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하소서
골 3:1-11
오늘이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건 것을 기념하여 전 세계 개신교회가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중세시대 1000년을 지내오면서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성직매매를 일삼고, 면죄부를 판매하고, 윤리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어나고 있었고, 교회 밖에서 교회에 대한 비난이 성난 파도처럼 거세게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개혁의 부르짖음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신앙운동이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어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도하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종교개혁을 부르짖었고 나름대로 시도해왔습니다. 루터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종교개혁의 시도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개혁’의 대리자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실 때 도구요 대리자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루터가 어떻게 하나님의 개혁의 대리자로 쓰임을 받게 되었는지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먼저 새롭게 되었습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이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루터가 그랬습니다. 사실 루터는 종교개혁의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개혁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새로워지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루터는 자기 속에 있는 죄를 씻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우선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씻으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수도원의 원장 스타우피츠는 워낙 자주 고해성사를 위해 찾아오는 루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루터여 살인이나 간음죄가 아니면 더 이상 내게 고해성사를 하려고 오지 말라!’
그리고 루터는 죄를 씻기 위해 로마까지 방문했습니다. 산타 스칼라 성당에 있는 ‘빌라도의 계단’에서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속죄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는 도중 로마서 말씀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죄사함을 받고 온전히 새로워지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혁은 개혁하려는 사람이 먼저 새로워져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개혁을 체험한 뒤에야 개혁자로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새롭게 하소서를 외쳤습니다.
자신이 새롭게 된 뒤에 루터는 교회와 세상을 개혁하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 때 역시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셔야만 개혁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롭게 하소서’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개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로 새롭게 된 사람들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그럴 때 교회와 세상이 잘못된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위의 것을 따라 교회와 세상이 새롭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꿈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새롭게 하소서’를 외치며 하나님의 개혁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혁은 위의 것을 따라 새롭게 되는 꿈과 비전을 갖는 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새롭게 하소서’를 외치며 하나님의 개혁에 동참하면서 하나의 큰 움직임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본 두 가지 교훈은 개혁을 이루고자 할 때 하나의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루터도 이 원리를 따라 종교개혁을 이루어냈습니다. 이제 오늘 한국교회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보려고 할 때 우리도 이 원리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루터 당시의 교회처럼 개혁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시급한 것을 몇 가지 들어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1. 정직
한국교회가 불신을 당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통계 자료입니다. 한국교회가 내 놓은 통계자료를 보면 대체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각 교단이 내놓은 교세 통계를 합산해 보면 무려 1500만이 넘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인구 센서스를 통해 조사한 통계를 보면 기독교인의 수는 870만 정도입니다. 이 엄청난 차이는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물론 통계 수치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나온 점도 있습니다. 정부의 통계는 현재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사람들의 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교회의 통계는 그 사람이 교회에 등록된 수를 합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통계는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어느 교회에 등록되어있지만 최근에 교회를 옮긴 사람들일 경우 이중 등록이 되어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확치 않은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한국교회가 교인 수를 부풀린 측면이 더 많습니다. 자기 교회의 교세를 많게 나타내기 위해 실제의 수보다 교인 수를 부풀립니다. 특히 세례 교인 수에 따라 각 교회가 노회에 파송하는 총대 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총대수를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 세례교인수를 부풀리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산에 따라 노회에 내는 상회비가 달라지기 때문에 교회 예산은 줄여서 보고하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이번 노회에서 몇 분이 노회 현안 문제에 대해 제게 몇 가지 의논을 하셨습니다. 노회의 한 두 교회가 분쟁으로 인해 교세가 대폭 감소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지금까지 세례교인 수가 2500여명 된다고 보고 해왔습니다. 그런데 현재 주일 출석교인이 3-400명 밖에 안 됩니다. 세례교인 수가 2000명 이상 줄었습니다. 또 한 교회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회가 총회에 보고하는 세례교인 수가 3000명 이상 줄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노회에서 총회로 파송하는 총대 수가 2명가량 줄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총대로 가려고 경쟁이 치열한 데 이렇게 되면 더욱 경쟁이 치열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세례교인 수를 줄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찾느라고 궁리를 하시더라구요.
