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만남 만들기
창 24:61-67
인생은 그 자체가 만남입니다. 가족들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시작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학창시절이 이어집니다. 반려자, 배우자와의 만남으로 인생이 새 차원을 맞습니다. 동료들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무르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이 만남들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시인 정채봉은 ‘만남’이라는 시에서 만남의 여러 형태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이 시인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생선 같은 만남도, 꽃송이 같은 만남도, 건전지 같은 만남도, 지우개 같은 만남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만남들 때문에 아파하고 또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또 손수건 같은 만남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만남 때문에 위로받고, 힘을 얻고, 기뻐하며 행복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만남에는 크게 두 종류의 만남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된 만남입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얻고,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기쁨을 얻고,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 집니다. 다른 하나는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만남입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고통스럽습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큰 낭패를 봅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 인생 자체가 엉망이 됩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불행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만남이 복됨 만남이 되느냐 아니면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만남이 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그 만남을 어떻게 시작하느냐 또 그 만남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만남이 어떤 만남이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만남을 복된 만남이 되게 하느냐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은 후 본격적으로 이삭의 결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을 고향으로 보내서 같은 족속의 여인으로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오게 했습니다.
종이 순종했습니다. 예물을 준비하고 그 먼 길 걸어 메소포타미아 나홀 성에 도착했습니다. 종이 우물가에서 기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물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종은 바로 이 리브가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이삭의 신부감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의 집으로 가서 아버지 브두엘과 오빠 라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저들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이 혼사에 동의했습니다. 물론 리브가도 이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아브라함의 집으로 그야말로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삭은 들에서 묵상하며 종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종이 리브가와 함께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종이 이삭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이삭은 기쁨으로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리브가를 사랑하여 부부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었고,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큰 틀에서 보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만남의 과정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은 손으로 역사하셔서 결국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순간순간 이삭과 리브가의 믿음의 태도가 이 만남을 복된 만남이 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의 어떤 태도가 이 만남을 복된 만남이 되게 한 것일까요?
리브가의 믿음의 깨달음
오늘 본문을 오늘의 잣대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그야말로 인륜지대사입니다. 그런데 그 인륜지대사가 너무도 경솔하게 진행되는 것만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그 먼 길을 와서 그것도 우연히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그 종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감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리브가의 집으로 가서 리브가의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리브가를 이삭의 신부감으로 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 가족들이 선뜻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인 리브가에게 물었습니다. 58절을 보면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그러니까 리브가도 이삭과 결혼하겠다고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리브가처럼 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따님을 이렇게 시집을 보낼 수 있습니까? 신랑감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신랑이 몸은 온전한지, 정신은 올바로 박혔는지, 가정을 이끌 능력은 있는지... 신랑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비록 신랑 아버지가 종에게 전권을 주었다고는 하나 신랑과 신랑 아버지가 리브가를 맞아줄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결혼하기 위해 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왜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이 보낸 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기가 이삭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이 보낸 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가 기도했고, 기도의 응답으로 자기를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가족들이 아브라함이 보낸 종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자기와 이삭과의 결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리브가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만남은 믿음의 깨달음으로 시작됩니다. 그 만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섭리가운데 예비해 두셨고, 그 만남을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셨고, 그리고 이후 만남의 열매도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실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복된 만남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정보회사가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신랑 신부감을 준비해 놓고 원하는 ‘스펙’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들이 장사가 잘 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지난 3년 간 결혼에 성공한 회원 6000명의 스펙을 조사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남성의 표준모델은 나이 35세, 연소득 4500만원, 4년제 대졸, 신장이 173-174cm, 일반사무직 회사원이고, 여성의 표준모델은 32세, 연소득 3400만원, 4년제 대졸, 신장 163-164cm, 역시 일반사무직 회사원이었답니다.
