도함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하였다. 이것은 교회 전체가 마음을 모아서 교회의 기도제목을 마치 자신의 기도제목인 것처럼 여기며 기도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꺼지지 않는 기도의 불씨는 가족과 교회, 국가와 인류 공동체를 위한 기도의 큰 불이 타오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개인기도가 살아 있을 때 그 기도의 불꽃으로 더 큰 영역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도가 공동체를 향해 확장되지 않고, 자신의 기도제목에만 머문다면 이것은 그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 안에는 교회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의 신앙도 온전한 것일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을 때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셨으며, ‘나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도록 하셨다. 또한 죄 지은 자를 사하여 달라는 것도 ‘우리’를 향해서였고, 시험에 들지 않게 악에서 구해달라는 것도 ‘우리’를 향해서였다. 기도에 있어서 이러한 공동체적인 성격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는 성령님 자신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B. 간절히 기도함
예루살렘 교회는 간절히 기도하였다. ‘간절히’라는 말은 ‘없다’라는 뜻의 "아"와 ‘안식’, ‘쉼’, ‘휴식’이라는 뜻의 "카타파우시스"가 연합하여 이루어진 말이다. 그러니 ‘간절히’라는 말은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는 의미이다. 이 기도의 제목이 워낙 절박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과 정신은 한 차례도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지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이다. 2차적으로는, 기도하면 할수록 더 마음이 녹는 것 같은 간절함이 깃드는가를 보는 것이다. 사람보기에 올바르게 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의 본보기이다. 하나님께서는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한 기도나 마음은 실리지 않는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설득되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하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비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가신다.
C. 하나님께 기도함
또한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께 기도하더라.’는 단순히 기도의 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때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된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랑의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의지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킨 것을 의미한다.
염려하는 마음, 이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육적인 생각에 의해 좌우되는 마음은 마음을 나누어지게 만들고,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없다. 분산되지 않는 마음, 하나님 한분의 영광과 그분의 은혜에 자신의 마음을 고정시키고 범사에 일체의 경건함과 성숙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가슴 저미는 기도는 그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가 올바른 기도라는 사실을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입증하는 것이다.
Ⅲ. 결론
마귀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교회를 노린다. 그리고 이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서 쉼 없이, 간절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시련은 우리 안에 흩어진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각자가 가진 믿음이 공동체의 시련에 그렇게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교회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비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김남준 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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