안타까운 것은 총대 한 사람 더 나가도록 하기 위해 세례교인 수를 사실과 다르게 보고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정직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는 점입니다. 그분들이 목사와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정직이 무너지듯이 교회 안에서도 정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정직을 잃어버리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정직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정직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새롭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정직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정직하지 못한 교회, 정직하지 못한 이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하소서 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정직을 되살려 내기 위해 헌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시급하게 시작해야 할 개혁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2. 분수
지난 10월 21일 KBS 9시 뉴스는 한국교회의 교회세습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었습니다. 앵커가 힘주어 강조한 내용이 이것입니다. “지난해 국내 개신교 주요 교단들이 교회를 물려주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의했었는데, 불과 1년 만에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작년에 개신교 대부분의 교단이 세습 반대 결의를 했었지만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슬그머니 입장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습 반대를 선언적으로만 내세웠고 정작 법제화하지 않아서 세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교단만은 법제화를 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확인된 곳만도 95개 교회가 세습을 완료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세습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담임목사가 은퇴하면서 후임 담임목사로 자기 아들을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교인들이 원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아들이 담임목사로 올 수 있습니다. 이미 세습이 이루어진 교회들이 다 그런 절차를 거쳤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습이 이루어진 교회는 거의 대부분 담임목사가 헌신적으로 목회를 해서 교회가 크게 부흥한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아들을 후임으로 세우고자 할 때 거역하기가 힘이 든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몇몇 교회에서는 아들이 후임으로 와서 목회를 잘한 교회들도 있습니다.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후임으로 와서 교회가 더욱 부흥한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세습을 강행하려는 교회가 이런 교회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세습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이 교회의 주인이고 목사를 비롯하여 교회 지도자들과 모든 교인들은 다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교회세습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자기가 교회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교회세습을 시도하는 한 목사님의 항변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자기 집에서 교회를 개척했답니다. 자기 전 재산을 다 털어서 교회 건물을 마련했고 자기가 생명을 걸고 목회해서 오늘 이토록 큰 교회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부동산 동산 합하면 500억이 넘는답니다....
그 분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키워놓은 이 교회를 어떻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가 쏟아 넣은 것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받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습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분수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청지기라는 사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애써서 이루어 놓은 것이라서 내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분수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누구이시고 또 나는 누구인지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그리고 남달리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 이 분수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분수를 지켜가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분수를 깨닫고 분수를 지키는 일 이 또한 오늘 우리가 실천해 가야 할 개혁의 과제입니다.
3. 정도
제게 스승이 되시는 박종순 목사님께서 교회 입당 후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친히 먹을 갈아 난을 치시고 그 위에 글을 쓰신 뒤에 표구를 해서 보내주셨습니다. 그 글이 네 자입니다. ‘정도목회’(正道牧會)입니다. 마지막까지 바르게 목회하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정도 목회’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르게 목회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류에 편승하거나 편법이나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 표구를 목양실에 걸어놓고 늘 바라보면서 스승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MBC 뉴스테스트가 우리 이웃교회 사건을 뉴스로 소개했습니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이 교회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회에 고소를 했습니다. 총회 재판국이 이 문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한 측에서 재판국원에게 로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금품을 전달해서 총회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금품 전달한 증거가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용납되기 힘이 든 문제가 교회 안에서 버젓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돈으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보겠다는 발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질렀고 또 돈을 받고 재판을 그릇되게 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그 일을 주도한 사람들이 목사와 장로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편법과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 불법과 편법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정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 것이 우리만큼은 끝까지 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교회가 정도를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정도를 지키라고 책망을 듣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정도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 대로 올곧게 그 길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때로는 손해를 볼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박해를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정도를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연후에 우리는 우리 교회가 정도를 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이 정도를 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직장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정도를 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 정도를 바로 세워가는 일이야 말로 우리가 시급하게 개혁해 가야 할 과제 가운데 또 하나입니다.
오늘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말씀드렸습니다. 정직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어느새 거짓을 용납하고 말았습니다. 분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주인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것인데 자기 것인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정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편법이 난무합니다. 불법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잠잠하던 언론들이 최근에 벌떼처럼 일어나서 한국교회에 대해 손가락질을 해 댑니다. 마치 한국교회가 무슨 큰 죄나 지은 것처럼 야단을 치고 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 죄송합니다. 우선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먼저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내가 먼저 정직해 지고, 내가 먼저 분수를 지키고, 내가 먼저 정도를 걸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새롭게 하소서!” 주여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여 주소서 라고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예들입니다. 개혁의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힘이 들더라도 마침내 개혁을 이루어 내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주여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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