결혼정보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최상위 A+ 신랑감의 스펙은 [ 키 183cm, 나이 30, 외모 미남, 학력 해외 박사, 연봉 2억, 집안 최상류층, 성격 좋음]으로 되어있습니다. A+ 신부감 스펙은 [키 163cm, 나이 26세, 지성미모덕성 갖춤, 연봉 7000, 학력 해외박사, 집안 최상류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결혼정보회사들은 결혼을 그야말로 비즈니스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종류의 신랑감과 신부감을 상품으로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을 맺어주고 결혼을 성사시켜서 수수료를 챙깁니다. 근자에 이런 결혼이 성행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만남이 복됨 만남이 될까요? 인위적으로 맺어진 만남이 복된 만남이 될까요? 조건만 맞는다고 좋은 조건의 사람과 만났다고 복된 만남이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복된 만남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만남을 지속되게 하시고 그 만남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만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만남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삭의 믿음의 기도
본문 63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이삭이 들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와 함께 돌아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삭은 자신의 결혼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너무도 수동적입니다. 결혼 시기를 정하는 것도 아버지 아브라함이 정했습니다. 신부감을 선택하는 일도 아버지가 보낸 종이 선택했습니다. 자신은 그저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삭의 이런 태도는 과거 아담의 태도를 연상시킵니다. 창 2:22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께서 아담의 배필을 일방적으로 만드셔서 아담에게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취향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의 바람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하와를 만드셔서 만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때 아담이 한 일은 기도하며 기다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이삭은 이 때 나이가 40입니다.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 넘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께 결혼시켜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 사라가 돌아가셨고 장례를 다 치른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신경 쓰기 시작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서둘러달라고 부탁할 만 한 데 여전히 기도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내감을 구해오라고 저 멀리 메소포타미아까지 보냈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제대로 신부감은 구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기도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하고 기다리는 일이 지름길입니다. 괜히 서두르다가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괜히 나서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일이 상책입니다.
저는 중국 보이차를 즐겨 마십니다. 중국선교 여행을 다니며 이 차를 알게 됐고, 하나님의 은혜로 싸고 품질 좋은 보이차를 구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됐습니다.
보이차는 그 특징이 후발효차입니다. 차가 만들어진 뒤 계속 발효가 이루어지는 차입니다. 그래서 오래 묵힐수록 차 맛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오래 묵힌 차 일수록 값이 비쌉니다. 오래 묵은 차를 진년차(陳年茶)라고 합니다. 적어도 10년은 지난 차 보통 20년 정도는 지난 차를 말합니다.
이런 진년차는 차 농가에서 작심을 하고 따로 만들어 보관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궁해도 꺼내 마시거나 내다 팔지 않고 계속 보관해 둔답니다. 그 차 농부의 인내의 기다림과 정성이 좋은 차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차를 만나서 마실 기회가 있습니다. 그 맛의 풍미가 다릅니다. 이런 차를 마실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삭과 같은 사람을 만날 때 마치 진년차를 마실 때와 같은 기쁨을 느끼시리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래 기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만남을 선물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된 만남은 간절한 기도와 오랜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인스탄트와 같은 만남은 위태롭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더욱 기도하고 기다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만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브가와 이삭의 믿음의 결단
본문을 보면 리브가의 가족회의에서 이삭과의 결혼을 결정하고서는 한 열흘쯤 뒤에 출발토록 권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바로 출발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종과 함께 바로 떠납니다.
사실 리브가는 이제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생전 가족들을 다시 보기가 힘이 드는 길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천천히 떠날 것을 권했지만 리브가는 믿음으로 한 번 결단한 것은 단호하게 결행을 했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이삭에게로 왔습니다. 이 때 리브가는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신부감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리브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초지종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기도하고 기다렸던 그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리브가를 아내로 맞기로 결단했습니다. 또한 결단한 그대로 바로 결혼하여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사랑하며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확인하고 나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저하거나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결단하여 만남을 이루어야 합니다.
얼마 전부터 ‘살아보고 결혼하자’는 결혼 풍속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화로 연극으로 이런 풍조를 부추기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실제로 동거족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대학에서 앙케이트를 조사했답니다.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적극 찬성한다가 30%, 상황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다가 45% 그러니까 75%가 찬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물었는데 가장 많은 답이 조기 이혼이 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결혼해서 빨리 이혼하느니 살아보고 결혼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여간 우려스러운 풍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은 무책임한 동거가 결혼을 빙자해서 자행되는 것입니다. 쾌락주의와 성적 타락이 확산되면서 결혼제도 자체의 거룩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의 하나 동거 후에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판단하여 순종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사람도 일단 살아보고 살만하면 결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불순종의 커다란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된 만남은 우리의 믿음의 결단의 산물입니다. 결과를 확인하고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만남을 이룬 뒤 만남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확인이 되면 믿음으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만남은 우리에게 복이 될 수도 있지만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남으로 행복을 맛볼 수도 있지만 만남 때문에 불행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만남을 이루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복된 만남을 이루려면 우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만남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만남을 허락하셨다고 믿어지만 결단해야 합니다.
