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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0228]여호와를 나의 삶의 진짜 목자로 모시고 있는가를 분별하는 여섯 가지 기준

여호와를 나의 삶의 진짜 목자로 모시고 있는가를 분별하는 여섯 가지 기준 시편 23:1-6(2016228일 설교자: 비전교회 마경훈 목사)

 

  뉴질랜드는 양의 수가 인구 수 보다 많습니다. 그리고 또 그곳에는 목자가 필요 없습니다. 전 국토가 목초지이고 사나운 짐승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냥 양을 방목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메마르고 험해서 물이 귀하고 목초지가 많지 않으며 사나운 짐승도 많습니다. 그곳에는 목자의 도움이 없이 결코 양이 살아 갈수가 없습니다. 23편은 배경이 뉴질랜드가 아니라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에게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들입니다. 양인 우리는 목자 없이 살수 없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양이 되었는데 과연 나 자신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지 시 23편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여호와를 나의 삶의 진짜 목자로 모시고 있는가를 분별하는 여섯 가지 기준입니다.

 

1. 자족하는가?

  평상시 설교를 할 때 설교 제목이 항상 길었던 목사님에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토요일 오후에 주보를 맡겼던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주신 내용 중에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제목이 빠졌네요? 설교제목 좀 알려주십시오.”, “그렇습니까?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입니다.” 인쇄소 직원은 평소에 설교제목을 길게 쓰시던 목사님이신데 그날 제목이 너무 짧아서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목사님이 설교를 하려고 주보를 보니 설교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라고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크게 충격을 받으신 것처럼 제목을 몇 번씩 읽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제목을 반복해서 읽는 목사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목사님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다윗은 여호와가 목자이시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목자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면에 만족했던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왕이라고 하더라도 부족한 면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도 있다고 고백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이 아닙니다. 고통의 장소이며 두려움의 장소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결핍이 있는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부족함이 없다고 표현한 것은 환경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자족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 4:11,1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바울에게는 풍부하여 배부를 때도 있었고 궁핍과 비천과 배고픔의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만족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족하기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님만으로 만족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족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양은 어디에 푸른 풀밭이 있는지 어디에 쉴만한 물가가 있는지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인도 하는 대로 따라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자족하며 사는가? 나는 예수님이 목자이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이 사는가? 경제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아도 여호와가 목자이시기 때문에 만족하며 사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가?

매우 추운 겨울 날씨에 미국 동부를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있던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한 어린애를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목적지가 가까워졌는지 옆에 앉았던 여행객에게 내려야 할 역 이름을 말했고, 여행객은 다음에 정차하는 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음 역에서 여인은 내렸고 기차는 잠시 후에 출발하였습니다. 며칠 후 그 지역 신문에 어린애를 등에 업은 한 여인이 눈보라 속에서 얼어서 죽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여인은 사람이 살지 않는 역에 잘못 내렸다가 봉변을 당했던 것입니다. 왜 그 여인은 그런 실수를 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여인은 역을 정확하게 아는 승무원에게 길을 묻지 않고 그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객에게 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누구의 인도를 받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절에 보니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3절에 보니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양인 성도가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으려면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양은 신기하게도 자기 목자의 음성을 잘 알고 목자를 따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요 10:27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호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을 한 마리 훔쳤다는 죄목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고소당한 피고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그 양은 며칠 전에 잃어버렸던 것으로, 원래 자기 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판사는 그 양을 법정 안으로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원고로 하여금 문밖에 나가서 양을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양은 약간 놀란 듯 할 뿐 더 이상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그 특유한 목소리로 양을 부르자 쏜살같이 문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양은 주인을 알아봅니다. 꽝꽝! 재판은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밤이 되면 양들을 동굴에 두고 동굴 입구를 지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한 동굴에 여러 목자의 양들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우에 양들이 자기 목자를 어떻게 찾을까 궁금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침에 목자들이 양들을 부르면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정확하게 자기 목자에게로 간다고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목자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목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2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경과 성령의 인도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하여 성경 저자들에게 감동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119:105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이 세상은 어둡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발에 등이 되고 길에 빛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기도하며 성경을 읽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 음성은 우리의 발에 등이 되고 길에 빛이 되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또 성령님의 감동과 가르침에 주의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고전 2:10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성령님은 우리의 갈 길도 아시고, 우리의 미래도 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시고 우리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도 아십니다. 양이 목자의 인도를 받듯이,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8:14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3.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가?

3절에 보면 목자이신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이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기도문보다 좋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서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은 기도의 대상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기도의 대상을 말씀하신 후에 첫 번째 기도제목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3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망해버린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6장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된 구절이 4구절 나옵니다. 36:20-23입니다.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21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한 이름이고 큰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에 사로잡혀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끼셨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자기가 잘되고, 자기가 성공하고, 자기가 높여지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고전 10:31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확신되어지면 손해를 봐도 혹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제3차 위비캠프를 했습니다. 재정은 약 14백만 원이 들어갔습니다. 회비 받은 것이 약 450만원이니 헌금을 제외하고 나머지 약 800만원은 여러분의 헌금과 교회 재정을 사용했습니다. 위비캠프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뭐 하로 돈을 써가면서 그런 일을 하나, 거기에 참석한 학생들이 변화된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교우들 중에는 휴가를 내고 참석하여 봉사한 사람들도 있고, 먼 길을 오가며 피곤한 사역을 했는데 그 일이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되는가? 등 얼마든지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손익계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일로 부르셨다면 아무리 손해가 되어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위비캠프를 통해서 손해나게 하실 분은 아니십니다.