창 24:61-67
인생은 그 자체가 만남입니다. 가족들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시작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학창시절이 이어집니다. 반려자, 배우자와의 만남으로 인생이 새 차원을 맞습니다. 동료들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무르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이 만남들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시인 정채봉은 ‘만남’이라는 시에서 만남의 여러 형태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닳았을 때는 던져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이 시인의 노랫말처럼 우리는 생선 같은 만남도, 꽃송이 같은 만남도, 건전지 같은 만남도, 지우개 같은 만남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만남들 때문에 아파하고 또 후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또 손수건 같은 만남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만남 때문에 위로받고, 힘을 얻고, 기뻐하며 행복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만남에는 크게 두 종류의 만남이 있습니다. 하나는 복된 만남입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위로를 얻고,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기쁨을 얻고,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 집니다. 다른 하나는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만남입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고통스럽습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큰 낭패를 봅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 인생 자체가 엉망이 됩니다. 그 만남 때문에 우리가 불행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만남이 복됨 만남이 되느냐 아니면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만남이 되느냐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그 만남을 어떻게 시작하느냐 또 그 만남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그 만남이 어떤 만남이 되느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만남을 복된 만남이 되게 하느냐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은 후 본격적으로 이삭의 결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을 고향으로 보내서 같은 족속의 여인으로 이삭의 아내감을 찾아오게 했습니다.
종이 순종했습니다. 예물을 준비하고 그 먼 길 걸어 메소포타미아 나홀 성에 도착했습니다. 종이 우물가에서 기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물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종은 바로 이 리브가가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이삭의 신부감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의 집으로 가서 아버지 브두엘과 오빠 라반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저들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이 혼사에 동의했습니다. 물론 리브가도 이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아브라함의 집으로 그야말로 시집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삭은 들에서 묵상하며 종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종이 리브가와 함께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종이 이삭에게 자초지종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이삭은 기쁨으로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리브가를 사랑하여 부부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었고, 이로써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큰 틀에서 보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만남의 과정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은 손으로 역사하셔서 결국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순간순간 이삭과 리브가의 믿음의 태도가 이 만남을 복된 만남이 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의 어떤 태도가 이 만남을 복된 만남이 되게 한 것일까요?
리브가의 믿음의 깨달음
오늘 본문을 오늘의 잣대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그야말로 인륜지대사입니다. 그런데 그 인륜지대사가 너무도 경솔하게 진행되는 것만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보낸 종이 그 먼 길을 와서 그것도 우연히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났습니다. 그 종이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감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리브가의 집으로 가서 리브가의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리브가를 이삭의 신부감으로 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 가족들이 선뜻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인 리브가에게 물었습니다. 58절을 보면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그러니까 리브가도 이삭과 결혼하겠다고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리브가처럼 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따님을 이렇게 시집을 보낼 수 있습니까? 신랑감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신랑이 몸은 온전한지, 정신은 올바로 박혔는지, 가정을 이끌 능력은 있는지... 신랑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비록 신랑 아버지가 종에게 전권을 주었다고는 하나 신랑과 신랑 아버지가 리브가를 맞아줄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결혼하기 위해 가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왜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이 보낸 종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기가 이삭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리브가는 아브라함이 보낸 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가 기도했고, 기도의 응답으로 자기를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가족들이 아브라함이 보낸 종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자기와 이삭과의 결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리브가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만남은 믿음의 깨달음으로 시작됩니다. 그 만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섭리가운데 예비해 두셨고, 그 만남을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셨고, 그리고 이후 만남의 열매도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실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복된 만남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정보회사가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신랑 신부감을 준비해 놓고 원하는 ‘스펙’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고 수수료를 받는 회사들이 장사가 잘 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지난 3년 간 결혼에 성공한 회원 6000명의 스펙을 조사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남성의 표준모델은 나이 35세, 연소득 4500만원, 4년제 대졸, 신장이 173-174cm, 일반사무직 회사원이고, 여성의 표준모델은 32세, 연소득 3400만원, 4년제 대졸, 신장 163-164cm, 역시 일반사무직 회사원이었답니다.
결혼정보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최상위 A+ 신랑감의 스펙은 [ 키 183cm, 나이 30, 외모 미남, 학력 해외 박사, 연봉 2억, 집안 최상류층, 성격 좋음]으로 되어있습니다. A+ 신부감 스펙은 [키 163cm, 나이 26세, 지성미모덕성 갖춤, 연봉 7000, 학력 해외박사, 집안 최상류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결혼정보회사들은 결혼을 그야말로 비즈니스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종류의 신랑감과 신부감을 상품으로 준비해 놓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을 맺어주고 결혼을 성사시켜서 수수료를 챙깁니다. 근자에 이런 결혼이 성행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만남이 복됨 만남이 될까요? 인위적으로 맺어진 만남이 복된 만남이 될까요? 조건만 맞는다고 좋은 조건의 사람과 만났다고 복된 만남이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복된 만남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실 뿐 아니라 그 만남을 지속되게 하시고 그 만남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만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만남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삭의 믿음의 기도
본문 63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이삭이 들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와 함께 돌아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삭은 자신의 결혼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너무도 수동적입니다. 결혼 시기를 정하는 것도 아버지 아브라함이 정했습니다. 신부감을 선택하는 일도 아버지가 보낸 종이 선택했습니다. 자신은 그저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삭의 이런 태도는 과거 아담의 태도를 연상시킵니다. 창 2:22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께서 아담의 배필을 일방적으로 만드셔서 아담에게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취향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의 바람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하와를 만드셔서 만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때 아담이 한 일은 기도하며 기다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이삭은 이 때 나이가 40입니다. 이미 결혼 적령기를 한참 넘긴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께 결혼시켜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어머니 사라가 돌아가셨고 장례를 다 치른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의 결혼을 신경 쓰기 시작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서둘러달라고 부탁할 만 한 데 여전히 기도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내감을 구해오라고 저 멀리 메소포타미아까지 보냈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제대로 신부감은 구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기도하고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하고 기다리는 일이 지름길입니다. 괜히 서두르다가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괜히 나서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일이 상책입니다.
저는 중국 보이차를 즐겨 마십니다. 중국선교 여행을 다니며 이 차를 알게 됐고, 하나님의 은혜로 싸고 품질 좋은 보이차를 구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됐습니다.
보이차는 그 특징이 후발효차입니다. 차가 만들어진 뒤 계속 발효가 이루어지는 차입니다. 그래서 오래 묵힐수록 차 맛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오래 묵힌 차 일수록 값이 비쌉니다. 오래 묵은 차를 진년차(陳年茶)라고 합니다. 적어도 10년은 지난 차 보통 20년 정도는 지난 차를 말합니다.
이런 진년차는 차 농가에서 작심을 하고 따로 만들어 보관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궁해도 꺼내 마시거나 내다 팔지 않고 계속 보관해 둔답니다. 그 차 농부의 인내의 기다림과 정성이 좋은 차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차를 만나서 마실 기회가 있습니다. 그 맛의 풍미가 다릅니다. 이런 차를 마실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다할 수 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삭과 같은 사람을 만날 때 마치 진년차를 마실 때와 같은 기쁨을 느끼시리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래 기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에게 정말 좋은 만남을 선물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된 만남은 간절한 기도와 오랜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인스탄트와 같은 만남은 위태롭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더욱 기도하고 기다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만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브가와 이삭의 믿음의 결단
본문을 보면 리브가의 가족회의에서 이삭과의 결혼을 결정하고서는 한 열흘쯤 뒤에 출발토록 권했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바로 출발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종과 함께 바로 떠납니다.
사실 리브가는 이제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생전 가족들을 다시 보기가 힘이 드는 길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천천히 떠날 것을 권했지만 리브가는 믿음으로 한 번 결단한 것은 단호하게 결행을 했습니다.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이삭에게로 왔습니다. 이 때 리브가는 자기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은 신부감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리브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초지종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기도하고 기다렸던 그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리브가를 아내로 맞기로 결단했습니다. 또한 결단한 그대로 바로 결혼하여 리브가를 아내로 맞아 사랑하며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확인하고 나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주저하거나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결단하여 만남을 이루어야 합니다.
얼마 전부터 ‘살아보고 결혼하자’는 결혼 풍속도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화로 연극으로 이런 풍조를 부추기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실제로 동거족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대학에서 앙케이트를 조사했답니다.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적극 찬성한다가 30%, 상황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다가 45% 그러니까 75%가 찬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물었는데 가장 많은 답이 조기 이혼이 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 결혼해서 빨리 이혼하느니 살아보고 결혼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여간 우려스러운 풍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선은 무책임한 동거가 결혼을 빙자해서 자행되는 것입니다. 쾌락주의와 성적 타락이 확산되면서 결혼제도 자체의 거룩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의 하나 동거 후에 결혼을 한다고 해도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판단하여 순종여부를 결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사람도 일단 살아보고 살만하면 결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헤어지자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불순종의 커다란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된 만남은 우리의 믿음의 결단의 산물입니다. 결과를 확인하고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고 만남을 이룬 뒤 만남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확인이 되면 믿음으로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만남은 우리에게 복이 될 수도 있지만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남으로 행복을 맛볼 수도 있지만 만남 때문에 불행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만남을 이루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복된 만남을 이루려면 우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만남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만남을 허락하셨다고 믿어지만 결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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