마지막 날 어느 분이 저에게 자기 평생 최고의 수련회였다고 평해주었습니다. 최목사님의 강의도 칭찬해주었습니다. 또 이런 수련회는 전국으로 확산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춘천에서 오셨는데 위비캠프를 춘천에서 했으면 좋겠답니다. 어느 분은 경상도 쪽에서 오셨는데 아래 지역에서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아름다운 교회 학생은 진짜 교회에서 한 진짜 수련회였다고 하면서 다음에는 자기 엄마도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사는 사람은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4. 두려움을 이기며 사는가?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 전체에 365번이나 나온다는 글을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그만큼 세상에는 두려워할 일이 많다는 말입니다.

다윗에게도 두려워할만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윗은 그런 상황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니이다다윗은 주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으로 인하여 두렵지 않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3:6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천만인이 나를 죽이려고 둘러 진 치는데 두렵지 않은 이유 무엇입니까? 3:5을 보겠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장소로서 가장 높은 곳은 티벳에 있는 '꼴라란둥'이라는 지점인데, 그 곳은 무려 해발 6,300미터로 한라산의 3배가 넘습니다. 몇 해 전에 KBS 취재팀이 그 꼴라란둥을 취재하러 갔습니다. 취재팀이 도착한 날은 기온이 영하 20도였습니다. 취재팀이 촬영을 하려고 꺼낸 카메라가 얼어서 작동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텐트 속에서 함께 식사를 끝마친 뒤 잘 시간이 되자 텐트 주인 까르마 씨가 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여기서 주무십시오.” 그러더니 자기는 모포 한 장만 들고 텐트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어디서 자려고 나가느냐고 묻자 까르마씨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내 양을 지키기 위해서 밖에서 잡니다.” 그는 자기 말대로 카메라가 얼어붙을 정도의 혹한 속에서 가죽 모포 한 장으로 깔고 덮고 잤습니다. 행여라도 맹수가 나타나서 자기 양떼들을 채어 갈까 봐서입니다. 6,300미터 고지의 양떼는 영하 20도에도 아랑곳 않고 곁에서 지켜 주는 목자 때문에 밤을 편안히 지새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주는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실수가 없으신 완전하신 하나님,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십니까? 121:4에 답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사람은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5. 원수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는가?

5절에 보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자나 곰 혹은 이리가 나타나도 양이 안전한 이유는 목자가 싸워주기 때문입니다. 삼상 17:34,35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다윗은 충성된 목자였습니다.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면 다윗은 그것을 따라가서 그것을 쳐 죽이고 양을 구해냈습니다. 인간 목자인 다윗이 이렇게 양을 지켰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양은 목자가 있기에 원수에 대해서 승리합니다.

우리는 원수 마귀에 대해서 승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요일 3:8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를 통한 승리입니다. 2:15에 보면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능력입니다. 고전 1:18을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하신 십자가를 붙들므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조봉희 목사님은 예수님의 승리를 7가지 차원에서 정리했습니다. 첫째,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둘째, 죄를 이기셨습니다. 셋째,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넷째, 악한 영들을 이기 셨습니다. 다섯째, 모든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여섯째,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자신감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담대합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원수 마귀에 대해서 승리합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사람은 승리에 대한 이 확신이 충만합니다.

 

6. 좋으신 하나님을 확신하는가?

6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의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자신을 따른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믿은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었습니다. 다윗은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주님도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11에 보면 나는 선한목자라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목자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구원의 교리를 통해서 더욱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교리는 이신득의의 교리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좋으신 하나님 즉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잘 보여주는 교리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청년 때에는 무서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후에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청년 때에 변호사, 법률학자가 되기 위해서 법률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오고 천둥번개가 치더니만 벼락이 앞서가던 친구를 때려서 즉사해 버렸습니다. 그때 마르틴 루터는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서 오 하나님! 만일 저를 살려 주시면 저는 저의 평생을 바쳐서 사제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그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음속에 끝없는 죄책감으로 번뇌를 했습니다. 아무리 고행을 해도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의식을 행해도 죄인이란 인식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다가 좋으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구원이 인간의 의로운 행위나 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1:17을 보겠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의 행위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일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해서 용서를 받고, 의로움을 얻고, 천국에 가라면 과연 몇 사람이나 천국에 가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에 여호와의 집인 천국에 영원토록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여호와를 나의 삶의 진짜 목자로 모시고 있는가를 분별하는 여섯 가지 기준을 나눴습니다. 첫째, 자족하는가? 둘째,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가? 셋째,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가? 넷째, 두려움을 극복하는가? 다섯째, 원수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는가? 여섯째, 좋으신 하나님을 확신하는가?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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